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시장의 기대보다 기준금리 인하 폭 전망치를 낮추면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통화정책 전환 ‘신중론’도 한층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높은 수준의 물가 상승률과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 등을 고려할 때 이 총재가 연준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인하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 인하 폭 전망치를 축소하면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의 통화정책 전환 신중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
13일 증권업계 전망을 종합하면 올해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피벗)이 사실상 후퇴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예상보다 뒤로 밀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은 12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뒤 향후 기준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를 통해 올해 금리 인하가 1차례 정도 진행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지난해 12월 점도표를 통해 올해 3차례 기준금리를 예고했던 것과 비교하면 금리 인하를 상당히 더디게 진행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셈이다.
연준의 태도 변화에 증권가에서도 연준의 첫 금리 인하 시점이 9월보다 뒤로 밀릴 수 있다고 바라본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리포트에서 “6월과 7월 물가 둔화가 확인된다면 9월 인하 가능성도 열어둘 수 있지만 현재로서 물가 둔화 속도가 매끄럽다는 것을 판단하기에는 이르기 때문에 기본 시나리오는 11월 1회 인하로 전망한다”고 내다봤다.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 속도 조절은 상당기간 통화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는
이창용 총재의 신중론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총재는 5월23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1회 연속으로 동결하면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통화긴축 기조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열린 한국은행 창립 제74주년 기념식에서도 “고금리로 여러 경제주체가 겪는 고통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통화긴축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다시 한번 신중론을 꺼내들었다.
이날 이 총재는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 ‘천천히 서두름’의 원칙을 되새겨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며 통화정책을 빠르게 전환하지 않겠다는 뜻도 에둘러 표현했다.
올해 들어 이 총재가 연준과 통화정책 차별화를 꾸준히 강조해왔지만 연준보다 금리 인하 카드를 먼저 꺼내들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가 최대치로 벌어진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아직 국내 물가도 한국은행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2%대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내년부터는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속도감 있게 끌고 나갈 것으로 예상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러한 움직임에 보폭을 맞춰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높여나갈 가능성이 있다. 사진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연합뉴스> |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13일 “한국은 미국보다 더 높은 기대인플레이션 상황에 놓여 있다”며 한국은행이 연준보다 금리를 먼저 내리기 힘들다고 바라봤다.
다만 연준이 내년부터 금리 인하에 속도를 낸다면 이 총재도 보폭을 맞춰 금리 인하 속도를 높여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이 이번 FOMC 이후 공개한 점도표를 보면 내년부터는 0.25%포인트 수준의 기준금리 인하를 4차례 가량 단행할 것으로 예고했다.
이 총재도 올해 하반기 한 차례 정도 금리인하를 단행한 뒤 내년부터 연준에 보폭에 맞춰 금리인하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혜영 LS증권 연구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한국이 미국의 인하 횟수를 따라가지는 않겠지만 연준의 인하 기조에 흐름은 맞출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