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원 농심그룹 회장(사진)이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 협업 제품을 앞세워 미국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농심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협업해 내놓은 제품 덕분에 미국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동안 해외 매출 비중이 낮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받았는데 미국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농심이 이 분위기를 잘 이끌어간다면 2030년까지 미국 라면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신동원 농심그룹 회장의 목표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다만 목표를 세울 당시 언급했던 현지 3공장 건설 계획이 무산됐고 최근 북미 매출이 뒷걸음질했다는 점은 부담 요소다.
21일 농심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미국 현지 공장에서 케데헌 협업 제품 생산을 시작해 9월 둘째 주부터 셋째 주 사이 미국 월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 유통채널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글로벌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 등에서는 “협업 발표 뒤 몇 주 동안을 기다려왔다”, “한국에서 농심 주가가 급등하고 한정판 제품이 20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는데 기대된다”, “이번 협업은 팝 문화와 요리의 완벽한 조화다”, “농심이 미국 공장을 갖고 있어 다른 나라보다 빨리 출시된다고 한다” 등 협업 제품에 관한 관심을 담은 해외 소비자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농심은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이 60%에 육박하는 압도적 1위 회사지만 해외에서의 위상은 그에 크게 못 미친다. 내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40%가량을 보이는 해외 매출 비중이 농심 수익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양식품은 해외에서만 전체 매출의 80%를 벌어들이는 수출 중심의 사업구조 덕분에 영업이익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 주주가 3월 열린 농심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사의 영업이익률이 4~5%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꼬집으며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데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 농심을 향한 시장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회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넷플릭스 영화 역대 1위 누적 시청수를 차지한 케데헌에서 주인공들이 농심 제품을 연상시키는 컵라면을 먹는 장면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농심은 8월 넷플릭스와 협업해 포장지에 케데헌 캐릭터를 입힌 제품을 국내에 출시했다. 협업의 하나로 8월29일 농심이 1천 세트 한정으로 판매한 신라면 컵라면은 1분40초 만에 모두 동이 났다.
농심 주가는 12일 52만2천 원에 거래를 마치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쓰기도 했다. 농심이 케데헌 열풍을 업고 삼양식품처럼 해외에서도 라면을 잘 파는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가득한 상황이다.
다만 농심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가야할 길은 제법 멀다. 오히려 이제 첫 발을 내딛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신동원 회장은 2023년 7월 취임 2주년을 맞아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2030년까지 미국 시장 매출을 기존의 3배 수준인 15억 달러(약 2조 원)로 끌어올리고 라면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 ‘케이팝 데몬 헌터스’ 캐릭터를 입힌 농심 제품 이미지. <농심> |
농심은 2024년 기준 4조 원 규모의 미국 라면 시장에서 점유율 21.5%를 기록해 2위를 기록했다. 일본 도요스이산이 42.8% 점유율로 1위, 일본 닛신이 18.4%로 3위였다. 농심과 도요스이산의 매출 격차는 2배에 가깝다.
염려스러운 지점은 농심의 미국 매출이 2024년부터 후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심 북미법인 매출은 2024년 6232억 원으로 2023년보다 1.9%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3057억 원인데 이는 2024년 상반기보다 1.8% 줄어든 것이다. 2022년과 2023년 농심 북미법인 매출 성장률이 각각 38.3%, 10.3%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농심 관계자는 “북미 매출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 라면이 현지에서 주목받는 가운데 2022년 5월 미국 2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면서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며 “지난해부터는 역기저 효과로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회장이 미국 중장기 매출 목표를 밝힐 당시 검토했던 미국 3공장 건설 계획이 틀어진 점도 부담일 수 있다. 농심은 미국 3공장 건설 대신 부산에 수출전용 공장을 짓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미국 공장 추가 건설 관련 사업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부지와 설비 매입, 인건비 등에 드는 비용이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다만 농심은 2030년까지 미국 라면 시장을 평정하겠다는 목표를 거두지는 않았다.
농심은 올해 초 연간 북미법인 매출 목표로 8천억 원을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려면 2024년보다 매출을 30% 가까이 끌어올려야 한다. 케데헌 흥행을 예견할 수 없던 시점에 해외사업에서 가장 힘을 주고 있는 신제품 ‘신라면툼바’ 판매를 고려한 목표치다.
신라면툼바는 미국에서 4월 월마트, 5월 코스트코 일부 매장에 입점한 뒤 하반기 미국 전역 대형 마트 채널로 확장하고 있다.
다만 신규 공장 없이 2030년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선 케데헌에 올라탄 농심 라면 제품들이 지속적으로 흥행해야만 한다.
농심은 넷플릭스 협업 제품의 생산 수량은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올해 연말까지는 판매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에는 한국 대표 걸그룹을 앰배서더로 발탁하고 K컬처 협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농심 관계자는 “협업 제품은 미국에서 단기적 매출 성과보다는 소비자 인지도와 친밀도를 높여 신라면 브랜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매출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