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희 박경훈 기자 ssul20@businesspost.co.kr2017-01-09 08: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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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김홍국은 하림그룹 회장이다. 한국 양계업의 산 증인이며 맨손으로 시작한 자수성가형 CEO다. 외식, 부동산, 유통업에도 진출했으며 글로벌 식량사업에 비전을 두고있다.
1957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판 돈으로 양계사업을 시작했다.
닭값 파동으로 사업을 접고 식품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나 양계장을 인수해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식품회사 하림을 설립한 뒤 하림그룹으로 키워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팬오션을 인수하는 등 적극적 인수합병으로 그룹의 몸집을 키우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맨손으로 국내 축산업계 1위 업체를 일군 자수성가 CEO로 유명하다.
열 한 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판 돈으로 병아리 100마리를 다시 구입해 이를 되파는 식으로 양계사업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때 닭 5000마리, 돼지 700마리를 길러 이미 축산업자 대열에 올랐다.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을 품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긍정론자다. 직원들에게 “지금도 세상에는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한다.
인생의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살아왔기에 위기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인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평생 큰 위기를 세 번 겪었으며 이를 다 극복했다고 자평한다.
첫번째 위기는 1982년 닭값 폭락파동이 일어나자 찾아왔다. 양계사업을 접고 식품회사에 취직해 재기를 꾀하다 사육가공유통을 수직계열화하는 ‘삼장통합’을 발상해내고 다시 사업에 뛰어들어 재기했다.
두번째 위기는 IMF때로 초현대식 공장을 짓자마자 외환위기가 오는 바람에 경영위기를 겪었다. 해외로 눈을 돌렸고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산하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2천만 달러를 투자받아 위기를 극복했다.
세번째 위기는 2003년으로 당시 공장이 화재로 전소됐다. 설상가상으로 조류독감도 유행했다. 사업포기 대신 남의 공장을 빌려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최대한 대출을 끌어와 신 공장을 건설했다. 하림은 신공장 건설로 생산성이 향상되자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입지가 더 튼튼해졌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에게 “위기를 견디면 기회가 된다”며 “위기를 온전히 극복해 내는 것은 ‘40년짜리 인생 대학’을 나와 성숙함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축산업으로 시작해 3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 9조원 규모의 그룹사로 성장하고 중국, 필리핀, 베트남, 미국 등 해외 10개 사업장에 진출했다.
‘삼장 통합경영’으로 수직계열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장 통합경영은 농장-공장-시장을 연결해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영시스템을 말한다.
하림에서 시작해 닭고기 가공업체인 올품, 가축사료 전문기업인 천하제일사료, 가축약품 전문 회사인 한국썸벧, 농수산식품 전문 홈쇼핑업체인 NS홈쇼핑, 양돈과 사료부문 전문 기업인 선진, 팜스코, 오리 계열화 업체인 주원산오리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인수합병을 선호한다. 인수합병을 통해 하림을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송아지를 사서 키우려면 3년 걸리지만 마른 소를 치유해서 3~4개월 키우면 좋은 소가 된다’는 지론을 강조한다.
하림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닭고기 부위별 판매업체 '올품'은 김홍국의 아들 김준영씨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홀딩스'로 연결되는 지배구조의 중심고리가 되고 있어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 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양계업의 수직계열화 구조를 만들었다. 하림은 수직계열화가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에 기여한다고 말하지만 ‘하림파워’가 너무 세다는 이유로 비판과 견제도 받는다.
하림의 그룹 지배구조를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개 지주사를 2개 지주사(제일홀딩스, 하림홀딩스)로 줄인 상태인데 다시 하나로 줄여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김홍국은 두 개의 지주회사가 현행법상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불편함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6년 식품회사 하림을 창업했다.
2001년 천하제일사료와 올품, 한국썸벧, 농수산홈쇼핑을 계열사로 편입시키며 하림그룹을 만들고 회장에 올랐다.
이후 선진, 팜스코, 주원산오리, 디디치킨, 멕시칸치킨, 선진, 그린바이텍, 팬오션 등을 인수합병하며 하림그룹을 계열사 58개, 자산규모 9조 원대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 학력
이리농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회사를 경영하다 1994년 호원대에 진학해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원광대학교에서 경제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네 자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1993년 신한국인, 1999년 신지식인에 선정됐다.
2006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16년 국제 투자자문회사인 EY한영 회계법인이 주는 ‘2016 EY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을 받았다.
◆ 상훈
1993년 신한국인, 1999년 신지식인에 선정됐다.
2006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16년 국제 투자자문회사인 EY한영 회계법인이 주는 ‘2016 EY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을 받았다.
어록
“하림의 통합경영과 품질관리체계는 세계 어느 기업과 견주어도 완성도가 높다. 역사와 명성에 걸맞는 최고의 경영품질을 유지,발전시켜 더 크고 밝은 미래를 만들겠다.”(2016/10/11. ‘하림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나라 농식품산업은 비자본적이고 소농가적이며 노동집약적이다. 그래서 세계 경쟁력이 떨어진다. 네덜란드는 규모화·전문화 등의 구조 개선과 세계화·실용화된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농식품분야 무역흑자가 300억 달러나 된다. 네덜란드를 벤치마킹해 세계산업화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2016/10/06, 한국 농식품산업의 비전을 놓고 전주시에서 열린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3기 특강’에서)
“우리나라는 1인 가구와 2인 가구 증가세가 지속되면서 전체가구의 53.3%를 차지하고 있고 2020년에는 58.6%가 될 것이다. 이에따라 식생활 패턴이 변화하면서 간편식과 외식서비스를 선호하고 있어 종합식품사업을 추진하게 됐다.”(2016/10/06, 종합식품사업 도전을 놓고 전주시에서 열린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3기 특강’에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이 하림그룹의 경영철학이고 하림그룹의 비전은 세계 생산성 1위다. 일본의 도요타를 예를 들면 직원들이 한 분야에만 집중해 작업을 하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경영은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에서 배운 기본과 상식만 있으면 된다. 기업가 정신은 주어진 적성과 긍정적사고, 끝없는도전, 선각자 정신을 말한다. 기업은 선각의 논리로 경영해야지 다수결로 결정을 하면 망한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되 최종적으로는 한 사람이 선각의 논리로 결정해야 한다.”(2016/10/06, 전주시에서 열린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3기 특강’에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해운업계에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2016/09/08, 팬오션의 40만톤급 철광석운반선 ‘시 폰타 다 마데이라 호(Sea Ponta Da Madeira)‘ 명명식에서)
“기업은 선각자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팬오션과 파이시티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이시티의 경우 물류단지는 물론 정보통신기술과 유통, 연구개발시설도 함께 지을수 있으며 특히 지하공간을 활용해 초대형 물류센터를 갖추면 농수산물 등 신선식품의 수도권 내 특급 배송이 가능하다. 식품은 신선도가 생명인데 서울은 2시간 수도권은 3시간 안에 배송할 수 있다. 이는 수도권내 물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은 무엇보다도 생산성이 강해야 한다. 다른 기업보다 물건을 싸게 생산하고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사업을 확장하기보단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2016/07/11,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이 되니 친가, 외가쪽으로 6촌, 처가 쪽으로 4촌까지 규제를 한다. 요즘 외가쪽으로 6촌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이런 걸 규제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 지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중견 이상 되는 기업이 0.2%이고, 99.8%가 중소기업인데 이는 대기업이 12% 정도, 나머지가 중소기업인 네덜란드와 독일과 다르다. 그런데도 기업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대규모 지정제도 같은 것으로 차별적으로 규제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국내 중소기업들은 외국 대기업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 앞으로 5년 뒤면 포춘 500대 기업에서 중국계 기업이 130개, 140개가 되고 우리는 10개 수준으로 머물 수 있다.”(2016/04/25,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대기업 규제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특별좌담회에서)
“파괴된 한국의 기업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 같은 차별규제부터 철폐돼야 한다. 차별규제를 전향적으로 풀어야 청년실업 문제 해소,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 경제력 집중 해소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규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수준이다.” (2016/04/25,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특별좌담회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를 비판하며)
“기업가들은 늘 위기와 마주해 있다. 어렵고 힘든 난관들을 헤쳐나가는 건 기업인들의 숙명이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첫 번째 요소가 긍정적인 사고다. 모든 상황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비관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기회는 멀어지게 마련이다. 기회를 움켜쥐고 도전하려면 먼저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좋은 상황이 펼쳐져도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 ‘안전지대를 떠나라’는 명제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임직원들에게도 이 같은 정신을 주문하고 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도전의 노정이니까.” (2015/1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어느 날 슈퍼마켓에 갔다가 진열된 소시지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돼지 가격은 폭락했는데 소시지 가격은 변동이 없었다. 충격을 받았다. 그 때의 깨달음을 발전시켜 농장-공장-시장을 통합하는 삼장 통합경영을 구상했고, 닭고기 사업에 접목시켰다.” (2015/1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단백질 식품의 세계적인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그 기반이 되는 축산업은 미래의 유망산업이다. 특히 세계 돼지고기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는 중국과 돈육 생산원가가 높아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 시장이 우리의 지척에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2015/08/24,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대한한돈협회가 주관한 ‘젊은이가 찾아오는 희망, 한돈산업 2세 한돈인 세미나’에서)
“우리는 식량자급률 54%, 곡물자급률 26% 정도다. 수입이 안되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다. 수입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시장은 세계화돼 있는데 국내 자원은 없으니 우리는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 네덜란드처럼 밖에서 자원을 가져와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 다시 세계로 수출하는 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농업계는 이런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만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식량자급은 농업무역에서 흑자를 내야 가능하다. 식량개념도 쌀 중심에서 단백질까지 포함해야 한다.”( 2012/06/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부모님 말씀대로 공부만 했다면 지금의 하림은 없었을 것이다. 형제들 모두 공무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상상도 못했던 기회가 여기저기 쏟아진다.” (2011/08/0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 평가
맨손으로 국내 축산업계 1위 업체를 일군 자수성가 CEO로 유명하다.
열 한 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판 돈으로 병아리 100마리를 다시 구입해 이를 되파는 식으로 양계사업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때 닭 5000마리, 돼지 700마리를 길러 이미 축산업자 대열에 올랐다.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을 품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긍정론자다. 직원들에게 “지금도 세상에는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한다.
인생의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살아왔기에 위기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인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평생 큰 위기를 세 번 겪었으며 이를 다 극복했다고 자평한다.
첫번째 위기는 1982년 닭값 폭락파동이 일어나자 찾아왔다. 양계사업을 접고 식품회사에 취직해 재기를 꾀하다 사육가공유통을 수직계열화하는 ‘삼장통합’을 발상해내고 다시 사업에 뛰어들어 재기했다.
두번째 위기는 IMF때로 초현대식 공장을 짓자마자 외환위기가 오는 바람에 경영위기를 겪었다. 해외로 눈을 돌렸고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산하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2천만 달러를 투자받아 위기를 극복했다.
세번째 위기는 2003년으로 당시 공장이 화재로 전소됐다. 설상가상으로 조류독감도 유행했다. 사업포기 대신 남의 공장을 빌려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최대한 대출을 끌어와 신 공장을 건설했다. 하림은 신공장 건설로 생산성이 향상되자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입지가 더 튼튼해졌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에게 “위기를 견디면 기회가 된다”며 “위기를 온전히 극복해 내는 것은 ‘40년짜리 인생 대학’을 나와 성숙함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축산업으로 시작해 3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 9조원 규모의 그룹사로 성장하고 중국, 필리핀, 베트남, 미국 등 해외 10개 사업장에 진출했다.
‘삼장 통합경영’으로 수직계열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장 통합경영은 농장-공장-시장을 연결해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영시스템을 말한다.
하림에서 시작해 닭고기 가공업체인 올품, 가축사료 전문기업인 천하제일사료, 가축약품 전문 회사인 한국썸벧, 농수산식품 전문 홈쇼핑업체인 NS홈쇼핑, 양돈과 사료부문 전문 기업인 선진, 팜스코, 오리 계열화 업체인 주원산오리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인수합병을 선호한다. 인수합병을 통해 하림을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송아지를 사서 키우려면 3년 걸리지만 마른 소를 치유해서 3~4개월 키우면 좋은 소가 된다’는 지론을 강조한다.
하림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닭고기 부위별 판매업체 '올품'은 김홍국의 아들 김준영씨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홀딩스'로 연결되는 지배구조의 중심고리가 되고 있어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 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양계업의 수직계열화 구조를 만들었다. 하림은 수직계열화가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에 기여한다고 말하지만 ‘하림파워’가 너무 세다는 이유로 비판과 견제도 받는다.
하림의 그룹 지배구조를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개 지주사를 2개 지주사(제일홀딩스, 하림홀딩스)로 줄인 상태인데 다시 하나로 줄여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김홍국은 두 개의 지주회사가 현행법상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불편함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 기타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가장 즐겨있는 책으로 성경을 꼽는다.
집무실에 초등학교 학년별 도덕 교과서들을 비치해두고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본다고 한다. 성공이유를 초등학교 도덕책에서 배운 기본과 상식에서 찾는다.
하림(夏林)은 '여름숲'이라는 뜻이다. 진정한 땀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 땀을 식혀줄 시원하고 풍요로운 그늘을 자처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을 쌓으며 2007년 대선에서 지지를 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맡기려고 했으나 고사했다.
2014년 11월16일 프랑스 퐁텐블로의 오세나 경매소에서 열린 나폴레옹 모자 경매에 참여해 나폴레옹이 직접 썼던 모자를 188만4천유로(25억8천만 원)에 낙찰받았다. 도전과 개선의 상징으로 나폴레옹을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S홈쇼핑 옆 복합건물 나폴레옹 전시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우오현 삼라마이더스그룹 회장과 양계업을 함께 했던 동료다. 우 회장은 1971년부터 1978년까지 양계업을 운영했고 양계업으로 번 돈으로 건설업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