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 의혹 커져
삼성그룹은 이건희의 세금포탈 혐의가 드러나면서 2008년 4월22일 대국민 사과문 및 경영쇄신안을 통해 세금을 모두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또 삼성특검 당시 조세포탈 수단으로 지적한 차명계좌는 과거 경영권 보호를 위해 명의신탁한 것으로 모두 이건희의 실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그룹과 이건희가 약속한 차명계좌 실명전환과 누락된 세금 납부 약속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한겨레의 2017년 10월16일 보도에서 나타났고 최대 수조 원이 국고에 환수되지 않고 이건희에게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2008년 조준웅 특검 시 확인된 은행별 차명계좌 및 실명전환 현황’ 자료에 따르면 64개 은행계좌 가운데 1개만 실명전환됐고 나머지 957개 증권계좌에서는 실명전환 기록이 나타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이건희가 차명계좌를 통해 세금을 누락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자택공사 비리의혹
이건희는 자택공사를 회사 돈으로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주택 인테리어를 공사하는 데 100억 원 이상이 들어갔는데 삼성그룹 계열사 직원이 매번 차명계좌로 발행한 수표 등을 대금으로 내줬다는 것이다. 자택의 공사대금으로 쓰인 수표가 삼성비자금 계좌와 연계돼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은 2008년 10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이건희 등 오너일가의 주택 인테리어를 공사할 때 삼성그룹 관계자들이 공사를 맡은 회사에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말 것을 요구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따라 2017년 서울 한남동에 있는 이건희 자택 관리사무소와 삼성물산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영권 불법승계와 삼성특검
2000년 6월29일 법학 교수 43명이 이건희의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를 고발했다.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일정 기간이 지난 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채권)를 헐값에 발행해 이들이 본인이나 제3자에게 재산상 이익을 주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1996년 10월 비상장기업인 에버랜드는 주당 8만5천 원대인 에버랜드 CB를 주당 7700원에 발행했다. 곧 이건희 등 개인주주와 중앙일보, 삼성물산 등 법인주주들이 실권한 뒤 실권주 125만4천 주를 이재용 부회장에게 배정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에버랜드 CB를 싼값에 산 뒤 주식으로 교환해 에버랜드 최대주주에 올랐다. 당시 에버랜드 이사진은 자사 지분 62.5%에 해당하는 CB를 96억 원에 발행했는데 이는 경영권 프리미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고 이건희 자녀들에게 회사를 넘긴 셈이다.
2007년 10월29일 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차명계좌에 들어있던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이건희 일가의 경영권 불법승계와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을 줄줄이 폭로했다. 이는 조준웅 특검의 ‘삼성특검’으로 이어졌고 삼성그룹과 이건희 등 오너일가는 강도높은 검찰수사를 받았다.
2008년 4월 차명계좌가 적발되고 1천억 원대의 세금포탈 혐의가 드러나면서 이건희는 삼성 경영쇄신안을 발표했다. 삼성과 관련된 모든 직책을 내놓고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기면서 경영에서 퇴진했다. 증여세를 피하면서 삼성 그룹의 지분을 물려받으려 했다는 의심을 받은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도 최고고객책임자(CCO)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건희는 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2009년 8월 14일 파기환송심서 징역 3년, 집유 4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9년 12월 대통령 특별 단독사면을 받아 2010년 삼성전자 회장으로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은 2009년 배임죄를 적용한 원심을 깨고 에버랜드 CB 저가 매각과 관련해 이건희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정경유착과 삼성X파일 사건
이건희는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사건에 연루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건희가 검찰에 출두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건희는 250억 원의 비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지만 검찰은 이건희를 불구속기소했다.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파장 등을 폭넓게 검토했다”는 게 이유였다.
1996년 9월 이건희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했다. 하지만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지 1년 만인 1997년 개천절에 사면복권됐고 1998년 4월 경영에 복귀했다.
2005년에는 이른바 ‘삼성X파일’ 사건이 터졌다. 삼성 임원진이 정치권과 검찰에 금품제공을 논의한 것이 녹음파일 형태로 폭로된 것이다. 이건희의 지시로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이 대선자금을 나눠주는 심부름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다.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건희는 서면조사만 받고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오히려 이 사건을 폭로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검찰조사를 받고 사법처리됐다.
△끊임없는 사망설
이건희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직후부터 계속 언론 등을 통해 사망설이 흘러나왔다.
2014년 한 매체는 ‘이건희 회장 5월16일 오전 사망’이라는 보도를 내놓았다. 2016년 6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건희의 사망설이 나와 한때 삼성전자 주가가 급등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2017년 8월 이재용 부회장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전직 임원들과 공판에서 “이건희 회장님이 살아계실 때부터”라고 말한 뒤 곧 “건재하실 때부터”라고 말을 정정한 뒤에도 사망설이 돌았다.
삼성그룹 관계자들은 이건희의 건강상태에 이상이 없다며 사망설을 부인했다. TV조선의 ‘탐사보도 세븐’은 2017년 11월7일 이건희가 병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며 관련 영상을 보도했다.
△삼성 경영권과 유산상속 놓고 분쟁
이병철 창업주의 셋째 아들인 이건희가 두 형을 제치고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배경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첫째인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과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이병철 창업주를 고발한 사건이 원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966년 삼성그룹은 일본에서 사카린 원료 등을 밀수하다 적발됐다. 이병철 창업주는 이를 계기로 사임하며 비료공장을 국가에 헌납했고 이창희 전 회장이 법적 책임을 지며 구속됐다. 이맹희 전 명예회장이 이 때부터 삼성그룹 총수 대행을 맡아왔다.
1969년 이병철 창업주와 삼성그룹의 비리를 고발하며 처벌을 요청하는 탄원서가 청와대에 제출됐다. 이병철 창업주는 이맹희 전 명예회장을 의심했고 이창희 전 회장도 용의선상에 올랐다. 이병철 창업주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맹희 전 명예회장이 삼성그룹 직책을 대부분 포기하도록 하며 이창희 전 회장은 미국으로 떠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장남과 차남이 후계구도에서 멀어지며 이건희가 자연스럽게 경영권 승계자로 자리잡게 됐다는 관측이 가장 유력하다.
이맹희 전 명예회장은 이건희와 재산상속 문제 등을 놓고 오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병철 창업주의 차녀 이숙희씨와 함께 이건희에 2012년 유산분할 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당시 이건희는 언론을 통해 “이맹희씨는 이미 우리 집에서 퇴출당한 양반인데 나와 아버지를 고발했다. 나를 쳐다보지도 못할 양반”이라며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소송전은 결국 삼성그룹과 CJ그룹 차원의 문제로 번졌고 결국 이건희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건희의 성매매 동영상 촬영을 주도한 인물이 CJ그룹 직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 사건은 다시 주목받았다.
| ▲ 1970년대 중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암수술을 받은 뒤 처음으로 야외에 모인 가족들. 왼쪽부터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이건희 회장, 이병철 창업주, 이명희 신세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