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선임
정진석은 2022년 9월7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됐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10명 가운데 75명이 참석해 정진석 비대위원장 선임안을 박수로 통과시켰다.
정진석은 의원총회가 끝난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집권여당을 안정시키겠다”며 “집권여당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오늘 주어진 대의이자 애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진석은 2022년 9월13일 6명의 비대위원을 인선했다. 같은 날 오후 국민의힘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진석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 인선을 가결하면서 ‘정진석 비대위’가 공식 출범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정진석 비대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법원은 2022년 10월6일 이를 기각했다.
정진석이 비대위원장에 선임된 것은 법원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이 인용됨에 따라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자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비상상황’에 관한 당헌·당규 규정을 수정했다.
법원은 2022년 10월6일
이준석 전 대표가 낸 ‘정진석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개정 당헌에 따른 상임전국위 의결에 실체적·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진석은 법원 판결이 나온 뒤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며 “당내 분란으로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들께 오랜 기간 심려를 끼쳐드린 만큼 더욱 심기일전해 하나 된 힘으로 힘차게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진석은 비대위원장을 맡은 뒤 강력한 대야 공세와 함께 지지층 다지기에 힘을 쏟고 있다.
9월2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당을 향해 망국적 입법독재와 무책임한 국익자해 행위를 하고 있다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10월13일 대구에서 현장 비대위를 열고 "대구경북은 우리 당의 뿌리이자 심장"이라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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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2년 9월28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정진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진석은 2016년 5월3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당시 당대표가 없는 상황이어서 후임 당대표가 선출되기 전까지 비상대책위원장도 겸임하게 됐다.
정진석은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119표 가운데 69표를 얻어 43표에 그친 나경원을 꺾고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원내대표 선거가 실시된 시점에 국회의원 당선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새누리당 출범 이후 첫 원외인사 원내대표로 기록됐다.
정진석은 원내대표로 선출된 뒤 당선인사에서 “우리에겐 18개월이 남아있다”며 “
박근혜 정권 마무리 겸 새 정권 창출의 선발 투수를 하겠다”도 말했다.
계파색이 강하지 않고 청와대와 대야 협상 경험이 풍부한 점이 원내대표 당선 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갈등이 컸던 ‘친박’계와 ‘비박’계 사이 입장 조율을 하는 과정에서 당 혁신위원회 구성을 위한 전국위원회 개최가 무산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정진석은 5월8일 당정협의를 갖고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5월23일에는 대우조선해양 노조 지도부와 만나 고용대책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 민생행보를 보였다.
2016년 6월17일에는
유승민 의원의 복당을 결정해 친박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정진석 원내대표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진석은 원내대표에 선출된 지 6개월여 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을 맞았고, 원내대표 선거에서 팀을 이뤄 출마했던 김광림 정책위의장과 함께 2016년 12월12일 사퇴했다.
정진석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겪으며 마음고생했을 국민들께 무릎 꿇고 사죄한다”며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에 대해 집권정당 원내대표로서 책임지는 것이 온당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탕평인사로 정무수석에 발탁
정진석은 2010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됐다.
정진석은 부친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내무부 차관과 충남도지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범친박계로 분류됐다. 2010년 6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될 때 친박계 의원들과 함께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충청 출신 자민련계 의원으로서 계파색이 옅은 것으로 평가받았고, 이명박 정부의 탕평인사 차원에서 정무수석에 기용됐다.
그는 정무수석에 발탁된 뒤 YTN 라디오 출발새아침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의견이 엇갈릴 때 노(No)라고 하는 게 정무수석의 역할"이라며 "여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왕래하고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정무수석으로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면담을 성사시키는 등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를 원만히 조율해 정권 재창출 기반 조성에 기여했다는 말을 들었다.
정무수석 시절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를 비판해 주목받기도 했다. 정진석은 2010년 12월9일 트위터에 "대기업 롯데마트가 하루에 닭 5천 마리를 팔려고 매일 600만 원씩 손해를 보면서 전국 영세 닭고기 판매점 운영자 3만여 명의 원성을 산다"며 "통큰치킨은 구매자들을 마트로 끌어들여 다른 물품을 사게 하려는 통큰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친박계인 강창희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을 맡다가 2013년 1월 제27대 국회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임명 당일인 1월1일 국회 전 직원과 함께 눈을 치우는 것으로 국회 문턱을 낮추고 민생을 살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후 업무보고를 총장실이 아닌 각 실·국에 찾아가서 받고 사무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기존 관행을 개혁했다. 제헌국회 이후 66년 만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첫 단체사진을 찍도록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 ▲ 정진석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001년 자민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진석 블로그> |
△정치 입문과 선거 이력
정진석은 1999년 정계에 입문한 뒤 총선 여섯 번, 보궐선거 한 번, 도지사 선거 한 번 등 모두 여덟 번 선거에 출마했다. 이 가운데 총선 네 번과 보궐선거 한 번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5선 의원이 됐다.
정진석은 2000년에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요청으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남 공주시에 출마했다. 6선 의원을 지낸 선친 정석모 전 내무부 장관의 지역구였던 곳이다.
당시 정진석은 25.20%를 득표해 부친의 경쟁자였던 재선의원 출신 이상재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의 역풍을 극복하지 못하고 낙선했다. 하지만 정진석을 꺾고 당선된 오시덕 열린우리당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되자 2005년 재보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정진석은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와 함께 국민중심당을 창당했으나 곧 결별하고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 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충남 공주·연기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비례대표 8번을 받아 3선 의원이 됐다. 당시 심대평 전 지사가 충남 공주·연기에 출마하면 정진석이 낙선할 확률이 높아 당에서 배려를 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정진석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정치인 2세 대결을 벌여 화제를 모았다. 당시 정진석은 서울의 험지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청을 받고 서울 중구에 출마해 5선 정대철 전 의원의 아들 정호준 민주통합당 후보와 겨뤘다. 정진석은 46.33%를 득표했으나 정호준에게 밀려 낙선했다.
정진석은 2014년 제6회 전국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충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으나 안희정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7만3679표 차이로 패배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진석은 8년 만에 지역구였던 충남 공주·부여·청양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48.13%의 득표율로 당시 그 지역구 현역 의원이었던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꺾고 4선 의원이 됐다.
두 사람은 2020년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맞붙었는데 정진석이 48.65%를 득표해 승리하며 5선 의원 고지에 올랐다.
△정계 입문 전 기자로 활발히 활동
정진석은 대학 졸업 후 한국일보에 입사해 15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정치부, 사회부 등을 거쳐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정치부 기자 시절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3김’ 정치 현장을 누볐다. 정진석은 2020년 9월19일 데일리안과 인터뷰에서 “정치부 기자로 수많은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와 선거에 대한 공부를 많이한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시절이던 1994년 아이티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전쟁 현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정진석은 백상 기자대상을 네 번, 한국기자협회 기자상을 두 번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