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2021년 8월17일 서울 여의도 한 빌딩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민의힘 대선 경선 도전
홍준표는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화하고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홍준표는 2021년 8월17일 비대면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 정치 도전에 나선다"며 "진충보국의 각오로 혼신을 다해 빼앗긴 정권을 되찾아 오겠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이 나라를 바로잡아 정상국가로 만들고 선진국 시대를 열겠다"고 덧붙였다.
홍준표의 2022년 대선 도전은 전부터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2020년 총선에 출마할 때부터 대선이 마지막 도전이며 총선 출마 지역구인 대구를 풍패지향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풍패지향은 제왕의 고향을 뜻하는 말로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 풍패에서 유래했다.
제 21대 국회가 시작된 뒤 예상보다 무소속 기간이 길어지며 소외된 측면도 있었지만 국민의힘에 복당한 뒤로는 홍준표의 대선도전에도 탄력이 붙었다.
홍준표는 각종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한편 당내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확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거듭 저격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홍준표는 2021년 8월6일 대구경북디자인센터에서 열린 청년4.0포럼 강연에서 “
윤석열 후보는 보수 우파진영을 궤멸시킨 사람으로 자기가 중앙지검장 할 때도 자기 기수보다 5기수 올라가 벼락출세했다”며 “출세 배경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잡아넣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윤 후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장관과 차관들, 수석들도 수사했다”며 “정치보복이고 정치적 수사다”고 비난했다.
홍준표는 윤 전 총장 측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사이 갈등이 빚어지는 과정에서 이 대표에게 힘을 싣기도 했다.
홍준표는 2021년 7월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당원과 국민의 뜻으로 선출된 대표를 분별없이 흔드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며 “다소 미흡하더라도 모두 한마음으로 당 대표를 도와 정권탈환에 나서야 하지 않겠나”고 적었다.
그는 “정당의 구성원이 사적 인연을 앞세워 공적 책무를 망각하는 것은 올바른 정당인의 자세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홍준표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였던 이 대표를 놓고 ‘한때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깎아내렸던 점을 떠올리면 다소 바뀐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홍준표는 콘크리트 지지기반인 정통보수층을 확보한 상태에서 지지 외연을 넓히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호남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홍준표는 2021년 8월20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광주시당과 전남도당을 잇달아 찾아 당원들과 만났다.
그는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지지율이 호남에서 거의 한 자릿수로 미약한데 그 원인은 '5·18민주화운동 탄압 후예들이 만든 정당이다'란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라며 “국민의힘은 이미 5·18민주화운동 탄압세력과 단절했다”고 말했다.
홍준표의 대선후보 지지도는 점차 상승세를 타고 있다. 당내 윤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초반에 주목받던 정치 신인들이 부진하는 모습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특히 청년층과 중도층 지지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무소속 활동과 국민의힘 복당
홍준표는 제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1년 3개월 동안 무소속으로 활동하다가 2021년 6월24일 친정인 국민의힘에 복귀했다.
홍준표는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에서 복당이 만장일치로 의결된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쩔 수 없이 잠시 집을 떠나야 했던 집안의 맏아들이 돌아온 셈”이라며 “국가 정상화와 더 크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힘에 복당했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홍준표의 복당을 놓고 당내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21대 총선 이후 국민의힘의 지도체제였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는 홍준표의 복당에 줄곧 부정적이었다.
홍준표가 김종인 비대위 출범 전에 ‘자강론’을 강조하며 훈수를 뒀기에 김종인 위원장으로서는 홍준표를 고운 시선으로 볼 리가 없었다.
홍준표는 2020년 5월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야 한다”며 “김종인 비대위에 미련을 보이는 것은 당을 더 수렁에 빠지게 한다”고 말했다.
외부인인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에게 목을 매지 말고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수습해야한다는 주장이다.
2021년 4월15일 재보궐선거가 끝난 뒤 홍준표에게 복당의 기회가 왔다. 재보선이 끝난 직후 김 위원장이 애초 약속대로 당을 떠나며 복당 길이 넓어진 것이다.
다만 국민의힘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단을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홍준표의 복당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일부 당내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홍준표의 복당을 반대했다. 김웅 의원은 2021년 5월13일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뒤 홍준표의 복당과 관련한 기자 질문에 “홍 의원이 과거 막말 탓에 상처 받은 사람에게 사과하고 좀 더 업그레이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가 선출된 뒤 홍준표의 복당도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제21대 국회의원 당선
홍준표는 2020년 4월15일 치러진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수성구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미래통합당 소속이었던 홍준표는 총선 전 대구에서 새로운보수당 소속이었던
유승민 의원과 맞붙거나 고향이 있는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에 출마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세우며 보수의 분열을 일으켰다는 점을 비판하며 유 의원과 승부를 겨뤄 보수통합에 기여하하거나 고향인 경남 쪽에 출마해 경남권의 총선을 총괄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새보수당이 자유한국당과 통합해 미래통합당을 구성하며 홍준표의 대구 출마 명분이 사라졌다.
홍준표는 밀양·의령·함안·창녕 출마로 뜻을 굳혔는데 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에서 홍준표에게 험지인 서울·수도권에 출마하라고 요청했다. 홍준표가 당대표 출신의 ‘지도자급’ 정치인이라는 이유에서다.
홍준표는 밀양·의령·함안·창녕 대신 경남의 양산을에 출마하는 쪽으로 타협안을 제시했다. 양산을은 더불어민주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로도 꼽히며 경남권 선거를 총괄하는 김두관 의원이 출마하기 때문에 경남권 가운데 험지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통합당 공천관리위가 양산을 공천에서 홍준표를 배제하자 통합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구을에 출마했다.
홍준표는 대구를 제왕의 고향을 뜻하는 ‘풍패지향’으로 만들겠다며 총선 출마와 함께 2년 뒤 있을 대통령선거 도전 의지도 내비쳤다.
홍준표는 2020년 4월15일 수성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4만15표(38.51%)를 얻어 3만7165표(35.77%)를 얻은 이인선 통합당 후보를 2850표 차이로 제쳤다.
| ▲ 홍준표 무소속 국회의원 당선인이 대구 수성구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뒤 2020년 4월16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두산오거리 인근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제 21대 총선 전 정치 휴식기
홍준표는 자유한국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 2020년 4·15 총선을 치르기 전까지 짧은 휴식기를 보냈다.
홍준표는 정계를 떠난 뒤 다시 변호사로 개업했다. 한 인터뷰에서 변호사 개업 이유를 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따금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하지는 않았다.
유튜브 채널 ‘TV홍카콜라’도 이때 개설했다. 첫 영상을 올린 뒤 6일 만에 구독자 수 10만을 넘기며 인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TV홍카콜라 구독자 수는 2020년 5월18일 기준으로 37만4천 명까지 늘었다.
홍준표는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에 재도전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중도에 포기했다.
2019년 2월11일 성명을 통해 홍준표는 “이번 전당대회는 모든 후보자가 정정당당하게 서로를 검증하고 공정한 경쟁을 해 한국당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후 홍준표는 2019년 11월 한 강연에서 “21대 총선에서 창녕이나 대구에 출마할 것”이라며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다시 돌아올 뜻을 내비쳤다.
△지방선거 참패와 당대표 사퇴
홍준표는 자유한국당 대표로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했지만 대부분 지역의 광역자치단체장을 민주당에게 빼앗긴 뒤 당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안방인 대구와 경북에서만 승리했고 전통적 지지기반인 부산과 울산, 경남마저도 민주당에 내줬다. 그 외에는 제주도에서만 보수야권 출신인 원희룡 지사가 무소속으로 당선됐을 뿐이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여전히 낮은 상태였고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뤄진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며 처음부터 자유한국당에 불리한 결과가 예상됐다.
하지만 거친 말 등 홍준표의 실책도 지방 선거 참패에 한몫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홍준표는 남북 정상회담을 놓고 ‘남북 위장 평화쇼’라고 비판하며 국민 정서와 반대되는 발언을 해 눈총을 받았다.
한국당 내에서도 홍준표의 발언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우려는 어느 정도 현실화했다. 한국당은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 기초의회에서 사상 초유의 패배를 경험했다.
홍준표는 지방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홍준표는 2018년 6월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두가 제 잘못이고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당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 ▲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김형오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왼쪽)이 2020년 2월9일 경남 밀양의 홍 전 대표 선거 사무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자유한국당 대표 당선
홍준표는 2017년 7월3일 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돼 제1야당을 이끌었다.
같은 해 5월 대선에서 패배한 홍준표는 미국으로 건너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페이스북 등을 통해 “세상이 나를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며 국내 정치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 결국 그는 6월 자유한국당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전당대회가 준비될 무렵 귀국했다.
홍준표는 당시 7만8933표 가운데 65.74%에 해당하는 5만1891표를 얻으며 함께 후보에 오른 원유철, 신상진을 압도적 차이로 제치고 당대표로 선출됐다. “당대표를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당을 쇄신하고 혁신해 달라진 모습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홍준표는 홍문표 의원을 신임 사무총장, 대변인에 강효상 전희경 의원, 여의도연구원장에 김대식 동서대 교수, 여성위원장에 김순례 의원 등을 임명하며 당의 체계를 잡았다.
△제19대 대선
홍준표는 19대 대선에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득표율 24%를 보였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사태로 자유한국당의 지지도는 바닥에 가까웠다. 홍준표는 경상남도 도지사로 재직하던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유력 대선후보가 떠오르지 않자 자유한국당에 영입됐다.
그는 “현대조선소 야간 경비원인 아버지와 고리사채로 머리채 잡혔던 어머니의 아들”임을 강조하며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또 서울에서 4선 의원을 지내며 한나라당 대표, 원내대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등을 두루 거친 점을 부각하는 데 힘썼다.
당내 경선 토론에서 보수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이유로 바른정당과 연합하는 데 찬성했지만 무산됐다. 바른정당에서
유승민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자 단일화파가 대거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옮기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홍준표는 주요공약으로 전술핵무기 배치와 사드배치, 해병특수사령부 창설 등 안보부문 개혁의지를 밝혔다. 복지와 경제부문에서 서민맞춤형 복지 확대와 대통령 직속 ‘청년구난위원회’ 설립, 최저임금 1만 원 임기 내 실현, 사법고시 존치 등을 공약으로 내놨다.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양원제로 변경해 통일체제 준비, 정부부처 세종시 이전 등 정치부문 개혁 공약도 내놨다.
대선을 치르기 위해 경남 도지사를 사퇴할 때 보궐선거를 치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늑장사퇴를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 밖에 대선을 치르면서 ‘홍준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를 앞섰다’는 근거없는 내용의 문자를 유포한 점 등도 논란을 불렀다.
△경상남도 도지사 시절
재선 경상남도 도지사로 재직하며 중앙정치와 다소 멀어졌다. 그러나 활발한 SNS 활동과 무상급식 중단, 진주의료원 폐업 등의 이슈로 지자체장 가운데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많은 편이었다.
3년6개월 동안 하루 11억 원씩 경상남도 채무를 갚은 끝에 2016년 5월31일 1조4천억 원의 채무를 모두 청산했다.
△제 16, 17, 18대 국회의원 시절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전략기획위원장, 공천심사위원 등을 맡았다.
17대 국회의원 때 한나라당 서울시장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오세훈 후보에 밀려 떨어졌다. 당대표에 출마했으나 안상수 후보에게 크게 뒤지며 고배를 마셨다.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명박, 박근혜, 원희룡 후보에 이어 4위에 그쳤다.
18대 국회 전반기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나라당 서민정책특별위원장 등을 거쳐 2011년 7월
유승민, 나경원, 원희룡, 남경필 의원을 제치고 제14대 한나라당 대표에 올랐다.
홍준표는 당선소감에서 “계파없이 홀로 뛴 선거에서 저 홍준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대의원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며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이 보여줬다. 그 뜻을 받아 한나라당을 이끌고 가겠다. 이제 저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와서 그러나 변방의 그 치열했던 정신을 잊지 않고 총선과 대선에서 압승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홍준표는 2011년 12월 재창당 쇄신안을 내놓았다. 총선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과감한 인재영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당사에 보기 어려울 만큼 엄격한 기준의 공천 심사기준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반감을 사 쇄신안은 당내 모든 계파에서 거부됐다. 오히려 홍준표가 공천권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는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자 결국 대표에서 물러났다.
2012년 제 19대 총선에서 동대문구을 새누리당 후보로 나와 득표율이 44.52%에 그치며 52.88%를 얻은 민병두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성완종 리스트' 관련 대법원의 무죄 선고를 받은 2017년 12월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검사 시절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시절 청와대 민정비서실 대통령친인척관리담당관으로 재직하며 토지매매대금을 횡령한 서정희 치안본부 정보2과 분실장을 구속기소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외조카와 사돈, 측근 관련 사건을 해결했다.
광주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광주 폭력배 국제PJ파와 일본 야쿠자에 연루된 것을 포착하고 현장을 덮쳐 일망타진했다.
이 일로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고위 공직자, 검찰인사, 경찰 등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 매일 밤 “석궁으로 소리소문없이 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전화를 받기도 했으나 결국 국제PJ파 전원을 기소해 형사처벌을 받도록 했다.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파키스탄인 조직폭력배와 목포파 등을 적발했다.
강력부 검사로 이른바 슬롯머신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해 엄삼탁 안기부 기조실장, 천기호 경찰청 치안감, 박철언 민주자유당 의원 등을 구속기소했다.
이 사건이 드라마 '모래시계'의 소재가 돼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졌고 성역없는 수사로 화제가 됐지만 검찰과 법무부에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