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희 기자 flyhighssul@businesspost.co.kr2014-11-16 18:20:01
확대축소
공유하기
전체
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한민구는 1953년 충청북도 청원에서 태어났다. 내수초등학교 내수중학교를 거쳐 청주고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 31기로 입학했다.
육사 졸업 뒤 제9보병사단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전쟁사학과 교수, 제27보병사단 79연대 2대대장, 국방부 정책기획관실 국방기획담당,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 제53보병사단장, 수도방위사령관, 육군참모차장,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9월부터 2014년 6월 초까지 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했다.
국방부 국제협력관으로 재직할 당시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를 처음으로 발족시키고 주한미군 감축협상, 방위비 분담협상 등을 추진했다.
합동참모의장으로 재직중 연평도 포격전 이후 국지도발 대응태세를 구축해 연평도 재사격 작전과 아덴만 여명작전 등을 지휘했다.
2014년 6월 제44대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한민구는 국방부와 육군본부, 교육사 등 정책부서에서 쌓은 다양한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정책 및 전략기획 업무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꼽힌다.
주위에서 한민구를 온화하고 친화력있는 성품으로 갈등관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조직 내에서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상관과 부하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편이다.
문제의 본질을 읽어내는 능력과 상하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갖추고 있는 데다 합리적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2006년 열린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남쪽 수석대표를 맡아 갈등관리 등 문제해결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합참의장 청문회 시절부터 제기된 야전경험의 부족은 약점으로 꼽힌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육사 31기로 1975년 3월 제9 보병사단 소대장으로 임관했다. 1982년 10월부터 1984년 8월까지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5년 8월부터 1986년 10월까지 대한민국 육군 제27사단 작전과장으로 1986년 10월부터 1988년 12월까지 육군 제27사단 대대장으로 복무했으며 1994년 9월부터 1996년 3월까지 육군 제50보병사단 123연대장을 맡았다.
1997년 3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국방부 정책기획국 정책조정과 과장, 1997년 3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국방부 정책기획국 정책조정과 과장으로 근무했다.
2002년 4월부터 2003년 4월까지 육군 기획관리참모부 전략기획처 처장으로, 2003년 4월부터 2004년 5월 까지 육군 제53보병사단 사단장으로 재직했다.
2004년 5월부터 2005년 5월까지 국방부 국제협력관으로 근무하면서 제10차 미래 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에 참여해 주한미군 감축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2005년 5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국방부 정책기획관, 2006년 12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 2008년 4월에서 2009년 9월까지 육군 참모차장으로 근무했다.
2010년 7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제36대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으로 활동했다. 그가 합참의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2010년 11월 23일 북한과 서해 연평도 포격전이 벌어져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군은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군의 기본 방침에 맞지 않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6.25전쟁 이후 우리 영토가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적이 한 발 쏘면 한 발로 대응한다'는 비례성 원칙이 담긴 유엔사 교전규칙을 들어 K-9자주포로 80여발의 대응사격을 했다. 이 때문에 합참의장으로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4년 7월 제44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2014년 11월 공식 출범한 방위산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에 적극 협조하고 인력을 지원하기로 했다.
군대 내 성범죄가 끊이지 않자 한민구는 형법 개정에 이어 군내 성군기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12월 ‘청렴교육 및 자정결의대회’에서 본부직원들과 청력서약을 하며 전군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군납비리를 근절하자는 의지를 내보였다.
12월에는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민, 관, 군 병영문화혁신위 권고안 최종안을 발표했다. 2014년 8월 출범한 병영혁신위는 임병장 GOP 총기난사 사건과 28사단 윤일병 가혹행위 사망사건을 계기로 현장방문 20회와 장병면담, 인터넷을 통한 9300여 건의 의견수렴 등을 거쳐 22개 병영혁신과제를 국방부에 권고했다.
이날 발표된 권고안에서 혁신위는 군 가산점제도 추진을 권고했다. 혁신위가 내놓은 군 가산점 제도는 현역복무를 이행한 병사가 취업할 때 만점의 2%에 이르는 군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이다. 국방부는 2015년 4월 정신질환 관련 병역면제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집중조사 관리, 군 성폭력 실태조사 정례화, 대학 장학생 선발 시군복무기간 가점 부여, 부사관 후보생 봉급 상향 조정 등을 혁신 과제로 수용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민,관,군 혁신위와 국회 특위에서 공통으로 제안한 핵심 개혁안은 거부했다.
2015년 2월 차오강촨 중국 국방부장 방한 이후 9년 만에 창완취안 국방부장이 한국을 방문해 한중 국방장관회담을 가졌다. 한중 국방장관은 두 나라 국방부 간 직통전화 개설을 위해 실무회의를 갖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괴한의 공격을 받은 사건과 관련해 한민구가 미국 국방장관에게 유감의 뜻을 전했다. 국방부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수 있도록 적극적이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학력
1970년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에 육사 31기로 입학해 1995년 졸업했다.
1997년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사학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1992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곽정임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1999년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으며 2004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합참의장으로 재임중이던 2011년 7월 한반도 및 아시아 태평양지역 평화와 안보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았다.
2014년 제11회 연세를 빛낸 행정인상을 수상했다.
◆ 상훈
1999년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으며 2004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합참의장으로 재임중이던 2011년 7월 한반도 및 아시아 태평양지역 평화와 안보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았다.
2014년 제11회 연세를 빛낸 행정인상을 수상했다.
어록
“병영 내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일상적으로 파괴되고,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 가운데 한마디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까지 우리 군은 이를 예방하고 관리 감독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재판을 받는 가해자 및 방조자에게 엄정한 군기와 군령을 유지하기 위해 군형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엄중하게 조치하겠다.” “병사들이 고충을 인터넷과 전화 등으로 지휘관은 물론, 가족이나 외부에도 알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 (2014/08/04 윤일병 폭행사망사건 관련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에서)
“합참의 당시 입장은 북한에 충분히 대응하되 추가도발은 억제하라는 것이었다.” “연평부대가 교전규칙에 의해 대응한 뒤 합참은 추가적 대응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북한의 도발은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한 응징보복을 할 것.” (2014/06/30 국방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합참에서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지시가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
“공대지 공격이 미흡했던 것은 공군 초계임무가 공대공 전투에 대비한 것으로 공대지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의 2차공격이 있기 전 자위권 차원에서 공대지 능력을 갖춘 뒤 출격했다.” (2014/06/30 국방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시 공대지 공격준비를 안했고 또 대통령이 공격명령을 내렸지만 군이 반대했다며 군 대응의 적절성을 묻는 질문에)
"천안함 피격사건은 군령과 작전기강의 준엄함을 일깨워 줬다." "확고한 군사대비태세 유지와 장병들의 정신적 대비태세 강화, 엄정한 작전기강이 확립되어야 한다."(2010/07/14 경기도 평택의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해)
"2012년으로 연기한 것은 한반도 주변의 여러 정치적 유동성이 증대되는 문제와 북한의 변화 등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것." "전작권 전환 취소가 아니라 연기이기 때문에 더 완벽하게 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좋다는 의미." (2010/06/30 합참의장 청문회에서 전작권 환수시기 연기와 관련해 한 후보자가 합리적 결정이라고 말한데 대해 민주당 신학용의원이 대한민국 전투능력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냐며 전작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 안보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가급적 육군의 숫자를 줄이고 정보과학군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지상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 필요한 측면도 있다" "앞으로 육해공군이 2대1대1의 비율로 균형을 갖출 수 있도록 가급적 노력할 것" "합참의장이 해야하는 중요한 일은 적시에 중요한 판단을 하고 지시를 내리는 것." "합참본부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합참본부와 그 업무를 이해하는 능력은 뛰어나다." (2010/06/30 합참의장 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이 지나치게 육군중심인 합참본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 후보자의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주둔환경을 보장하고 이전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규모로 합리적 논리에 따른 검증결과를 미측에 제시할 것” “충분한 검토를 마친 만큼 이해할 만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2004/07/20 용산기지 이전에 따른 부지 제공 규모와 관련한 질문에)
“현재 한미간에 군사임무전환이라는 것이 합의돼서 시행되고 있고, 또 미 2사단의 이전시기가 2008년 이후가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 우리가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협력적 자주국방 추진계획과 국민 여러분들께서 걱정하시는 안보우려의 문제 등을 고려해서 최소한 2008년도까지 3년 정도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우리가 요청했고,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4/07/10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과 인터뷰 중 주한미군 감축시한이 3년 뒤로 미뤄진 것에 관한 질문에)
“지난 50년간 한미 동맹은 안보의 근간으로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의 밑바탕이 돼 왔습니다. 앞으로도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보다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 양국 관계가 발전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만간 미국의 구체적 감축안을 접수해 협의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 감축이 한반도 안보태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협의를 진행하겠습니다. 협상원칙은 한미동맹의 틀 강화, 한반도 안보상황 고려, 한미 연합방위태세와 한국군의 전력증강 수준 고려 등입니다.” (2004/07/19 제10차 미래 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를 앞두고 가진 국방일보와 인터뷰에서)
◆ 평가
한민구는 국방부와 육군본부, 교육사 등 정책부서에서 쌓은 다양한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정책 및 전략기획 업무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꼽힌다.
주위에서 한민구를 온화하고 친화력있는 성품으로 갈등관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조직 내에서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상관과 부하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편이다.
문제의 본질을 읽어내는 능력과 상하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갖추고 있는 데다 합리적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2006년 열린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남쪽 수석대표를 맡아 갈등관리 등 문제해결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합참의장 청문회 시절부터 제기된 야전경험의 부족은 약점으로 꼽힌다.
◆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