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윤병세 외교부 장관

박근혜 정부 운명 함께 할 가능성 [2016년]
고진영 기자 lanique@businesspost.co.kr 2016-12-19 0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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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윤병세 외교부 장관
▲ 윤병세 외교부 장관.


윤병세는 외교부장관이다. 외무공직에 30년 동안 몸담아온 ‘외교통'이며 꼼꼼하면서도 강단있는 성품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윤병세는 1953년 8월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외무고시 10회에 합격해 외무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외무부 북미 1과장과 주 미국 공사참사관 등을 지내는 등 30년 동안 외무부에서 일했다.

주로 미국 관련 업무를 했지만 한일 신어업협정 협상에 한국 측 수석대표로 참여했고, 유엔 관련 근무와 함께 주제네바 대표부에서 일하며 유럽과 국제기구 경험을 쌓았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조정실장을 지냈고 외교부 차관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을 역임했다.

청와대를 떠난 뒤 서강대 초빙교수로 일할 때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조언을 해주며 인연을 쌓았다.


국가미래연구원의 외교안보 그룹에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구상해 왔다.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는데 1987년 개헌 이후 최장수 외교장관이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2010년 12월27일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로 출범한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박 당선인의 공식적인 외교안보 조언그룹으로 알려지게 됐다.

그가 국가미래연구원에 합류할 무렵 “노무현 정부 인사인데 같이 해도 되겠느냐”는 주변의 질문에 박근혜 당선인은 “정책에 이념이 있나요. 상관없습니다”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인수위원직에서 중도사퇴한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 및 이정민 연세대 교수 등과 함께 국가미래연구원의 외교안보 그룹에서 박 당선인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밑그림을 그려왔다.

외교국방통일 분과 인수위원인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안보실장 자리로 가면서 박근혜 정부초대 외교장관의 중임을 맡게 됐다.

인수위 외교국방통일 분과에서 활동할 때부터 차기 외교부장관으로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로 평가됐다.

2015년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새 미일 방위협력지침 마련을 논의하면서 한국의 외교전략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당시 아베 총리의 방미는 ‘신밀월 시대’를 열었다며 미일동맹의 질적 격상으로 평가됐다.

반면 식민지배에 관한 사죄와 인식 표명은 방미한 아베 총리의 상·하원 합동연설에 담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입지가 뒤로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윤병세는 “한국이 소외되거나 주변화되는 게 아니냐며 외교전략 부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데 이는 과도한 해석”이라며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상호 보완적 측면이 있는 만큼 이것을 제로섬 시각에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문제와 관련한 우리의 입장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며 “역사문제에와 경제 문제, 문화협력 문제는 분리해서 다루고 있다”고 해명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6년 11월 제 19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다음해 3월에 외무부에 들어갔다.

1984년 7월 주시드니 총영사관 영사, 1990년 주국제연합참사관을 지냈다. 1994년 북미1과 과장, 다음해 주싱가포르 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활동했다.

1999년 2월 아시아태평양국 심의관, 같은해 7월 북미관 심의관을 지냈다. 2000년 2월 주제네바공사, 7월 주미국공사가 됐다.

참여정부시기 2004년 9월 국가안전보장회의사무처 정책조정실장을 지냈고, 2006년 1월 외교통상부 차관보, 같은해 12월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 수석비서관으로 임명돼 활동했다.

2009년 1월~2013년 3월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활동했고 2013년 1월 제18대 대통력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을 맡았다. 그 해 3월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가 됐다.

2013년 2월 외교부 장관 내정자가 되어 3월부터 37대 외교부 장관이 됐다.

2016년 8월 개각에서 유임에 성공하면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재임기록을 깨고 최장수 외교장관 기록을 세우고 있다.

◆ 학력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동대학 법학과 대학원을 1978년 수료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1983년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부인 정은영씨 사이에 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1992년 3월 근정포장을, 2005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상훈

1992년 3월 근정포장을, 2005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어록


“최근 국내 정치상황과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등 전환기적 상황을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한미간 다양한 협의가 진행 중이고 트럼프 당선인 인수위 측과도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하에서도 우리 대외정책 기조가 지속될 것임을 각 외국 정부, 언론 등에 적극 설명해오고 있다” (2016/12/14,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들이 외교안보 및 대외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우려와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이를 엄중히 인식해 근무 기강을 유지해 달라” (2016/12/10,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실국장 회의에서 흔들림 없는 업무 추진을 지시하며)

“북한이 올해만 2차례 핵실험을 감행하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재개한 엄중한 상황에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국과 AEA(국제원자력기구)가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2016/12/05, 오스트리아 빈에서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북한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 체제가 사실상 완성됐다” (2016/12/04,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대북제재 결의 2321호 채택과 한·미·일 독자제재와 관련해)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한미동맹 정책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그동안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피력해왔고 클린턴도 국무장관 재직 시절 우리나라 5회 이상 방문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2016/11/09, ‘미 대선 결과가 한국 경제·외교·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향’ 당정협의에 참석해)

“외교적 압박과 군사적 억제는 가위의 양날과 같이 일체화돼야 한다. 3개 축(안보리, 독자제재, 국제사회 압박)의 외교적 압박은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서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2016/10/24,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71차 유엔의날 기념 오찬에 참석해)

“과거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폴란드에 가서 비오는 날 스스로 무릎을 꿇어 전 세계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처럼 얼마든지 그런 감성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2016/10/13,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아베 총리의 ‘털끝 발언’에 관해 묻자. 이에 앞서 아베 총리는 10월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위안부 피해자 사죄 편지’ 관련 질의에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죄 편지는) 한일합의 내용 밖의 것”이라고 일축했다.)

“북한이 유엔 회원국으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 북한이 계속해서 안보리 결의와 국제 규범을 위반하는 행태는 유엔 70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와 유엔 자체의 권능을 철저히 조롱하고 있다." (2016/09/23, 제7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을 통해 김정은이 스스로 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더 강력한 제재와 압박, 한미 동맹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이 고통을 느껴 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반드시 만들겠다.” (2016/09/10,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부 간부를 대상으로 북핵 대책 회의를 주재하고)

“사드와 관련해 중국 언론 매체 반응이나 여러 가지 일련의 조치들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예단하지 않고 한·중 관계의 큰 틀에서, (중국이) 대국이라는 측면에서 원만히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 나가겠다” (2016/08/05, 기자단과 오찬간담회에서)

“지금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비단 남·북한 문제뿐 아니라 6자회담 당사국간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에 삼각대립 구도로 볼 문제가 아니다” (2016/07/20, 한반도 사드 배치로 한·미·일-북·중·러의 삼각 대립구도가 재연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놓고)

“이번 방문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과 쿠바 두 나라가 다양한 노력을 하며 부단히 매진해 나가다 보면 서로가 원하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2016/06/05, 한국 외교부장관으로서 처음 쿠바를 방문해 쿠바 아바나 프레스센터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한국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중견 국가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발전에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2주 뒤에 있을 이번 대통령순방이 아프리카와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만드는 역사적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2016/05/13,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2016 아프리카데이 행사에 참석해 비즈니스 네트워킹 오찬 축사에서)

“유엔 역사상 북한처럼 지속적이고 노골적인 상습범법 국가는 찾을 수 없다” (2016/04/28,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개최된 제5차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외교장관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국제사회와 대북 압박 공조를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북한은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며 새해 벽두부터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대립의 길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자멸의 길이 될 것이다.” (2016/03/18,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된 2016년도 재외공관장회의 폐회식에 참석해)

“북한이 5차, 6차 핵실험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끝장 결의(terminating resolution)’가 돼야 한다.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달라.” (2016/02/12, 뮌헨안보회의에 참석차 독일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방치하면 전세계가 북한 핵 공갈의 희생양일 될지도 모른다.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대량살상무기(WMD) 비확산이라는 NATO의 가치에도 위배된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억제되지 않은 도발에 무관용의 자세를 보여줘야 할 때다. 이 점에서 NATO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2016/02/12, 독일-대서양협회(German Atlantic Association)가 ‘NATO와 극동’을 주제로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미 외교·국방 당국이 긴밀히 공조해 확고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한 양자 및 다자 차원의 외교적 조치를 취해 나가는 데 협력해 나가자.” (2016/01/06, 북한이 이날 수소탄 실험을 전격 발표하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와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나)

“과거 일본 측은 도의적 책임만 명시했는데 이번 합의에서 사상 최초로 일본군의 책임을 분명히 표명했다. 최선의 결과라 생각한다.” (2015/12/31,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해서 위안부 합의를 놓고, 위안부 문제가 1991년 처음 알려지고 24년 만에 타결된 것이라며)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밝힐 황금의 기회를 스스로 놓친 것이 안타깝다.” (2015/05/01,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개최한 외교안보 당정회의에서, 아베신조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에 대해)

“올해는 세계 제2차대전 종전 70주년이자 광복 70주년을 맞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3국 외교장관회의 재개라는 새로운 출발점에서 3국 외교 장관들은 앞으로 3국 협력을 보다 구체화해 동북아 평화뿐 아니라 세계 평화와 번영에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2015/03/21,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제7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후배 외교장관이 통일 한반도를 대표해 ‘하나 된 한국의 밤’ 행사에 오게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올해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년을 맞아 아픈 역사를 종결시켜야 한다는 특별한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2015/01/23, 스위스 다보스에서 전국경제인연합이 개최한 ‘2015 한국의 밤’ 행사에서 통일을 언급하며)

“흔히 한미동맹을 혈맹이라고 얘기하는데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이런 혈맹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한미동맹을 이길 수 있는 세력은 없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좀 과장을 한다면 ‘invincible’(천하무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누구보다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2015/01/06, 경기 오산 미공군기지를 방문해 양국 장병들을 격려하고 한국과 미국의 연합 방위태세를 강조하며)

“쉽지 않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안정·불가역적 한일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대일외교의) 목표를 낮췄다. 과거 20년 동안 정권 초기에 한국이 일본에 선의의 조치를 취하지만 말기에 늘 악화된 채로 끝났는데 이런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반보를 나가더라도 방향성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가겠다는 취지다. 우리가 원하는 전략과 로드맵이 분명 있으니 일본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하라기보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2014/9/12,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와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수정주의적 시각과 야망을 우리의 외교적 노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한국, 중국, 동남아, 네덜란드 등 피해국들과 일본간 양자문제만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인권문제이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틀 전 일본정부 내에서 후세의 교육을 담당하는 고위인사가 위안부 문제가 날조되었다고까지 말했다. 이는 전 세계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다시 한 번 짓밟는 것.”(2014/3/5, 스위스 제네바에 열린 제25차 유엔 인권이사회(UNCHR) 기조연설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국가안보실이 설치되면 가능한 정권변화와 관계없이 지속적인 것이 되길 희망한다.”(2013/1/08,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외교통일분과 위원 시절 인수위 기자실 브리핑에서 외교안보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대해서)

“스스로도 햇볕정책 또는 포용정책 2.0 이라는 말을 하더라.“, “현실을 좀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장밋빛 청사진 같은 인상이 있다.”(2012/11/06, 박근혜 캠프 외교통일추진단장 시절, 뉴스1,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최근 각국 정상들의 스타일을 봤을 때, 이제 국가지도자가 망원경적인 (거시적) 것도 잘 알고, 현미경적인(미시적) 것도 잘 해야 한다.”, “큰일부터 사소한 자동차산업ㆍ소고기 문제까지 속속들이 알아야 각국 정상들과 원활한 대화를 할 수 있다.”(2012/11/0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캠프 외교통일추진단장 시절 외교안보와 관련한 대통령의 자질에 대해)

“언론은 섹시한 것을 좋아하지만 외교는 그럴 수가 없다. 섹시한 정책은 없을 것이다. 외교는 명분과 실리가 같이 가는 게임.”, “명분에 치우치면 실리를 못 얻고 반대 또한 같다.”(2012/11/0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캠프 외교통일추진단장 시절 박근혜 후보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딱 떨어지는 정책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박 후보가 2001~2002년부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해 왔다. 발전을 거듭해 현재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된 것.”, “오랫동안 축적된 본인의 생각이 잘 반영돼 있다.” (2012/11/0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캠프 외교통일추진단장 시절 박근혜 후보의 외교통일관에 대해)

“일본 차기총리가 누가 되더라도 신사참배 문제는 엄중히 대처할 것.”(2006/8/16, 외교부차관보 시절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문제와 관련)

“양국간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 것은 일본 정치가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지한 성찰 없이 인접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2006/4/28, 외교부 차관보 시절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현, 일본과 정상회담을 갖지 않는데 대해 한국과 중국이 후회할 때가 올 것이라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발언에 대해)

◆ 평가

2010년 12월27일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로 출범한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박 당선인의 공식적인 외교안보 조언그룹으로 알려지게 됐다.

그가 국가미래연구원에 합류할 무렵 “노무현 정부 인사인데 같이 해도 되겠느냐”는 주변의 질문에 박근혜 당선인은 “정책에 이념이 있나요. 상관없습니다”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인수위원직에서 중도사퇴한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 및 이정민 연세대 교수 등과 함께 국가미래연구원의 외교안보 그룹에서 박 당선인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밑그림을 그려왔다.

외교국방통일 분과 인수위원인 김장수 전 국방장관이 안보실장 자리로 가면서 박근혜 정부초대 외교장관의 중임을 맡게 됐다.

인수위 외교국방통일 분과에서 활동할 때부터 차기 외교부장관으로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로 평가됐다.

2015년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새 미일 방위협력지침 마련을 논의하면서 한국의 외교전략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당시 아베 총리의 방미는 ‘신밀월 시대’를 열었다며 미일동맹의 질적 격상으로 평가됐다.

반면 식민지배에 관한 사죄와 인식 표명은 방미한 아베 총리의 상·하원 합동연설에 담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입지가 뒤로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윤병세는 “한국이 소외되거나 주변화되는 게 아니냐며 외교전략 부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데 이는 과도한 해석”이라며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상호 보완적 측면이 있는 만큼 이것을 제로섬 시각에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문제와 관련한 우리의 입장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며 “역사문제에와 경제 문제, 문화협력 문제는 분리해서 다루고 있다”고 해명했다.

◆ 기타

2016년 3월 공직자 재산등록에서 재산 11억 3300만 원을 신고했다. 2015년 신고한 7억9천만 원보다 3억4200만 원 늘어났다.

예금은 본인 소유 7억3900만 원, 배우자 소유 210만 원, 장녀 소유 3600만 원이었다.

외교부 안팎에서 '오병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987년 개헌 이후 최장수 외교장관인 윤병세가 박근혜 대통령 재임기간인 5년 내내 장관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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