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가 3월21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
[비즈니스포스트] 하이트진로 맥주 사업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맥주 제품 ‘하이트’ 단종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이트진로가 국내 페트병 맥주 확산의 주역인 ‘하이트피처’ 제품을 단종하기로 하면서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해부터 마케팅 비용 축소 등 전사적 비용 절감을 통해 큰 폭의 회사 수익성 개선을 이끌고 있다. 수익성에 방점을 찍은 경영 기조가 출시 33년차 맥주 제품 하이트의 단종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29일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페트병 맥주 제품인 ‘하이트피처’ 1.6L·1L 제품 생산을 중단했다. 전국 유통 채널을 통해 해당 제품 재고가 소진되면 하이트피처는 출시 22년 만에 단종된다.
2003년 11월 출시된 하이트피처는 거의 동시에 나온 ‘OB맥주 큐팩’과 함께 국내 페트병 맥주 대중화를 이끈 제품이다. 두 제품은 출시 직후인 2004년 국내 전체 맥주시장에서 합산 13% 점유율을 기록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하이트 브랜드가 아닌 하이트피처만 단종을 결정한 것”이라며 “생산 효율화를 위해 현재 판매 중인 맥주 브랜드의 시장 반응을 품목별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반응이 저조한 품목은 생산을 중단하고 생산 라인 효율성을 높여 생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김인규 사장은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올 한해도 비용 절감과 체질 개선을 통해 내실을 강화하고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한 해로 삼을 것”이라며 “하이트진로는 경영 전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재무 건전성을 확보해 경영 기반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지난해부터 마케팅 비용 효율화 등 비용 절감에 경영역량을 집중하며 회사 수익성을 크게 개선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 2081억 원을 내 2023년보다 68% 급증했다. 올 1분기에도 전년 동기대비 30% 증가한 영업이익 627억 원을 거뒀다. 앞서 2023년 하이트진로는 맥주 제품 ‘켈리’마케팅 등에 대규모 비용을 집행하면서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35% 급감했다.
회사는 현재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수익성 중심 경영기조 속에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하이트 브랜드가 단종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작년을 기점으로 하이트진로 수익성은 크게 개선됐지만 마케팅 활동이 위축되면서 별도기준 맥주 부문 매출이 지난해 전년대비 0.5%, 올 1분기에는 전년 동기대비 11.5% 뒷걸음쳤다.
오비맥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가정용 맥주 시장에서 오비맥주 ‘카스후레쉬’가 점유율 48%로 압도적 판매 1위를, ‘카스라이트’가 점유율 4.9%로 3위를 차지했다. 하이트진로의 ‘테라’는 10% 초반 점유율로 2위, ‘켈리’는 카스라이트와 근소한 차이로 4위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된다. 주류시장에서는 과다 경쟁 방지를 위해 유흥 채널을 포함한 시장점유율과 제품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이트 점유율은 켈리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식당과 주점 등 유흥 채널에서 하이트 맥주를 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편의점 등 유통채널에서도 하이트피처뿐 아니라 캔과 병 제품도 입점하지 않은 매장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서울에서 2곳의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편의점 중에는 하이트 맥주를 들이지 않는 곳이 많다”며 “입점시키더라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 현재 판매 중인 하이트진로 ‘하이트’ 제품 이미지. <하이트진로 홈페이지> |
앞서 2023년 하이트진로는 신제품 켈리에 힘을 싣기 위해 2006년 출시 뒤 51억 병 넘게 팔린 맥주 제품 ‘맥스’를 단종했다. 김 대표의 경영 효율성 극대화 방침 아래 맥주 신제품이 개발된다면 판매가 저조한 하이트 브랜드가 단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하이트는 맥스와는 다르다. 하이트는 하이트진로에 있어 하나의 브랜드를 한참 뛰어넘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주류업체 하이트진로는 맥주업계 1위 업체 하이트맥주가 2005년 소주업계 1위 업체 진로를 인수한 뒤 2011년 합병해 출범한 회사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아버지인 고 박경복 명예회장이 1967년 경영권을 인수한 조선맥주는 1950년대부터 40여 년 동안 동양맥주(현 오비맥주)에 밀려 만년 업계 2위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런 시장 구도를 단번에 뒤집은 것이 조선맥주가 1993년 출시한 맥주 신제품 ‘하이트’다. 당시
박문덕 회장이 회사 인근 여관을 통째로 빌려 직원들과 합숙하며 신제품을 개발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지하 150m 천연암반수’ 마케팅을 앞세운 하이트는 출시 3년 만에 국내 맥주시장 1위에 올랐고, 조선맥주 시장점유율도 수직 상승하며 1996년 맥주 업계 1위 자리를 꿰찼다. 1998년 조선맥주는 아예 사명을 하이트맥주로 변경했다.
이런 상징성을 지닌 제품을 단종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는 판매량을 넘어서는 종합적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하이트 제품에 관한 시장 반응은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 상당한 온도차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지방 쪽에서는 아직도 하이트만 찾는 소비자들이 있다”며 “수요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만큼 하이트 브랜드의 단종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