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3년 11월21일 싱가포르 서부 주롱 혁신지구에서 열린 HMGICS 준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
△현대차 러시아 사업 철수
현대자동차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가동을 중단한 러시아 공장을 매각하고 러시아에서 철수한다.
현대차는 2023년 12월19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러시아 공장(HMMR) 지분 매각 안건을 승인했다.
공장 매수자는 러시아 현지업체인 아트 파이낸스로 매각 금액은 단 1만 루블(약 14만 원)이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의 장부가(2873억 원)를 고려하면 엄청난 손실이 불가피했다.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가동을 중단한 약 2년 동안의 피해액은 1조1300억 원에 이르렀다.
다만 이번 매각 거래에는 현대차가 공장을 2년 안에 재매수할 수 있는 바이백 옵션을 조건으로 달았다.
현대차는 2010년 연간 자동차 24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건설하고 현대차 소형 세단 쏠라리스, 소형SUV 크레타, 기아 리오 등을 생산해왔다. 해당 공장은 전쟁 등의 여파로 2023년 3월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이와 함께 2020년 12월 연간 10만 대 규모의 미국 GM(제너럴모터스)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인수했고 이곳에서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을 생산할 계획이었으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공장은 아예 가동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이번 매각 대상에는 두 공장 모두가 포함됐다.
현대차그룹은 전쟁 발생 이전까지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현지 업체 아브토파즈 다음으로 가장 많은 판매실적을 올렸다.
전쟁 발발 전인 2021년 기준 러시아에서 기아는 20만5801대를 판매해 12.3% 점유율로 판매 2위, 현대차는 16만7331대를 팔아 10% 점유율로 판매 3위를 차지했다.
두 회사 합산 점유율은 22.3%로 개별 업체 기준 1위 아브토바즈(21%)를 넘어섰다. 이뿐 아니라 르노(7.9%), 토요타(5.9%), 닛산(3%), 벤츠(2.8%), 포드(1.3%)를 모두 합친 수치보다 많은 차를 팔았다.
그런 만큼 현대차는 전쟁에 따른 서방국가의 경제 제재 여파로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대부분 사업을 철수한 가운데 가장 늦게 러시아에서 발을 뺐다.
러시아의 연간 자동차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157만 대로 같은 기간 169만 대가 판매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의선으로서는 높은 성과를 내고 있던 러시아에서 철수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러시아 현지 상황 등을 고려해 기존에 판매된 차량에 대한 사후서비스(AS) 운영은 지속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회장 취임 3년 만에 '글로벌 톱3' 완성차업체 안착, 수익성도 역대 최대
정의선은 회장 취임 3년 만인 2023년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톱3 완성차업체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2년 연속 역대 최대 영업이익 달성도 이끌었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글로벌 연간 자동차 판매량에서 사상 처음 3위(684만 대)에 오른 뒤 2023년 상반기에도 365만 대를 판매하며 일본 토요타그룹과 독일 폭스바겐그룹에 이어 ‘글로벌 톱3’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은 2000년대까지 세계 완성차 판매 순위에서 10위권 수준에 머물렀으나 2010년 자동차사업 진출 초기 조립 물량을 주던 미국 포드까지 제치고 글로벌 톱5에 진입했다. 그 뒤 2020년 잠깐 4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줄곧 5위권에서 정체된 모습을 보였으나 정의선의 회장 취임 뒤 다시 도약하고 있다.
정의선은 2020년 10월 현대차그룹 회장에 오른 뒤 2023년 10월14일 취임 3주년을 맞았다.
탄탄한 판매실적을 바탕으로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도 역대 최고치를 잇달아 경신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23년 1~3분기 각각 누적 영업이익 11조6524억 원, 9조1421억 원을 거뒀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영업이익은 20조7945억 원에 이르러 역대 1~3분기 누적 기준 사상 처음 20조 원을 넘어섰다.
이는 두 회사의 기존 합산 최고 연간 영업이익인 2022년 17조529억 원을 2023년 3개 분기 만에 초과달성한 것이다. 또 현대차와 기아가 2011년 합산 영업이익 11조5279억 원으로 처음 10조 원을 돌파한 뒤 12년 만에 20조 원의 벽을 돌파했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세계 3대 ‘올해의 차’ 휩쓸어
정의선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플랫폼 개발에 선제적으로 나서 높은 상품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말 전기차 전용플랫폼 E-GMP를 처음 공개했다. 기존에 내연기관차를 만들어 온 글로벌 완성차업체 가운데 폭스바겐그룹을 제외하면 가장 빠른 것이다. 정의선은 전동화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전기차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E-GMP 개발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1년 아이오닉5를 시작으로 잇달아 출시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글로벌 3대 자동차 시상식을 모두 휩쓸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3년 12월13일 3개 차종으로 구성되는 2024 북미 올해의차(NACOTY) 유틸리티 부문 최종후보 자리를 기아 EV9, 현대차 고급브랜드 제네시스의 GV70 전동화모델, 현대차 코나(전기차 모델 포함)가 올라 해당 부문 수상을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북미 올해의 차 선정 조직위원회는 1994년 설립돼 30년째 매년 그 해 출시된 차 가운데 최고의 차를 선정하고 있다. 승용, 트럭 등 2개 분야에서 최고의 차를 선정해오다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가 업계의 새로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2017년부터 유틸리티 부문을 추가했다.
앞서 기아 EV6는 2023년 1월 2023 북미 올해의 차 유틸리티 부문에 선정됐다. 또 전기차 3종으로 2024년 유틸리티 부문 수상을 확정지었을 뿐 아니라 2024 북미 올해의 차 승용 부문 최종 후보에도 아이오닉6가 이름을 올려 뒀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선정하는 ‘월드카 어워즈(WCA)’에서 현대차그룹은 2022년 아이오닉5에 이어 2023년 4월 아이오닉6가 최고 영예인 ‘세계 올해의 차(WCOTY)’를 수상하며 2연패를 달성했다.
세계 올해의 자동차 시상 부문은 세계 올해의 자동차, 세계 올해의 전기차, 세계 올해의 자동차 디자인, 세계 고성능 자동차, 세계 럭셔리 자동차, 세계 도심형 자동차 등 6개로 나뉜다.
아이오닉6는 2023년 세계 올해의 전기차와 세계 올해의 자동차 디자인에도 선정돼 3관왕에 올랐다. 기아 EV6 GT도 세계 고성능 자동차에 이름을 올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로 6개 부문 가운데 4개 부문을 석권했다.
2022년 현대차그룹은 EV6로 ‘유럽 올해의 차(COTY)’의 높은 벽도 넘어섰다.
1964년 처음 시작된 유럽 올해의 차는 유럽 지역의 자동차 전문기자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전문 심사와 투표를 거쳐 부문별 구분 없이 단 하나의 차량을 최고의 차로 선정한다.
2022년 2월 말(현지시각) EV6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022 유럽 올해의 차 온라인 시상식에서 한국차 사상 최초로 유럽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 2023년까지 58차례 진행된 유럽 올해의 차에서 비유럽 브랜드가 상을 받은 것은 EV6를 포함해 11번뿐이다.
현대차그룹의 2023년 유럽 올해의 차 수상은 불발됐지만 2024년 유럽 올해의 차 최종 후보 7개 차종 목록에는 기아 EV9이 이름을 올렸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글로벌 시장에 전기차 약 16만 대를 판매하며 판매량 순위 6위에 올랐다. 자국 시장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를 제외하면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글로벌 전기차 생산기지 구축에 속도
정의선은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전기차 생산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3년 11월21일 싱가포르 서부 주롱 혁신지구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준공식을 열었다.
현대차그룹은 HMGICS를 놓고 △지능형, 자동화 제조 플랫폼 기반 ‘기술 혁신’ △다품종 유연 생산 시스템 중심 ‘제조 혁신’ △고객 경험 기반 판매 모델 구축 ‘비즈니스 혁신’ 등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를 연구하고 실증하는 테스트베드라고 설명했다.
HMGICS는 주롱 혁신지구 내 약 4만4천㎡(1만3천 평)의 부지에 연면적 약 9만㎡(2만7천 평),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설립됐다. 한 건물에 소규모 제조 설비와 연구개발(R&D) 및 사무를 위한 업무 공간, 고객 체험 시설까지 모든 시설이 갖춰진 복합 공간으로 구성됐다.
생산기지로서 HMGICS는 지금까지 현대차그룹이 건설해 온 기존 자동차 공장과는 확연히 다른 임무를 수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은 HMGICS 준공식에 참석한 뒤 “(HMGICS에서) 돈을 버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이 기술들을 전 세계 현대차그룹 공장에 전파해 다른 공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차를 생산하고 코스트(비용)를 줄일 수 있다면 싱가포르 공장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HMGICS의 역할은 현재의 생산 확대가 아닌 미래 경쟁력 확보에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HMGICS는 2023년 초부터 가동을 시작해 아이오닉5와 그에 기반한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생산하고 있는데 연간 전기차 생산 능력은 3만 대에 불과하다.
다만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 로보틱스 등 첨단기술을 융합한 제조 시스템을 바탕으로 다차종 소량 생산 시스템을 갖췄고 컨베이어 벨트 대신 각기 다른 모빌리티를 동시에 제작할 수 있는 유연 생산 방식인 ‘셀(Cell)’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대차그룹은 HMGICS에서 개발·실증한 제조 플랫폼을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HMGMA)과 한국 울산 전기차(EV) 전용공장 등 글로벌 전기차 신공장에 단계적으로 도입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앞서 현대차는 2023년 11월13일 울산 북구에 위치한 울산공장 내 전기차(EV) 신공장 부지에서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현대차그룹은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을 HMGICS와 함께 앞으로 전동화 시대 50년을 선도하기 위한 혁신의 두 축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울산 EV 전용공장은 1996년 아산공장 이후 29년 만에 들어서는 현대차의 국내 신공장으로 54만8천㎡(약 16만6천 평) 부지에 연산 20만 대 규모로 들어선다.
약 2조 원을 투입해 2025년 완공, 2026년 1분기부터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초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전기차 생산을 시작으로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2023년 4월에는 경기 화성시 오토랜드 화성에서 기아가 고객 맞춤형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9만9173㎡(약 3만 평) 부지에 1조 원을 투입해 2025년 하반기 양산을 시작한다. 연간 생산량은 최대 15만 대 규모다.
2024년 하반기에는 연간 3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HMGMA)이 완공된다. 정의선은 2022년 10월25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 신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공식에 참석해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세계가 선망하는 최고 수준의 전기차 생산시설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 현지 배터리 공급망 확보와 관련해 현대차그룹은(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2023년 4월25일 정기이사회에서 SK온과 함께하는 북미 배터리셀 합작법인 설립 안건을 승인했다. 현대차그룹과 SK온은 2025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에 연간 35기가와트시(GWh), 전기차 약 30만대 분의 배터리 셀을 생산할 수 있는 합작공장을 건설한다.
같은해 5월엔 LG에너지솔루션과 북미 배터리 합작법인 계약을 맺고 이를 기점으로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브라이언 카운티에 2025년 말 생산시작을 목표로 연산 30GWh 규모의 배터리셀 합작공장을 짓기로 했다.
두 합작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셀은 현대모비스가 배터리팩으로 제작해 HMGMA,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 등 현대차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전량 공급된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 조짐이 나타나면서 2023년 하반기 들어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포드 등 글로벌 주요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 관련 투자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의선은 계획된 투자를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어 이는 가까운 미래에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전기차 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의선은 2023년 11월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 행사를 마친 뒤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도 공격적 투자를 유지하는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기존에 해왔던 투자고 코스트(비용) 절감이나 이런 여러가지 방법도 있겠지만 큰 틀에서 어차피 전기차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운영을 묘를 살려서 해 볼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와 관련한 일시적 이슈보다 장기적 전기차 수요 확대에 대한 확신을 갖고 계획된 투자를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이 2023년 6월23일 베트남 하노이 국립대학교 호아락 캠퍼스에서 레 꾸언 하노이국립대 총장을 만나 미래 혁신 인재 육성의 필요성과 상호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아이오닉5 모형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
△글로벌 매체에서 '올해의 인물'로 잇따라 선정
정의선이 기존 자동차 산업을 넘어 모빌리티 영역을 재정의한 혁신의 성과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중심 인물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는 2023년 11월27일 ‘2023 오토모티브 뉴스 올스타’ 38인을 발표하고 정의선 회장을 그 중 최고 영예인 ‘자동차 산업 올해의 리더’로 선정했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1925년 미국에서 창간된 자동차 전문매체로 온라인판과 중국어판 등을 통해 글로벌 영향력을 갖고 있다. 편집국 에디터와 소속 기자의 심사와 평가를 거쳐 매년 30여 명의 글로벌 자동차 산업 올스타를 발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1년 동안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을 자동차 산업 올해의 리더로 선정한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정의선 회장은 다양한 미래 기술을 선도하며 모빌리티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산업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정의선의 차별화한 전동화 전략과 신사업 추진도 선정 이유로 꼽혔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글로벌 톱3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리더십 아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와 목적기반모빌리티(PBV)뿐 아니라 전기차 및 수소 에너지 분야에서도 위상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은 전동화 전환과 신기술 개발을 위해 63조 원 규모의 과감한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첨단 로봇과 인공지능(AI),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을 포괄한 혁신적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정의선에 앞서 자동차 산업 올해의 리더를 수상한 대표적 인물로는 2014년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 크라이슬러 CEO와 2018년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 겸 CEO, 2020년 빌 포드 포드 회장 등이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22년 4월12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2022 세계 자동차산업의 위대한 파괴적 혁신가들’ 시상식을 열고 정의선 회장에게 ‘올해의 비저너리(선지자)’ 상을 수여했다.
뉴스위크는 2021년 말 처음으로 ‘미국의 위대한 파괴적 혁신가 50인’을 발표한 데 이어 2022년에는 자동차산업에서 인류에 획기적이고 창의적 변화를 촉진한 인물과 단체를 중심으로 6개 부문에 걸쳐 ‘세계 자동차산업의 위대한 파괴적 혁신가들’을 선정했다. 그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이번에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올해의 비저너리 부문은 앞으로 30년 이상 자동차산업에 영향을 미칠 업계 리더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정의선이 최초 수상자가 됐다.
2021년 6월에는 영국 자동차 전문지인 오토카에서 매년 수상자를 선정하는 최고 영예의 상인 '이시고니스 트로피'를 받았다.
오토카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1895년에 발간된 자동차 전문지로 영미권 독자가 많을 뿐 아니라 온라인판, 국제판 등을 통해 글로벌 영향력도 가진 매체다. 해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인물과 제품을 선정해 시상한다.
오토카는 정의선의 수상 이유를 놓고 “현대차그룹이 현재 세계 굴지의 자동차 그룹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정의선 회장이 있다”며 “10년 전만 해도 현대차·기아는 흥미로운 브랜드가 아니었지만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으로 주요 선두업체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며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토카는 이어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N 브랜드와 제네시스 브랜드 등을 앞세워 시장을 확대하면서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분야에서는 업계 선두주자로 발돋움했다”며 “더 이상 경쟁사들을 따라잡으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자동차 기업들이 현대차그룹을 추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의선보다 앞서 이 상을 받은 인물로는 론 데니스 맥라렌 회장(2014년)과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 사장(2018년), 디터 제체 다임러 회장(2019년), 하칸 사무엘손 볼보 CEO(2020년) 등이 있다.
정의선은 뛰어난 경영 성과를 바탕으로 미래 모빌리티 혁신을 견인하는 글로벌 리더로서 입지를 쌓아왔다.
기아 사장 시절에 성공적으로 ‘디자인 경영’을 추진했고, 현대차 부회장으로 일할 때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에 대응하면서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출범시켜 안착시켰다.
정의선은 자동차산업과 모빌리티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과감한 선제적 투자와 제휴, 적극적 인재 영입 등을 통해 현대차그룹을 ‘자동차 제조 기업’에서 ‘스마트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시키려 한다. 인류에게 한 차원 높은 이동의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차세대 모빌리티 구상을 로보틱스, 자율주행, AAM, SDV 등으로 구체화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로보틱스는 현대차그룹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로보틱스랩을 중심으로 로봇 분야 기술 초격차 확보 및 핵심 기술 내재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이 HMGICS에서 생산한 아이오닉5 기반 무인 로보택시를 2024년 미국 내 상업 서비스에 투입할 계획을 갖고 있고, 국내에서는 국회와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등에서 로보셔틀 시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미래 도시 개발의 핵심으로 꼽히는 미래항공모빌리티와 관련해서는 미국 도심 항공 모빌리티 독립법인인 ‘슈퍼널(Supernal)’을 통해 2028년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 장벽 뚫고 현지 전기차 판매 호조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모델들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1천만 원 가까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도 현지 전기차 시장에서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2023년 1~11월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에서 합산 8만4690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이는 전년 동기(5만3663대) 보다 57.8% 증가한 규로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전기차시장 성장률(48.7%)을 10%포인트 가까이 넘어섰다.
미국 자동차 전문 평가기관 켈리블루북(KBB)에 따르면 2023년 1~3분기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7.8% 점유율을 기록해 미국 전기차 판매 2위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1년 동안 미국에서 7.1% 점유율로 테슬라와 포드에 이어 3위를 기록한 바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 2022년 8월부터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 해 최대 7500달러(약 970만 원)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하는 내용의 IRA을 시행했다. 대부분의 전기차를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라인업은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 전기차 판매 톱5 업체 가운데 1천만 원 가까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현대차그룹은 IRA에 대응하기 위해 이 법과 관계없이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리스와 플릿(자동차를 법인, 렌터카, 중고차업체 등 대상으로 대량 판매하는 것) 등 상업용 판매 채널을 늘렸다.
또 전기차 모델에 따라 IRA 보조금(7500달러)에 필적하는 수준의 자체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수익성보다는 판매대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애초 2025년으로 예정됐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HMGMA) 완공 시점을 2024년 하반기로 앞당겨 IRA가 규정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 요건을 갖추는 기간을 단축하는 데 그룹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3년 9월7일(현지시각)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배터리셀 공장 'HLI그린파워'를 방문해 공정별 세부사항을 살피고 있다. <현대차그룹> |
△인도네시아 현지 전기차 생태계 구축 박차
정의선은 인도네시아를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의 전진 기지로 점찍고 현지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정의선은 2023년 9월7일 인도네시아 카라왕 신산업단지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셀 공장 'HLI그린파워'를 처음 방문해 배터리셀 생산공정을 둘러보고 현대차 아세안권역본부 임직원들과 현지 전동화 생태계 구축 전략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2023년 6월 완공된 HLI그린파워는 시험생산을 거쳐 2024년 중반부터 NCMA 리튬이온 배터리셀을 양산한다. 양산에 들어가면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자동차 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전기차 배터리셀부터 완성차까지 현지 생산 및 판매 체계를 갖춘 완성차업체가 된다.
앞서 현대차는 2022년 초 인도네시아 브카시에 연산 15만 대 규모의 첫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지역 완성차 공장 건설을 완료했다. 이에 힘입어 현대차의 현지 자동차 판매실적은 2022년 3만1965대로 전년보다 10배 이상 크게 뛰었다.
특히 현대차는 최초의 인도네시아산 전기차 아이오닉5를 앞세워 2023년 1~7월 현지 전기차 누적 판매량에서 56.5%(3913대)의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4위 인구 대국이자 배터리 핵심 광물인 니켈 매장량 및 채굴량 세계 1위인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 아세안 지역 전동화 톱티어 브랜드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대차가 현지 배터리 생산을 본격화하는 2024년부터 인도네시아는 현대차그룹의 아세안 전기차 수출 거점으로도 본격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에 따라 부품 현지화율이 40% 이상인 때 인도네시아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아세안 국가들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원자재 조달 - 배터리 및 완성차 생산 - 충전 시스템 확대 - 배터리 재활용을 포괄하는 인도네시아 전기차 생태계을 구축해 아세안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인도네시아는 수도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정의선이 힘을 주고 있는 UAM 등 미래 모빌리티 사업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신수도청과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생태계 구축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신수도 내 AAM 적용 계획을 수립하고 지상-항공 통합 모빌리티 개념 검증 및 시험 비행 등 AAM 생태계를 운영하는 실증사업을 펼치게 됐다.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은 446조 루피아(약 40조 원)을 투입해 2024년 수도 이전을 시작해 2045년까지 완료하는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다. 인도네시아의 신수도 누산타라는 현재 수도이자 경제 중심지인 자카르타에서 항공편으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인도네시아로서는 활주로 없이 도심에서 이착륙이 가능한 AAM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전동화 전환에 투자 확대, 2032년까지 109조 원 투자
정의선이 현대차의 전동화 전환에 속도를 더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한다.
현대차는 2023년 6월20일 ‘2023 CEO인베스터데이’ 행사에서 현대차의 중장기 전동화 전환 전략인 ‘현대 모터 웨이’를 발표했다.
현대차는 이번 발표를 통해 2023년부터 2032년까지 10년 동안 모두 109조4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2022~2030년 9년 동안 95조5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한 데서 13조9천억 원 늘어난 규모이다.
이 가운데 전동화 관련 투자에만 2032년까지 35조8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2022년 CEO 인베스터데이 때 연평균 2조2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매년 1조4천억 원 더 많아졌다.
특히 전동화 전환 투자가 집중되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12조 원 이상이 투입된다.
이와 함께 전기차 판매 목표도 상향 조정했다.
현대차는 2030년 전 세계에서 전기차를 200만 대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2022년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제시했던 187만 대보다 13만 대 늘어난 수준이다.
기아도 2023년 CEO인베스터데이에서 2030년 전기차 판매 목표를 160만 대로 제시해 2022년 목표치 대비 40만 대 끌어올렸다.
투자도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 동안 32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특히 미래사업 투자 비중을 45%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3년 11월13일 울산 북구에 위치한 울산공장 내 전기차(EV) 신공장 부지에서 열린 울산 EV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현대차> |
△KT와 미래 모빌리티 협력 위한 지분 교환
현대차그룹은 KT와 지분을 맞교환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했다. 현대차그룹이 다른 기업과 지분을 교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과 KT는 2022년 9월 KT 자사주 7.7%를 현대차 지분 1.04%, 현대모비스 지분 1.46%와 맞교환한다고 발표했다. 교환 대상 지분 규모는 약 7500억 원 수준이다.
두 회사는 차세대 6G 통신 기반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인공위성 기반의 미래 항공모빌리티 통신 인프라를 마련한다. 현대차그룹이 기체 개발, 수직이착륙장 건설 등을 맡고 KT는 통신위성과 연계해 관제 통신망을 구축한다. 커넥티드카 시대의 데이터 수요에 맞춰 스트리밍 등 새로운 서비스 개발도 검토한다.
모빌리티 경쟁력 강화는 물론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두 회사에 도움이 되는 지분 교환으로 여겨진다.
현대차그룹은 국민연금(10.9%)에 이어 KT의 2대 주주에 오르면서 오너가 없는 KT에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우군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도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현대모비스 중심으로 정의선의 지배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 자연스럽게 KT를 우호지분으로 편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는 이전부터 KT 지분을 적게나마 보유해왔다. 2009년 6월 KT 지분 0.09%를 취득해 계속 들고 있었다.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과 지배구조 개편
정의선은 개정된 공정거래법 시행을 앞두고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했다.
현대글로비스는 2022년 1월5일 정의선과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의 특수목적법인 프로젝트가디언홀딩스에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정의선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은 기존 23.29%에서 19.99%로 낮아졌다.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하면서 지분을 20% 미만으로 낮춰 개정된 공정거래법 규제를 피해갈 수 있게 됐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2021년 12월30일부터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라 오너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지분율 20% 이상인 계열사로 규정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정의선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한 것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정의선이 지분 11.72%를 보유해 2대주주로 있는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가 진행되면서 이런 분석에 힘이 실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21년 12월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하지만 수요 부진으로 2022년 1월 기업공개 일정을 한 차례 연기했고, 같은 해 4월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상장 작업이 중단됐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오토에버는 정의선이 2023년 9월 말 기준 현대글로비스 20%, 현대오토에버 7.33%의 지분을 들고 있는 계열사로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자금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지분 80%를 인수한 미국 로봇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도 그룹 재편 과정에서 자금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소프트뱅크와 지분인수 계약을 체결하면서 4~5년 안에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상장하지 못하면 소프트뱅크가 쥔 나머지 지분 20%까지 현대차그룹이 사주는 풋옵션 조건을 단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미국 증시 상장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정의선은 개인 사재를 출연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인수에 참여한 만큼 상장이 되면 구주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정의선이 들고 있는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은 20%다.
현대차그룹은 2023년 12월 말까지 아직 순환출자 구조를 깨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30대 대기업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은 아직까지 구체적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지 않았지만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려면 수조 원의 자금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현금 확보가 필수적이다.
정의선은 그동안 지배구조 개편에 계속 힘을 기울여왔다.
정의선은 2020년 3월19일부터 25일까지 현대차 주식 58만1333주, 현대모비스 주식 30만3759주를 장내에서 사들였다. 현대차 주식은 405억7천만 원어치, 현대모비스 주식은 411억 원어치다. 모두 합쳐 817억 원가량을 매수했지만 안정적 지배력을 확보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정의선은 2023년 9월 말 기준으로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각각 2.65%와 1.76%, 0.32% 쥐고 있을 뿐이다.
다만 정의선은 지배구조 개편을 두고 사업구조 변화 추이를 보면서 좀 더 시간을 두고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의선은 2022년 4월14일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배구조 개편은 정답이나 모범답안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업적으로 많이 변화하고 있고 새로운 신사업이 들어가고 또 줄어드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걸 보면서 진행하는 게 내부적으로 좋다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그런 페이스에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정의선은 수석부회장에 승진했을 때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적이 있다.
현대다이모스와 현대파워텍은 2018년 10월19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현대다이모스가 현대파워텍을 흡수합병하는 안건을 결의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5월 말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하는 기존 지배구조 개편안을 공식으로 철회했는데 이후 약 5개월 만에 다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사전작업에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
당시 현대차그룹에서 파워트레인(엔진과 변속기 등 동력전달계) 사업을 하는 현대다이모스와 현대파워텍 두 회사의 합병을 놓고 파워트레인 관련 사업을 하는 현대위아가 추가로 합병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증권가에서 나왔다.
정의선은 2018년 11월22일 현대오토에버 상장 추진을 공식화했다. 현대오토에버는 정의선의 개인 지분율이 높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자금줄 역할을 할 기업으로 꾸준히 거론된 회사다.
실제 현대오토에버는 이듬해인 2019년 3월28일 코스피에 정식으로 상장됐다. 정의선은 현대오토에버 상장 과정에서 보유지분의 절반을 구주매출 방식으로 처분해 965억 원을 확보했다.
|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겸 대한양궁협회장이 2023년 12월1일 '2023 한국 양궁 6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해 양궁 역사의 명장면이 포착된 사진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
△차량용 반도체 부족 대응
현대차그룹은 세계적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2022년 6월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에 반도체전략 태스크포스(TF)팀이 신설됐다. 태스크포스팀은 그룹 내 반도체 사업전략과 반도체 수급방안 수립을 담당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를 동원해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를 시도하고 있다. TF팀 설치는 반도체 수급 대응력 제고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하면서 현대자동차가 정부 주도 아래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구체적으로 협력할 가능성도 거론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12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6대 그룹 총수 오찬 자리에서 "차량과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과 현대차가 더 긴밀히 협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삼성전자는 2021년 3월 차량용 반도체에 관한 협의체를 구성했다. 2021년 5월에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자동차연구원, 한국전자기술연구원과 차량용 반도체 수요·공급 기업 사이 연대·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협약식을 가졌다.
정부는 2022년까지 차량용 반도체의 자립화를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1위이지만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는 시장점유율이 2.3%에 그쳐 미국(31.4%)이나 일본(22.4%), 독일(17.7%) 등에 비해 크게 취약하다.
특히 2021년 세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가 부각되자 정부가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에 적극 나섰다.
현대차와 기아는 다른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보다 피해가 적었지만 수급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2021년 6월에는 이틀, 5월에는 일부 공장 라인의 생산 중단까지 포함해 엿새, 4월에는 열하루 등 모두 19일에 걸쳐 생산 차질을 겪었다.
기아는 2021년 5월17일부터 18일까지 스토닉과 프라이드를 생산하는 광명 2공장을 휴업했다. 기아가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국내 공장에서 생산을 멈춘 것은 처음이었다.
△부회장 자리 없애 직할체제 강화
정의선은 2022년 연말 인사에서 루크 동커볼케 최고운영책임자(CCO)를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이규복 현대차 프로세스혁신사업부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동커볼케 사장은 2020년 일신상의 이유로 회사를 떠났는데 정의선이 다시 불러올 만큼 신뢰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규복 부사장 역시 정의선이 낙점한 인사로 알려졌다.
이 밖에 2020년이나 2021년처럼 큰 폭의 인사쇄신은 없었으며 공영운 전략기획담당 사장, 지영조 이노베이션담당 사장, 김정훈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정의선은 현대차그룹의 2021년 연말 임원인사에서 사실상 그룹 부회장직을 없애면서 직할체제를 강화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12월17일 임원인사를 통해 윤여철 현대차 정책개발담당 부회장을 고문으로 임명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 부회장으로는 총수일가인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 부회장만 남게 됐다. 2017년 말 9명이었던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2021년 말 1명으로 줄었다.
정의선이 이번 인사를 통해 사실상 전문경영인 부회장을 모두 없애고 친정체제를 완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정의선은 2018년 총괄수석부회장에 오른 뒤 해마다 연말 임원인사에서 1명 이상의 부회장을 고문으로 임명하면서 직할체제를 강화해 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는 완전히 다른 경영 스타일을 보여온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만61세인 1999년에 현대차 회장에 오른 뒤 2000년 현대차그룹을 출범시킨 뒤로 전문경영인 부회장인 ‘가신’들에게 경영을 많이 의지했다.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만 봐도 2000년 말 1명이었던 부회장이 2010년 8명까지 늘어났다. 그룹 전체로 보면 2010년에 부회장 수가 14명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정의선은 자동차산업의 전동화 전환에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직할체제를 강화해온 것으로 보인다. 직할체제는 기본적으로 각 계열사 대표나 사업 담당자가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직접 의견을 나누고 논의할 수 있어 전문경영인 체제에 비해 대응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정의선은 현대차그룹의 조직을 탈바꿈시키는 데도 공을 들였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 2월 대학 졸업자와 졸업예정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공채를 폐지하고 상시채용 체제로 전환했다.
2019년 3월에는 모든 계열사에 자율복장 제도를 도입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확대 실시해 출퇴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었다.
정의선은 그동안 보수적이라고 평가되던 현대차그룹의 조직문화에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DNA를 이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에는 임원 직급체계를 개편했다. 기존 ‘이사대우, 이사, 상무’ 등으로 세분화돼 있던 상무 이하 임원의 직급을 상무로 통일했다. 2019년 9월에는 일반직 직급을 직위와 연공 중심의 6단계에서 역할에 따른 4단계로 줄였다. 5급사원과 4급사원은 G1, 대리는 G2, 과장은 G3, 차장과 부장은 G4로 각각 통합했다.
직급체계 변경과 함께 호칭체계도 바꿨다. G1~G2는 ‘매니저’, G3~G4는 ‘책임매니저’로 불린다. 팀장과 파트장 등 보직자는 기존대로 직책을 호칭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 ▲ 2023년 3월17일 일본 도쿄 게이단렌 회간에서 열린 한일비즈니스라운드에 참석한 (오른쪽부터)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연합뉴스> |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사업 확대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글로벌 브랜드로 안착해 나가고 있다.
제네시스는 2023년 9월17일 전달까지 제네시스 글로벌 누적 판매량이 국내 69만177대, 해외 31만8627대 등 모두 100만8804대를 기록하며 100만 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2021년 5월 누적 판매 550만 대를 넘어선 지 2년 3개월 만, 2015년 11월 브랜드 출범 이후로는 7년 10개월 만이다.
제네시스는 정의선이 초기 기획 단계부터 외부인사 영입과 조직개편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하며 개발한 야심작이다.
정의선은 2021년 9월 발표한 ‘퓨처링 제네시스’ 영상에 직접 등장해 2025년부터 제네시스 신차를 모두 전기차로 출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4년 1월 현재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의 전기차인 GV60과 내연기관차 파생모델인 G80·GV70 전동화모델 등 3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제네시스는 2020년 연간 판매량이 처음 10만 대를 돌파한 뒤 2021년 20만 대를 넘어섰고, 2022년에는 21만5128대로 판매량을 더 늘렸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가장 많은 차를 판매하는 미국 시장에서 고급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8년 1만 대 수준이었던 제네시스 미국 판매량은 2022년 5만6천대로 뛰었고 2023년 11월 현재 현지 2023년 연간 판매량은 7만 대 수준으로 예상됐다.
2016년 G80와 G90 등 단 두 차종으로 미국에 진출한 제네시스는 8년 만에 내연기관 및 전동화 모델을 포함한 8가지 모델로 라인업을 빠르게 확장했다.
다만 2021년 5월에 본격 진출한 유럽에선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22년 제네시스는 유럽 전역에서 2822대가 판매되는 데 그쳤다. 유럽에선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굴지의 프리미엄 브랜드 3사가 현지 프리미엄차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연말인사에서 제네시스 최고브랜드경영자(CBO)로 밴틀리 출신인 그레이엄 러셀(Graeme Russell) 상무를 영입했다. 2022년 연말인사에선 송민규 제네시스 최고운영책임자 전무를 제네시스사업본부장 부사장으로 승진 임명하며 제네시스 사업에 더욱 힘을 실었다.
△수소기업협의체 공동의장 맡아 수소사회 구축에 속도
정의선은 수소에너지의 국내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수소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참여하는 수소기업협의체 설립을 주도했다. 현대차그룹은 수소 에너지를 미래 친환경 에너지의 하나로 보고 관련 사업을 키우고 있다.
정의선은 2021년 9월8일 수소기업협의체인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의 창립총회를 열고 협의체를 공식 출범시켰다.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에는 현대차그룹과 SK그룹, 롯데그룹, 포스코그룹, 한화그룹, GS그룹, HD현대그룹, 두산그룹, 효성그룹, 코오롱그룹 등 10개 그룹이 참여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21년 9월7일 현대차그룹의 미래 수소사업 비전을 발표하는 ‘하이드로젠 웨이브’ 행사를 열었다.
정의선은 이 행사에서 “현대차그룹이 꿈꾸는 미래 수소사회 비전은 수소에너지를 ‘누구나, 모든 것에, 어디에나’ 쓰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런 수소사회를 204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정의선은 2021년 6월10일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함께 경기도 화성 현대차기아 기술연구소에서 만나 수소기업협의체 설립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2021년 초에 현대차그룹과 SK그룹, 포스코그룹이 수소경제 활성화 및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민간기업 주도의 협력 필요성에 공감하고 CEO 협의체로 ‘한국판 수소위원회’ 설립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은 데 따른 행보였다.
수소기업협의체는 CEO 협의체 형태로 운영되며 정기총회 및 포럼 개최를 통해 국내 기업의 투자 촉진을 유도하고 수소산업 밸류체인 확대를 추진한다. 이를 통해 수소사회 구현 및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정의선은 “수소기업협의체 설립을 비롯해 국내 주요 기업들과 수소사업 관련 협력을 지속하겠다”며 “수소 에너지의 확산 및 수소사회 조기 실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은 2022년 7월 인베스터데이를 열고 5천억 원 규모의 수소펀드를 출범시켰다. 이는 국내 기업들의 수소산업 투자를 본격적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정의선은 문재인 정부와 손을 잡고 국내 수소산업 생태계 확장에 힘을 쏟았다.
그린뉴딜의 한 축으로 수소산업 집중 육성에 나선 문재인 정부와 ‘수소차’라는 새로운 산업분야에서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려는 현대차그룹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정의선은 수소차 시장을 선도해 글로벌 미래 친환경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을 쥔다는 큰 그림을 그려두고 있다.
정의선은 2020년 10월30일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뒤 첫 현장 행보로 울산공장을 찾아 그린뉴딜의 세부전략을 발표하러 온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했다.
정의선은 직접 공장 내부를 안내하면서 미래 모빌리티 산업과 관련해 문 대통령과 의견을 나눴다. 정의선이 앞서 2020년 7월14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보고대회에 그린뉴딜 분야 발표자로 나서기도 했다.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은 2021년 1차 총회에 이어 2023년 6월14일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 서울에서 2차 총회를 열렸다.
이날 2차 총회에는 정의선을 비롯해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정기선 HD현대 사장,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다리 부상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현대차그룹 총수(동일인)에 지정돼
공정거래위원회는 2021년 4월29일 ‘2021년도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며 현대차그룹 동일인(그룹 총수)을
정몽구에서 정의선으로 바꿔 지정했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인 또는 자연인으로 본인과 친인척이 회사와 거래할 때 관련 사항을 공시하고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진다.
정의선이 2018년 9월14일 그룹 총괄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해 경영권을 사실상 승계하고 2020년 그룹 회장직을 맡은 데 이어 공식으로 총수로 지정됨으로써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동일인을 중심으로 친인척 범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동일인이 바뀌면 그룹 계열사 구성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도 바뀔 수 있다.
공정위는 “2021년 처음으로 각 그룹으로부터 지정자료를 받기 전 동일인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고,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동일인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21년 3월1일 공정위 조사 이전에 선제적으로 ‘동일인 변경 신청’ 내용이 담긴 대기업집단 지정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
정몽구 회장이 보유한 주력회사(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지분 전부의 의결권을 정의선 회장에게 포괄 위임한 점,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계열사 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경영상 변동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현대차그룹 동일인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고령의
정몽구 회장이 건강상태에 비춰볼 때 경영복귀 가능성이 높지 않은 점도 고려됐다.
정몽구 회장은 2020년 3월 현대자동차에 이어 2021년 3월 현대모비스에서도 사내이사를 내려놓으며 현대차그룹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앞서 정의선은 2020년 10월14일 현대차그룹 회장에 선임됐다.
정의선은 이미 2008년부터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으로서 사실상 현대차그룹 경영을 총괄해왔지만 회장으로 선임되어 역할이 더욱 커졌다.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이 수석부회장으로 선임될 때 “정 수석부회장이 앞으로 그룹 경영 전반과 주요 사안을
정몽구 회장에게 보고하고 재가를 받아 실행하게 되며 정 수석부회장의 역할은 정 회장 보좌”라면서 ‘3세경영 본격화’라는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은 2017년부터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정의선의 대외적 움직임은 갈수록 활발해졌다.
정의선은 2009년 8월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9년 동안 다른 계열사의 직책을 맡지 않았다. 현대모비스 등 일부 계열사의 등기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현대차 경영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룹 총괄수석부회장에 오른 뒤에는 현대차뿐 아니라 기아차와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카드, 현대글로비스, 현대로템, 이노션 등 모든 계열사의 경영을 관장했다.
| ▲ 정의선 현대차그룹회장(오른쪽)이 2023년 5월18일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열린 '리유니온' 행사에 참여해 주르제토 주지아로 GFG스타일 대표와 포니 쿠페 복원 차량에 탑승해 보고 있다. <현대차> |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전환에 속도
정의선은 발빠르게 인재를 영입하면서 현대자동차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과거 내부 연구개발 조직에서 나온 성과에 바탕해 성장을 추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과감하게 변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9월 카카오모빌리티와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실증 및 상용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현대차는 카카오와 진행하는 협력을 기반으로 서울 강남지역에서 운영하는 자율주행 시범서비스 로보라이드의 확대 운영에도 나섰다.
2022년 8월에는 현대차와 기아가 4200억 원을 들여 자율주행 전문업체 포티투닷을 인수했다. 포티투닷은 2022년 11월부터 서울 상암동에 이어 청계천에서 자율주행 셔틀 운행을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12월17일 연말 임원인사를 통해 진은숙 NHN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영입해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같은 해 4월 송창현 사장에 이어 진은숙 부사장을 영입하면서 네이버와 NHN의 CTO 출신을 모두 품에 안게 됐다.
앞서 현대차·기아는 2021년 4월16일 모빌리티 기능을 총괄하는 ‘TaaS본부’를 새로 설립하고 초대 본부장으로 송창현 포티투닷 사장을 영입했다. TaaS는 포괄적 수송서비스를 뜻하며 차량 또는 이동수단을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하는 ‘LaaS’와 ‘MaaS’의 상위 개념이다.
정의선은 줄곧 현대차와 기아가 단순한 완성차 제조업체를 넘어 스마트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를 위해 그동안 동남아 차량호출서비스 업체 ‘그랩’, 인도 차량공유 업체 ‘레브’, 미국 자율주행 업체 ‘모셔널’, 국내 스타트업 ‘포티투닷’ 등에 투자하며 외부 업체와 협력을 강화했다.
송 사장 영입은 수송서비스를 현대차그룹이 자체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의선이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 시절에 송 사장을 현대차 내부 기술개발부문에 직접 영입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결국 외부의 포티투닷 대표도 겸직하는 형태로 영입했다.
이는 정의선이 송 사장에게 보내는 신뢰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동안 국내외 유력인사를 영입할 때 보통 부사장 직급으로 데려오고 난 뒤 성과를 보고 1~2년 안에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방식을 보여준 것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는 TaaS본부에서 우선 기존의 모빌리티서비스를 고객 관점에서 통합하고 사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서비스모델을 도입해 글로벌 모빌리티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앞서 정의선은 2019년 4월15일 송창현 대표가 설립한 스타트업 포티투닷(옛 코드42)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고 여러 방면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코드42는 자율주행차와 드론, 자동배달 로봇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자율주행 이동수단을 하나로 통합해 차량호출과 차량공유, 로보택시, 스마트 물류, 음식배달 등 다양한 모빌리티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세대 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정의선은 과거 내부 연구개발 조직에서 나온 성과에 기대어 성장하는 것을 추구했던 그룹 전략을 과감하게 수정했다.
외부의 다양한 조직과 손을 잡는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조달하면서 내부와 정보를 공유해 새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을 일컫는다.
현대차가 2017년 말부터 최근까지 협업하기로 한 회사를 살펴보면 차세대 전기차 개발과 자율주행, 차량공유 등 자동차의 이동성에 초점을 맞춘 기업들에 투자가 집중됐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부터 시작해 글로벌 대기업까지 파트너 기업의 규모도 가리지 않고 있다.
2019년 5월에는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하이퍼 전기차 기업 ‘리막오토모빌리’에 1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고성능 전기차 개발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 9월 미국 자율주행 기업 앱티브와 합작회사를 설립했고, 2020년 1월7일에는 공유차량 기업 우버와 ‘도심항공 모빌리티 사업 추진을 위한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2월11일에는 미국 전기차 전문기업 카누와 차세대 전기차 개발을 위한 상호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정의선이 외부 기업과 협력하는 것은 현대차그룹의 체질 개선을 위한 움직임으로 읽힌다.
정의선은 2019년 5월2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칼라일그룹 초청 단독대담에서 리더십 측면에서 도전 과제를 묻는 질문에 “미래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특히 연구개발부문 투자 확대, 그리고 연구개발의 효율성 증대가 중요하다”며 “파트너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파트너십을 도모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미래 성공요소”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미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2017년 ‘현대크래들’을 출범시켰다. 한국과 미국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중국 베이징, 독일 베를린 등에도 현대크래들을 설립했다.
△계열사 통합으로 효율성 제고
정의선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통합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오토에버가 현대오토론, 현대엠엔소프트를 흡수합병하기로 한 것도 모빌리티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으로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정의선의 미래 모빌리티 역량 강화 노력과 연결된다.
현대오토에버는 2021년 4월1일자로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엠엔소프트, 현대오트론의 통합을 마쳤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같은 해 3월12일 서정식 현대자동차 ICT본부장 전무를 현대오토에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내용이 담긴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서 신임 대표는 현대오토에버를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도약시킬 경륜과 전문성을 겸비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오트론, 현대엠엔소프트는 2020년 12월11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합병 안건을 의결했다.
세 회사는 모두 차량용 소프트웨어 전문 계열사로 이번 합병을 통해 앞으로 차량 소프트웨어 표준을 수립해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 인프라를 통합하고 모빌리티 데이터를 통합 운영하기로 했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오토론의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양수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현대모비스는 2020년 12월11일 현대오토론과 반도체사업부문 개발인력 및 자산에 대한 양수도 계약을 맺었다. 인수가격은 1332억 원이었다.
|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가운데)가 2023년 5월25일 전경련에서 연 '갓생한끼' 멘토로 참석해 얘기를 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
△현대차 품질 논란에 적극 대응
정의선은 본격적으로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기에 앞서 현대차와 기아차가 품질문제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했다.
전기차 시대를 맞이해 품질 논란을 해소하지 못하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리더로 도약한다는 정의선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2021년 2월24일 선제적으로 2017년 11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생산된 코나EV(7만5680대)와 아이오닉EV(5716대), 일렉시티 버스(305대) 등 8만1701대를 리콜하기로 했다. 이들 차량은 잇따른 배터리 화재 사건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현대차는 리콜에서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을 모두 교체하기로 했는데 전체 리콜 비용은 1조 4천억 원 규모로 추산됐다.
현대차는 LG에너지솔루션과 같은 해 3월4일 코나EV를 포함한 8만2천 대의 리콜 비용을 3대7의 비율로 분담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현대차는 2020년 10월 전 세계에서 코나EV와 관련해 자발적 리콜 조치를 실시했다. 한국에서 같은 해 10월8일부터 코나EV 리콜을 실시했는데 리콜 범위를 세계로 넓혔다.
이에 따라 리콜 물량은 국내 2만5564대를 포함해 북미 1만1137대, 유럽 3만7366대 등 모두 7만7천 대에 이르게 됐다.
코나EV는 2018년 출시된 뒤 2021년 6월까지 국내외에서 모두 17건의 화재사고가 보고됐다. 국내에서는 2021년 6월 기준으로 모두 14건의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세타2’ 엔진과 관련해 대규모 충당금을 설정하기도 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22년 10월18일 2022년 3분기 경영실적에 세타2 GDI 엔진과 관련한 충당금 추가 설정과 선제적 고객 보호 조치를 위해 각각 1조3600억 원과 1조5400억 원 등 모두 2조9천억 원의 품질비용을 반영한다고 공시했다. 앞서 현대차와 기아는 2020년에도 각각 2조1300억 원, 1조2600억 원 규모의 품질비용을 3분기 실적에 반영한 바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19년 10월 세타2 엔진을 적용한 국내외 차량 400만 대가량에 대해 평생보증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10월21일엔 품질문제를 다루는 유관 부서를 통폐합해 조직을 정비하면서 유기적 협력체계를 강화했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1월 출시한 제네시스 GV80 디젤모델 일부에서 간헐적 진동 현상이 발견되자 6월5일 출고를 중단하고 품질 점검에 들어갔다. 이미 차량을 출고한 고객에게는 보증을 기존 5년/10만km에서 10년/20만km로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정의선이 이례적으로 이상수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지부장을 만난 것을 놓고는 ‘노사화합을 통한 품질경영’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정의선은 2020년 10월30일 현대차 울산공장 영빈관에서 이상수 지부장과 만나 현대차 노사관계와 관련해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
현대차가 품질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새 쏘나타의 품질 논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차는 2019년 3월 쏘나타를 출시한 뒤 차량의 소음과 진동 등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자 쏘나타 생산을 잠정 중단했다.
기아차가 2020년 2월 쏘렌토 하이브리드모델의 친환경차 미인증 사실을 확인하고 하루 만에 사전계약을 중단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기아차는 당시 사전계약 고객을 대상으로 친환경차 기준 미달에 따라 받지 못하게 된 모든 세제혜택을 회사가 모두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현대차와 기아차가 품질 논란에 대한 대응이 빨라진 것은 ‘고객중심 경영’을 강조하는 정의선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현대차는 2018년 9월 정의선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해 경영을 총괄하게 되면서부터 무리한 외형성장을 지양하고 고객 중심으로 판매 체질을 개선해 수익성을 높이는 ‘질적 성장’을 추구했다.
△삼성, LG, 롯데 등과 미래차 협력 논의
정의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그룹 총수들을 차례로 만나 미래차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정의선은 2020년 11월25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의왕 사업장에서 비공개로 만나 미래차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왕 사업장은 과거 롯데첨단소재 본사가 있던 곳으로 현재 롯데케미칼은 이곳에서 자동차 내외장재로 쓰이는 고부가합성수지(ABS)를 포함한 고기능 소재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회동은 전기차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됐다.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등 미래차에서는 주행거리 확보를 위해 자동차 소재의 경량화가 필수요소로 꼽히는 만큼 내외장재에 쓰이는 소재도 차량 경쟁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앞서 정의선은 전기차 경쟁력의 핵심인 배터리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LG와 SK, 삼성 등의 그룹 총수를 만나 협력 강화를 모색했다.
삼성그룹, LG그룹, SK그룹은 각각 계열사인 삼성SDI, LG화학(나중에 LG에너지솔루션으로 분할), SK이노베이션 등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정의선은 2020년 5월13일 충남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정의선과 이재용 부회장이 사업 논의를 목적으로 단둘이 만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뒤이어 2020년 6월22일에는 LG화학 오창공장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만나 전기차배터리 부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LG화학은 이미 현대기아차가 생산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차량과 코나 일렉트릭, 아이오닉 일렉트릭 등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공급사로 선정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는 2020년 7월7일 만나 전기차배터리를 포함해 신기술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SK이노베이션은 현대기아차가 생산하고 있는 플러그인(Plug-in) 하이브리드차량와 기아차의 니로, 쏘울 전기차 등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정의선은 전기차 사업 강화를 위해 4대 그룹뿐 아니라 전기화물차 분야에서 롯데그룹 및 CJ그룹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0년 4월24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동남권물류단지에서 롯데글로벌로지스, CJ대한통운 등과 환경부 주관 아래 ‘전기화물차 보급 확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전기차 폐배터리 활용 분야에서는 한화그룹 등과 협력하기로 했다. 현대차와 한화큐셀은 2020년 5월29일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에서 ‘태양광 연계 에너지저장장치 공동개발 및 사업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기아차 디자인경영 성과
정의선이 2005년 기아차 사장에 취임한 이후 ‘디자인경영’을 추진하면서 기아차가 2008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2006년에 폴크스바겐 총괄 디자이너 출신인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슈라이어 사장은 호랑이 코 모양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고안해 중구난방이던 기아차 디자인을 통일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K시리즈, 쏘울, 모하비 등 기아차 대표차종은 디자인 경영의 결실로 꼽힌다.
슈라이어 사장은 2007년 “(정의선은) 매우 열려 있고 긍정적”이라며 “디자인의 차별화를 매우 강조하는 편이고 자주 대화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정의선은 기아차 디자인경영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