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 사고 이후 재계에서 손꼽히는 ESG 경영 우수 기업으로 환골탈태했다. 하지만 HDC그룹의 지주사인 HDC는 여전히 지배구조 '낙제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HDC현대산업개발은 재계에서 손꼽히는 ESG 경영 우수 기업이다. 한국ESG기준원의 2024년 ESG등급평가에서 환경 A등급, 사회 A+등급, 지배구조 A등급 평가를 받으며 종합적으로도 A등급에 올랐다.
불과 2년 전만해도 HDC현대산업개발은 한국ESG기준원의 ESG경영 평가에서 C등급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대대적으로 ESG경영에 힘을 쏟으며 단기간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문제는 HDC그룹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지주회사, HDC에 있다.
HDC는 2024년 ESG평가에서 종합 C등급을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지배구조 부문에서는 최하위 등급인 D등급을 받았다.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 자회사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 7년 만에 23%포인트 늘어난 지주사 지분율, 강해지는 정몽규의 그룹 지배력
HDC그룹은 2018년 지주사 체제 전환이 완성했다. 이후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지주회사 HDC의 개인 지분을 늘려 그룹 전체를 향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정 회장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과정에서 개인투자회사 엠엔큐투자파트너스를 활용해 자회사가 보유한 HDC 지분을 매입하면서 지주회사 지분을 크게 늘리기도 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엠엔큐투자파트너스가 보유한 HDC 지분은 6.12%다.
정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HDC 지분은 지주사 체제 전환 직후인 2018년 상반기 말 기준 18.83%에 불과했지만, 올해 1분기 보고서 기준으로는 41.96%까지 상승했다.
그룹의 오너가 지주회사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룹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이기도 하다.
정 회장이 광주 사고 당시 HDC그룹의 주가가 급락했을 때도 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는 것 역시 주가 방어와 책임경영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 강력한 지배력과 대비되는 이사회 독립성, ‘오너리스크’에 취약한 그룹 지배구조
문제는 지주회사인 HDC에 정 회장의 지배력에 상응하는 내부통제 시스템이나 이사회 독립성 강화 조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올해 6월 공시된 HDC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HDC의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은 66.7%로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기업들의 평균을 밑돌고 있다.
올해 1분기말 기준 이사회 전원이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립적 감시·견제의 핵심 지표인 ‘내부감사기구가 분기별 1회 이상 경영진 참석 없이 외부감사인과 회의 개최’ 항목도 준수하지 않고 있다.
이사회 의장 역시
정몽규 회장이 직접 맡고 있어 정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에 대한 독립적 감시와 견제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견제 장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오너의 권한만이 강화되면, 이는 오히려 그룹 전체의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정몽규 회장이 대한축구협회와 관련된 논란 등 개인적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는 것을 살피면 이런 구조는 정 회장 개인의 리스크가 HDC그룹 전체의 리스크로 확산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환골탈태한 자회사와 지배구조 낙제생 지주회사, 정몽규 책임회피인가
HDC그룹 전체를 휘청이게 만들었던 광주 사고는 기업의 책임성과 투명성, 그리고 사회적 신뢰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 사건이었다.
이후 자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이사회의 독립성과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개편을 단행했다.
창사 이래 첫 여성 사외이사 영입, 사외이사 후보군(pool) 관리 활동, 이사회 아래 지속가능경영협의체와 ESG실무협의체 운영 등 다양한 조치가 실행됐고, 주주총회에는 전자투표 시스템을 도입해 주주 참여의 문턱을 낮췄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단순한 외형적 개선이 아니라, ESG 경영을 경영진의 의지 아래 전사적으로 내재화하려는 노력의 결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을 향한 ‘책임회피 논란’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광주 사고 이후 정 회장은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지주사인 HDC 회장직은 유지하면서 오히려 그룹 전반에 대한 영향력은 높여가고 있다.
위기를 계기로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를 재점검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환골탈태한 자회사와 달리 정 회장이 직접 지배하고 있는 지주사 차원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정 회장이 사고 이후 보여준 태도에 대해 "실질적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주사의 거버넌스 문제는 단순히 개별 회사의 거버넌스 문제와 차원을 달리한다”라며 “HDC그룹 전체에 대한 거버넌스 개편, 특히 지주사 차원의 근본적 투명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HDC 관계자는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 이사회의 다양성, 전문성,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사 후보자의 종합적 사항을 지속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한국ESG기준원의 규정(평가지표)에 맞춰 개선 중이며 앞으로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