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법 통과에 따른 후속조치 준비
김관영은 도시자에 취임한 뒤 ‘전북특별자치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위해 노력했다.
김관영은 도지사 선거에서 특별자치도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입법 전략을 수립했다. 김관영이 전북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함께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22년 12월29일 ‘전북특별차지도 설치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를 통과한 전북특별자치도법은 2023년 1월17일 정부 관보에 실리면서 공식 공포됐으며 2024년 1월18일부터 시행된다. 전북은 제주, 세종, 강원에 이어 4번째 특별자치시·도가 된다.
전북특별자치도가 됨에 따라 정부 직할로 지위가 격상되며 국무총리 산하 전북특별자치도 지원과가 설치돼 행정적, 재정적으로도 우선 지원을 받는다.
이에 더해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의 별도 계정 설치가 가능해져 지역 재정 안정성과 자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김관영은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전북특별자치도를 성공적으로 완성해 도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전북을 만들겠다”며 “산업과 재정, 문화, 복지 등 전북형 특례정책 발굴과 안정적인 정착에 많은 관심과 힘을 모아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관영은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곧바로 3개 팀의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중앙부처와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등 준비에 돌입했다.
전라북도는 도내 14개 시·군을 포함해 전북연구원, 전북테크노파크 등 전문역량을 결집해 비전 구축부터 특례 발굴까지 체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한 명칭 변경에 따른 주민등록 정보, 지적 정보 등 행정정보 정비도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 ▲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2023년 2월1일 도내 경로당을 방문해 난방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김관영 블로그 갈무리> |
△전북도지사로서 민생과 경제행보에 힘써
김관영은 도지사에 취임한 뒤 민생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역량을 쏟았다.
김관영은 2022년 8월 전북신용보증재단 및 7개 시중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2500억 원 규모의 소상공인 금융지원책을 내놨다.
김관영이 발표한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에는 △단기 고·중금리 대출을 받은 사업자가 장기 저금리 대출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민생회복 응급구조 119’ △창업기업 성장단계에 따라 최대 1억 원까지 특례보증을 지원하는 ‘소기업 육성 안심자금’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폐업한 사업자의 재기를 돕는 ‘다시 서기 프로젝트’ 등이 담겼다.
김관영은 미국을 방문해 전북 지역 농수산물의 판로 개척에도 힘썼다.
김관영은 2022년 9월2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 축제 및 농수산 엑스포에 마련된 전북의 식품 판매 부스를 방문한 뒤 미국 내 한국 농식품 전문 유통업체인 한남체인과 1천만 달러 규모의 수출계약 협약을 체결했다. LA 한인상공회의소와도 경제교류 협력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에 더해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KDB산업은행이 개최하는 투자자 맞춤행사에 전북 지역의 기업들의 참여를 약속받기도 했다.
실제 전라북도와 KDB산업은행은 2022년 9월28일 ‘KDB산업은행 넥스트라운드 in 전북’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두 기관은 전북 상장사와 공동 출자해 2023년 상반기 안에 4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뿐 아니라 전북 지역 기업이 KDB가 운영하는 투자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로 약속했다.
△임기 첫 예산안 제출
김관영은 2022년 11월 전년 대비 8.3% 증가한 총 9조8618억 원 규모의 2023년도 예산안을 제출했다.
김관영은 임기 첫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지역 경제 회복과 안전한 사회 만들기에 중점을 뒀다.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일자리 창출 및 기업지원 확대에 8317억 원, 전북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혁신산업 기반 지원에 1423억 원을 책정했다.
또 중대 재해 대응 및 재해·재난 대비 정책에 8768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재난 대응 예산에는 도로와 하천을 정비하고 자연재해 발생위험 지역 등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는 사업이 대거 포함됐다.
2023년 전라북도 예산안은 전북도의회의 예산안 심사를 거쳐 9조8516억 원이 편성됐다.
이 밖에도 김관영은 전북 지역에 발생한 수해피해 복구와 지원에도 힘썼으며 부안에서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전북도지사에 취임
김관영은 2022년 7월1일 전북도지사에 취임했다.
김관영은 취임식 전 첫 일정으로 전주에 소재한 군경묘지를 참배했다. 또 하나로마트 전주점을 방문해 주요 농수산물 가격 및 수급 동향에 관한 현장 의견을 들었다.
김관영은 취임식에서 ‘함께 혁신, 함께 성공, 새로운 전북’이라는 도정 슬로건을 제시하고 5대 목표를 제시했다.
김관영이 제시한 도정 5대 목표는 △전북 도민 경제 부흥 △농생명 산업 수도 정립 △문화·체육·관광 산업 메카 조성 △새만금 도약과 균형발전 △도민 행복과 희망 교육 시대 등이다.
김관영은 취임사에서 “통상적인 방식을 뛰어넘는 과감한 도전과 특단의 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김관영은 취임 뒤 곧장 업무보고 방식을 바꿨다. 실·국장급 간부 공무원들에게 보고를 받는 관행이 굳어져 있었는데 실무자인 팀장급과 몇시간씩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새로운 토론식 업무보고는 도내 관료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팀장들은 업무보고에서 현안 위주의 설명 대신 타 시도나 해외사례에서 벤치마킹한 아이디어와 제안을 내놓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8회 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전북지사에 당선
김관영은 제8회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전북도지사에 출마해 당선됐다.
김관영은 2022년 6월1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82.11%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17.88%를 득표한 데 그친 조배숙 국민의힘 후보를 큰 표 차로 따돌렸다. 김관영은 제8회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단체장 후보 가운데 득표율 80%를 넘긴 유일한 당선자가 됐다.
김관영은 당선이 확정된 뒤 소감에서 “경제를 살리고 정치를 바꿔내라는 도민 여러분들의 명령에 부응하도록 더 멋진 도정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앞서 김관영은 민주당 전북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당시 전북지사였던
송하진 지사가 당내 경선에서 컷오프(경선 탈락)되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또 경선 과정에서는 안호영, 유성엽 등 경쟁자들과 서로 고소·고발을 진행할 정도로 치열하게 다툰 끝에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 ▲ 김관영 전 의원이 2021년 12월10일 더불어민주당 입당식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제20대 대선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복당
김관영은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다.
김관영은 2021년 12월10일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바른미래당에서 함께 활동했던 채이배 전 의원과 함께 민주당 입당식을 열었다.
김관영은 입당식에서 “민주당이 국민의 더 많은 사랑을 획득해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정당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안주하는 기득권 정당이 아니라 일상을 살피는 꼭 필요한 정당, 상식과 품격있는 정당으로 인식되도록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관영이 민주당으로 복귀한 것을 두고 총선 또는 2022년 6월 지방선거 출마를 겨냥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김관영은 12월14일 전북도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로지 대선만 보고 최선을 다하겠다”며 “민주당을 떠난 지 오래됐기 때문에 대선에만 집중하는 게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지내며 선거제 개편 추진
김관영은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유승민의 바른정당이 합당해 탄생한 바른미래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김관영은 2018년 6월25일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투표에 참여한 의원 26명 가운데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 원내대표에 올랐다.
김관영은 원내대표에 당선된 뒤 “항상 소통하고 협력해 젊고 강한 야당을 만들어내겠다”며 “당의 내실을 다지면서 한 걸음씩 의원들과 함께 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관영은 2019년 4월 원내대표로서 선거제 개편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을 함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추진했다.
김관영은 신속처리안건 추진 과정에서 바른미래당 소속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의원 사보임문제로 당내에서 갈등을 빚었다. 김관영은 신속처리안건 추진에 반대하는 오신환,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을 사임시키고 채이배, 임재훈 의원을 보임시켰다.
김관영은 당내 갈등이 지속되자 자신이 처리한 사보임을 유지하는 대신 권은희 의원의 공수처 법안을 민주당에 수용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김관영은 당내에서 원내대표 사퇴론 등이 사그라들지 않자 2019년 5월 원내대표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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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국민의당에 합류
김관영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옮겨갔다.
그는 2016년 1월11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창당을 주도한 국민의당에 합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관영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정치를 향하고자 하는 제 결단이 비난받는다면 저는 그 비난을 감수하겠다”며 “국민의당에서 새로운 정치, 상식이 통하는 정치, 품격이 있는 정치를 통해 희망의 싹을 틔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입으로는 혁신과 개혁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기득권 보호에 집착하고 자신의 생각은 바꾸지 않으면서 남의 생각이 바뀌기를 강요하고 통합을 말하면서 배척을 일삼는 모습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며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2016년 1월17일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기획조정회의를 열고 당에 합류한 김관영을 디지털정당위원장으로 임명했다.
| ▲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이 2016년 12월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안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관영 페이스북 갈무리> |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정치에 입문해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
김관영은 2011년 12월13일 전북 군산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김관영은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3선 현역의원이었던 강봉균 의원을 꺾고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받았다. 2012년 4월11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60.04%의 득표율로 2위인 신영대 무소속 후보(16.75%)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긴 터널을 헤쳐 나온 듯한 후련함과 책임감이 교차한다”며 “믿고 선택해준 여러분께 보답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2016년
안철수 의원을 따라 국민의당에 입당한 뒤 같은 해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 군산에 출마해 47.12%의 득표율로 김윤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김관영은 재선에 성공한 뒤 “이번 승리는 낡은 정치의 청산, 민생을 먼저 생각하는 새로운 정당을 향한 기대, 군산의 경제와 미래를 향한 열망이 하나하나 모여 이뤄진 값진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관영은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정계 입문 전
김관영은 1988년 제23회 공인회계사시험에 전국 최연소로 합격했다.
1992년 제36회 행정고시 재경직으로 합격해 재정경제부 행정사무관을 지내다 1999년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고시 3관왕을 달성하고 2002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의 변호사로 옮겨 2011년 8월까지 일했다.
2004년에는 고건 전 총리가 주도한 희망한국 국민연대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금융분석원 자금세탁방지정책 자문위원, 국세청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신용보증기금 기금관리자문위원을 지냈다. 2007년부터 2008년 사이에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2009부터 2011년까지 상호저축은행중앙회 구조개선적립기금 자문위원, 건설근로자공제회 기금관리위원으로 일했다.
2010년부터 2012년 2월까지 서울지방변호사회 서민지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경제정의실천연합 갈등해소센터 이사를 지냈다.
김관영은 2011년 7월22일 고향 군산에서 ‘군산 발전의 새로운 엔진’을 기치로 내걸고 군산비전포럼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군산은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 도시로 도약하고 있다”며 “비전포럼을 통해 군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시민들의 생활문제도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생산적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비전포럼은 새만금 간척지를 성공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군산이 동북아 중심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효율적 전략을 내놓는 등 군산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 위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