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지방선거에 다당제 보장 선거제 도입에 총력
여영국은 2022년 6월1일 치러질 제8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등 다당제를 보장하는 선거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2022년 4월14일 6·1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선거 중대선거구제를 전국 11개 선거구에서 시범실시하고 광역·기초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합의했다. 1개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여러 명 뽑는 중대선거구제는 정의당 등 소수정당의 숙원 가운데 하나다.
여영국은 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인 2022년 3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대표단 회의에서 “정의당은 오늘부로 다당제 연합정치로 나아가는 정치개혁 실현을 위한 총력대응 체제에 돌입한다”며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비롯한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과 정당연설회, 광역시·도의회 농성 등 전당적 행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여영국이 다당제 보장 선거제 도입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20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윤석렬 당선인 등이 다당제 정치개혁에 동감하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거대 양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여영국은 2022년 3월31일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대선거구제가 평소 소신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소신이 선거용 소신이 아니었다면 법안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국민의힘의 난동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민주당 역시 진정으로 다당제 민주주의 정치개혁의 의지가 있다면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13개 광역시도의회에서만큼은 2인 선거구 쪼개기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정치개혁 제도 입법 의지를 밝히고 입법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 ▲ 여영국 정의당 대표가 2022년 4월7일 서울시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지방선거 승리, 정치개혁을 위한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합의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정의당> |
△20대 대선에서 아쉬운 성적표 받아
여영국은 당대표로서 20대 대선에서 정의당을 이끌었다.
2021년 6월부터 대선준비단을 출범하면서 대선 준비를 시작했다.
2021년 10월에는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가 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여영국은 정의당 총괄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정의당의 선거운동을 총괄했다.
심상정 후보가 2022년 1월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했을 때 여영국은 당원들을 추스르기도 했다.
여영국은 2022년 1월13일 당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마지막 소임을 다하겠다는 심 후보를 믿는다”며 “심 후보가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희망의 메시지를 틀림없이 들고올 것”이라고 말했다.
심 후보는 2022년 1월17일 대선 선거운동에 복귀했다.
여영국은 같은 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그동안 심 후보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같은 반열의 위상에 놓고 선거운동을 해왔다”며 “이제는 진보정당답게 불평등이라는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를 분명히 하고 또 너무 지지율에 연연하지 말고 이런 시대적 과제를 좀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쇄신 의지를 보였다.
20대 대통령선거 결과 심 후보는 기대에 못 미치는 2.37%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2017년 19대 대선 때 6.17%보다 득표율이 하락했다.
여영국은 2022년 3월10일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 선거결과는 아쉽다”며 “그러나 누구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최악을 막아야 한다는 공포, 사표가 된다는 두려움에도 심 후보를 찍은 분들의 자부심과 절박함을 깊이 새기겠다”고 말했다.
△김종철 전 대표 사퇴로 흔들리는 정의당의 키 잡아
여영국은 2021년 3월 김종철 전 대표의 사퇴로 공석이 된 당대표에 도전했다.
그는 2021년 3월5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무너져버린 정치적 신뢰의 폐허 속에서 깊이 성찰하고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이라는 당의 가치만 빼고 전면적 쇄신으로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출마한다”고 말했다.
여영국의 출마는 단독 출마로 사실상 추대였으며 2021년 3월23일 치러진 당대표 보궐선거에서 92.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김종철 전 대표가 사퇴한 이유가 성추문이었던 만큼 2021년 4월 치러진 서울시장, 부산시장 등의 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은 후보 공천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영국은 당대표가 되자마자 맞게 된 보궐선거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공약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정의당의 정치적 존재감 확대에 노력했다.
여영국은 2021년 3월25일 첫 대표단 회의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면서 사실상 한국 사회가 부동산 투기공화국이었다는 사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지만 거대 양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토지주택공사 사태의 교훈을 읽지 못하고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며 “박영선, 오세훈 두 후보는 대의명분조차 사라지고 개발만 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회찬 의원 별세와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여영국은 2019년 치러진 창원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노회찬 전 의원의 별세에 따른 공석을 채우기 위한 선거였기에 본인이 나섰다. 여영국은 노회찬 전 의원을 창원 성산구에서 출마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여영국은 2018년 12월3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진보정치 1번지, 경남의 자존심 창원에서부터 노회찬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가기 위해 창원 성산구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말했다.
여영국은 출마를 선언한 뒤 권민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했으나 자유한국당 강기윤 후보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였다.
여영국은 개표가 시작된 뒤 강기윤 후보에게 득표율이 10%포인트 뒤지기도 했다. 하지만 막판 대역전극을 벌여 504표 차로 승리했다.
여영국은 2019년 4월4일 당선 기자회견에서 “노회찬 의원이 가고 나서 많은 국민이 아파했다. 노회찬 의원은 평생의 정치활동을 통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국민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한 마디가 되고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저 역시 말 하나, 행동 하나가 국민에게 희망 되는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2020년 4월 제21대 총선에서는 여영국이 미래통합당 강기윤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국회의원 재선에 실패했다.
△경남도의회 의원 시절
홍준표 도지사와 갈등
여영국은 2010년 처음 경남도의회 의원이 된 뒤 2014년에 재선까지 성공해 8년 동안 활동했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사퇴로 2012년에는 대선과 함께 경남도지사 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이때
홍준표 후보가 당선되면서 여영국의 도정 활동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됐다.
홍준표 지사는 진보와 보수 사이 이념 논쟁에 불을 붙이며 경남지역 무상급식 중단, 진주의료원 폐원 등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당시 전국 유일의 진보정당 광역지자체 의원이던 여영국은 단식투쟁까지 벌이며
홍준표 지사와 싸웠다.
홍준표 지사는 단식투쟁을 벌이는 여영국을 향해 “쓰레기가 단식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냐”,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말해 막말 논란이 일어났다.
홍준표 지사가 2017년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가 돼 도지사직을 내려놓으면서 도지사 대 도의원으로서
홍준표와 여영국이 이어온 갈등은 일단 마무리됐다.
2019년 11월
홍준표 전 지사가 제21대 총선에서 여영국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창원 성산구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아 두 사람이 다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여영국은 2018년 도의원 3선에 도전했지만 원성일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515표 차이로 패배했다.
△노동자에서 정치입문까지
여영국은 1983년 2월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동양기계에 입사했다. 동양기계는 통일중공업이 됐다가 현재의 S&T중공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동양기계에는 노동운동을 위해 위장취업 중이던 문성현 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일하고 있었다. 여영국은 문 위원장과 만났고,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영국은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문 위원장과의 만남을 놓고 “제 생일인 어느 토요일 저녁에 친한 형님이 파티를 열어줘서 술을 먹고 야근조로 들어갔는데 술이 취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조퇴를 안 내주길래 화가 나서 철조망 담을 넘어서 도망갔다. 퇴사당할 줄 알았는데 다른 작업반으로 보내더라. 그 반에 문성현 위원장이 있었다. 그와 친해지면서 노동문제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여영국은 1985년에 노조위원장이 됐고, 1986년에는 파업을 주도하다 구속을 당하고 직장에서도 해고됐다.
해고된 이후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마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배우자 한경숙을 만났다.
여영국은 노동운동을 이어가다가 자연스럽게 2000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2008년에는 진보신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이후에는 노동당을 거쳐 정의당 창당에 참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여영국이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여영국은 노동운동을 하던 때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무료변론 등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여영국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을 당시를 놓고 “세번째로 나선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집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서거 소식을 듣고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 내가 이대로 있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투쟁 현장에 돌아가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2010년 지방선거 출마를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여영국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후보로 경남도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