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남도 도지사 시절
재선 경상남도 도지사로 재직하며 중앙정치와 다소 멀어졌다. 그러나 활발한 SNS 활동과 무상급식 중단, 진주의료원 폐업 등의 이슈로 지자체장 가운데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많은 편이었다.
3년6개월 동안 하루 11억 원씩 경상남도 채무를 갚은 끝에 2016년 5월31일 1조4천억 원의 채무를 모두 청산했다.
△ 정치인 시절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전략기획위원장, 공천심사위원 등을 맡았다.
17대 국회의원 때 한나라당 서울특별시장 후보경선에 나왔다가 오세훈 후보에 밀려 떨어졌다. 당대표에 출마했으나 안상수 후보에게 크게 뒤지며 고배를 마셨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명박, 박근혜, 원희룡 후보에 이어 4위에 그쳤다.
18대 국회 전반기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나라당 서민정책특별위원장 등을 거쳐 2011년 7월 유승민, 나경원, 원희룡, 남경필 의원을 제치고 제14대 한나라당 대표에 올랐다.
홍준표는 당선소감에서 “계파없이 홀로 뛴 선거에서 저 홍준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대의원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채 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이 보여줬다. 그 뜻을 받아 한나라당을 이끌고 가겠다. 이제 저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와서, 그러나 변방의 그 치열했던 정신을 잊지 않고 총선과 대선에서 압승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인 2011년 12월 재창당 쇄신안을 내놓았다. 총선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과감한 인재영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정당사에 보기 어려울만큼 엄격한 기준의 공천 심사기준을 설정하겠다는 계획이 반감을 사 쇄신안은 당내 모든 계파에서 거부됐다.. 오히려 홍준표가 공천권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는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자 결국 대표에서 물러났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동대문을 새누리당 후보로 나와 44.52%에 그치며 52.88%를 득표한 민병두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 검사 시절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시절 청와대 민정비서실 대통령친인척관리담당관으로 재직하며 토지매매대금을 횡령한 서정희 치안본부 정보2과 분실장을 구속기소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두환의 외조카와 사돈, 측근 관련 사건을 해결했다.
광주지방검찰청 강력부 강력계 검사로 광주 폭력배 국제PJ파와 일본 야쿠자에 연루된 것을 포착하고 현장을 덮쳐 일망타진했다. 이 일로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고위 공직자, 검찰 인사, 경찰 등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 매일 밤 “석궁으로 소리소문없이 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전화를 받기도 했으나 결국 국제PJ파 전원을 사법처리했다.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파키스탄인 조직폭력배와 목포파 등을 적발했다.
강력부 주임검사에 올라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해 엄삼탁 안기부 기조실장, 천기호 경찰청 치안감, 박철언 민주자유당 의원 등을 구속기소했다. 이 사건이 드라마 '모래시계'의 소재가 돼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졌고 성역없는 수사로 화제가 됐지만 검찰과 법무부에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정치자금법 2심 무죄판결 이후 자유한국당 당원권 회복을 요청했고 당원권 정지가 대법원 판결까지 잠정 중단돼 대선에 출마하는 길이 열렸다. 자유한국당에 뚜렷한 대선후보가 없어 홍준표가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자유한국당 내 기반이 탄탄하지 않고 한나라당 대표 시절 보여준 리더십도 부족한 편이라 대선후보로 경쟁력이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홍준표는 과거 당대표를 맡은 지 5개월만에 재창당 쇄신안이 거부당하자 대표직을 사퇴했다.
리얼미터 2017년 2월4주차 중간집계에서 3.6%의 지지율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이어 보수후보 중 2위를 차지했다. 전체 후보 가운데 6위다. 리얼미터 3월2주차 자유한국당 대통령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7.2%의 지지를 받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21.7%)과 격차를 나타냈다.
정치자금법 재판은 대법원에서 다뤄지게 됐다. 홍준표는 대법원 상고심은 법률심인데 법률적 쟁점이 없어 2심의 무죄판결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불소추특권이 적용돼 재판은 중단된다.
▲ 홍준표가 2017년 2월16일 오후 성완종리스트 연루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서울 여의도 경상남도 서울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평가
뚝심 있는 성격이다. 검사 재직 시절 성역 없는 수사로 명성을 얻었다.
살해 위협과 고위관료의 외압에도 불구하고 맡은 사건은 끝까지 밀고 나갔다. 특히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장관 등 권력실세들을 구속기소한 ‘슬롯머신 사건’은 '모래시계 검사' 별명과 함께 홍준표를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정계에 입문한 뒤 ‘모래시계 검사’ 이미지는 흐려졌다.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을 상실하기도 했고 경남지사로 진주의료원 폐업이나 경남 무상급식예산 지원 거부, 경남FC 해체 추진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할 말은 분명히 하는 성격이어서 막말논란에 자주 휩싸인다.
범친이계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 간판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행보를 걸어왔다는 시각이 많다. 정치권에서 이른바 ‘독불장군’식 정치인을 대표하는 인물로도 여겨진다.
한나라당에서 특정계파에 속하지 않고 꾸준히 소신있는 목소리를 내며 강성 비주류의 역할을 해왔다. 계파의 지원을 받지 못해 서울시장 후보 경선, 대선 후보 경선 등에서 번번이 패배했으나 2011년 7월 당대표에 선출됐다.
그는 당시 “계파없이 홀로 뛴 선거에서 저 홍준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대의원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며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채 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이 보여주셨다”고 당선소감을 말했다.
가장 유명한 별명은 ‘식사준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클린정치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 의혹을 방어했는데 기자가 이 후보의 혐의점을 질문하자 말을 돌리기 위해 “식사했어요?”고 반문했다. 여기서 식사준표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빨간 넥타이를 주로 매 홍준표의 상징과도 같이 여겨진다. 홍준표는 빨간 넥타이를 매는 이유를 홍씨인데다 붉은색이 의미하는 정의(Justice)와 순수(Purity)가 이름의 이니셜 JP와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취미는 바둑이고 등산과 헬스를 즐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량은 맥주 1병이고 흡연은 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시절 태권도를 해 고2때 공인 1단을 땄다. 2008년 제24대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시보로 부임했다가 검사로 임관했다.
이후 부산지검 검사,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를 거쳐 1988년 8월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로 부임했다.
1989년 5월 서울지검 남부지청 형사1부로 이동했고 1991년 2월 광주지방검찰청 강력부 강력계 검사로 발령받았다.
1992년 8월 검찰관이 돼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부임했다.
1993년 5월 강력부 주임검사로 보직됐다.
1994년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 안기부 국제범죄수사지도관을 거쳐 11월 안기부장 법률특보가 됐다.
1995년 9월 법무부 특수법령과로 복귀한 뒤 10월 사직서를 내고 변호사를 개업했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신한국당에 입당해 서울 송파갑에서 43.28%를 득표하며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가 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2001년 서울 동대문을 보궐선거에서 50.6%의 득표율로 당선하며 16대 국회의원이 됐다.
2004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던 선거구에서 당선하며(득표율 42.69%) 제17대 국회의원이 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56.83%의 득표율로 민병두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44.52%에 그치며 52.88%를 득표한 민병두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2년 11월 대선 후보 출마로 사퇴한 김두관 경상남도지사의 후임 보궐선거에 출마해 62.91%의 득표율로 범야권 단일후보인 권영길 후보를 꺾고 제35대 경남도지사에 당선됐다.
2014년 6월 지방선거에도 경남도지사로 재출마하고 58.85%로 당선돼 2017년 3월 현재 제36대 경남도지사로 재직하고 있다.
◆ 학력
1967년 합천국민학교, 1970년 영남중학교, 1973년 영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는 현대조선소 경비노동자고 어머니는 달비 장사를 하는 등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구내 서울신탁은행 은행원이었던 이순삼씨와 1982년 12월23일 결혼했다. 두 아들을 뒀다.
◆ 상훈
2008년 제10회 백봉신사상 신사의원상을 수상했다.
2009년 2월 제1회 매니페스토 약속 대상을 수상했다.
2011년 11월 한국반부패정책학회 반부패 청렴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 제49회 전국여성대회 우수 지방자치단체장상을 수상했다.
◆ 기타
청주지검 초임 검사 시절 식사자리에서 청주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던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의 권유로 개명했다. 원래 이름은 ‘홍판표(洪判杓)’였다.
이 전 장관은 “검사가 왜 판단할 판자를 중간에 넣었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준’ 자와 기린 ‘린’자를 줬는데, ‘준’자가 ‘판’자와 법적 의미가 같아서 ‘홍준표(洪判杓)’로 개명하기로 했다. ‘준표’는 세인의 표상이라는 뜻이다. 그날 오후 윤영오 당시 청주지방법원장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그 자리에서 판결해 일사천리로 개명했다.
체중미달로 14개월 동안 처가가 있는 전라북도 부안의 해안초소에서 단기사병으로 복무하고 일병으로 전역했다.
‘홍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1995), ‘이 시대는 그렇게 흘러가는가’(2000), ‘나 돌아가고 싶다’(2005), ‘변방’(2009) 등 총 4권의 저서를 썼다.
어록
“탄핵은 끝났고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머리속에서 지워야 할 때다. 우파 대결집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더 이상 박근혜 전 대통령에 매달리면 이번 대선은 없다.” (2017/03/14, 자신의 페이스북에)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이 수사와 재판에 임하는 태도를 가지고 괘씸죄를 적용해서 탄핵했는데 부끄러운 판결문이다. 헌재 결정이 중국 문화대혁명을 연상하게 하는 광장 촛불의 영향을 받았다. 유죄로 확정된 것이 하나도 없는 판에 탄핵을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2017/03/13,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할 때 제가 아는 한 거짓말한 적이 없다. 그래서 존경한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 하나회를 척결했는데 이는 근대사에 남는 개혁작업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었지만 훌륭한 대통령인 것은 맞다. 경남출신 대통령이시고 자살하신 분이라 묘소 참배는 한 번 갔다. 권양숙 여사에 인사도 드리고 명절 때 선물을 보낸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고 제가 보기에는 의로운 죽음이 아니어서 추도식에 안간다고 했다.” (2017/03/03, 채널A 쾌도난마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 사당이 아니고 한국 보수정당의 본류인데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이 밉다고 이를 비난하고 뛰쳐 나가는 것은 올바른 처신이 아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내부에서 개혁하고 바로 잡아야지 누릴 것 다 누리고 자기가 있던 자리에 침뱉고 돌아서는 작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세월호 선장같은 행동이다.” (2016/11/23, 자신의 페이스북에)
“3년6개월 동안 지속적인 행정개혁, 재정개혁, 예산개혁 등으로 도재산을 한 평도 팔지 않고 채무를 갚았다. “미래세대에 희망은 물려주지 못할망정 빚을 물려주어서는 안된다는 경남도 공무원과 도의회 의원들이 혼연일체가 됐다. 이제 경남은 튼튼한 재정기반 아래 서민복지, 미래 50년 준비사업에 전력을 다하겠다.” (2016/05/25, 페이스북에 경남 채무 청산 사실을 밝히며)
“검찰이 불법으로 증거 수집을 했다. 새 검찰총장이 됐으면 검찰은 수사 관행도 바꾸고 자체 감찰을 해야 한다. 검사를 하고 정치를 20년 한 사람에 대한 수사도 이런 식으로 하는데 국민을 상대로 하면 어떤 짓을 하겠느냐.” (2016/01/21,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1차 공판에서)
“선거구 실종, 시급한 경제법안 처리방기 등 19대 국회는 사상 최악의 국회다. 국회가 이렇게 된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회를 운영하는 국회의장에게 책임이 있다.” (2016/01/14,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주민소환은)좌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와 교육감 중 누가 쫓겨날지 한 번 해보자” (2015/07,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공약에 범죄를 저지른 기업대표들에 대해 관용이 없다고 한 것이 어제 같다. 굳이 재벌 옹호당이라는 오해를 받는 새누리당이 전면에 나서서 재벌총수 가석방을 주장할 필요가 있을까?”(2014/12/26, 경제살리기와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기업인 가석방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관련해 자신의 트위터에서)
“박근혜 정부 들어와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우리 사회 상류층은 부와 신분의 대물림을 하고 있다. 반면 서민들은 신분 상승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교육밖에 없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교육격차를 줄여야 한다.”(2014/12/24, 연합뉴스 신년인터뷰에서)
“종북좌파가 진보로 행세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나 보다. 합리적 진보정당의 출현을 기대한다. 이번 헌재의 압도적 결정은 방어적 민주주의의 의지 표명이다.”(2014/12/19,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학교에 공부하러 가지 밥 먹으러 가나. 세금으로 급식하는 데도 무상이라고 거짓 선전한 진보좌파의 무상파티는 이제 경남에서 종식돼야 한다. 복지천국이라 불리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시행하는 복지정책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다.
앞으로 우리 도는 사회적 약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복지정책 실천에 최선을 다 하겠다. 소중한 세금이 꼭 필요한 곳에 전달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2014/12/08, 일요시사와 인터뷰에서)
“우선 도정에 전념할 생각이다. 도정에 전념해 획기적 성과가 보이고 이만큼 일했으면 됐다고 느끼고, 도민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할 때 대권을 생각해 보겠다. 도정에 전념하는 것이 대선에 나갈 지름길이라 생각한다.”(2014/06/05, 대권 도전 의향이 있는지 기자들이 묻자 경남도지사 당선 확정 뒤 기자회견에서)
“진주의료원 문제는 14년 동안 암 덩어리다. 강성귀족 노조의 해방구가 돼 전임 도지사들이 겁을 내 손을 못 댔다. 진주의료원 노조는 강성귀족노조여서 대화가 안 된다.”(2014/04/09, 진주의료원 폐업 문제에 관련해 KBS창원방송총국 토론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