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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10월] 미분으로 풀어본 요즘 금융 트렌드

이지형 기자 liji@businesspost.co.kr 2025-10-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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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우를 해체하려면 부위별로 다른 육질부터 알아야 한다. 칼은 그 다음에 잡는다. 그렇게 잘 드는 칼 하나 들고 앞가슴에서 아랫배에 이르는 부위를 잘라내면 양지가 나온다. 등뼈 바깥쪽을 발라내 등심을 얻거나, 그 끄트머리에서 채끝을 확보할 수도 있다.

등뼈 아래쪽에서 소량의 안심을 얻기도 한다. 앞·뒷다리 무릎 주위엔 근육질의 사태가, 옆구리엔 갈빗살이 붙어 있다. 하지만 칼로만 소를 해체하는 건 아니다. 
[데스크리포트10월] 미분으로 풀어본 요즘 금융 트렌드
▲ 조각 투자는 우리 사회의 모든 사물, 사건을 금융의 대상으로 만든다. 한우도 금융 상품이 된다. <연합뉴스> 


미래에 성체 한우가 될 송아지를 ‘돈’으로 추상화한 뒤, 그 가치를 여러 사람이 나누는 방법도 있다. ‘금융적 칼질’에 해당한다.

그렇게 송아지를 추상적·금융적으로 자르고 쪼갠 뒤, 그 송아지가 어엿한 소가 돼 높은 가격에 팔리면 다시 가치를 분할한다. 
 
금융적 칼질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육질을 구분할 필요도 없다. 해체 못 할 대상은 없다. 명품 시계, 명품 가방, 고가의 와인, 부동산, 수퍼카, 선박 심지어 유명 작가의 그림·조각도 다 자르고 쪼갠다.

재질도 관계없고, 재질 같은 것 없어도 관계없다.

그게 요즘 인가를 앞두고 라이선스 신청을 받고 있는 ‘조각 투자’ 유통 플랫폼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이다.

조각 투자 플랫폼에 대한 관심이 배가되는 건 나중에 토큰 증권(Security Token, ST)이 법제화되고 나면, 금융 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주식이나 채권을 디지털화해 발행하면 그게 토큰 증권이다. 

조각 투자는 말 그대로 돈이 될 대상을 조각 내 투자하는 행위다. 예컨대 다 자란 한우는 경매 시장에서 한 마리 가격이 1천만 원에 육박한다. 투자자들은 송아지의 지분 일부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산다.

송아지 한 마리도 혼자 투자하려면 경제적 부담이 크지만, 그 가치를 1000원~10만원으로 분할해 놓고 나면 투자의 가능성이 생긴다. 한 점에 수십억 원 나가기도 하는 그림도, 세월에 따라 가치를 더하는 와인도, 천문학적 가격의 거대 선박도 그런 식으로 쪼개 누구나 투자에 뛰어들 수 있게 만든다. 

움직이는 물체의 순간적 변화율을 구하기 위해, 시간이나 거리를 점이 될 때까지 잘게 쪼개는 게 미분(微分)이다. 수백 년 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고안한 극한의 분할이다. 그런데 미분이란 용어의 함의는 현대사회에서 수학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무언가를 잘게 쪼개는 행위는 금융 분야에서도 각광을 받은 지 오래다. 조각 투자에서처럼 투자의 대상을 미분하면, 소액 투자가 가능하고, 훨씬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말하자면 미분은 투자의 대중화, 금융자본주의의 확장을 위한 핵심적인 도구다.

예컨대 요즘 인기 절정의 ETF(상장지수펀드)만 봐도 그렇다. ETF는 특정 테마(또는 업종)와 관련된 기업 자산들을 묶어 그 주가를 지수(인덱스)화하고 주식처럼 거래소에 상장해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상품이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ETF 역시 기업들의 가치를 잘게 쪼갠 뒤(미분) 재조립한(적분) 금융 상품이기도 하다. 가치를 갖는 모든 대상을 쪼갤 수 있는 사회가 됐다. 사물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야구나 축구의 승부도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가치를 갖는 모든 것은 투자 가능하고, 투자자의 범위를 넓히려면 가치를 미분해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동안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사물과 사건 일체는 금융을 매개로 쪼개질 가능성에 노출된다. 사회 전체가 금융의 대상이 된다.

현대 금융의 예리하고 현란한 칼날 덕에 큰돈 없이도 투자자의 자격을 얻을 수 있으니 즐거운 일이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이지형 금융증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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