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김한길 국민의당 의원

기획통, 참모형에서 변신 시도 [2016년]
이승용 기자 romancer@businesspost.co.kr 2016-03-11 10:36:46
확대 축소
공유하기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네이버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유튜브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 인쇄하기
  • 전체
  • 활동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 어록
생애

[Who Is ?] 김한길 국민의당 의원
▲ 김한길 국민의당 국회의원.


김한길은 1952년 9월17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중앙여고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소설 <바람과 박제>로 문학사상에서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 한국일보, 미주 중앙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귀국한 뒤 방송위원회 기획국 국장, 방송위원회 사무총장 서리와 기조실장을 지낸 뒤 소설가로 활동했다.

화개장터에 대한 신문기사로 조영남과 함께 '화개장터'를 작사하여 큰 화제가 됐다. 소설가 활동 외에 방송인으로 이름을 내건 토크쇼인 ‘김한길과 사람들’을 진행하는 등 방송활동을 했다.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6, 17,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취임했으나 이듬해 탈당하고 민주당을 창당해 대표로 취임했다. 대선 패배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가 실패한 데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통합당으로 제19대 총선에 출마하여 서울 광진구갑에서 당선됐고 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됐고 안철수와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해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하지만 같은 해 열린 재보궐 선거에 패배한 책임을 지고 안철수 공동대표와 함께 대표에서 물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다가 국민의당에 들어가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야권연대를 놓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반발을 넘어서지 못하자 위원장을 사퇴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2007년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당시 권력지향적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장영달 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의원은 “김한길 의원 같은 사람은 주변부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 지적했다.

대표적 ‘기획통’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조은희 전 청와대 행정기획비서관은 “그는 정치적 감각과 상상력이 대단히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김한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선대위에서 선거기획을 총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TV토론이 있을 때 늘 그를 곁에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서 맡은 직책도 정책기획수석이었다. 1997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입성할 때 당시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이 그를 ‘홍보전문가’로 소개했는데 김 의원은 “나는 국가정책전문가”라고 수정했다.

2012년 간발의 차로 이해찬 전 민주통합당 당 대표에게 자리를 내준 그는 당내 ‘비노(비노무현)’ 진영의 새로운 구심점이 됐다.

이로써 그는 정치공백 4년이라는 핸디캡을 만회하고 ‘참모형’에서 ‘지도자형’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2015년 “2014년 대표로서 계파주의 정치를 청산하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 지도부는 창조적 파괴 수준으로 큰 변화를 이끌 책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당에서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야권통합을 추진했으나 안철수 당 대표를 비롯한 통합반대파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당내 반대여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위원장직에서 사퇴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2년 한국일보 미주지사 기자, 1985년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지사 지사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 방송위원회 기획국장을 지냈다.

1996년 국회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공보팀장을 맡았다.

1998년 국회 재경경제위원회 위원, 1999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냈다.

2000년 제7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기획특보를 맡았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을 맡았다.

2006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활동했다. 이어 2007년 중도통합민주당 대표가 됐다.

2012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오른 뒤 2013년 민주당 대표가 됐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에 올랐다가 재보궐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4개월 여만에 물러났다. 대표에서 물러난 후 상임고문을 맡았다.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구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2월 국민의당에 들어가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가 3월11일 물러났다.

◆ 학력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는 김철 전 사회민주당 당수이고 어머니는 윤초옥씨다.

김철 당수는 통일사회당과 사회당, 사회민주당 대표를 거치며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씨의 딸 이민아씨와 1981년에 결혼했으나 이혼하고 1995년 배우 최명길씨와 재혼했다. 슬하에 장남 김무진씨와 차남 김어진씨를 두고 있다.

◆ 상훈

1980년 문학사상 신인상, 2003년 청조근정훈장, 2013년 백봉신사상을 수상했다.

◆ 상훈

1980년 문학사상 신인상, 2003년 청조근정훈장, 2013년 백봉신사상을 수상했다.

어록


"우리 당이 교섭단체 이상의 의석만 확보한다면 여당이 개헌선을 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여당이 180석 이상을 확보한다면 캐스팅보트도 무용지물이 되고 국회는 식물국회가 될텐데 교섭단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2016/03/07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자신의 공천면접 심사 때 면접관이 던진 질문을 공개하며)

“인재 영입에 신당의 명운이 걸렸다. 인재 영입이 아니라 인재 징집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2016/01/07 안철수 의원과 국민의 당 합류 오찬회동을 마친 뒤)

“새해를 여는 즈음에 새 희망을 향해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보수의 탈을 쓴 수구세력에게 기필코 승리해야 하고 애오라지 계파이익에 집착하는 패권정치의 틀 속에 주저앉아 뻔한 패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2016/01/03 더불어민주당 탈당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위기인 줄 모르는 게 심각한 위기다. 문 대표는 오로지 친노의 좌장으로 버티면서 끝까지 가볼 것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야권을 대표하는 주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결단을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2015/05/11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아버지는 한반도의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지만 군사독재시대는 그 꿈을 이루기에 암울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꿈인 평화통일, 경제민주화, 복지국가가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2014/11/20 선친인 ‘당산 김철선생기념사업회’ 20주기 심포지엄에 참석해, 사퇴 넉 달만에 첫 공식석상에서)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져 죄송하다.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 (2014/07/31 7.30 재보궐 선거 참패 책임지고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와 함께 사의표명)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어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이야말로 참사 이전의 대한민국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첫걸음.” (2014/07/24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세월호특별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며)

“치유하고 갈등을 통합해도 모자랄 판에 국민을 향해 싸우겠다고 한다. 내년 지방선거는 박근혜 대통령 불통의 중간심판이 될 것이다. 선거에 왕도는 없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민심을 얻는 자가 승리한다.” (2013/12/24 ‘2014년 지방선거 전망과 과제토론회’에 참석해)

“후보간 음해와 흑색선전, 인신공격은 아무에게도 도움 되지 않을 것이다. 경선 초반의 (이해찬) 대세론은 여지 없이 무너졌다. 대의원들은 공정하면서도 대선 승리를 가져올 능력을 지닌 당대표를 원하고 있다.” (2012/06/03 민주통합당 당 대표선거를 일주일 남기고 기자간담회에서)

“만약 서울시장 선거가 있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거기 때문에 (야권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선수가 출마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한 원칙이다. 나도 그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2011/08/25 기자들과 오찬간담회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하며)

“대선참패 이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매우 아프다. 나를 버려서 우리가 살아나는데 도움이 된다면 우선 나부터 기득권을 버려야 하겠기에 총선 불출마를 결심했다. 거창하게 말하기 민망하지만 다시는 정치에 돌아올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2008/01/06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 평가

2007년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당시 권력지향적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장영달 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의원은 “김한길 의원 같은 사람은 주변부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 지적했다.

대표적 ‘기획통’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조은희 전 청와대 행정기획비서관은 “그는 정치적 감각과 상상력이 대단히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김한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선대위에서 선거기획을 총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TV토론이 있을 때 늘 그를 곁에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서 맡은 직책도 정책기획수석이었다. 1997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입성할 때 당시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이 그를 ‘홍보전문가’로 소개했는데 김 의원은 “나는 국가정책전문가”라고 수정했다.

2012년 간발의 차로 이해찬 전 민주통합당 당 대표에게 자리를 내준 그는 당내 ‘비노(비노무현)’ 진영의 새로운 구심점이 됐다.

이로써 그는 정치공백 4년이라는 핸디캡을 만회하고 ‘참모형’에서 ‘지도자형’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2015년 “2014년 대표로서 계파주의 정치를 청산하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 지도부는 창조적 파괴 수준으로 큰 변화를 이끌 책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당에서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야권통합을 추진했으나 안철수 당 대표를 비롯한 통합반대파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당내 반대여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위원장직에서 사퇴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 기타

1993년 불교방송 아침저널, MBC <김한길과 사람들>을 진행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인생의 책으로 여겼다.

저서로 <병정일기> <미국일기>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여자의 남자(전3권)> <눈뜨면 없어라> <거기 그녀가 서 있는 걸 보았네> <아침은 얻어먹고 사십니까> <김한길의 희망일기> 등이 있다.

<여자의 남자>는 1993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선거에 떨어졌을 때 부인 최명길씨는 남편에게 “이럴 때일수록 멋지게 하고 다녀야 한다”며 드라마 계약금 전액이 든 봉투를 건넸다.

인기기사

인텔 1.8나노 파운드리 수주에 미국정부 도움 받는다, 군사용 반도체 생산 김용원 기자
삼성중공업, 가스공사에 ‘3900억 배상’ 구상권 청구 소송 제기 류근영 기자
애플도 엔비디아 의존 피한다, 구글 MS 뒤따라 자체 AI 서버용 반도체 설계 김용원 기자
토스뱅크, 미국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은행'에 2년 연속 한국 1위 이동현 기자
한화솔루션 중국 공세에 태양광 실적 부진 늪, 김동관 미국 집중 공략으로 승부 김호현 기자
한화엔진 1분기 영업이익 194억으로 377% 증가, 매출도 47% 늘어 류근영 기자
"뚜껑 따면 레몬이 둥실", CU 국내 유통업계 최초 생레몬 하이볼 출시 김예원 기자
뉴진스 컴백 1달 앞두고 하이브-어도어 삐거덕, 민희진 '이별 결심' 대가는 장은파 기자
현대엔지니어링 분기 매출 첫 4조 돌파, 홍현성 올해 수주 쌓아 성장 가속페달 류수재 기자
키움증권 “LG화학 목표주가 하향, 수익성보다 설비투자 부담 커지는 시점” 류근영 기자

댓글 (0)

  •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 저작권 등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은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등 비하하는 단어가 내용에 포함되거나 인신공격성 글은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삭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