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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

'타이어 강'으로 불려, 신속한 결단력 [2016년]
조은아 장윤경 기자 euna@businesspost.co.kr 2016-08-11 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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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
▲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


강병중은 1939년 7월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마산고와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부농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고 농지개혁으로 가세가 기울어 고교와 대학시절 학비를 스스로 벌어가며 학교를 다녔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 중고화물차 수입업을 시작했고 운수회사를 만들어 키워나갔다.

5년 뒤 운수회사를 그만두고 1100평 쯤 되는 흥아타이어 재생공장을 사들여 흥아타이어공업을 설립했다.

강병중은 최연소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았다. 동남은행, 경남생명보험 등 금융사를 설립했으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지분가치가 폭락해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법정관리를 받고 있던 우성타이어를 인수해 넥센타이어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외아들인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이 그룹의 지주사인 넥센의 지분 50.51%를 확보해 사실상 2세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40년 넘게 ‘타이어 외길’을 걸어온 타이어 전문가다. 뚝심이 세다.

해외시장에서 ‘타이어 강’으로 불린다. 해외 전시회에 참여해 많은 질문을 하는 것에 외국인들이 강한 인상을 받으면서 붙여준 것으로 보인다.

메모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무슨 일이 생기면 오랫동안 숙고하는 버릇이 있고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럴 때 늘 메모를 하는데 잘 때도 머리맡에 메모지를 놓아두고 밤중에 눈을 떠 메모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두르지 않는 경영스타일을 지녔다. 결단을 내릴 때 내리되, 무리수는 두지 않는다. 좌우명은 ‘천고마비’다. 천천히, 고개들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다.

강병중은 인수합병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 인수합병에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가 따른다.

강병중은 투자를 과감하게 하고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한다. 다른 기업인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기 하강기에도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인수해 빠른 시간 안에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재주를 지녔다.

대한상의에서 강병중과 함께 활동한 한 기업인은 “넥센의 강병중 회장은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꿰뚫어 보는 남다른 통찰력과 지혜를 갖고 있다”며 “경영상의 중대 고비에서 그가 내린 결정들이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른 뒤에 보면 거의 대부분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놀라곤 했다”고 평가했다.

결정은 신중하게 하는데 일단 결정하면 강하게 밀어붙인다. 생각은 신중하게, 결단은 신속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인화를 바탕으로 화합하고 상생하는 노사문화를 만드는데 공들였다. 강병중은 이런 노사문화가 우량한 기업을 만들어낸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2016년부터 본격적인 승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6년 2월 외아들인 강호찬 사장이 강병중과 함께 공동 대표이사가 되면서 오너 2세 체제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2016년 5월 넥센의 주식분할에 따라 강병중 일가의 주식 보유수가 늘었다. 그러나 보유지분은 이전과 동일하다. 넥센은 2월 1주당 액면가액을 5천 원에서 5백 원으로 변경하는 주식분할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강병중이 보유하고 있는 넥센의 보통주와 종류주(우선주)는 10배씩 늘었다.

넥센타이어는 2015년 매출 1조7588억 원, 영업이익 2249억 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것인데 신차용 타이어(OE) 부문이 매출증가를 이끌었고 교체용 타이어(RE)부문과 초고성능 타이어(UHP) 부문도 고르게 성장했다.

강병중은 넥센타이어를 2018년까지 글로벌 톱10 안에 들어가게 하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2년 부산시 중고육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했고 1975년 학교법인 옥광학원 이반성중학교 이사장을 맡았다.

1977년 10월 흥아타이어공업의 대표가 됐다. 1988년 부산상공회의소 제13대, 14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1988년 한국자유총연맹 부산시 지회장, 1992년 부산지방국세청 민관세정협의회 회장, 1993년 부산무역협회 설립추진위원회 회장 등을 거쳤다.

1994년부터 부산상공회의소 제15, 16, 17대 회장을 계속 이어서 맡았다.

1999년 법정관리 상태에 놓여있던 우성타이어를 인수해 넥센타이어로 회사이름을 바꾸고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2012년 창녕공장을 완공했다. 창녕공장은 연간 1100만개의 타이어를 생산하는 세계 최고의 자동화 생산라인이다. 창녕공장은 양산의 본사 공장과 중국 공장에 이어 넥센타이어의 세번째 생산기지다.

2002년 KNN문화재단 이사장과 회장에 올라 지금까지 일을 맡고 있으며 2012년 진주·부산발전협의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 학력

1952년3월 진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55년 마산동중학교를 졸업했다.

1958년 마산고등학교를 나왔다.

1966년9월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3월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수학했다.

국립 동카자흐스탄 대학교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 부산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동아대학교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김양자씨와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남은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이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큰 사위다.

◆ 상훈

1980년 제17회 수출의 날 대통령상, 1986년 조세의 날 대통령상, 1988년 88올림픽 참여장 체육부 장관상, 1992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1992년 무역진흥 대상, 1994년 조세의 날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07년 수출 4억 불탑, 2009년 금탑산업훈장, 2011년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상, 2012년 다산경영상, 진주시민상, 수출 7억 불탑, 2014년 21세기 경영인클럽 21세기 대상을 받았다.

2015년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에 선정됐는데 넥센타이어는 모두 5회의 최다선정 영예를 안았다.

2015년 10월 제22회 인간상록수로 추대됐으며 2015년 12월 제1호 라이온스 무궁화 대훈장을 수상했다.

◆ 상훈

1980년 제17회 수출의 날 대통령상, 1986년 조세의 날 대통령상, 1988년 88올림픽 참여장 체육부 장관상, 1992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1992년 무역진흥 대상, 1994년 조세의 날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07년 수출 4억 불탑, 2009년 금탑산업훈장, 2011년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상, 2012년 다산경영상, 진주시민상, 수출 7억 불탑, 2014년 21세기 경영인클럽 21세기 대상을 받았다.

2015년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에 선정됐는데 넥센타이어는 모두 5회의 최다선정 영예를 안았다.

2015년 10월 제22회 인간상록수로 추대됐으며 2015년 12월 제1호 라이온스 무궁화 대훈장을 수상했다.

어록


"1960~1970년대 부산 경제의 주축이던 합판, 고무 등 전통 산업이 위기를 겪으며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이 절실했다." "자동차와 금융 산업을 유치하면서 부산의 산업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꿨듯이 이제 새로운 성장 산업을 준비할 때다." (2016/05/30, 한 매체의 연속인터뷰 '경제, 원로에게 길을 묻다'에서)

“최근 부산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파워는 아직 약한 편.” (2016/03/18, ‘부산 도시브랜드 전략 콘퍼런스에 참석해)

“창녕공장 건립 계획을 발표한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경제상황도 안 좋은데 국내에 공장을 건립하겠다고 하자 반대가 심했다. 땅값도 비싸고 인건비 부담도 큰데 왜 외국에 나가지 않고 한국에 그 많은 투자를 해서 큰 공장을 짓느냐고 의아해 했다. 투자규모가 당시 매출액보다 큰 1조 원이 넘었기 때문에 노조와 임직원의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컸다.” (2015/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창녕공장 건립에 반대여론이 많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넥센타이어는 1999년 사명을 변경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직원들 마음속에 ‘안정된 회사가 있어야 우리가 있다’는 정서가 형성된 듯하다. 노사의 상생이 없으면 회사도, 직원도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회사는 직원과의 소통을 늘려갔다. 경영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큰 현안에 대해서 노조와 합의과정을 꼭 거쳤다. 직원복지에 대한 꾸준한 투자도 노사 간 신뢰의 바탕이 됐다.” (2015/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23년 연속 노사 무분규 달성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지난해 불확실한 경기상황에서도 꾸준히 투자해 우수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교육 등으로 고용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2015/03/25, 청와대에서 ‘고용창출 우수기업’행사에서 100대 우수기업에 선정돼 인증패를 받으면서)

“운수업을 하면서 비중이 큰 소모품인 타이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동차와 함께 타이어사업의 성장성을 확신했다.” (2015)

"기업의 성패는 투자에 달렸다. 체코에 투자해 공장을 새로 짓기로 한 결정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10년 뒤 시장을 내다보고 내린 것이다.“ (2014/06/26 체코 자테츠지역에 타이어공장을 짓기로 계약서를 쓴 뒤)

“무슨 일이 있으면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심사숙고를 한다. 머리맡에 메모지를 두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한다. 또 하나의 개인적 특징이 있다면 친인척을 회사에 두지 않는다. 넥센은 물론 계열사에도 관리직 중에 친인척은 한 명도 없다.”(2013/04/29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제가 사실은 좀 소심한 편입니다. 항상 메모지를 갖고 다니면서 메모를 합니다. 잠잘 때도 머리맡에 메모지를 두고 생각날 때마다 메모를 해서 행동에 옮기지요. 다른 회사 인수합병 같은 큰 사안이 있으면 심사숙고 끝에 한 번 부딪쳐 봅니다. 한 번 부딪쳐서 될 것 같으면 더 세게 부딪쳐 보고…. 가능성이 보이면 더욱 세게 밀어붙입니다. (2012/10/0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기업인수합병에 임하는 자세는 무엇이며 어떤 판단기준과 안목으로 결정을 내립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노사관계는 상호신뢰가 제일 우선입니다. 서로 믿어야 됩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매달 경영실적을 전 사원에게 공개하고, 주요한 투자계획 등 어떤 현안이 있으면 노조와 먼저 상의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 증설 같은 문제가 있을 때, 공장 하나를 더 짓더라도 노조와 먼저 협의를 하고 방향을 설정합니다. 이렇게 하니까 노조가 회사를 믿고, 경영진도 노조에 신뢰 받기 위해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습니다.” (2012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넥센타이어는 21년째 무분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큰 제조업 분야에선 드문 사례인데 어떤 비결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 회사는 해마다 주주총회 시즌에 상장사 가운데 가장 먼저 주총을 열고 있습니다. 회사와 노조의 신뢰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주와 회사의 믿음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13년째 주총을 가장 먼저 열어서 주주들에게 실적을 알려주고, 그들이 장기투자를 할 수 있도록 서로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경영 소신에서 매월 경영실적을 직원들에게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있으며, 기업의 투명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012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특이한 것이 해마다 주총 시즌에 가장 먼저 주주총회를 열고 있는데 그 배경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제가 골프를 시작한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골프를 하면서 ‘천,고,마,비’라는 개념을 일상생활, 인생에도 적용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즉, 천천히, 고개 들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골프를 치면 잘 맞더군요. 생을 살면서도 너무 서두르지 않고, 조금 잘 나간다고 으스대지 말고 항상 낮은 자세로 묵묵히 나아가는 겁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한 발 후퇴했다가 두 발 전진하는 겁니다. 이런 자세로 살아보니까 모든 일이 잘 풀리고 기업도 잘 되더군요.” 2012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인생은 골프와 같이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고 잘났다고 으스대서도 안 된다.” (2012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부채비율 6000%에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우성타이어. 그렇지만 세계적인 타이어 기업인 미쉐린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기술 제휴를 한 경험이 있음. 제품의 품질과 기술력이 뛰어나고 직원들의 애사심도 높음." (1999년, 흥아타이어공업을 통해 넥센타이어의 전신인 우성타이어를 인수하면서)

◆ 평가

40년 넘게 ‘타이어 외길’을 걸어온 타이어 전문가다. 뚝심이 세다.

해외시장에서 ‘타이어 강’으로 불린다. 해외 전시회에 참여해 많은 질문을 하는 것에 외국인들이 강한 인상을 받으면서 붙여준 것으로 보인다.

메모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무슨 일이 생기면 오랫동안 숙고하는 버릇이 있고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럴 때 늘 메모를 하는데 잘 때도 머리맡에 메모지를 놓아두고 밤중에 눈을 떠 메모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두르지 않는 경영스타일을 지녔다. 결단을 내릴 때 내리되, 무리수는 두지 않는다. 좌우명은 ‘천고마비’다. 천천히, 고개들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다.

강병중은 인수합병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 인수합병에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가 따른다.

강병중은 투자를 과감하게 하고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한다. 다른 기업인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기 하강기에도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인수해 빠른 시간 안에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재주를 지녔다.

대한상의에서 강병중과 함께 활동한 한 기업인은 “넥센의 강병중 회장은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꿰뚫어 보는 남다른 통찰력과 지혜를 갖고 있다”며 “경영상의 중대 고비에서 그가 내린 결정들이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른 뒤에 보면 거의 대부분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놀라곤 했다”고 평가했다.

결정은 신중하게 하는데 일단 결정하면 강하게 밀어붙인다. 생각은 신중하게, 결단은 신속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인화를 바탕으로 화합하고 상생하는 노사문화를 만드는데 공들였다. 강병중은 이런 노사문화가 우량한 기업을 만들어낸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2016년부터 본격적인 승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6년 2월 외아들인 강호찬 사장이 강병중과 함께 공동 대표이사가 되면서 오너 2세 체제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2016년 5월 넥센의 주식분할에 따라 강병중 일가의 주식 보유수가 늘었다. 그러나 보유지분은 이전과 동일하다. 넥센은 2월 1주당 액면가액을 5천 원에서 5백 원으로 변경하는 주식분할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강병중이 보유하고 있는 넥센의 보통주와 종류주(우선주)는 10배씩 늘었다.

넥센타이어는 2015년 매출 1조7588억 원, 영업이익 2249억 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것인데 신차용 타이어(OE) 부문이 매출증가를 이끌었고 교체용 타이어(RE)부문과 초고성능 타이어(UHP) 부문도 고르게 성장했다.

강병중은 넥센타이어를 2018년까지 글로벌 톱10 안에 들어가게 하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 기타

‘부울경은 하나다’라는 책을 냈다. 희수(77세) 기념 문집으로 강연한 내용과 언론에 게재된 칼럼을 위주로 구성됐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는데 키가 작아 떨어졌다고 한다.

방송인 강호동 씨와 5촌 사이로 두 사람은 명절 때마다 만나 함께 성묘를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는 월석(月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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