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리호 3호 발사 성공으로 우주강국 대열의 끝자락에 자리잡았지만 실질적 우주강국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우주산업에 관한 시야를 넓히고 더 많은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5월2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지난 달 21일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 3호는 명실공히 순수 국내기술로 설계, 개발된 발사체다.
75톤급의 액체연료 엔진은 물론 7개의 큐브위성, 페어링에 이르기까지 모든 핵심기술이 국내연구진에 의해 확보됐다. 확실히 이 날은 우리나라 우주산업 역사상 한 획을 긋는 날이었다.
이보다 앞서 일본은 지난 해 10월 소형 고체연료 로켓인 ‘입실론 6호’와 올 3월 H-3로켓 발사에 연거푸 실패한 바 있다. 누리호 3호가 발사에 성공하면서 마치 우리의 우주기술이 일본을 넘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해가 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날의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우주강국 대열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이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일본의 우주개발기구인 JAXA가 설립된 것은 지난 1955년이다. 일찍이 1970년에 인공위성 ‘오스미’를 발사했다. 2014년 발사된 하야부사 2호는 2018년 소행성 류구에 도착해 2년 후인 2020년 토양과 암석을 채취해 지구로 귀환하는데 성공했다. 우리와 확연한 기술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반도체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 우리보다 기술적 열위를 보이고 있는 중국 역시 우주산업 분야에서는 예외다.
2019년 중국의 탐사선 창허 4호는 달 뒷면의 사진과 영상을 지구로 전송한 바 있다. 그간 달 뒷면의 영상은 지구로의 송출이 어려웠으나 중국은 중계위성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지난 해 말에는 선저우 15호를 톈궁에 발사함으로써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이어 영구적으로 우주인이 머무는 두 번째 우주정거장을 완성했다.
인도와의 격차도 분명하다. 인도는 이미 지난 2014년 화성탐사선인 망갈리안을 발사해 미국, 유럽, 러시아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우주선을 화성에 보낸 나라가 됐다. 올 7월에는 달 탐사로봇(로버)을 탑재한 찬드라얀 3호의 발사가 예정되어 있다.
미국, 러시아와 같은 우주산업 선두그룹과의 차이는 물론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다른 산업분야에서 강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가 유독 우주산업 분야에서만 뒤쳐졌던 데에는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다.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향우연, KARI)의 전신인 항공우주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시작된 한국의 우주산업은 출발 자체가 그만큼 늦었다. 이후에도 미국에 의한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으로 우주로켓 개발에 어려움이 컸다. 자본력이나 기술력은 차치하고서라도 한미 양국 관계에 따른 실질적 제약이 있었다.
한국이 잠재적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여건이 갖추어진 지금, 때마침 세계는 우주산업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KDB 미래전략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우주산업 시장은 지난 2021년 3860억 달러에서 2040년 1조 달러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분석기관마다 큰 차이는 있지만 한결같이 무한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우주산업 분야가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큰 폭의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은 응용분야가 넓고 파생산업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주산업이라 하면 우주탐사, 미래자원, 발사체 등과 주로 연관을 짓기 쉽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태양계 소행성인 16프시케는 100억 톤 가량의 백금을 비롯해 1000조 달러 가치를 지닌 희귀광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사(NASA)는 오는 10월 실제로 이 행성에 탐사우주선을 발사할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가까운 달에는 최소 100만 톤에 달하는 헬륨-3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론적으로는 핵융합 상용화 기술을 확보한다는 가정 하에 전 인류가 1만 년을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현실의 우주산업 흐름은 대개 이런 먼 미래와 연관된 것들이 아니다. 응용분야와 파생산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KDB 보고서는 2021년 세계 인공위성 발사체 시장규모를 57억 달러 정도로 추정했다. 전체 우주산업의 15%에 못미치는 수치다. 산업의 중심이 다른 곳에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인공위성의 소형화 추세와 관련이 있다. 기상예보, 해양정보 측정, 통신, 항법, 지형관측, 우주탐사 등 인공위성의 용도는 점차 세분화 내지는 특성화되고 있다. 작은 위성은 이에 적합하다. 빠른 제작 및 성능개선, 비용절감 등이 가능하다. 우주산업이 국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옮겨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단 분리 로켓, 하이브리드 로켓 등 가성비 좋은 로켓산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같은 추세의 반영이다. 연료 분야에서도 기존의 폴리머 계열 대신 산화제와의 분리저장으로 폭발위험을 줄이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파라핀 계열 쪽이 부상하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 역시 우주산업과 연관돼 있다. 이미 ISS에서 3D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스패너로 부품을 수리한 바 있고 2016년에는 먹을 수 있는 햄버거를 만든 적도 있다. 렐러티비티 스페이스(Relativity Space)가 3D 프린터를 이용해 로켓의 85%를 제작한 바 있고, 이스라엘기업 알레프 팜스(Aleph Farms)는 우주에서 배양육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우주 쓰레기 청소사업 또한 새롭게 부상하는 분야다. 미국 정부가 지난 2021년 우주쓰레기 청소에 1억 달러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등 이 사업의 필요성이 부상하면서 아스트로 스케일(일본), 클리어 스페이스(스위스), 오빗 가디언스(미국), 오브루타(Obruta, 미국) 등과 같은 기업들이 줄줄이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해양안테나 분야에서는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인텔리안 테크와 같은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 국내외에서 상당한 수주를 따내고 있다. 특성상 크고 강력하면서도 다양한 방향으로 빠른 회전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 분야에서 우리 기술력은 독보적이다.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는 우주 발사체 재사용 산업은 향후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은 분야다. 미국의 스페이스X가 팰컨9 로켓의 1단을 재사용, 발사비용을 크게 줄이면서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는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기술개발을 위해 스페이스X와 협력하고 있다.
2001년 미국의 데니스 티토(Dennis Tito)가 민간인으로서는 처음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12일간의 우주관광을 시도한 이래, 우주관광 산업 또한 본격적인 시장형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달 25일 미국의 버진캘러틱이 VSS유니티에 승무원 6명을 태우고 상용화에 앞서 최종 점검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현재 800여 명이 예약구매를 완료한 상태다. 티켓가격은 45만 달러로 초 부가가치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차세대 엔진 개발과 더불어 연간 400회까지 비행을 계획하고 있다.
블루오리진, 스페이스X, 제팔토, 스페이스 어드밴처, 인넬사트, 아리안 스페이스, 러시아 연방 우주국(Roscosmos) 등 관련 기업들이 앞다퉈 우주여행 산업을 계획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컨설팅기업인 딜로이트(Deloitte)는 오는 2030년까지 우주여행을 경험하는 민간인 수가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주산업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도 무관하지 않다. 2016년 일본의 우주 벤처기업인 ALE가 망간과 알루미늄을 대기권에 방출하는 방식으로 인공 별똥별을 만들어 일본 전역에서 100만 명 이상이 이를 관찰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가 스타링크 위성을 통한 인공 별똥별 프로젝트에 나서고 있고, 러시아의 로스코스모스 역시 올해 인공 별똥별 프로젝트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우주산업이 안보와 방산 분야에도 강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2018년 중국이 위성공격 미사일 실험에 들어가자 당장 인도가 다음해인 2019년에 저궤도의 자국 위성을 미사일로 격추하는 실험에 성공해 중국에 무력시위를 한 바가 있다. 위성과 관련, 창과 방패 양쪽 산업 모두가 태동하고 있다.
우주산업과 연관된 분야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무궁무진한 차세대 먹거리와 관련된 가장 큰 산업 중 하나랄 수 있다.
현재 세계 우주산업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시장점유율은 1%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2045년까지 이를 1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정작 정부나 민간부문의 투자는 미미한 상태다.
대외경제연구원(KIEP)이 밝힌 지난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예산은 GDP대비 0.04%(7억2천만달러)로 미국(0.21%), 러시아(0.2%), 프랑스(0.14%), 독일, 일본(0.06%)에 못미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세계 1553개 우주기업에 투자된 민간자본 1998억 달러 가운데 우리나라의 투자규모는 4억 달러로 0.2%에 그치고 있다. 미국(49%)이나 중국(26.2%)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국(5.1%), 싱가포르(4.8%) 등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발표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올 증원계획은 5명이다. 항우연이 요구했던 30명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25명의 요구에 단 한명의 증원만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우주산업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당장 전문 연구인력만도 100명 이상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인식의 문제가 작용한다. 우주산업 분야의 중요성을 일반 산업분야의 그것과 동등하게 보는 한 집중적인 투자는 쉽지 않다.
반도체, 방산, 우주산업 등과 같은 첨단 미래산업이야 말로 절대 뒤처져서는 안되는 분야다. 장차 국가적 존망과 직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차원이든 민간 차원이든 투자를 아끼지 말고, 민간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정부가 나서야 하는 분야다. 확고한 유기적 산업생태계의 기반을 조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많은 돈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계 15개국이 가입되어 있는 ISS 공동운영국에서도 한국은 제외돼 있다. 아직까지 세계 우주산업에서 능력이나 기여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다. 이 역시 투자의 문제와 직결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밝힌 올해 우주산업 예산은 8742억 원이다. GDP대비 0.04%대에 여전히 고정돼 있다. 산업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나 투자의지를 보고 있자면 누리호의 발사성공을 그저 하나의 국가적 이벤트 정도로만 생각하고 우주산업의 미래 목표를 말로만 호들갑스럽게 떠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다. 조광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