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

목포가 낳은 천재, 인권변호사 출신
이승용 기자 romancer@businesspost.co.kr 2016-02-26 10: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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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
▲ 천정배 국민의 당 의원.


천정배는 1954년 12월12일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에서 2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목포시 공무원이었기에 조부모 슬하에서 자라다 목포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부모님과 살게 됐다.

서울법대에 법대수석, 인문계 전체수석으로 입학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법무관으로 근무하다 판검사 임용을 포기하고 법무법인 김앤장에 들어가 4년 동안 국제변호사로서 비즈니스관련 국제소송을 전담했다.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열고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설립될 때 원년창립멤버로서 함께 했고 민변 상임간사를 역임했다.

노무현 대통령 등과 함께 법무법인 해마루를 설립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합류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경기도 안산을 선거구(단원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같은 선거구에서 4선을 했다.

대통령 선거를 한 해 앞두고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처음 지지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신기남, 정동영 의원과 함께 '천신정'으로 불리면서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섰다.

국가보안법폐지에 실패하자 원내대표에서 물러났고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자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뒤 김근태씨와 더불어 한미 FTA 반대 단식투쟁을 벌였다.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여권이 개편되자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컷오프에서 탈락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지도부 경선에서 5위를 차지해 최고위원이 됐다.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 무산에 따른 사퇴로 서울시장이 공석이 되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서울시로 주소를 옮기면서 서울시장 후보경선에 출마했다. 그러나 박영선에게 패했다.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송파을에 출마했지만 3% 차이로 낙선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뒤 재보궐선거에서 광주 서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됐다.


국민회의를 창당했고 다시 안철수씨가 창당한 국민의당과 합당해 현재 안철수씨와 함께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노무현 대통령과 늦게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읽은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아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

1980년 대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하며 사회적 평판을 쌓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멤버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공헌을 크게 했다고 평가받는다.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먼저 지지했고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서 민주화세력이 집권하는데 앞장섰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4선이나 한 경기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열린우리당을 창당시 이념정당을 세우고 지역주의 정당타파를 외쳤으나 최근 호남정치의 정상화를 주장하면서 모순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1년9월부터 1985년9월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일을 했다.

1988년5월 공동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창립했다. 1991년에는 상임간사도 맡았다.

1993년 노무현 대통령 등과 함께 법무법인 해마루를 창립했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국민회의의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96년 경기도 안산을 선거구(단원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부의장, 국회 제도개선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부의장, 국민회의 보건의료 특별위원회 위원장, 국민회의 총재비서실 수석부실장, 국민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상임특보, 국민회의 총재특보단 등을 역임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서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됐고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열린 우리당을 창당하는 주역으로 활약했다.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맡아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와 함께 총선을 이끌었다.

2005년 제 57대 법무부장관에 올랐다.

2008년 4선에 성공했다. 이후 의원직을 버리고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했으나 낙마했다.

2015년 광주 서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6년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 당 공동대표를 맡았고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 학력

1969년 목포중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1988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조세법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교육학과 석사학위도 받았다.

◆ 가족관계

2남 3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천정배의 아버지는 목포에서 교사를 하다가 공무원을 했다.

증조부는 평생 글만 읽은 선비로 암태도에서 서당 훈장을 했다. 조부는 논 열두 마지기에 밭 스무 마지기를 경작하는 알짜배기 농사꾼이었고 담배포와 정미소도 운영했다.

배우자는 서의숙씨로 1955년6월15일생이다. 고려대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1년 동안 군산에서 수학 선생님으로 재직했다. 천정배와 결혼 이후 공부방 등에서 아이들에게 수학과 영어 등을 가르쳤으며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서의숙씨의 아버지인 서한태 박사는 목포중고등학교를 나와 의사로 일했다. 서한태 박사는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개척자로 유명하다. 1983년 주정공장으로부터 영산호를 지키기 위하여 영산호보존회를 조직한 것을 시작으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환경운동가로 활동했다. 1988년 목포녹색연구회와 1996년 목포환경과건강연구소를 창립하는 등 목포환경운동에 헌신했다.

자녀로 딸 둘을 두고 있다. 인터넷에 가족사진이 공개되면서 두 딸의 미모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장녀 천지성은 1978년6월10일 태어났다.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1997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2004년 사법시험(46회)에 사법고시를 합격해 현재 판사를 일한다. 남편 최재만은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조카다.

차녀 천미성은 1980년5월6일 생이다.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 99학번으로 입학해2005년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주중대사관에서 근무하다 현재 이란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상 첫 이란 첫 여성 외교관이다. 2015년9월12일 결혼했는데 남편은 로스쿨생으로 알려졌다.

항상 성실하게 살라는 뜻에서 두 딸의 이름에 성 자를 넣었다고 한다.

암태도에는 희성(稀姓)인 천(千)씨가 몇 집 있었는데 소설가 천승세씨(여류작가 박화성씨의 아들)는 천 정배와 9촌사이다.

◆ 가족관계

2남 3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천정배의 아버지는 목포에서 교사를 하다가 공무원을 했다.

증조부는 평생 글만 읽은 선비로 암태도에서 서당 훈장을 했다. 조부는 논 열두 마지기에 밭 스무 마지기를 경작하는 알짜배기 농사꾼이었고 담배포와 정미소도 운영했다.

배우자는 서의숙씨로 1955년6월15일생이다. 고려대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1년 동안 군산에서 수학 선생님으로 재직했다. 천정배와 결혼 이후 공부방 등에서 아이들에게 수학과 영어 등을 가르쳤으며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서의숙씨의 아버지인 서한태 박사는 목포중고등학교를 나와 의사로 일했다. 서한태 박사는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개척자로 유명하다. 1983년 주정공장으로부터 영산호를 지키기 위하여 영산호보존회를 조직한 것을 시작으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환경운동가로 활동했다. 1988년 목포녹색연구회와 1996년 목포환경과건강연구소를 창립하는 등 목포환경운동에 헌신했다.

자녀로 딸 둘을 두고 있다. 인터넷에 가족사진이 공개되면서 두 딸의 미모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장녀 천지성은 1978년6월10일 태어났다.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1997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2004년 사법시험(46회)에 사법고시를 합격해 현재 판사를 일한다. 남편 최재만은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조카다.

차녀 천미성은 1980년5월6일 생이다.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 99학번으로 입학해2005년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주중대사관에서 근무하다 현재 이란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상 첫 이란 첫 여성 외교관이다. 2015년9월12일 결혼했는데 남편은 로스쿨생으로 알려졌다.

항상 성실하게 살라는 뜻에서 두 딸의 이름에 성 자를 넣었다고 한다.

암태도에는 희성(稀姓)인 천(千)씨가 몇 집 있었는데 소설가 천승세씨(여류작가 박화성씨의 아들)는 천 정배와 9촌사이다.

어록


“재산은 상속이 있지만, 정치가 상속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2016/01/2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의 더불어민주당 입당에 대해)

“한국 정치의 왜곡된 대의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이 해답이다.”(2015/07/29,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새누리당의 단독 과반수 의석이 무너진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정했다고 한 것에 대해)

“저는 뼛속까지 민주당원입니다. 민주당에서 나고 자라났습니다. 저는 사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한나라당 하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2011/09/18 민주당 서울시장 합동토론회에서)

“훌륭한 분이다. 개인적으로도 친하다. 냉정하게 정당에 바탕을 두지 않고 어떻게 서울시정을 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현실정치는 진흙탕에 피는 꽃이다.”(2011/09/20, 서울시장 경선에 나선 박원순 후보에 대해 평가하며)

“변호사가 제일 힘들고... 의원은...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2005/07/19, 법무부장관시절 대검출입기자단과 오찬간담회에서 의원보다 장관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고)

“민주당 동교동계에 맞서 정풍쇄신운동에 앞장섰고 일찌감치 노무현 대통령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대선 직후에는 신당 창당에 앞장섰으며 지난해 12월 신당 지도부 선출 방식을 놓고 간선-직선제 논란이 벌어졌을 때 직선제 채택에 앞장섰다. 우연히도 이해찬 후보는 제가 선택한 정치 행보마다 그 대척점에 서 있거나 소극적 입장을 취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첫째도 개혁이고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이다.” (2004/05/10, 이해찬 의원과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을 벌이며 합동토론회에서)

“만일 개혁안이 좌절된다면 민주당의 장래는 어렵다고 본다. 민주당으로 총선 승리의 가망이 없어지고, 필연적으로 신당의 불가피성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2003/3/14, 지구당 폐지를 뼈대로 하는 개혁안이 통과 안 될 경우 신당창당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 사건/사고

2005년 10월12일 법무부장관으로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하도록 검찰총장에게 지휘했다.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사퇴했다.

◆ 평가

노무현 대통령과 늦게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읽은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아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

1980년 대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하며 사회적 평판을 쌓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멤버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공헌을 크게 했다고 평가받는다.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먼저 지지했고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서 민주화세력이 집권하는데 앞장섰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4선이나 한 경기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열린우리당을 창당시 이념정당을 세우고 지역주의 정당타파를 외쳤으나 최근 호남정치의 정상화를 주장하면서 모순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 기타

섬마을에서 자랐지만 조부가 익사를 우려해 수영을 금지시켰다. 수영을 못해 유년 시절 별명이 ‘뽕돌’이었는데 이는 낚시할 때 추로 쓰는 돌을 뜻한 전라도 방언이다. ‘맥주병’과 유사한 뜻인 셈이다.

할머니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 천정배의 할머니는 천정배에게 평등의식을 가르쳤고 친손주임에도 다른 아이들과 공평하게 대했기 때문에 나중에 인권변호사로 자랄 수 있게 됐다고 소회한다.

1969년 중학교 졸업 후 목포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1972년 수석 졸업하는 등 주변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았다.

목포고 3학년 때 치른 대입 예비고사에서 전국 2위를 하고 서울대 법대에 수석합격하면서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를 김대중 전 대통령, 프로기사 조훈현씨에 이어 목포가 낳은 3대 천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애창곡은 장나라의 ‘스위트 드림’이다. 비서관의 컬러링을 통해 알게 된 음악이라고 밝혔다.

저서로는 <흔들려 다시 피는 시간과 정의로운 복지국가>,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 <꽁지머리를 묶은 인권변호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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