△삼천리, 이만득 명예회장으로 추대
이만득은 2016년 9월경에 열린 삼천리 이사회에서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이만득의 뜻이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만득은 2016년 3월에 등기임원에서도 물러나 이사진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됐다.
23년 동안 회장으로 근무해온 이만득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2016년부터 경영 보폭을 줄이겠다는 뜻을 이사회에 전달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천리그룹의 경영은 이만득의 최측근 인사인 한준호 삼천리 대표이사 회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천리그룹 관계자는 "이만득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다기보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사업 구상에 힘쓰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라며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종합에너지기업으로 위상 강화
삼천리는 2000년대 초 일본의 구역형 집단에너지사업(CES)의 현황을 눈여겨본 뒤 가능성을 확인하고 사업을 추진했다.
집단에너지사업은 열병합발전소 등 에너지생산시설에서 나온 열이나 전기를 공동주택과 빌딩, 상가 등 다수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사업으로 기존의 난방방식에 비해 에너지 절약효과가 뛰어난 친환경 에너지사업이다.
삼천리는 2010년 7월13일 광명열병합발전소 준공식을 개최하고 본격적으로 상업 운전에 들어간 뒤 대규모 주거단지에 전기·열·도시가스 등 에너지 일체를 일괄 공급하게 됐다. 2015년 경기 서부권의 발전소 가운데 최대 규모인 안산LNG복합발전소를 준공했다.
이만득은 이에 따라 삼천리가 종합에너지기업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도시가스사업을 주력사업으로 성장
삼천리그룹은 1982년 경인도시가스를 인수하며 도시가스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만득은 도시가스공장과 관련해 안전관리를 강조하며 1996년부터 공사감독 실명제를, 1998년부터 배관융착사 실명제를, 1999년부터 강관용접사 실명제를 각각 도입했다. 그는 ‘우리 시설물 주위에 사는 분들이 우리의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완벽히 시공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이만득은 외환위기로 투자가 어려웠던 시기에 도시가스사업에 투자비용을 확대했다. 이는 국내 30여 개 도시가스 사업자 가운데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는 근간이 됐다.
이만득은 1990년대 초에 “도시가스 배관 투자는 선행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지금은 투자회수 기간이 100년 이상인 곳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도시화되면서 인구가 늘어나 가스 판매가 증가하는 데다 배관공사 단가와 재료비가 계속 인상되기 때문에 조기 투자가 유리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삼천리는 배관투자비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해마다 300억 원을 썼는데 IMF외환위기의 원년이던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해마다 약 600억 원 수준으로 늘렸다.
그 결과 도시가스 판매량이 2000년 약 22억m³로 외환위기 전년보다 2배 증가했다.
△연탄사업 등 유지가 어려운 한계사업 정리
이만득은 삼천리그룹에서 꾸준히 사양사업을 정리하는 데 힘써왔다.
1990년대 부회장 시절에 그룹기획실에 근무하면서 삼천리를 비롯한 관계사들의 경영상태를 확인하고 이에 따른 대책을 수립했다. 1991년 설립 5년차였던 삼천리기술투자 지분을 매각하는 등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도록 했다.
삼천리그룹은 1993년 3월 수출입 대리점 기능을 하던 무역사업본부를 폐지했다. 1994년 건축자재사업 회사였던 삼천리에버우드도 정리했다.
삼천리그룹의 주력사업이었던 연탄사업도 1992년 수색 공장을 시작으로 1997년 시흥 공장, 2002년 이문 공장을 정리하며 완전히 접었다.
또 장차 환경사업 진출의 기반으로 삼으려던 활성탄사업도 저가의 중국 제품이 대량 유입됨에 따라 사업성이 악화돼 1990년대 중반에 사업 정리를 검토했다. 1998년 생산설비를 한승기업에 매각하며 최종 정리됐다.
1976년 사업 다각화 전략 이래 최초 진출한 사업인 코크스사업도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과 원가 상승의 요인이 합쳐지면서 난항을 겪었고 1996년에 접게 됐다.
이에 따라 삼천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도시가스사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에서 철수하는 구조조정을 이뤘다.
△이만득, 회장 취임해 ‘새로운 삼천리’ 구축 힘써
이만득은 1993년 2월26일(당시 나이 37세) 회장에 올랐다. 당시 신년사를 통해 네 가지 경영방침과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조직풍토의 활성화로 모든 분야에서 낭비요인을 과감히 제거하고 의사결정 채널을 단축하는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둘째는 신규사업의 본격 추진으로 당시 정체됐던 외형 성장을 위해 유통사업과 활성탄 관련 환경사업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또 기계공업이 2000년대 주력사업이 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이만득은 레저스포츠와 도시가스업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졌다.
셋째는 인재 육성, 넷째는 책임경영체제였다. 당시 이만득은 삼천리와 삼천리주택, 삼천리열처리, 삼천리기계 등 4개 회사를 경영하고 유상덕 회장은 삼탄, 한인니자원개발, 삼천리제약, 미성상사의 경영을 책임지게 됐다.
이만득은 회장에 오르기 전에 1981년 미성상사 LA지사장으로 입사한 뒤 삼천리열처리 이사, 삼천리 상무 및 부사장을 거친 뒤 1992년 삼천리그룹 부회장으로서 그룹 발전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