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가 2023년 8월24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개최한 콘퍼런스 '단(DAN) 23'에서 초거대 AI LLM 하이퍼클로바X를 소개하고 있다. <네이버> |
[씨저널] 한국 인터넷은 오랫동안 ‘갈라파고스’라 불렸다. 구글이 장악하고 있는 전 세계 검색시장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네이버라는 토종 플랫폼 위주의 생태계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갈라파고스, ‘네이버 제국’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한 차례 흔들렸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등장으로 구글의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면서 크롬이 디폴트 검색엔진으로 사용하는 구글을 통한 검색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국내에서 네이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2025년 8월 기준 전 채널(모바일, PC 등) 합산 검색 점유율은 네이버 46.26%, 구글 45.14%로 여전히 네이버가 우위에 있다.
구글의 점유율이 많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2024년 4분기 기준 구글의 전 세계 검색 시장 점유율이 무려 89.34%라는 것을 살피면 여전히 한국 인터넷 시장은 ‘갈라파고스’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 네이버는 생성형 AI, 초거대언어모델(LLM)의 파도 속에서 다시 한 번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키워드 중심 검색이 답을 독점하던 시대가 저물면서 이용자가 ‘맥락’을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는 ‘온 서비스 AI’라는 간판을 걸고 네이버의 핵심 서비스 속으로 AI를 밀어 넣고 있다.
문제는 서비스에 탑재되는 AI의 ‘태생’이다. IT업계에서 네이버의 영원한 라이벌로 불리는 카카오는 일찍부터 독자 노선을 포기하고 오픈AI 등 글로벌 AI 공룡과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라는 자체 LLM을 통해 끊임없이 독자 생존을 시도해왔다.
◆ 한국 특화 AI의 꿈, 하이퍼클로바X의 경쟁력과 한계
네이버는 ‘한국 특화 서비스’라는 점이 하이퍼클로바X의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고 여기에 집중해왔다. 블로그·카페·쇼핑·예약 등 서비스 전반에 축적되어 있는 이용자의 ‘맥락’에 대한 데이터가 AI모델 최적화의 토양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이퍼클로바X의 서비스 초기에는 한국어 이해도와 한국어로 된 데이터 활용 측면에서 챗GPT 등 글로벌 LLM보다 하이퍼클로바X가 더 낫다는 평가도 많이 나왔다.
문제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압도적 자본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십조~수백조에 이르는 토큰, 초대규모의 컴퓨팅·배포망을 통해 매우 빠른 속도로 모델의 정교함을 높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챗GPT는 2023년 4월 GPT-4의 출시 이후 2024년 1월 GPT-4 터보, 2024년 5월 GPT-4o, 2024년 7월 GPT-4o mini, 2025년 2월 GPT-4.5, 2025년 3월 이미지 생성기능, 2025년 4월 GPT-4.1, 2025년 8월 GPT-5 등 1~3개월 간격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모델을 업데이트했다.
반면 2023년 8월 출시 이후 하이퍼클로바X의 모델 업데이트와 관련된 소식은 2024년 4월 출시한 하이퍼클로바X 대시, 2025년 2월 사내 공개한 하이퍼클로바X 플래그십 모델, 2025년 6월 개발을 완료했다고 공개한 하이퍼클로바X 씽크 정도다.
◆ 네이버 AI 전략의 새로운 길, 최수연이 말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은 무엇인가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는 자체 LLM과 글로벌 LLM을 엮는 ‘오케스트레이션’을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최수연 대표는 올해 8월 초 열린 2025년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온서비스 AI 전략을 펼치는 과정에서 AI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이미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이용자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면 하이퍼클로바X가 아닌 다른 LLM도 사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략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의 ‘자체개발 최우선’에서 한 발 나아가, 서비스 가치 극대화를 위해 외부 모델을 선택적으로 엮는 실용주의 전략으로 방향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최 대표가 내세우는 실용주의 전략의 핵심은 바로 ‘줄타기’다.
‘한국어, 국내 서비스 특화’라는 네이버의 강점을 기본값으로 깔고, ‘국제 보편성’이나 방대한 데이터의 활용은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보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양 쪽의 강점을 선택적으로 활용해 나간다는 것이다.
◆ ‘AI주권’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 최수연 오케스트레이션과 자체 개발 사이에서 중요해지는 줄타기의 묘
최근 이재명 정부가 ‘소버린 AI’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최 대표의 ‘줄타기’ 전략의 무게추가 중요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2025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과 2026년 예산안에서 AI 투자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민간 합동 100조 원 규모의 AI 투자 구상, 2027~2028년까지 5만 GPU 조달 계획 등을 통한 ‘AI 주권’ 확보가 정책의 키워드다.
이러한 정책적 환경은 네이버에 기회인 동시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자체 LLM 역량,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사업 등에서 정책 자금과 인프라 확충의 수혜를 볼 수 있는 반면 공공 조달, 국제 표준 준수, 개방성 요구 등이 강화되며 책임의 크기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소버린AI에서도 ‘오케스트레이션’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 대표는 2025년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소버린 AI를 위한 자체 LLM 개발이 글로벌 빅테크와의 제휴나 오케스트레이션 전략과 배치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뜻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AI주권과 글로벌 빅테크 제휴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고, 소버린AI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도 네이버의 미래 AI 전략이 자체 개발과 제휴 사이의 줄타기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한 셈이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케스트레이션은 단순한 붙이기가 아니라 작업 유형별로 최적의 모델을 배정하고, 최적의 프롬포트를 설계하고, 여러 LLM을 혼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안 문제 등도 매우 철저하게 관리해야하는 ‘운영의 예술’”이라며 “이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더 빨리, 정확히 얻어내면서도 데이터 주권, 개인정보, 콘텐츠 저작권, 안전성 기준을 서비스 레벨에서 어떻게 보증하는가가 줄타기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