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임명
이진복은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으로 임명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5월1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서울시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실 인선 결과를 발표하며 정무수석에 이진복이 내정됐다고 밝혔다.
장제원 실장은 "이진복 전 의원은 국회 보좌진으로 정계에 입문하고 구청장과 3선 의원을 역임한 관록의 정치인"이라며 "부드러운 성품과 성실함, 신의를 바탕으로 탄탄하게 정치력을 다져왔다"고 소개했다.
이후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정식으로 정무수석에 임명됐다.
이진복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첫 여야 영수회담 일정을 조율했는데 무산됐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과 민주당 사이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뉴시스는 5월15일 이진복이 영수회담 조율을 위해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를 남겼으나 응답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진복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허위사실로 언론플레이한다"고 반박했다.
이진복은 5월23일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경상남도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년 추도식에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지역일정을 소화하는 게 무리라는 판단 때문으로 알려졌다.
| ▲ 이진복 정무수석(오른쪽)과 안상훈 사회수석이 2022년 5월1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회의원 시절
이진복은 부산 동래구에서 3선 의원을 지냈다.
동래구청장 재선에 실패한 뒤 일본 동지사대학교 대학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중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도와달라고 해 귀국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한 뒤 김무성 의원을 중심으로 결성된 '친박 무소속 연합'에 참가해 부산광역시 동래구 후보로 출마했다. 득표율 51.15%로 오세경 한나라당 후보(37.40%)를 꺾고 당선된 후 같은 해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동래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득표율 53.42%)했으며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3선 고지(득표율 42.52%)를 밟았다.
18대 국회 때 초선의원으로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보험회사가 실손의료보험 중복 가입자들에게 보험료를 환불하도록 하는 데 힘썼다.
실손의료보험은 중복 가입자가 보험금을 이중으로 받을 수 없다. 보험회사가 이러한 사실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 많은 소비자들이 보험료를 중복으로 부담하고 있었는데 이를 바로잡았다. 또한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인하도 추진했다.
제19대 국회 후반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간사를 지내며 소상공인 및 재래시장 보호를 위한 입법 활동에 힘썼다. 야당 간사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호흡을 맞춰가면서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 통과에도 기여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나와 42.52%의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20대 국회에선 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정무위원장 시절 정무위 국정감사 피감기관 등으로부터 '칼진복'으로 불리기도 했다. 회의 진행을 원활히 하고 여·야의 의견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정해서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2016년 12월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에 합류했다. 이후 2017년 5월 비유승민계 의원들과 함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엔 상임특보단장에 임명됐다.
2020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진다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 때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했지만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했다.
△동래구청장 시절
이진복은 부산 동래구청장을 역임했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동래구청장 출마를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진복은 한나라당 당내 경선을 거쳐 후보 자격을 얻은 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득표율 61.45%로 당선됐다.
동래구청장 시절 '운동화 구청장'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현장을 중시했다.
출근 전 1시간, 근무 중 1시간, 퇴근 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1시간씩 매일 하루에 3시간 정도 지역을 돌았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자전거를 타고 지역을 돌아다녔다.
구청장 재직 중 도시가스관을 하수구에 묻는 공사현장을 목격해 시정하고 독거노인과 형편이 어려운 주민이 구청으로부터 받은 쌀을 주위에 반값으로 판다는 사실을 알고 쌀 대신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맞춤형 복지를 실시했다.
동래 온천천을 자연 친화형 도심하천으로 되살렸다. 온천천 복원사업은 서울 청계천 복원사업의 모델이 됐다.
2006년 지방선거 때는 동래구 구청장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정치 입문
이진복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978년 10대 총선 때 부산 동래구에 출마한 이기택 신민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자발적으로 하다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을 만났다.
1981년 11때 총선 때 박 전 의장이 세 차례나 집으로 찾아와 도와달라고 요청해 박 전 의장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 뒤로 이진복은 2001년까지 박 전 의장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박 전 의장이 김영삼 대통령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치특보를 맡을 때 박 전 의장을 따라가 대통령민정비서실 행정관과 정치특보실 국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