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내려진 무죄 판결을 “궤변이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45·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는 12일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려 원 전 원장의 선거개입 혐의를 무죄로 판결한 데 대해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판사가 다른 재판부의 판결 내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대법원은 김동진 부장판사의 글을 직권으로 삭제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정치개입이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다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로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12년에도 국정원의 조직적인 댓글 공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정치개입인 동시에 선거개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재판장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선거개입의 목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이 나왔다"고 비판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판결은 정의를 위한 판결일까, 아니면 승진심사를 목전에 두고 있는 재판장의 사심 가득한 판결일까"라며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원세훈 판결을 통해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을 본다"며 "현 정권은 법치가 아니라 패도정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고군분투한 소수의 양심적 검사들을 모두 제거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국민들은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의 판결을 할 때마다 절망하게 된다"며 "판사로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몰락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중국 사기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사슴을 가르키며 말이라고 한다'는 뜻이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술자리에서라도 로또에 당첨되면 당첨금 일부를 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김 부장판사는 2012년 횡성한우 원산지 표기와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을 '교조주의에 빠진 판결'이라고 정면 비판했다가 법원장으로부터 서면경고 조치를 받기도 했다.
대법원은 김 부장판사가 다른 법관이 담당한 사건에 대해 공개 논평을 금지토록 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권고 의견을 따르지 않았고, 법관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 의무 규정을 위배한 것으로 보고 진상 파악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