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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
"롯데는 그간 굳건한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시장을 선도하며 성장해왔지만, 앞으로의 양상은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새로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우리의 미래 성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2016/01/03, 롯데그룹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밝힌 신년사에서)
"면세점 수성 실패는 99% 내 책임이다." (2015/11/15, 소공동 롯데호텔 로비에서)
"우리 그룹과 형님은 관련이 없지 않냐."(2015/11/15, 신격호 총괄회장 생일파티에 참석하러 왔을 때 ’경영권이나 면세점과 관련해 신동주 전 부회장과 대화할 것인지‘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일본롯데와 한국 롯데제과는 한 그룹이 되면 7위로 올라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다. 제과와 식품분야의 연구개발부문에서도 한국과 일본 인력의 중복된 부분을 정리하면 시너지가 증가할 것이다." (2015/11/09,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앞으로 사업 방향에 대해)
“직원과 임원의 지지를 얻을 수 없는 사람은 회사 경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신 총괄회장의 기본철학이다. 임직원의 지지가 없는 가운데 창업자의 지시서 한 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기업과 가족은 별개다. 기업의 문제는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결정해야 한다.” (2015/11/09,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롯데홀딩스와 계열사 이사직에서 해임된 신동주의 복귀 문제에 대해)
"롯데홀딩스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그 산하의 롯데는 상장 가능성이 있다. 호텔롯데의 상장이 내년 상반기에 실현되면 장래과제로 일본롯데의 상장을 검토하고 싶다. 시장의 엄격한 눈에 노출되는 것이 기업의 체질강화와 지배구조 확립에 플러스가 된다. 장기적으로 기업을 발전시키는 관점에서 시장의 비판을 받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2015/11/09,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여성인재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여성 중간관리자들이 조직 내 핵심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주요 회의에 여성인력을 배석하도록 하라." (2013/01/05, 주요 계열사 회의에서)
"국내외 상황이 어렵다고 성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신제품 개발과 해외사업 확대, 인수합병(M&A)과 신규 사업 발굴을 통해 끊임없는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2013/11/28, 경기도 안산시 캐논 코리아 비즈니스 솔루션 신 공장에서 열린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항소는 하지 않겠다. 앞으로 (국회 출석요구에) 성실히 임하겠다." (2013/05/24,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요구를 거부하여 받은 공판에서)
"이미 오래 전 회장님이 한국과 일본 경영을 나눠줬으니 형님이 그런 말씀은 하지 않는다." (2010/06/21,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신동주 일본 롯데 부회장이 한국롯데를 경영하고 싶어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
◆ 평가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학자' 스타일로 온화하고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이데 비해 신동빈은 더욱 공격적이고 적극적 스타일의 인물이다.
이런 성격을 앞세워 형을 제치고 국내 제계 5위인 롯데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회장 임명 전 웬만해서 언론 앞에 나서지 않고 공식석상에서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라 '은둔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오전 출근시간 직원들보다 먼저 또는 혼자서만 회사 엘리베이터를 잡아타는 일이 없으며 해외출장 때 본인의 가방을 직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챙겨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버지 신격호 회장의 '현장경영 정신'을 물려받아 자주 현장을 방문하고 있으며 조용하지만 거침없는 추진력을 보이고 있다. 2004년 케이피케미칼과 한화마트, 우리홈쇼핑 등 많은 기업의 인수합병을 주도한 대목에서도 이런 추진력이 확인된다.
경제학 전공, 그리고 일본 노무라 증권 런던지점에서 경력이 신동빈의 경영 스타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금융업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는데 1997년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금융업 확대를 밝혔다.
1995년 롯데캐피탈을 설립했고 2002년 동양카드를 인수해 지금의 롯데카드로 성장시켰다. 2014년 LIG 손해보험 인수에 나섰는데 이는 롯데손해보험의 대규모 적자상황을 해결하고 업계 점유율을 높이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룹 회장이 된 첫 해인 2011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매출 73조 원을 올려 외형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2009년까지 유통업계 라이벌인 신세계에 영업이익에서 지고 있었는데 신동빈의 공격경영 성과에 힘입어 1년 만에 이를 뒤집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형 인수전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포스코와 경쟁을 벌인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에서 2천억 원 차이로 밀려 인수에 실패했다.
또 롯데마트나 롯데홈쇼핑과 같이 신동빈이 공을 들인 사업도 업계1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등 유통대기업으로서 체면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신동빈이 직접 추진한 기업이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유니클로처럼 이미 성공이 보장된 일본제품을 들여오는데 집중하는 것 같다고 평가한다.
2009년에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을 확장하며 이른바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빚었다. 개인 슈퍼마켓 등 소규모 상점을 운영하는 지역 영세 소매상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09년 유통업계 10대 뉴스' 조사에서 최대 이슈로 선정됐다.
전문가들은 롯데그룹의 삼성 화학 계열사 인수에 대해 재무적 부담은 크지만 장기적으로 수직계열화 강화를 통해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신동빈은 경영권 분쟁으로 흔들리는 롯데그룹 경영권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5년 서울 시내면세점사업권 입찰에서 잠실 월드타워점 특허권 재승인에 실패한 요인으로 경영권 분쟁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 기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친구 사이라고 알려졌다. 신동빈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 아베 집안의 교류로 일찍부터 아베 총리와 동갑내기 친구 사이로 친분을 쌓았다.
특히 신격호 총괄회장은 아베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도 오랜 인연을 갖고 있어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협상을 막후지원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은 신동빈에게도 이어져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그의 중매와 결혼을 맡았으며 결혼식에 당시 일본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전현직 총리가 3명이나 참석했다.
2013년 1월15일 아베 총리와 15분간 총리 공관에서 면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강한 보수 우익 성향과 한국여론의 반감을 사고 있는 측면 때문에 롯데그룹은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하고 있다.
신동빈과 그의 아들인 신유열은 모두 일본 국적이어서 병역의무에서 제외됐다. 신동빈은 그뒤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신유열은 일본 여성과 결혼해 신격호와 신동빈에 이어 3대 내리 일본 여성과 결혼하는 가족사를 썼다.
2016년 7월26일 검찰은 신동빈의 이복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신 이사장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등으로부터 롯데면세점과 롯데백화점 입점 편의를 봐준 대가로 30억 원 가량의(배임수재)의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2016년 8월31일 법원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 대해 사무처리 능력의 부족을 이유로 들어 한정후견 개시 결정을 내렸다. 한정후견인으로 사단법인 ‘선’을 선임했다. 한정후견은 법원의 성년 후견제도 가운데 하나로 법원이 정한 범위 내에서 후견인이 대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제도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 김성우 판사는 한정후견인으로 사단법인 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롯데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갈등을 들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2016년9월2일 법원의 한정후견 개시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다.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94번째 생일(2016년 11월3일)에 신 총괄회장을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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