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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기표를 마친 후 투표함으로 향하고 있다. |
충청도 민심은 왜 '충북의 딸' 박근혜에게 등을 돌렸을까?
6·4 지방선거에서 충북, 충남, 대전, 세종 등 충청도 광역단체장 모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이 싹쓸이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 우세했던 지역이다. 1년6개월 만에 충청도 민심이 무섭게 변했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구해달라”는 박심 마케팅을 펼쳤다. 충청권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불거진 정권 심판론에 밀려 박근혜 마케팅은 힘을 쓰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당선 이후 충청도를 신경쓰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충청도가 선거결과를 가르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증명됐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이 충청도 민심을 다시 돌리기 위한 노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 충청권 4곳 새정치민주연합 싹쓸이
충청권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압승을 거뒀다. 충청북도지사, 충청남도지사, 대전시장, 세종시장에 모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당선됐다.
충남북지사는 재선에 성공한 경우다. 그러나 대전시와 세종시는 새누리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권력이 교체됐다.
충청권 4곳은 1년6개월 전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다. 박 대통령의 득표율은 충북 56.2%, 충남 56.7%, 대전 50%, 세종 51.9%였다. 대전을 제외하고 모두 박 대통령의 전국 득표율 51.6%보다 높았다.
그런데 1년6개월 만에 판세가 달라졌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은 충북 47.4%, 충남 44%, 대전 46.8%, 세종 42.2%로 모두 떨어졌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충청권에서 현역 프리미엄이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정도 지지율 하락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며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평가 성격이 담겨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막판 박근혜 마케팅도 역부족
충청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씨의 연고지다. 육씨는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났고 그곳 사람들은 39년 동안 매년 육씨의 추도식을 열어왔을 정도로 애정이 깊다. 이 이유로 충청도는 오랜 기간 박 대통령에게 “충북의 딸”이라며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왔다.
대전과 세종시 사람들도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행정수도 유치를 약속한 데 대해 지지를 보냈다.
새누리당은 선거 바로 전날인 3일 이완구 서청원 김무성 최경환 윤상현 등 선거대책위원회 주요 당직자들을 대전, 청주, 천안으로 내려보내 지지를 호소했다. 그만큼 충청 민심잡기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충청도는 박 대통령을 외면했다. 개표가 완료될 즈음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어, 충청이 왜 이러지…”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지방선거 개표가 마무리 되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8:9의 스코어를 올린 사실이 발표되자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과 대통령의 눈물만 걱정한 새누리당의 무책임에 대한 국민의 경고"라고 강조했다.
충청권의 민심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새누리당 후보들은 저마다 박근혜 마케팅을 펼쳤으나 먹히지 않았다.
세종시장의 경우 처음에 현역인 유한식 새누리당 후보의 지지도가 앞섰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애도기간에 폭탄주 술자리에 참석해 당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후 민심이 싸늘하게 식기 시작했다.
유 후보는 거리유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은 진심으로 국가를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흘린 눈물”이라며 박근혜 마케팅을 펼쳤으나 유권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반면 이춘희 세종시장 당선자는 참여정부에서 신행정수도 건설 업무를 주도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노무현의 사람’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가 박근혜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리전에서 노 전 대통령이 승리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전시장 선거에 출마한 박성효 새누리당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수혜를 입은 대표적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2006년 지방선거 지원유세 중 커터칼로 피습을 당했는데 병상에서 깨어나며 한 말이 "대전은요"였다. 이 때문에 선거판세가 급반전돼 박성효 후보는 대전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박성효 후보는 이번 선거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에 뒷받침할 수 있는 사람이 대전시장이 돼야 한다”며 박심에 호소했으나 3.3%의 득표율 차이로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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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천안시장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뉴시스> |
◆ 충청도 소외론
지역구가 충청권인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 등 6명은 지난해 11월 청와대에 예산안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이들은 “정부 예산안을 보면 충청이 호남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며 “충청도 소외론이 나오지 않게 대선공약을 지키는 차원에서 과감하게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충청권에 대한 공약으로 충북내륙고속도로 건설, 중부내륙선 철도 복선 등을 약속했다. 이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 1조 원 가량의 예산배정이 필요한데 정부안에 절반인 5천억 원 정도만 반영됐다고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은 주장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내세운 ‘제2경부고속도로’도 문제가 됐다. 이 노선에 충북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애초 박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충북내륙고속도로를 공약했는데 이것이 제2경부고속도로로 바뀌며 충북이 제외됐다.
이시종 새정치민주연합 충북도지사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에 이에 대한 문제점을 거듭 제기했다. 이에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원유세에서 "이번에 우리 후보를 도와주면 제2경부고속도로에 충북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 상대적으로 충청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 충청도 민심이 서운함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시 공무원들의 표심도 새누리당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 중앙 부처 공무원 1만5천여명이 이주한 세종시에서 이춘식 새정치연합 후보가 57.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박근혜정부가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관피아'로 지칭하며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5일 ‘한수진의 SBS전망대’ 인터뷰에서 “세종시는 공무원들이 관피아 문제 때문에 많이 섭섭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자평했다.
◆ 커지는 캐스팅보트의 위력
충청도는 경상도와 전라도와 다르게 특정 정당의 우세가 두드러지지 않은 지역이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세력이 비슷한 상황에서 충청도는 선거승패를 결정하는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여야는 지난달 22일 공식 선거운동을 충청권에서 시작했다.
1992년 이래 모든 대선에서 충청권에서 승리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충청 출신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지원 덕분에 선거에서 이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충청도 민심 잡기에 성공했다.
충청도의 인구가 늘고 있다는 점도 충청도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1980년대 해도 호남권 인구의 70% 수준에 머물렀던 충청권 인구는 이제 호남권을 넘어섰다.
한 여론조사 관계자는 "견고했던 대통령 지지도가 집권 2년차를 맞아 어느 정도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면서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충청권에서 여권 후보의 득표율 하락 현상이 지속될 경우 박근혜 정부의 향후 국정 운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