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2018년 11월28일 서울 강서구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23년간 맡아왔던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인보사’ 그늘 벗으며 명예 회복 나서
이웅열이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로 인한 민·형사 소송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명예 회복 가능성이 커졌다.
법원은 2026년 들어 인보사 사태와 관련한 재판에서 이웅열에 혐의가 없어 처벌 이유가 없다는 무죄 취지의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에 이웅열은 5년 7월에 걸쳐 자신과 코오롱에 드리워졌던 법적 리스크가 대부분 해소됐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들로 인보사 사태는 경영진의 의도적 조작이 아닌 신약 개발 과정에서 기술적 착오였다는 점이 인정됐다고 보고 있다.
이웅열은 인보사를 자식으로 생각할 만큼 애착을 갖고 있었다. 이번 판결들로 사법 리스크의 큰 고비를 넘기며 명예회복의 기회를 갖게 됐다는 시각이 많다.
다만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창투사업에 나섰던 이웅열은 의미있는 실적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웅열이 직접 설립해 자금을 투입한 개인회사는 생활용품 업체 인유즈, 업사이클링 패션기업 메모리오브러브, 투자회사 더블유파트너스, 낚시 플랫폼 어바웃피싱, 도시락 제조업체 비아스텔레코리아 등 총 5곳이다. 이 가운데 이웅열의 벤처투자 첫 시험대였던 더블유파트너스를 비롯 인유즈, 메모리오브러브 등 3곳은 이미 청산돼 투자실패했다.
존속 중인 회사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어바웃피싱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남은 지분은 20%에 불과하다. 비아스텔레코리아 역시 출범 이후 줄곧 적자를 이어가 완전자본잠식을 겪었다.
일각에선 오너 기업경영과 별도로 창업에선 역량은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2025년 영업이익 흑자전환, 매출 5조8511억·영업익 605억
코오롱은 2025년 연결기준 매출액 5조8861억 원, 영업이익 605억 원, 당기순손실 2966억 원을 냈다.
2024년(매출 5조9200억 원, 영업손실 920억 원, 당기순이익 1720억 원) 대비 영업손익은 흑자 전환한 반면 당기순손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순손실 규모는 근 10년 이래 최대 규모다.
2024년 영업이익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다만 이익 폭이 예년에 비해 소폭에 불과하고 당기순손익은 큰 폭의 적자로 전환했다. 5년 연속 매출이 5조 원대에서 정체를 보이면서 수익성은 크게 떨어지는 추세다.
코오롱글로벌의 대형 프로젝트 준공에 따른 기저효과로 매출이 줄었으나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의 수입차 판매 호조 등으로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영업이익은 흑자로 개선됐다.
사업 부문별로 건설은 매출 2조3012억 원으로 전년 대비 8.3% 줄었다. 전체 매출 비중은 85.72%다. 상사는 3025억 원으로 2024년보다 10.1% 축소했다. 매출 비중은 11.27%를 차지했다.
당기순손익의 경우 코오롱글로벌 관련 잠재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반영한 비용과 코오롱티슈진 전환사채 평가손실 확대 영향으로 적자전환했다. 해당 파생상품 손실은 회계상 평가손익으로 실제 현금 유출은 없다.
△검찰, ‘인보사 사태’ 무죄 이웅열 등 상고 포기
서울고등검찰청은 2026년 2월 ‘인보사 사태’와 관련해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등 피고인들에 대해 상고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울고검은 “증거관계와 상고 인용 가능성을 고려해 이 명예회장을 비롯한 피고인 전원에 대해 상고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인보사 사태와 관련한 형사사건이 검찰 기소 약 5년 7개월 만에 종결됐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 부장판사)는 2월5일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웅열에게 1심과 같이 무죄 및 면소를 선고했다. 면소란 형벌권이 발생했지만 사후 일정 사유로 소멸한 경우에 선고하는 판결이다.
함께 기소된 이우석 전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도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불확실성이 큰 신약 개발 과정에서 피고인들 회사의 의사결정과 업무처리 방식의 불투명성이 문제를 가중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했다”면서도 “이에 대한 피고인들의 형사책임을 인정할 만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세포 기원 착오’는 인보사 사태의 주된 원인이 됐으나 고의가 아닌 과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정된다”며 “이와 다른 전제에 서 있는 공소사실에 대해 충분한 증명이 없다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할 수 있다”고 짚었다.
구체적으로 이웅열이 2017년 11월∼2019년 3월 인보사를 허가받은 성분과 다른 성분으로 제조·판매해 160억 원의 매출을 올린 혐의에 대해선 “품목 허가를 받은 제품과 다른 제품을 판매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인보사 2액 세포 성분이 승인서에 기재된 것과 다르다는 사실이 사후적으로 밝혀졌다는 점만으로 승인 처분이 실존하지 않는 별개 의약품에 대한 것이었다고 볼 순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전 대표 등이 2액 세포 기원 착오를 인식한 시점은 2019년 3월 30일경 이후로, 품목이 허가된 이후”라며 “2액 세포의 기원 성분이 연골세포가 아니라 신장유래세포임을 이미 알고서 환자들을 기망(속임)했다는 공소사실은 전제부터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인보사는 사람 연골세포가 담긴 1액과 연골세포 성장인자(TGF-β1)를 도입한 형질전환 세포가 담긴 2액으로 구성된 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주사액으로, 2017년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2019년 3월 인보사 최초 개발사인 코오롱티슈진이 미국에서 임상3상을 진행하던 중 애초 한국에서 허가받을 때 밝힌 성분과 실제 성분이 다름이 확인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2액을 만드는 데 사용된 세포가 허가받은 ‘연골세포’ 대신 종양 유발 위험이 있다고 알려진 ‘신장유래세포(GP2-293)’ 성분임이 드러나 식약처는 2019년 7월 허가를 취소했다.
이후 검찰은 이웅열을 2017년 11월∼2019년 3월 인보사를 허가받은 성분과 다른 성분으로 제조·판매해 160억 원의 매출을 올린 혐의 등으로 2020년 7월 기소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인보사 2액 세포의 기원 착오를 인식하고도 그 기재를 누락했다는 부분에 관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에 관한 피고인들의 인식 시점을 제조·판매보다 늦은 2019년 3월경 이후로 본 원심 판단을 수긍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가운데)이 2014년 11월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성분 조작 관련 의혹과 관련한 1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인보사’ 코오롱티슈진 “미국 임상3상 투약 완료”
세포 유래 논란으로 국내에서 품목 허가가 취소됐던 코오롱티슈진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TG-C’(옛 제품명 ‘인보사’)가 글로벌 의약품으로 재기를 노린다.
코오롱티슈진은 2024년 7월 미국에서 진행 중인 TG-C의 무릎 임상3상 투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2006년 미국 식품의약청(FDA) 허가를 받아 미국 내 임상 1상에 착수한 지 18년 만이자, 2014년 임상3상을 시작한 이후 10년만으로, 2020년 FDA의 임상보류 조치가 해제된 지 4년 만이었다.
특히 이번 임상3상은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미국 내에서 1천 명이 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사례다.
회사는 미국 내 임상3상 시험 참여를 원했던 희망 환자 6800여 명 가운데 모집 기준에 부합한 1천여 명의 환자가 미국 전역 80개 병원에서 임상에 참여했으며, 미국 시각으로 10일 이들에 대한 투약을 모두 마쳤다.
코오롱티슈진은 앞으로 TG-C 투약 환자를 대상으로 2년간 치료 경과 등 추적 관찰을 진행한다. 결과는 2년간의 추적 관찰 기간이 종료되면 공개될 예정이다.
코오롱티슈진은 이 기간 FDA 품목 허가를 위한 준비를 병행해 TG-C의 미국 내 품목 허가 시기를 최대한 앞당긴다는 계획을 세웠다.
상업 생산 준비에도 이미 착수했으며, 이를 위해 글로벌 의약품 위탁개발제조(CDMO) 회사인 스위스 론자와 코오롱생명과학 자회사인 코오롱바이오텍 등 파트너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노문종 코오롱티슈진 대표이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미국 임상 2상의 결과가 그대로 재현될 것으로 보여 임상3상의 성공 가능성 또한 매우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오랜 기간 코오롱티슈진을 신뢰하고 기다려준 고객들과 주주를 비롯한 모든 분께 의미 있는 성과로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웅열이 자신의 세 자녀에 이은 ‘네 번째 아이’라고 부를 정도로 공을 들였던 인보사는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로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다만 인보사가 미국에서 임상3상을 진행하던 중 애초 한국에서 허가받을 때 밝힌 성분과 실제 성분이 다름이 확인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후 식약처는 허가를 취소했고 소송전에 휘말렸다.
△상속세 소송 2심도 승소, 165억 원 취소
이웅열이 차명주식을 상속받았다는 이유로 상속세를 부과받은 데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1심에 이어 2심도 승소했다.
2022년 12월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9-1부는 이웅열이 성북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상속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1심과 같이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세무서가 부과한 상속세와 가산세 총 543억9천여만 원 가운데 165억8천여만 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웅열이 취소해달라고 청구한 금액은 193억8천여만 원이었다.
서울지방국세청은 2016년 코오롱그룹을 세무 조사한 뒤 상속세 부과 처분을 내리고 이웅열을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선대 회장에게서 차명주식을 상속받고도 신고하지 않는 등 900억 원대 상속 사실을 누락신고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웅열의 이의 신청에 따라 재조사를 거쳐 2018년 확정된 상속세는 437억6천여만 원, 과소신고와 불성실 납부에 따른 가산세는 106억3천여만 원이었다. 이는 이웅열이 2015년 이미 납부한 236억6천여만 원을 포함한 액수로, 추가로 부과된 세금은 307억3천여만 원이었다.
이웅열은 과세에 불복해 “차명주식은 선대 회장이 아닌 내 소유”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은 1·2심 모두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상속인(선대 회장)이 차명주식의 실제 소유자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이웅열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과세 요건을 입증할 책임은 과세 당국에 있다는 법리에 따른 판단이다.
법원은 다만 이웅열이 선대 회장에게서 미술품 취득 자금을 상속받고도 이를 신고에서 누락한 것은 사실이라고 판단해 이 부분의 과세는 유지하게 했다.
이웅열은 이 사건으로 검찰 수사도 받았으나 2019년 2월 상속세 포탈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다만 주식 차명 보유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는 유죄가 인정돼 2심에서 선고받은 벌금 3억 원이 그대로 확정됐다.
△‘23년 회장직’ 전격 사퇴
코오롱그룹을 23년간 이끌어온 이웅열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2018년 11월28일 전격 선언했다.
코오롱은 후임 회장 없이 2019년부터 지주회사 중심으로 운영되며, 주요 사장단 협의체를 통해 그룹 현안을 조율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웅열은 2019년 1월1일부터 그룹 회장직을 비롯해 지주회사인 코오롱과 코오롱인더스트 등 계열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앞서 2018년 연말 임직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제 저는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코오롱 밖에서 펼쳐보려 한다”고 밝혔다.
이웅열은 “1996년 1월, 40세에 회장직을 맡았을 때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었는데 3년의 시간이 더 지났다”면서 ‘시불가실(時不可失·한번 지난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한 뒤 “지금이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고 말했다.
이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면서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는다”고 했다.
재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각에선 총수가 물러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것을 신선하게 받아들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선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다면서 그룹경영에서 갑자기 책임을 내려놓는 것이 맞는 것이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코오롱그룹은 이웅열의 퇴임에 따라 2019년부터 주요 계열사 사장단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성격의 ‘원앤온리(One & Only)위원회’를 두고 그룹의 주요 경영 현안을 조율했다.
후임 회장 없이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코오롱인더스트리, 글로벌 생산력 확대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중국·인도네시아·멕시코 등에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며 생산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18년 9월 베트남 빈증성에 연산 1만6800t 규모의 폴리에스터(PET) 타이어코드 생산공장을 준공했다.
해당 증설로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기존 생산량 7만7천t에서 1만6800t이 증가한 총 9만3800t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이는 전 세계 타이어코드 시장의 15%에 해당했다.
이번 공장은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차량 기준 2시간 거리인 빈증성 바우방 산업단지(Bau Bang Industrial Park)에 입주했다.
이날 준공식에는 마이 훙 융 빈증 부성장 등 베트남 정부 고위관계자와 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넥센타이어 등 고객사, 코오롱그룹 회장 이웅열 및 장희구 코오롱인더스트리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다.
타이어코드는 고강도 섬유가 직물 형태로 타이어에 들어가 타이어의 뼈대 역할을 하는 섬유 보강재로, 자동차의 안전과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소재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이번 공장 준공으로 아홉 번째 해외 생산기지를 확보하게 됐다. 타이어코드 해외공장으로는 2004년에 완공한 중국 난징 공장에 이어 두 번째였다.
△코오롱, 이웅열 상대로 211억 원 규모 유상증자
코오롱은 2018년 8월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 211억 원 조달을 목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웅열이 주당 3만7300원에 56만5241주를 배정받았다.
아울러 코오롱은 이웅열이 보유한 계열사 코오롱베니트 주식 137만2천 주를 211억 원에 장외 취득하는 대가로 회사 신주를 발행하는 현물출자를 결정했다. 취득 후 지분비율은 100%였다.
이와 별개로 코오롱은 자회사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주식 55만22997주를 신주인수권 행사를 통해 284억 원에 취득했다. 취득 후 지분비율은 32.01%가 됐다.
이를 통해 코오롱인더스트리에 대한 경영권 안정화를 노렸다.
△마곡 ‘원앤온리 타워’ 입주, 융복합 R&D 거점 마련
코오롱인더스트리를 비롯 코오롱그룹 주력 3개 계열사가 2018년 4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지구 내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KOLON One&Only Tower)’에 입주했다.
코오롱은 이곳을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융복합 연구개발(R&D) 거점으로 구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연면적 7만6349㎡에 지상 8층짜리 연구동, 지상 10층짜리 사무동, 파일럿동 등 3개 동으로 구성된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는 2015년 첫 삽을 뜬 후 약 30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공됐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생명과학, 코오롱글로텍 등 계열사들의 연구개발 인력과 본사 인력까지 약 1천 명이 입주해 공동 연구를 수행하게 됐다.
이웅열이 직접 제정한 그룹 경영방침의 핵심 가치를 반영한 건물명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는 고객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임직원 모두가 독특하고 차별화된 역량을 갖추고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자는 의미로 이름지었다.
건물 전면부는 의류인 니트를 늘렸을 때 나타나는 직조 무늬 패턴 디자인을 적용했고,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아라미드 섬유인 ‘헤라크톤’을 첨단 신소재에 활용해 마무리하는 등 건물에도 그룹 가치가 반영됐다.
태양광 발전판, 공기 재순환 시스템 등 첨단 내부 설계를 통해 공용공간의 에너지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제로 에너지 빌딩’으로, 그룹은 미국 친환경 건축물 인증 제도 ‘리드’의 골드 등급 획득에도 나섰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본사를 시작으로 무교동 시대를 지나 1997년부터 경기도 과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코오롱그룹은 본사와 함께 인천 송도의 코오롱글로벌, 서울 강남 삼성동의 코오롱인더스트리 패션 부문에 이어 마곡까지 ‘4원 전략 거점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웅열은 “공간이 조직의 문화를 만든다”면서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는 근무하는 임직원 모두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협업하도록 만들어져 융복합 연구개발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아공대에 북미 R&D 전진기지
코오롱이 미국 조지아공과대학과 손잡고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북미시장 확대에 나섰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초연결시대 미래기술 선점과 차세대 성장전략 마련을 위해 2016년 10월 조지아공대에 개설한 ‘코오롱 라이프스타일 이노베이션 센터(KCLI)’ 개소식을 가졌다.
개소식에는 이웅열도 참석했다. 센터는 코오롱이 외국대학과 추진하는 첫 연구개발(R&D) 협력의 거점이었다.
자동차, 차세대 디스플레이, 화학소재 등 사업과제는 물론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융합소재 등에서도 협력키로 했다.
이웅열은 “KCLI는 영역과 경계를 과감히 뛰어넘어 모든 것을 오픈하고 협업하는 코오롱의 첫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며 “현재와 미래의 성공을 잇는 혁신 기술과 미래 먹거리 발굴의 북미 R&D 전진기지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베트남·멕시코 등에 에어백, 타이어코드 등 자동차 소재 생산기지를 확보하고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인 CPI(투명 폴리이미드), 고부가 스펀본드 등의 설비투자에 나섰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조지아공대는 KCLI 운영을 위해 5년간 350만 달러(약 40억 원)를 기금화하기로 했다.
조지아공대는 미국 공대계열 순위 3위로 산업공학과 컴퓨터, 고분자 소재, 항공, 기계 등에 특화돼 있으며, 2008년부터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글로텍과 공동과제, 위탁연구 등을 해왔다.
|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왼쪽 다섯 번째)이 2018년 4월16일 서울 강서구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 입주식에서 그룹 임원들과 기념식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카자흐서 CNG 충전소 파일럿 프로젝트 완료
코오롱은 2014년 9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CNG(압축천연가스) 충전소 2곳을 추가로 개설하며 관련 파일럿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코오롱은 2011년부터 한국가스기술공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카자흐에서 CNG 충전소 건설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미 2년간 충전소 3곳을 현지에 개설했다.
이번에 문을 연 충전소들은 카자흐 최대 도시 알마티에 있으며 앞으로 시내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수단에 연료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웅열은 “이번 CNG 충전소 파일럿 사업의 완수는 코오롱의 해외 에너지사업 세계화를 위한 전초기지 확보와 이의 확대를 통해 카자흐에서 코오롱이 뿌리를 내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파일럿 프로젝트 성공에 이어 코오롱은 5년간 카자흐 전역에 95곳의 충전소를 추가로 건설키로 했다.
코오롱은 앞서 카자흐 국영 가스회사와 총사업 규모 2억5천만 달러(약 2600억 원)의 CNG 충전소 건설 및 운영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이를 위해 우선 충전소 5곳을 시범 건설키로 합의했다.
코오롱은 충전소 브랜드명을 ‘친환경 에너지의 별이 된다’는 뜻의 ‘에코스타(ECOSTA)’로 정했다.
이웅열은 “올해 우즈베키스탄에 이은 카자흐스탄 CNG 사업 진출은 코오롱이 글로벌 브랜드의 에너지 전문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그룹의 미래 핵심사업의 하나로 에너지사업을 정하고 앞으로 관련 에너지사업의 영역과 진출 지역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오롱은 2011년 1월 한국가스공사 컨소시엄에 합류해 우즈베키스탄 주요 도시 및 교통 간선망에 충전소 50개소를 건설해 운영하고, 자유산업경제구역(FIEZ)에 연산 12만 개 규모의 실린더 생산공장 설립에 관한 합작투자 합의서를 체결했다.
△아프리카에 제약공장 설립
코오롱은 2011년 10월 아프리카 대륙 서부 모리타니아에 제약 생산공장을 설립키로 했다.
코오롱은 이를 위해 이슬람상공회의소가 설립한 투자회사 ‘포라스’와 아프리카 및 이슬람협력기구 회원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제약업 진출 협약을 맺었다.
코오롱 자회사인 코오롱제약은 모리타니아 내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항생제, 비항생제, 수액제 등 50여 개의 기초의약품 생산과 관련한 기술을 이전하고 현지 생산을 통해 우수한 품질의 약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한다.
코오롱은 기초의약품부터 백신 완제품, 혈액 대체제까지 아프리카 현지에서 생산해 직접 공급키로 했다.
코오롱은 모리타니아에 제약공장을 세우고 운영 경험을 쌓은 뒤 중·동부 아프리카 국가에 공장을 추가로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코오롱은 수요가 많은 백신제품 생산을 위한 원료공장은 이슬람 협력기구 본부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완제품 공장은 이슬람협력기구 회원국가에 신설을 검토했다.
공장 건립에는 코오롱건설이 플랜트 시공을 맡고 코오롱아이넷이 원료의 공급 및 수출을 담당하는 등 그룹 차원의 역량이 집결된 사업 형태로 진행돾다.
이웅열은 “이번 진출은 그룹의 아프리카 대륙 사업 확장을 위한 교두보이자 글로벌 경영 확대라는 의미가 있다”며 “아프리카 현지에 직접 제약공장을 지어 의약품을 공급함으로써 아프리카 국민 건강의 질을 개선하는데 상당 부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오롱그룹, 지주회사 체제 전환
코오롱그룹은 2009년 12월31일 지주회사 체제로 새롭게 출범했다.
코오롱그룹의 모회사인 코오롱은 2009년 10월15일 이사회를 열어 지주회사(코오롱)와 사업회사(코오롱인더스트리)로 분할을 의결했다.
인적분할 방식이 채택돼 코오롱 주식 100주를 보유한 기존 주주는 지주회사 주식 28주, 사업회사 주식 72주를 받았다.
지주회사 코오롱은 그룹의 핵심사업 영역인 화학소재·패션(코오롱인더스트리)을 비롯해 건설·환경(코오롱건설), 제약·바이오(코오롱제약, 코오롱생명과학), 무역·IT 업체(코오롱아이넷, 코오롱베니트, 네오뷰코오롱)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게 됐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화학·생활·산업소재 분야의 첨단화 및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주력해 종합화학소재 기업으로서의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번 지주사체제 전환은 코오롱그룹이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에서의 기업가치 평가를 극대화하는 한편, 사업부문별 책임 경영체제를 확립해 주주 가치를 증대하는 데 목적을 뒀다.
코오롱그룹은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각 사업 부문의 전문화로 구조조정과 핵심사업에 대한 집중 투자가 쉬워져 사업 구조의 고도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디테일 경영’으로 직원들 신뢰 얻어
이웅열은 디테일 경영을 통해 직원들과의 안정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했다.
공장에서 직접 페인트칠을 하거나 직원들에게 화이트데이와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입냄새 제거제와 초콜릿을 챙겨줬다.
2008년 5월 이웅열은 냉장고 100대와 도넛 2천 개, 비타민제 1500개 등의 여름 더위 대비용 선물을 트럭에 싣고 직접 운전해서 구미공장에 을 찾았다.
구미공장은 2004년 노조가 두 달간 총파업을 벌인 데 맞서 사측이 직장폐쇄 결정을 내리고 이후 구조조정에 반발한 노조가 이웅열의 자택을 점거하는 등 심각한 노사 갈등을 겪었던 곳이었던만큼 상당히 놀라운 행보로 여겨졌다.
이웅열은 노사상생동행 선언 1주년을 맞아 구미공장을 찾았고 직원들과 함께 페인트 칠을 하고 족구시합을 하며 어울렸으며 ‘행복이 날아온다’는 꽃말을 가진 호접란을 주면서 행복한 일터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기대를 전달했다.
앞서 2008년 3월14일 화이트데이에는 입냄새 제거제와 함께 ‘입냄새는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이런 디테일한 배려가 모여 큰 성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넣어 전달했고 2007년 밸런타인데이에는 실험관에 담은 초콜릿과 ‘오늘은 꼭 전하고 싶습니다. 미치도록 사랑한다고’라고 적힌 쪽지를 선물했다.
세심한 감성경영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수 경기 침체로 고전하던 2003년 7월에는 초콜릿과 함께 ‘초콜릿은 작지만 강하고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것이기에 힘내시라고 드린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2005년 시무식 때는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임원들에게 이웅열의 부인 서창희씨가 직접 코팅한 네잎 클로버를 나눠줬다.
화섬업계 불황과 파업 등으로 인해 연이어 적자를 기록하고 코오롱 캐피탈 470억 원 횡령 사고 등으로 부침을 겪던 상황에 직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합니다’라는 격려 문구도 함께 전했다.
코오롱 한 직원은 “50대 회장으로부터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고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표현을 듣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좋았으며 보수적인 조직 분위기에 자극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책도 이웅열이 자주 선물하는 품목이었다. 2003년에 영국의 탐험대장 섀클턴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인듀어런스’를 전달하며 ‘절체절명의 순간에 인간애를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해 대원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냈다’는 메시지가 담긴 엽서를 동봉했다.
이웅열은 또 2006년부터는 과천 본사 ‘실천의 벽’에 손수 실천과제를 써넣으며 다른 직원들처럼 자신의 목표를 공유하기도 했다.
이울열은 2010년 1월 모바일 오피스 환경을 구축하고자 전 임직원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했다.
전사적인 스마트폰 도입으로 회사 인트라넷인 ‘아이켄’을 스마트폰과 연동해 실시간 서류를 결재할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영상회의, 자료의 송수신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고객 주문을 실시간 입력하고 진행사항 및 판매가능한 재고를 즉시 조회할 수 있어 실시간 고객대응도 가능해지게 됐다.
△SKC와 전자소재 합작사 설립 추진
코오롱과 SKC가 2008년 4월 조인식을 갖고 첨단 전자소재 사업인 폴리이미드(PI) 필름 사업부를 분사해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두 회사는 PI필름 공장 등을 현물 출자해 합작사 지분을 절반씩 보유키로 했다.
양사 간 합작에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최태원 SK 회장과 이웅열의 친분관계가 도움이 됐다.
당시 PI필름은 내열성과 내구성이 좋아 휴대전화와 평판디스플레이 등의 연성회로기판(FPCB)의 핵심 부품으로 쓰이며 자동차, 전자 등으로 활용 분야가 넓어지고 있었다.
세계 시장 규모는 당시 1조 원대로 일본 업체가 독식하고 있으며 시장은 연 10% 이상 급성장하고 있다.
SKC는 2005년 전자부품 소재의 국산화를 선언하면서 PI필름 사업에 뛰어들어 충북 진천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코오롱도 같은 해 PI필름 양산에 성공한 뒤 구미공장에 연 생산량 300만t 규모 설비를 구축해 뒀다.
△‘밸류 업 2008’ 통해 고객·주주·투자자 가치 극대화
이웅열은 고객과 주주, 투자자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밸류 업 2008’을 2008년 경영 지침으로 선포했다.
이웅열은 2008년 1월2일 시무식에서 ‘밸류 업 2008’을 발표하고 임직원 스스로 가치를 제고하는 한편 물 사업과 신재생 에너지 사업 등의 성장 모멘텀을 성장동력으로 키워내 고객과 주주, 투자자의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밸류 업 2008의 중점 추진 과제로 고객 지향적 체질 혁신과 성과 중시 경영 강화, 성장 모멘텀 지속과 재무 안정성 강화, 미래 신성장 사업 집중과 신흥시장 진출 가속화, 혁신활동 철저 실행과 윤리 경영 강화, 창의적 인재 확보와 체계적 육성 등을 제시했다.
△태양광 사업 본격 추진
코오롱그룹이 태양광 에너지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해 본격 추진했다.
코오롱그룹은 이웅열이 2007년 11월 그룹 기술전략회의에서 태양광 에너지 사업을 물 사업과 함께 그룹의 신성장 축으로 선포했다.
이웅열은 ‘우리가 성장동력으로 삼은 환경·에너지 사업의 핵심이 물 사업과 태양광 에너지사업이며 태양광 에너지 사업 관련 기술 역량을 키우기 위해 조속히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오롱은 태양광 에너지 사업을 강화하되 그중에서도 소재와 시공, 발전소 부문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소재 부문에서는 그룹 내에 에너지 부품 소재 전담 연구 조직을 만들고 광주과학기술원 히거 신소재 연구센터와 협력해 2010년까지 플렉서블 유기태양전지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공 분야에서는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세계 최고의 비정질 박막형 태양전지 제조업체 일본의 카네카사로부터 셀을 독점 공급받아 모듈을 생산한 뒤 비정질 박막형 건물일체형 태양광 시스템 사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비상장계열사 통합, 주력 계열사로 집중
2004년 노사갈등, 경영악화 등의 어려움을 겪었던 코오롱그룹이 비상장계열사 통합 등 구조조정의 강도를 높였다.
코오롱은 2005년 3월 비상장계열사인 HBC코오롱, 코오롱개발, 코오롱스포렉스, 코오롱마트, 코오롱TTA를 코오롱글로텍으로 합병시킴으로써 주력 계열사로 사업을 집중키로 했다.
이번 합병은 2005년 초 이웅열이 신년사에 밝혔던 경영 목표 중의 하나였다. 이후로도 비영업자산 매각, 한계사업 철수 등이 이어졌다.
코오롱은 화학·제조와 건설, 패션·유통의 3대 사업군을 중심으로 사업구조 재편을 추진했다.
코오롱은 합병된 비상장계열사들이 화학·제조 군으로 편입돼 관련 사업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화학·제조 사업군 강화를 위해 코오롱은 2004년 8월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의 나일론 및 폴리에스테르 생산설비 일부를 철거했으며 2004년 12월부터 2005년 초까지 코오롱의 인력을 900여 명 줄이는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2004년 12월에는 5개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하나은행 주식 536만 주를 매각해 1343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고 이후 FnC코오롱이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자사주 105만5370주를 65억 원에 매각했다.
2005년 2월에는 코오롱마트의 10개 슈퍼마켓을 435억 원에 LG유통(현 GS리테일)에 양도하기도 했다.
천안에 있는 골프장 우정힐스 CC를 비롯해 비핵심 사업 자산을 매각하는 구조조정에도 나섰다.
△효성-코오롱, 카프로 증자 참여
효성이 카프로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지분을 추가 매입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키로 했다.
2004년 7월12일 화학섬유업계에 따르면 카프로의 1대 주주인 효성(당시 지분율 20.38%)과 2대 주주인 코오롱(19.24%)은 2004년 7월13일 청약이 마감되는 카프로의 유상증자에 참여방침을 정했다.
특히 효성은 고합이 보유하고 있는 카프로 지분(7.44%)까지 인수하기로 해 코오롱과의 지분율 격차를 더욱 벌리면서 카프로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했다.
효성은 고합이 청산될 예정이어서 증자에 참여할 여력이 없는 데다 경기침체로 적자가 누적돼 온 카프로의 상황을 감안해 지분 확대를 결정했다.
코오롱은 당시 지분비율만큼 증자에 참여했다. 비섬유 사업부문 확대 방침에 따라 증자 참여 외에 추가 지분 매입은 하지 않았다.
국내 유일의 카프로락탐(나일론 원료) 생산업체인 카프로는 1974년 효성과 코오롱, 고합 등이 지분을 나눠 가졌으나 1996년 효성과 코오롱은 검찰 고발로까지 이어지는 경영권 분쟁을 벌인 바 있다.
화섬업계의 라이벌로 인식돼 온 효성 조석래 회장과 코오롱 이웅열은 2004년 6월7일 회동을 갖고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웅열은 2004년 6월10일 취재기자와 만나 “조석래 회장과 지난 7일 만나 섬유사업 등에 있어서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웅열은 “중국의 섬유 부문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양사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면서 “같이 잘 해보자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 ▲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2021년 9월30일 생활 속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 ‘고고챌린지(Go Go Challenge)’에 동참해 코편과 귀끈을 제거한 폐마스크를 향균 수거함에 넣고 있다. <연합뉴스> |
△1996년 회장 취임, 2000년 10대 그룹 진입 선언
이웅열은 코오롱그룹 회장에 오르며 2000년 18조3천억 원의 매출을 달성해 국내 10대 그룹 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웅열은 1996년 1월29일 회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통해 “종전의 안정위주 경영방식에서 탈피하고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 오는 2000년에는 18조3천억 원의 매출을 달성해 코오롱을 국내 10 대그룹에 진입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앞으로 시장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정보통신, 유통, 금융 등의 신규 사업 분야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라며 “2000년까지 이들 신규 사업 분야에 1조5천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신규 사업분야 외에도 그룹의 모태인 섬유관련 분야와 건설, 상사 등 기존 핵심 주력업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3조5천억 원 이상을 투자하고 10대 그룹 진입을 위해 2000년까지 총 5조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위해 베트남, 홍콩, 인도네시아, 중국 등을 거점으로 동남아시아에 제2의 코오롱그룹을 육성하겠단 방침도 내놨다.
이웅열은 “코오롱그룹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적극적인 사고와 주인의식 부족”이라고 지적하고 “앞으로 자신의 경영방침을 하나뿐인 최고를 지향한다는 뜻의 ‘ONE & ONLY’로 정했다”며 “인사도 인정과 의리 중심에서 경쟁과 능력 중심으로 단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제2이동통신사업 2대 주주로 선정, SKT에 지분매각하며 사업 접어
코오롱이 제2이동통신사업 2대 주주로 선정되며 이통산업에 발을 담갔으나 6년 만에 지분을 SK에 매각하며 사업을 접었다.
코오롱은 당시 부회장이었던 이웅열이 실무를 총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리며 삼성, LG, 선경(현 SK), 쌍용, 금호 등 대부분의 재벌이 참여한 제2이동통신사업에서 최종 승자 중 하나가 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현 한국경제인협회)는 1994년 2월28일 회장단 회의 및 자율조정위원회를 잇따라 열어 포항제철(포철, 현 포스코)을 지배주주, 코오롱을 2대 주주로 하는 제2이동통신 단일 컨소시엄 구성안을 확정했다.
전경련 회장단은 제2이동통신의 주식을 포철과 코오롱그룹이 각각 15%와 14% 갖기로 합의했으며 외국 기업의 주식 지분은 20.2%로 3~4개사가 나눠 갖기로 했다.
대표이사 사장은 포철 측에서, 부사장은 코오롱 측에서 맡고 이사 선정은 지배주주가 총이사 수에서 1~2명 더 많게 구성키로 하는 등 양사가 협력 경영을 하기로 했다.
전경련은 “심사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기술 부문에서는 포철이, 영업 부문에서는 코오롱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양사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으나 이러한 양사의 장점을 최대한 상호 결집시킴으로써 경쟁력 있고 이상적인 컨소시엄이 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웅열은 한국이동통신이라는 경쟁기업이 있는 만큼 앞으로 지배주주인 포철을 적극적으로 도와 사업이 잘돼 나가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다만 2000년대 초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코오롱은 23.53% 지분을 SK텔레콤에 매각하며 직접적인 통신업에서 철수했다.
SK텔레콤은 이로써 신세기통신의 최대 주주인 포철과 코오롱의 지분을 모두 인수해 신세기통신의 새 주인이 됐으며 이후 신세기통신을 흡수합병하며 절대적인 우위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코오롱의 지배구조
코오롱의 최대 주주는 이웅열이다. 2026년 4월24일 현재 회사 보통주 628만4406주(지분율 48.69%)를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은 5인이다. 이웅열의 둘째 누나 이상희씨가 6만 주(0.46%), 셋째 누나 이혜숙씨가 9만1562주(0.71%), 여동생 이경주씨가 9만1362주(0.71%)를 보유하고 있다.
오운문화재단은 1만9831주(0.15%)를, 안병덕 코오롱 대표이사 부회장은 보통주 5727주(0.04%)와 우선주(180주)를 갖고 있다.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합산 지분율은 655만2888주(50.77%)이다.
코오롱그룹은 지주회사인 코오롱을 중심으로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글로벌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웅열이 핵심 지분을 보유한 상태에서 장남
이규호 부회장이 지분 없이 이사회 중심의 경영 참여를 통해 4세 승계 구도를 다지는 전환기적 지배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2025년 12월17일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코오롱의 100%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단행하고, 2026년 1월7일 상장 폐지했다. 모빌리티그룹 주주는 1주당 0.0611643주의 코오롱 신주를 교환했다. 이는 수입차 유통 사업의 경영 효율화 및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 마련을 위한 것이라고 회사는 설명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26년 4월1일자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전문 자회사 코오롱ENP를 흡수 합병해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 기업으로 도약을 선언했다. 이번 합병으로 기존 모빌리티·케미칼 사업에 코오롱ENP의 POM, PA 등 고기능 소재 역량을 더해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중간재 중심에서 고기능성 첨단 소재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했다.
△코오롱그룹이 걸어온 길
1951년 일본에서 삼경물산을 설립했다.
1953년 한국에 나일론 독점 판매를 시작했다.
1954년 나일론 유통회사인 개명상사(코오롱그룹의 시발점)를 창업했다.
1957년 한국나이롱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60년 협화실업(현 코오롱글로벌)을 설립했다.
1963년 국내 최초 나일론 원사를 생산했다.
1968년 한국염공과 코오롱상사를 설립했다.
1969년 한국포리에스텔을 설립했다.
1971년 최초 해외지사안 오사카, 홍콩, 뉴욕지사를 설립했다.
1973년 국내 최초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가 탄생했다.
1975년 한국나이롱과 한국포리에스텔이 기업 공개를 통해 상장했다.
1976년 코오롱유화를 설립했다.
1977년 한국나이롱이 한국포리에스텔을 흡수 합병해 주식회사 코오롱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코오롱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1978년 경주 코오롱호텔을 개관했다.
1979년 코오롱상사를 설립했다.
1981년 오운문화재단을 설립했다.
1983년 삼영신약(현 코오롱제약)을 인수했다.
1987년 코오롱세이렌(현 코오롱글로텍)을 설립했다.
1990년 코오롱정보통신을 설립했다.
1992년 코오롱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1996년 KTP(현 코오롱플라스틱)를 설립했다.
1997년 세계 최초 수첨수지를 개발해 생산을 시작했다. 국내 최초 소염진통제를 개발했다. 과천 코오롱타워를 준공했다.
1999년 라이거시스템즈(현 코오롱베니트)를 설립했다. 미국에 티슈진을 설립해 세계 최초 퇴행성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개발을 개시했다.
2000년 티슈진아시아를 설립했다.
2004년 코오롱웰케어를 설립했다.
2006년 코오롱생명과학을 출범했다.
2007년 덕평자연휴게소를 개장했다.
2010년 코오롱 지주회사를 출범했다.
2013년 세계 최초 수소 연료전지 수분 제어장치를 개발해 양산을 시작했다. 상하이 중국 지주사를 설립했다.
2015년 바스프 합작법인 코오롱바스프이노폼을 설립했다.
2018년 마곡 코오롱 ‘원앤온리(One&Only)타워’를 준공했다.
2019년 국내 최초 폴리이미드 필름 공장을 준공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CPI를 세계 최초로 양산 개시했다.
2021년 최초 주민 참여형 풍력발전 단지 1단계를 완공했다. 국내 최초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를 사용한 PET 필름을 개발했다. 세계 최초 첨단 석유수지 기술을 개발해 양산을 시작했다.
2022년 국내 최초 무충진 시스템 친환경 인조잔디와 세계 최장 비거리 기록, 아토맥스 골프공을 개발했다.
2023년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출범했다.
2024년 코오롱스페이스웍스를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