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text-align:center; margin-top:20px;" >
<img alt="[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LG 구자경 "오직 비전, 비전은 나의 신앙이다"" height="300" class='lazyload' data-src="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304/20230421084339_134619.jpg" width="600" />
<figcaption><table width=600 style='margin-bottom:20px;'><tr><td align='left' style='margin:0; padding:0px 0px; color:#306f7f; font-size:12px; font-family:verdana; letter-spacing:-0.1em; line-height:160%; table-layout: fixed;'>▲ 고 상남(上南) 구자경 명예회장(사진)은 아버지(연암 구인회)와 함께 LG를 경영한 1.5세대 경영자에 속한다. 아버지의 후계자인 동시에 새로운 창업주였던 셈이다. 그는 ‘자율경영’과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라는 경영이념으로 LG를 초일류기업에 올려 놓았다. </td></tr></table></figcaption>
</figure>
</div>
[비즈니스포스트] ‘험프티 덤프티(Humpty Dumpty)’라는 경제 용어가 있다. 원래는 영국 전래 동요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담벼락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앉아 있는 계란을 의인화한 캐릭터다.<br />
<br />
이런 험프티 덤프티는 경제 용어로 전환돼 위기 상황에 놓인 대상을 빗대어 말할 때 사용된다. <br />
<br />
해외 언론을 검색하면 Humpty Dumpty Economy(험프티 덤프티 경제, 포브스), How to stop our economies falling like Humpty Dumpty(어떻게 하면 험프티 덤프티처럼 경제가 추락하는 걸 멈출 수 있을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문장이 나온다.<br />
<br />
필자가 불쑥 험프티 덤프티 얘기를 꺼낸 건 반도체 리딩기업 삼성전자의 부진이 예사롭지 않아서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4년 만에 1조 원 이하(6600억원)로 떨어졌다. <br />
<br />
게다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반도체 감산까지 발표했다. 험프티 덤프티까지는 아니겠지만 그에 준하는 위기라고 우려할 만하다. <br />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삼성은 인텔처럼 안일함에 빠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Samsung should be wary of Intel-like complacency)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1등 기업의 현실을 꼬집었다.<br />
<br />
여기에 하버드비즈니스스쿨 명예교수이자 변화관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존 코터(John Kotter) 교수가 익히 했던 말도 새겨 볼 일이다. 코터 교수는 “현상 유지는 재난(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status quo can create disaster)고 지적했다. <br />
<br />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코터 교수는 “현상 유지에 대한 애착은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살인자”(attachment to the status quo is a silent but deadly killer)라고 믿는 사람 중 하나다. <br />
<br />
필자는 삼성이 1등이라는 현상 유지(status quo)에 안주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외국 언론의 눈에 그렇게 비칠 뿐이다. <br />
<br />
삼성전자와 달리 LG전자는 선방했다. 1분기 영업이익 1조4974억 원의 잠정 실적(전년 동기보다 22.9% 감소)을 기록하며 14년 만에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뛰어넘었다. 삼성으로선 충격이고 LG로선 회심의 역전인 셈이다. <br />
<br />
삼성과 LG의 희비가 크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필자는 한국의 전자산업 판도에 일대 격변이 일었던 ‘1969년’을 되돌아 보았다. 이번 칼럼의 주인공인 상남(上南) 구자경 명예회장(1925~2019)의 등판 시기이기도 하다. <br />
<br />
1969년. 그해는 삼성과 LG 기업사에서 분수령과도 같은 해다. 삼성 창업회장 호암 이병철(1910~1987)은 1월13일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전자산업 진출을 전격 선언했다. <br />
<br />
금성사를 앞세워 전자산업을 선도하고 있던 LG에 대한 도발이었으며 사돈이자 사업 동지였던 LG 창업회장 연암 구인회(1907~1969)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었다. <br />
<br />
호암에게 전자산업을 권한 건 친분이 있던 일본 산요전기의 이우에 토시오(井植歳男: 1902~1969) 회장이었다. 이우에 회장은 마쓰시타전기(지금의 파나소닉)를 설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의 처남이자 공동창업자로 훗날 독립해 산요전기를 세운 인물이다. <br />
<br />
호암은 그런 이우에 회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전자산업의 걸음마를 떼고 연수생들을 산요전기에 파견해 라디오, TV 등 기술을 배워오게 했다. 그렇게 삼성에게 1969년은 새로운 도전의 해였다. <br />
<div style="text-align:center; margin-top:20px;" >
<img alt="[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LG 구자경 "오직 비전, 비전은 나의 신앙이다"" height="300" class='lazyload' data-src="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304/20230421084458_133348.jpg" width="600" />
<figcaption><table width=600 style='margin-bottom:20px;'><tr><td align='left' style='margin:0; padding:0px 0px; color:#306f7f; font-size:12px; font-family:verdana; letter-spacing:-0.1em; line-height:160%; table-layout: fixed;'>▲ 경남 의령과 함안을 가로지르는 남강에 우뚝 솟은 솥바위. 한자로는 정암(鼎巖)이라고 한다. 한 도사가 솥바위 주변 20리(약 8㎞)에 큰 부자 셋이 나온다고 예언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실제로 의령에선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이, 남쪽 진주에선 LG 창업주 연암(蓮庵) 구인회가, 그리고 동남쪽 함안에선 효성 창업주 만우(晩愚) 조홍제가 태어났다. <이재우></td></tr></table></figcaption>
</figure>
</div>
반면 LG엔 시련이 몰아닥치고 있었다. 그해가 저물어가던 12월31일 연암이 뇌종양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63세, 이른 별세였다. 삼성이 전자산업으로 파이를 키워 가는 가운데 LG는 창업주마저 세상을 떠나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br />
<br />
경영 수장 교체라는 큰 숙제를 앞에 둔 시점. 자칫하면 경영권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기 국면이었다. 하지만 LG가(家) 사람들은 잡음 하나 없이 창업이념의 핵심인 ‘인화’로 똘똘 뭉쳤다. <br />
<br />
당시 후계자 선정의 키(key)는 연암의 첫째 동생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이 쥐고 있었다. 창업에 기여한 공로로 보자면 자신이 그룹 회장을 맡는다고 해도 말릴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br />
<br />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면서 형님의 큰아들인 당시 금성사 부사장 구자경을 차기 회장으로 내세웠다. LG의 장자 승계 원칙이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br />
<br />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연구에 크게 공헌한 이즈리얼 커즈너(Israel M. Kirzner) 미국 뉴욕대 명예교수가 강조했듯 새 사령탑 상남 구자경에게 필요한 건 ‘기민함(alertness)’이었을 것이다. (커즈너는 기업가가 갖추어야 할 핵심 덕목으로 ‘기민함’을 꼽았다) <br />
<br />
60세의 노련한 호암 vs 45세의 짱짱한 상남. 상남은 취임 첫해부터 ‘기민하게’ 일본 기업들과 합작사를 설립하면서 대대적인 방어선 구축에 나섰다. 당시 합작 상황은 이랬다. <br />
<br />
△70년 일본 알프스전자와 합작해 금성알프스전자 설립 △71년 일본 포스타전기와 함께 금성포스타 설립 △이어 일본 후지전기와 손잡고 금성통신(독일 지맨스와 3사 합작) 설립 △74년 NEC(일본전기)와 합작해 금성전기 설립 등이다. <br />
<br />
필자가 굳이 일본 합작사를 열거한 이유는 따로 있다. NEC(일본전기)라는 기업 때문이다. ‘일본의 IBM’으로 불리는 NEC는 합작을 넘어 상남에게 큰 공감을 준 회사였다. 상남은 NEC의 고바야시 코지(小林宏治:1907~1996) 회장을 거울로 삼아 ‘비전 전도사’로 거듭났다. <br />
<br />
“정말 그분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하여 일관성 있게 비전을 실현시켜 나갈 것이다.”<br />
<br />
이젠 희귀본이 된 상남의 경영 에세이 ‘오직 이 길 밖에 없다’(행림출판, 1992년)에 나오는 대목이다. 상남이 스스로 겸손해 하며 언급한 그분은 고바야시 회장이다. 두 사람 얘기는 한 템포 쉬고 가자.<br />
<br />
우리는 비전이라는 단어를 밥 먹듯 다반사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경영학자들이 말하는 비전의 정의는 뭘까? 위에서 등장한 존 코터 교수가 하버드비즈니스리뷰(What Leaders Really Do, 2001년 12월)에 기고한 내용을 보면 이렇다. <br />
<br />
코터 교수는 “비전이란 기업이 장기적 측면에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what it should become)를 보여주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행 가능한 경로(a feasible way)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br />
<br />
코터 교수는 더 나아가 비전의 생명은 ‘구체화’에 있다고 했다. ‘실질적인 경쟁전략으로 쉽게 구체화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how easily it can be translated into a realistic competitive strategy)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실현되지 못하는(또는 구체화 되지 못하는) 비전은 그리다 만 그림에 불과할 뿐이다. <br />
<br />
그럼 상남 구자경이 크게 공감한 고바야시 회장의 비전이란 도대체 뭘까? LG경영연구원에서 나온 전략 분석 보고서(2002년) 하나를 소개한다. <br />
<br />
“기업의 전략 방향 구축 활동은 세계 전자정보통신 업계에서 잘 알려져 있는 NEC의 C&C 전략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NEC는 이미 70년대 후반에 자사의 사업 비전을 C&C 즉 컴퓨터와 통신임을 정립하고 이에 적합한 기술전개 방법을 구체화한 바 있다.”<br />
<br />
이 보고서에 언급된 C&C(Computers and Communications)가 바로 고바야시 회장이 제창한 비전이다. 그는 1977년 10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종합통신전시회에서 “21세기 초반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 margin-top:20px;" >
<img alt="[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LG 구자경 "오직 비전, 비전은 나의 신앙이다"" height="300" class='lazyload' data-src="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304/20230421084553_142379.jpg" width="600" />
<figcaption><table width=600 style='margin-bottom:20px;'><tr><td align='left' style='margin:0; padding:0px 0px; color:#306f7f; font-size:12px; font-family:verdana; letter-spacing:-0.1em; line-height:160%; table-layout: fixed;'>▲ 상남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유독 비전을 강조했다. 그는 “흔히들 날 눌변이라고 말하지만 비전을 이야기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말에 힘이 들어가고 신바람이 났다”(경영 에세이 ‘오직 이 길 밖에 없다’)고 했다.</td></tr></table></figcaption>
</figure>
</div>
1970년대 당시 컴퓨터와 통신은 다른 업종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고바야시 회장이 컴퓨터로 대변되는 전자정보와 통신을 융합한 개념을 선보인 것이다. 오늘날의 전자정보통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br />
<br />
고바야시 회장은 C&C 비전을 통해 NEC의 제 2창업을 주도했다. 이를 계기로 NEC는 단순한 통신기기와 컴퓨터를 만드는 기업에서 일본의 정보통신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br />
<br />
상남은 고바야시 회장의 그런 비전과 NEC 사원들의 꿈이 부러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1991년 4월 NEC를 방문하기도 했다. 상남의 말을 들어본다. <br />
<br />
“처음에는 C&C 비전이 전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여겼던 사원들도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목표에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했고 실제로 세계적인 기업인 AT&T를 능가하는 부분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한결같이 꿈을 갖게 되었다. 그 꿈이 오늘날의 NEC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오직 이 길 밖에 없다’ 인용)<br />
<br />
고바야시 회장의 비전이 C&C였다면 상남의 비전은 자율경영에 있었다. 상남 역시 일찌감치 자신의 비전을 구체화한 바 있다. 1988년 11월22일의 일이다.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와 자율경영을 핵심으로 하는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이었다. <br />
<br />
상남은 이 구상을 발표한 그날을 “최고경영자 생활을 통틀어 가장 뜻깊은,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회고했다. 돌이켜보자면 상남은 큰 아름드리 나무 같은 위대한 기업인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입을 모았고 지금도 그렇게 평가받고 있다. <br />
<br />
필자는 희망한다. ‘비전가’였던 상남의 목소리가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에 얻은 좋은 경험이나 성과)로 다가가길 말이다. LG에게도, 삼성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br />
<br />
“나는 비전에 심취해 있다. 비전이 나의 신앙이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이 비전을 성공시키는 일에 내 인생을 걸었다”(같은 책 인용).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br />
<div align=center><table border="1" cellpadding="1" cellspacing="1">
<tbody>
<tr>
<td><span style="font-size:16px">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span></td>
</tr>
</tbody>
</table></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