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출신 인재 영입해 ‘명품 DNA’ 이식 전략 펼쳐
정준호는 적극적으로 신세계 출신 인재를 영입해 롯데백화점의 대중적 이미지를 씻어내며 고급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정준호는 롯데백화점 대표에 오른 후 2022년 2월14일까지 3명의 신세계 출신 인사를 롯데백화점 임원으로 영입했다.
2022년 2월 신세계그룹의 기업형 벤처캐피탈 시그나이트파트너스에서 수석부장(팀장)으로 일했던 조형주를 롯데백화점 럭셔리부문장으로 영입해 해외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고 럭셔리 상품군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겼다.
조형주는 신세계그룹에서 일할 때 직급이 부장이었지만 롯데백화점으로 이직하면서 임원(상무보)으로 직급이 높아졌다.
조 상무보는 정준호가 일했던 신세계인터내셔날 출신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오랜 기간 해외 바이어로 근무하면서 이탈리아의 명품 패션 브랜드 아르마니의 바이어로 경력 대부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월에는 신세계 경기점장 출신인 이승희와 신세계 디자인 담당 임원을 지낸 안성호가 각각 상무와 상무보로 롯데백화점에 영입됐다. 이 상무와 안 상무보는 각각 서울 강남점 재단장과 점포 디자인 담당을 맡아 정준호의 고급화 전략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정준호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를 동시에 입점한 점포를 늘려 롯데백화점의 고급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업계에서 전국에 가장 많은 점포를 운영하고 있지만 에·루·샤 3개 명품 브랜드를 동시에 입점시킨 곳은 서울 잠실점뿐이었다.
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모두 서울 본점에 에·루·샤를 동시에 입점시키고 있지만 롯데백화점 서울 본점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롯데백화점과 대조적으로 신세계백화점은 전국 12개 점포 가운데 4곳에 이들 3대 명품 브랜드를 동시에 입점시켜 백화점 업계에서 고급화에 가장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2개월 만에 조직개편
정준호는 롯데백화점을 이끌게 된 지 2개월 만에 조직개편과 임원 및 점장 인사를 단행했다.
정준호는 2022년 1월10일 롯데백화점의 상품본부를 12개로 세분화하고 점장 이동 인사안을 발표했다.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조직개편안을 직접 설명하는 10분 분량의 동영상을 게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1년에 롯데백화점의 점포별 매출 순위 1위를 차지한 잠실점장 김재범 상무가 본점장으로 이동하고 한종혁 고객경험부문장 상무가 신임 잠실점장에 임명됐다. 기존 본점장 안대준 상무보는 인천터미널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준호는 김재범 상무에게 롯데백화점 본점의 부활을 이끌어야 한다는 과제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2021년에 매출 1조6670억 원에 그쳐 잠실점(매출 1조7973억 원)에 1등 점포 지위를 내줬다.
정준호는 사내 구성원의 전문성을 강화해 롯데백화점이 고객 중심의 백화점으로 탈바꿈하도록 조직을 개편했다.
백화점 부문과 아울렛·프리미엄 부문을 분리하고 기획관리본부가 두 부문 사이를 연결하며 전체 사업을 총괄한다.
식품 부문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표 직속으로 두고 신선식품과 F&B(식음료)의 하위 부문으로 나누기로 했다. 식품 부문은 그동안 상품본부 산하에 있었다.
수도권 1·2 본부와 영호남본부 등 3개 지역 단위로 나뉘었던 관리조직은 하나로 통합했다. 정준호는 3곳의 지역본부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외부 브랜드에 대한 협상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했다.
상품 전문성 강화를 위한 조직개편도 이뤄졌다. 팀 단위 조직이었던 본사 상품본부를 부문 단위 조직으로 승격하고 상품 카테고리를 전문 분야별로 더 잘게 쪼갰다.
정준호는 해외명품을 3개 부문으로 세분화하고 남성스포츠도 남성패션과 스포츠, 아동 등 3개 부문으로 나눴다. 실적을 견인해온 명품 부문은 럭셔리 브랜드와 의류, 시계·보석 등으로 나눴다.
정준호는 인사 이후에도 전문성을 갖춘 내외부 전문가들을 각 부문장으로 파격적으로 발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내부 공개모집을 통해 차장급과 부장급도 전문성만 갖췄다면 부문장(임원급)으로 승진시킨다는 파격적인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1월 중순 내부 공모를 통해 S급(차·부장급) 직원 가운데 프레젠테이션 면접을 거쳐 선발된 6명을 키즈·라이프스타일 부문장 등으로 배치했다.
여성 인재를 전진 배치하겠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런 롯데백화점의 쇄신안에는 최근 경영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GFR 수익성 개선하고 신사업 추진
정준호는 롯데쇼핑의 패션 자회사 롯데GFR 대표를 맡으면서 화장품 등 신규사업을 시작했다.
2021년 2월18일 정준호는 롯데GFR을 통해 영국 화장품 브랜드 ‘샬롯 틸버리’를 국내에 처음 선보이기로 하고 5년 동안 국내 운영권을 확보했다.
롯데GFR은 패션 회사이지만 화장품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패션에 쏠린 매출구조를 다변화하고 화장품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또 이탈리아 애슬레저(일상에서 입는 운동복) 브랜드인 카파, 까웨 등을 들여오며 브랜드 쇄신 작업을 추진했다.
정준호는 2019년 1월 취임한 뒤 2년 동안 독일 브랜드 '아이그너'와 이탈리아 핸드백 브랜드 '훌라' 등 수익성이 좋지 않은 사업을 종료하는 등 체질 개선을 감행했다.
정준호는 비효율 브랜드를 순차적으로 정리해 롯데GFR이 취급하는 브랜드를 13개에서 3개로 대폭 축소했다. 판매가 부진한 브랜드를 정리하면서 외형은 작아졌지만 인건비 등 판매관리비가 함께 감소해 적자폭이 줄었다.
롯데GFR의 매출은 2018년 1442억 원에서 정준호가 부임한 2019년 1518억 원으로 소폭 늘었다가 2020년 881억 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대신 영업손실도 2018년 104억 원에서 2020년 62억 원으로 축소됐다.
| ▲ 정준호 롯데지에프알 대표이사 부사장. <롯데지에프알> |
△신세계그룹서 구원투수로 활약
정준호는 신세계그룹에서
정용진 부회장이 추진했으나 실적이 부진한 드러그스토어 사업을 살려낼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드러그스토어는 약국과 잡화점을 합친 형태의 가게를 말한다. 국내에서는 일반 소매점이 일부 비처방약을 제외하고는 의약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돼 있어 화장품과 건강식품 위주인 '헬스&뷰티 숍' 형태로 주로 운영된다.
정용진 부회장은 2012년 자체 브랜드 ‘분스’를 론칭하며 드러그스토어 사업을 추진했지만 매장이 5개에 그치는 등 부진한 성적을 냈다.
이에 경쟁사인 CJ올리브영의 성공적인 실적과 대비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 부회장과는 사촌 사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정 부회장을 비교하는 말도 오갔다.
정 부회장은 2016년 7월 영국의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부츠는 1982년 영국 노팅햄에서 존 부츠가 설립한 약국을 시작으로 세계 11개 국가에 1만3100여 개 매장 망을 갖춘 드러그스토어 체인 업체다.
정 부회장은 부츠 브랜드를 내세운 드러그스토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2015년 12월 별도 태스크포스(TF)까지 꾸리고 20년 이상 해외사업을 담당했던 정준호를 이 사업에 투입했다. 하지만 부츠 브랜드 사업은 CJ올리브영의 독주를 꺾지 못하고 2020년에 종료됐다.
신세계그룹이 시내면세점 유치에 사활을 걸었을 때도 정준호가 실무를 챙겼다. 2014년 6월 정준호는 신세계DF 부사장으로서 면세점 유치에 나서고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신세계 면세점과 서울 소공동 신세계 본점을 오가며 면세사업부를 총괄했다.
정준호는 2015년에 만료되는 4곳의 시내면세점 특허권 각각에 대한 사업 유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롯데와 두산, SK 등이 모두 뛰어들어 그룹 사이 경쟁이 치열했다.
정준호는 7월 심사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셨으나 10월 심사에서 서울 SK워커힐이 반납한 특허권을 쟁취했다. 기존의 부산 신세계 면세점 특허권을 유지하는 데도 성공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창업 공신
정준호는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해외패션 부문을 맡아 신세계인터내셔날이 국내 패션계에서 수입 패션에 관한 한 독보적 위치에 오르게 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마틴마르지엘라', '돌체앤가바나' 등 굵직한 브랜드를 도입했고, 지금은 신세계백화점으로 넘어간 하이엔드(최고급) 편집숍인 '분더숍'을 만들고 육성하는 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정준호는 특히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아르마니를 국내에 들여오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1992년 엠포리오아르마니를 시작으로 1994년 조르지오아르마니, 아르마니꼴레지오니 등을 국내에 소개했다.
정준호는 이탈리아 밀라노 사무소에서 7년 동안 근무한 덕분에 발넓은 글로벌 패션 전문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관계자들 사이에 "한국에 진출하려면 신세계인터내셔날 '미스터 정(정준호)'을 통해야 한다"는 소문이 났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