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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1610/35834_50986_3756.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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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
우병우는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검사 출신으로 명석하고 능력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권력을 이용한 비리와 축재 의혹으로 박근혜정부 레임덕의 뿌리를 제공했다. 결국 2016년 10월 30일 자리에서 내려왔다.
1967년 경북 봉화에서 교사였던 부친 우영구씨의 장남으로 태어나 경북 영주에서 자랐다.
검사가 꿈이었던 그는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대학교 3학년 때 사법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당시 만 20세였다.
우병우는 검사로서 일찍부터 출세가도를 달렸다. 서울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해 부부장검사로 승진한 뒤 엘리트코스인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 대검을 차례로 거쳤다. 각종 굵직한 사건을 맡으며 ‘특수통’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탄탄대로 경력에 제동이 걸렸다.
우병우는 2009년 대검 중수부 수사1과장으로서 이인규 대검 중앙수사부장 등과 함께 ‘박연차 게이트’에 엮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게 됐다. 그는 미리 준비한 200여 개의 질문을 들고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심문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수사를 받은지 20여 일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병우는 그 뒤에도 잠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맡는 등 요직을 지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 한직을 돌았다. 검사장 승진에서도 두 번이나 탈락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병우는 2013년 사표를 냈다. 우병우를 끝으로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검찰 지휘라인은 모두 옷을 벗었다.
하지만 그는 박근혜 정부 2년차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것이다.
당시 야당은 “노 전 대통령 5주기를 열흘 앞두고 나온 이런 소식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무리한 수사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의 주임검사를 민정비서관에 임명하는 것은 민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적절한 인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발은 큰 타격이 되지 못했다. 우병우는 민정비서관 시절 청와대 문고리 권력에 관한 루머 등이 담긴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을 처리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김영한 민정수석이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과 갈등을 빚다 사퇴하자 민정수석에 발탁됐다. 임명 8개월 만에 수직승진을 한 셈이다.
그는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청와대 비서실 개편에서도 유임됐다. 당시 개편에서 이병기 비서실장과 수석 5명이 바뀌었다.
그러나 우병우는 최근 각종 비리 의혹이 엮인 ‘우병우 게이트’로 궁지에 몰렸고 '최순실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책임을 묻는 여론이 거세졌다. 청와대는 인적쇄신 의지표명의 일환으로 10월 30일 우병우를 비롯한 일부 비서진의 사표를 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