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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세일즈맨 신화', 긍정의 에너지
장윤경 기자 strangebride@businesspost.co.kr 2016-07-26 00: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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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윤석금은 1945년 12월 20일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강경상고와 건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입사 1년 만에 세계 54개국 영업사원 가운데 가장 많은 판매실적을 올렸다. 8년 뒤 브리태니커 한국지사 사업국 상무를 맡았다.

직원 7명과 자본금 7천만 원으로 웅진씽크빅의 전신인 '헤임인터내셔널'을 세우고 학습교재와 도서를 만들었다. 특히 이 해 시행된 과외금지법에서 힌트를 얻어 과외강사들의 수업내용을 녹음해 학습테이프로 판매해 성공을 거뒀다.

출판사업을 발판삼아 신규사업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동일삼업을 인수해 웅진식품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고 국내 고유음료 제품을 출시하면서 성장했다.

코리아나화장품을 설립해 화장품사업에도 진출했다가 금융위기에 직면하자 회사를 매각했다. 정수기회사인 웅진코웨이를 설립했고 ‘정수기 렌탈서비스’와 ‘방문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30대 재벌 순위에 진입했으나 건설과 화학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웅진코웨이와 웅진케미칼, 웅진식품 등 핵심 계열사를 매각해 1년 만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윤석금은 법정관리에 따른 채무를 조기에 완납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웅진홀딩스 등의 경영정상화를 통해 그룹의 재기를 시도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대표적 CEO로 통한다.

영업사원으로 출발하며 영업과 관련된 경험과 지식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사고와 강한 도전정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으로 평가받는다. 웅진출판을 창업하면서 직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태도로 일할 것을 주문했다.

영업사원 출신이라는 경험을 살려 방문판매와 교육콘텐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의 무기로 내세웠다. 정수기 렌탈업을 성공시킨 것을 기반으로 해 2016년 웅진씽크빅을 통해 콘텐츠렌털을 도입했고 국내 화장품 온라인 방문판매도 도입했다.

신규사업을 벌이거나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차별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리아나화장품을 설립하며 기존 로드샵 기반의 유통형식이 아닌 전통적인 직판(신방판)을 도입해 차별화하며 업계 2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웅진식품을 통해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으로 새로운 전통음료라는 차별화된 신제품을 선보이며 적자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정수기를 판매하는 웅진코웨이가 외환위기로 판매량이 줄어들자 국내 최초로 정수기 렌탈서비스를 도입해 흑자로 전환시킨 것도 그가 펼친 차별화 전략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이후 웅진씽크빅이 2014년 다시 흑자로 전환하자 웅진씽크빅에 집중한 윤석금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석금은 2016년 웅진씽크빅의 북클럽과 웅진릴리에뜨 화장품 사업에 공을 들이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웅진릴리에뜨가 전개하고 있는 온라인 방문판매는 윤석금이 개발한 것으로 온라인 판매와 방판, 다단계판매, 바이럴 마케팅 등을 접목시킨 판매방식이다. 웅진릴리에뜨는 공식 론칭한 2016년 5월 한달 동안 1만 여 명에 이르는 신규 회원을 유치했다.

고집스럽기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990년대 말부터 고명 전 건설교통부 장관,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등 3명과 꾸준히 만나면서 그룹 경영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윤은지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은 “음담패설조차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무형문화재로 바뀌고 만다"며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문학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내공의 힘일 것이다”며 윤석금을 유머의 달인이라고 평가했다.

회사가 어려움을 빠졌을 때 사재를 쏟아붓고 직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책임의식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룹 재건의 밑거름을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웅진그룹 계열사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법정관리 신청 전 웅진홀딩스 보유 지분이 70%가 넘었으나 두 차례 감자를 거친 뒤 6.95%로 줄어든 지분을 2013년 말 두 아들에게 넘겼다.

두 아들이 2세경영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윤석금이 존재감을 보이며 사업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1년부터 1980년까지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사업국 상무를 지냈다.

1980년부터 1983년까지 헤임인터내셔널 대표로 재직했다.

1983년부터 2000년까지 웅진출판 대표를 맡았다. 웅진출판은 2000년 웅진닷컴으로 회사이름이 바뀌었다.

1987년 동일산업을 인수해 1년 뒤 상호를 웅진인삼으로, 1996년에는 웅진식품으로 바꿨다.

1989년 한국코웨이를 설립했다. 한국코웨이는 1992년 웅진코웨이로 사명이 바뀌었다.

1991년부터 웅진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2006년 웅진에너지를, 2008년에는 웅진폴리실리콘을 설립했고 새한을 인수한 뒤 사명을 웅진코웨이로 바꿨다.

2007년 웅진홀딩스를 설립했다.

2012년 9월 책임경영을 위해 웅진홀딩스 대표이사에 올랐다가 채권단의 반대와 악화된 여론으로 10월 물러났다. 이에 따라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인 선임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웅진그룹은 웅진코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을 매각했다. 2013년 12월 사채를 출연해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해 채무를 조기변제했다.

2014년 2월 서울중앙지법이 웅진홀딩스의 회생절차 종결을 결정해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2016년 6월 법정관리에서 발생한 채무 가운데 98%를 상환해 사실상 조기 완납했다.

◆ 학력

1963년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69년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김향숙씨와 사이에 윤형덕 웅진에버스카이 대표와 윤새봄 웅진씽크빅 대표 등 2남을 뒀다.

윤형덕 대표는 윤새봄 대표는 각각 1977년생과 1979년생으로 두 사람 모두 2016년 전무로 승진했다.

윤형덕 대표는 화장품 판매법인 웅진투투럽 대표도 동시에 맡기로 해 웅진그룹의 신사업을 담당하게 됐다. 윤새봄 대표는 재무와 관리 분야에 강점을 보여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일을 맡고 있다.

윤형덕 대표는 웅진홀딩스 지분 12.52%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다음이 윤새봄 대표로 12.48%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윤새봄 대표는 2014년 8월 배우 유설아씨와 결혼했다.

◆ 상훈

1985년 제25회 한국출판문화상, 1988년 유공출판인 문화공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1997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1년 경제정의기업상, 2004년 한국능률협회 한국경영자상을 수상했다.

2005년 대통령 국민훈장포장을 받았다.

2009년 제4회 지속가능경영대상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11년 제1회 평화기업인상을 받았다.

◆ 상훈

1985년 제25회 한국출판문화상, 1988년 유공출판인 문화공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1997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1년 경제정의기업상, 2004년 한국능률협회 한국경영자상을 수상했다.

2005년 대통령 국민훈장포장을 받았다.

2009년 제4회 지속가능경영대상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11년 제1회 평화기업인상을 받았다.

어록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스스로 검색하고 제품의 우수성을 느낄 수 있는 방판 방식을 고안했다." “좋은 회사를 팔아서 빚을 다 갚았고 그간 부침에도 사람들의 신뢰는 잃지 않았다. 가장 우수한 제품으로 다시 도전하겠다.” (2016/06, 화장품 브랜드인 웅진릴리에뜨를 론칭하면서)

“제로(0)의 돈을 갖고 30대 재벌이 되는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몇 조원을 태양광·건설·금융에 투자해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재판 중에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았다.” “남과 비교해 나 자신을 초라하게 하지 말고, 내 꿈을 키우고 ‘나도 지금부터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2016/06, 웅진릴리에뜨 방문판매 사업자들에게 진행한 강연에서)

“구조조정으로 많은 기업이 어려움에 빠진 상황에서 웅진이 모범적인 기업회생 사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2016/06/01, 웅진그룹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후 남아 있던 빚 1조4천여억 원을 사실상 모두 갚으면서)

“앞으로 더욱 열심히 뛰어서 그룹의 재도약을 이끄는 것이 채권단과 임직원, 사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 (2014/02/11, 법원의 회생절차 종결 결정 직후)

“오히려 명절에는 사람들이 대개 약간 들뜨고 기분이 좋은 상태여서 평소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다. 또 대부분 ‘명절인데다 저렇게 일을 하다니 참 대단하다’라고 생각해서 계약이 성사될 확률이 높았다. 사람들이 던지는 인사도 하나같이 호의적이었다.”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서)

“경영은 능력으로 판단할 것이며 능력이 된다면 누구든 등용할 수 있다.” (2010/11, 2세 경영과 관련된 한 언론의 질문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100% 실패하는 것이다.” (평소 강조하는 말)

◆ 평가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대표적 CEO로 통한다.

영업사원으로 출발하며 영업과 관련된 경험과 지식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사고와 강한 도전정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으로 평가받는다. 웅진출판을 창업하면서 직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태도로 일할 것을 주문했다.

영업사원 출신이라는 경험을 살려 방문판매와 교육콘텐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의 무기로 내세웠다. 정수기 렌탈업을 성공시킨 것을 기반으로 해 2016년 웅진씽크빅을 통해 콘텐츠렌털을 도입했고 국내 화장품 온라인 방문판매도 도입했다.

신규사업을 벌이거나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차별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리아나화장품을 설립하며 기존 로드샵 기반의 유통형식이 아닌 전통적인 직판(신방판)을 도입해 차별화하며 업계 2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웅진식품을 통해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으로 새로운 전통음료라는 차별화된 신제품을 선보이며 적자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정수기를 판매하는 웅진코웨이가 외환위기로 판매량이 줄어들자 국내 최초로 정수기 렌탈서비스를 도입해 흑자로 전환시킨 것도 그가 펼친 차별화 전략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이후 웅진씽크빅이 2014년 다시 흑자로 전환하자 웅진씽크빅에 집중한 윤석금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석금은 2016년 웅진씽크빅의 북클럽과 웅진릴리에뜨 화장품 사업에 공을 들이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웅진릴리에뜨가 전개하고 있는 온라인 방문판매는 윤석금이 개발한 것으로 온라인 판매와 방판, 다단계판매, 바이럴 마케팅 등을 접목시킨 판매방식이다. 웅진릴리에뜨는 공식 론칭한 2016년 5월 한달 동안 1만 여 명에 이르는 신규 회원을 유치했다.

고집스럽기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990년대 말부터 고명 전 건설교통부 장관,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등 3명과 꾸준히 만나면서 그룹 경영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윤은지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은 “음담패설조차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무형문화재로 바뀌고 만다"며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문학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내공의 힘일 것이다”며 윤석금을 유머의 달인이라고 평가했다.

회사가 어려움을 빠졌을 때 사재를 쏟아붓고 직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책임의식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룹 재건의 밑거름을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웅진그룹 계열사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법정관리 신청 전 웅진홀딩스 보유 지분이 70%가 넘었으나 두 차례 감자를 거친 뒤 6.95%로 줄어든 지분을 2013년 말 두 아들에게 넘겼다.

두 아들이 2세경영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윤석금이 존재감을 보이며 사업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기타

웅진그룹의 모토는 '정신문화에서 생활문화까지'다. 출판업을 시작할 당시 국내 어린이들에게 외국도서나 외국도서의 모방물이 아닌 우리 나라 동식물, 풍속, 모듬살이 등을 담아낸 책을 만든 것이나 웅진식품에서 가을대추, 아침햇살, 초록매실, 하늘보리 등 국내 고유의 음료를 출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자서전으로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리더스북)’를 집필했다.

신광수 웅진에너지 대표는 윤석금 곁에서 사업확장을 도우며 보좌해온 인물로 오른팔이자 분신 격으로 알려졌다. 그는 웅진홀딩스 대표를 거쳐 웅진그룹 법정관리인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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