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왼쪽)이 2026년 1월9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임명
김성식이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임명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12월28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김성식을 임명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경제 분야의 대통령 직속 헌법 기구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접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이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김성식이 장관급 부의장을 맡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2025년 12월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소신이 뚜렷한 개혁 성향의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탁월한 정책 역량을 인정받아 온 분”이라며 “구조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AI 전환을 이끌 다양한 혁신과제를 이끌 인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김성식은 임명 소감에서 이 대통령과 일면식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성식은 2025년 12월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명예롭고 무거운 공직임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며 “
이재명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다. 저에게 부의장 직책을 맡긴 것은 국민경제자문회의 본연의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해달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능한 국정으로 성과를 거두어야 나라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의 어깨에만 놓여진 과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참으로 절실한 과제”라며 “그런 마음으로 저는 경제와 민생 분야에서 저의 미흡한 역량이라도 보태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바른미래당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해 낙선
김성식은 2020년 2월6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김성식은 2020년 2월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바른미래당은 수명을 다했다”며 “잘못된 합당의 주역들이 분란의 축이 됐고 결국 당을 이리저리 찢어버렸다”고 탈당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당 대표는 비상한 전환점을 만드는 대신 파국의 인사로 쐐기를 박아버렸다”며 “힘을 합치고 당을 바로 세우려는 시도들은 무력했고 저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김성식은 2020년 3월3일 무소속으로 제21대 총선 서울시 관악구 갑 선거구 출마를 발표했다.
상대 후보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대호 미래통합당 후보였는데 김대호 후보가 30~40대 비하 및 노인 비하 발언으로 제명되면서 후보자 자격을 상실했다. 이에 유기홍 후보와의 1:1 양강 구도가 성사되면서 야권 단일화 효과를 누리게 됐다.
그러나 득표율 33.5%, 약 5만 표를 받으며 낙선했다. 오히려 4년 전 국민의당 시절보다 근 5천 표, 5%포인트가 줄어들은 수치다. 유기홍은 8만3천 표를 얻어 약 5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후 김성식은 관악구 지역 신문을 통해 차기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김성식은 2021년 12월8일 지역 신문 ‘관악저널’에 “저는 이제 관악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국회의원 총선 등 모든 선거에 더 이상 출마하지 않으려 한다”며 “미래 세대들이 관악과 나라의 정치를 새롭게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성식은 언론을 통해 양당제 자체를 비판하며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을 것을 밝혔으며 법무법인 화우 정책분석 태스크포스(TF) 고문으로 영입됐다.
△국민의당에서 바른미래당까지
김성식은 2016년 2월1일
안철수 의원이 주도한 국민의당에 전격 합류했다. 이후 김성식은 다음날인 2월2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창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지명됐다.
김성식은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서울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김성식은 2016년 하반기에는 당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위원회 의장과 최고위원직, 정부 예산을 감시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업무, 당해 예산을 결산하고 다음해 예산을 세우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저출산고령화대책 특별위원회까지 겸직했다. 이후 업무 과중을 사유로 예산결산특별위원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김성식은
박근혜 탄핵 정국 동안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지속했으며
박근혜 탄핵 소추안에는 “국민 편이냐, 박 대통령 편이냐에 모든 의원은 자신의 직을 걸고 결단해야 한다”며 찬성했다. 이후 2017년 3월10일 탄핵이 선고될 때까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김성식은 2017년 12월25일 ‘촛불의 분노를 넘어 국민들이 삶의 꿈을 꿀 수 있게, 더 큰 민심을 담아내어 집권하는 당으로 혁신’을 모토로 재선의 권은희 의원과 러닝메이트로 국민의당 원내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2017년 12월29일 열린 당 경선에서 주승용·조배숙 의원에 밀려 패했다.
김성식은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캠프 총괄선거대책부본부장·전략본부장에 임명됐고 대선 이후에는 국민의당 복지 및 조세재정 개혁 태스크포스(TF)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김성식은 2018년 2월13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한 바른미래당에 합류했다.
김성식은 또한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이후
문재인 정부로부터 협치내각 구성을 위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직을 제의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
| ▲ 김성식 의원(왼쪽)과 정태근 의원이 2011년 11월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 |
△한나라당 탈당
김성식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등 연이은 악재로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지고 들어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쇄신안을 거부하자 2011년 12월13일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요구하며 동료 의원인 정태근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김성식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전직 지역구 국회의원인 유기홍 민주통합당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
이후 김성식은 2012년 10월7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진심캠프에 공동선거대책본부장으로 합류했다.
그는 2014년 1월22일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다시 한번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으나 2014년 3월2일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통합 이후 신당 창당을 발표하자 합류를 거부하고 근신에 들어갔다.
△국회 입성
김성식은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서울시 관악갑 선거구에 출마해 현역 의원이었던 유기홍 통합민주당 후보를 꺾고 세 번의 낙선 끝에 국회에 입성했다.
김성식은 한나라당 내 몇 안 되는 ‘개혁 소장파’로서 국회에 입성한 뒤 3선급 초선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며 부자 추가 감세 철회, 대학 등록금 경감, 청년창업 등 일자리 예산 증액, 보육 지원 정책 강화,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사회 보험료 지원 정책, 비정규직 차별해소 정책 등을 주도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으로 활동하며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를 막고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정3법’(국가재정법, 공공기관의 운용에 관한 법률,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을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2012년에는 협동조합 기본법을 주도적으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정계 입문부터 보수 전향까지
김성식이 정계에 입문했다.
김성식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던 통합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서울시 동대문구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현역 지역구 의원이었던 김영구 신한국당 후보에 밀려 13.48%의 득표에 그쳤고 3위로 낙선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을 창당하면서 김성식은 한나라당에 합류하게 됐다. 한나라당 입당 후 부대변인을 지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이훈평 새천년민주당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유기홍 열린우리당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
그러나 김성식은 원외 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현직 국회의원이 맡는 경제 및 예산 관련 7개 국회 상임위원회를 관장하는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경제·예산 담당)에 선임되기도 했고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제안으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경기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손학규 선거캠프에서 정무특별보좌역으로도 활동했다.
△민주화 운동
김성식이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김성식은 1977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에 77학번으로 진학했다. 이후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김성식은 1978년 10월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구속됐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6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정책실 기획부장으로서 물가, 임금, 복지정책 등을 담당했다. 이때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다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았다.
노태우 정부 당시 사면복권 됐는데 당시 민주화 유공자 보상금을 지급받았으나 수령을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