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문제로 민주당 의원 12명 탈당 권유
송영길은 2021년 6월8일 부동산 투기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12명 의원의 탈당을 권유했다.
민주당이 자진탈당을 권유한 의원은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을 받는 4명(김주영 김회재 문진석 윤미향)과 업무상 비밀이용 의혹을 받는 3명(김한정 서영석 임종성), 농지법 위반 의혹에 5명(양이원영 오영훈 윤재갑 김수흥
우상호) 등이다.
다만 비례대표인 윤미향·양이원영 의원은 자진탈당하면 의원직을 잃게 되기 때문에 이들에 관해서는 출당 조치가 내려졌다.
자진탈당을 권유한 의원 가운데
우상호 의원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송영길은 우 의원과 연세대학교 81학번 동기이자 민주화운동 동지로 나란히 정치권에 입문했다.
송영길에 2018년 처음 당대표 선거에 도전했을 때도 우 의원이 지지한 것으로 알려지는 만큼 든든한 우군이었다.
송영길은 2021년 6월9일 열린 제34기 이한열 열사 추도식에 참석해 "한열이 하면 생각나는 게
우상호, 나의 동지이자 친구다"며 "나 때문에
우상호 의원이 이곳에 오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집 한 칸 없이 전세아파트 살며 어머니 묘소 하나 만든 것을 국민권익위원회가 부실하게 조사해 온 것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밝히고 돌아오라고 보낸 저의 심정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주택 보급 확대에 나서
송영길은 주택 보급 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
2021년 5월12일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특별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실수요자 청년을 위해 담보인정비율(LTV) 90% 안을 마련했더니 많은 분이 빚내서 집 사라는 소리냐, 집값 올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며 “집값 안정과 함께 조화되게 실수요자 대책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시절부터 담보인정비율을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송영길은 “자기 집 값의 10%만 있으면 최초 분양가격으로 언제든 집을 살 수 있는 '누구나 집' 프로젝트를 보완해 청년 신혼부부들에게는 집값의 6%만 있어도 자기 집을 소유할 수 있게 금융구조를 완성하고 국토교통부에 검토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2021년 5월11일 민주연구원 정책전문가 양성과정 아카데미 1기 입학식에 참석해 “사회가 너무 복잡해져 개혁을 하든 법을 개정하든 동기대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일이 많다”며 “부동산분야에서 돌이켜 반성할 점이 많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송영길은 2021년 5월4일 민주당 안에 꾸려져 있던 부동산특별위원회(부동산특위)를 확대 개편했다. 부동산특위 위원장도 진선미 의원을 대신해 김진표 의원이 새로 맡게 됐다.
송영길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관계부처와 협의해 시장안정과 내 집 마련을 위한 최선의 방향을 찾겠다”고 적었다.
| ▲ 송영길 의원이 2021년 5월2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된 다음 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당 대표에 뽑혀
송영길은 2021년 5월2일 치러진 당대표 투표에서 35.6%를 얻어 홍영표(35.01%), 우원식(29.38%) 후보를 따돌리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됐다.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을 수습하고 2022년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치뤄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됐다.
앞서 송영길은 4월15일 국회 소통관에서 출마선언을 하고 “국민이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다”며 “저부터 반성하고 유능한 개혁과 언행일치로 민주당을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한 개혁과 혁신만이 민주당을 살릴 수 있다”며 “송영길은 실력과 준비된 해결책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 4월18일 당 대표 컷오프에서 송영길, 우원식, 홍영표 의원이 후보로 선출됐다.
송영길은 4월19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공공주택특별법 등 2·4 부동산대책의 후속입법이 과제다”며 “정부의 부동산대책을 뒷받침하는 한편 부동산 거래신고법 등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대책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당청관계는 동반자라고 했다.
송영길은 “청와대의 개혁의지가 중앙부처의 관료주의, 무사안일주의 때문에 민심과 떨어지지 않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대선경선 관리계획을 묻자 “대선경선TF를 구성하고 점검해 국민적 관심 속에서 치러지는 방안을 모색하고 특정후보에 치우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발의
송영길은 2020년 6월30일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군사분계선에서 확성기 방송, 시각매개물 게시, 대북 전단 살포 등 남북합의서에 위배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할 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했다.
이번 법안 발의에는 송영길과
이낙연,
이인영, 전해철, 김홍걸, 윤건영 의원 등 외교통상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12명이 함께했다.
송영길은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험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면 (표현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해야 한다”며 “대북 전단 살포금지는 남북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다”고 말했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은 2020년 12월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187명 가운데 찬성 187표를 받았다. 국민의힘은 법안 표결에 불참했다.
송영길은 2020년 12월 22일 마이클 맥카울 미 하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비판하자 “잘못된 이해에 비판의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이 법은 전단 살포의 일시 장소를 사전에 공개해 노골적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정치적 이벤트 행위만 통제한다”며 “대한민국에선 헌법에 따라 미국보다 더욱 완벽하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지역에서 민주당 대승 이끌며 5선 달성
송영길은 2020년 4·15 총선에서 인천 지역 승리과 본인의 지역구 승리라는 두 가지 성과를 모두 거뒀다.
송영길은 본인 선거와 함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더불어민주당의 인천지역 선거도 지휘했다.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인천지역 13석 가운데 11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 후보가 패배한 인천 지역 지역구 가운데 하나인 동구미추홀구을은 2020년 4·15 총선에서 최소 표 차이로 승부가 났다. 더불어민주당 남영희 후보가 무소속 윤상현 후보에 171표 차이로 패배했다.
송영길은 계양구을에서 58.6%의 득표율로 여유있게 당선됐다.
송영길은 5선을 달성하며 인천지역 최다선 의원이 됐다.
| ▲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4월15일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선거사무소에서 5선 달성이 확실시 되자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인천사진공동취재단> |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
송영길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해 이해찬 김진표 의원과 경합했으나 2위로 탈락했다.
송영길은 2018년 7월24일 문재인 정부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사임하고 민주당 대표 경선 출마를 결정했다.
유력 후보로 점쳐진 이해찬 의원과 김진표 의원이 각각 11살, 16살 많다는 점을 들며 세대교체론을 내세웠다.
2016년 패배했던 과거를 딛고 예비경선을 통과한 뒤 “당을 통합하고 사심 없이 문재인 대통령을 뒷받침하겠다”며 “역동적 민주당, 새로운 민주당, 젊은 민주당을 향한 당원 동지들의 열망을 받들고 싶다”고 말했다.
2018년 8월25일 전당대회에서 치러진 본선에서 탈락했지만 2위를 차지했다. 당선자인 이해찬 후보의 득표율은 42.88%였고 송영길은 30.73%, 김진표 후보는 26.39%였다.
송영길은 참여정부에서 재정경제부와 교육인적자원부의 장관 겸 부총리를 지냈던 김 후보를 3위로 밀어내는 선전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당선된 이해찬 대표와 함께 새로운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겠다”며 “민주당은 국민의 요구대로 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찬 신임 대표는 “송영길 의원은 북방경제에 관심과 조예가 깊고 김진표 의원은 경제정책에 식견이 탁월한 분"이라며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그분들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북방경제협력위원장 활동
송영길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의 러시아 특사로 임명돼 러시아를 방문했고 2017년 8월에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한국-중국 관계와 한국-러시아 관계에 기반한 북방경제를 전담하는 위원회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가운데 하나인 신북방정책 추진을 위해 꾸려졌다.
러시아와 인연을 오래 다졌고 북방문제에 이해가 깊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송영길과 러시아의 인연은 인천시장을 지낼 때 시작됐다.
당시 그는 러일전쟁 때 인천 제물포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함선 바랴그호의 깃발을 러시아 측에 반환하고 기념시설을 건립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송영길에게 직접 오르지나 드루쥐비 훈장을 수여했는데 이 훈장은 러시아에서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이다.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 오르기 전인 2017년 7월27일 더불어민주당 박정, 정재호 의원과 자체적으로 '북방경제원정단'을 꾸려 러시아를 방문했다. 아시아 경제협력, 가스관과 대륙철도 연결, 북극 항로 개척 등 현안을 두고 현지 관계자들과 논의했다.
송영길은 “북한 나진과 러시아 하산 사이 물류 프로젝트를 박근혜 정부 때 중단시켰다”며 “이를 재개할 가능성을 두고 여러 가지로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7월13~14일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인사들과 함께 북한 라선특별시를 방문해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송영길은 “지난 70년 동안 대륙과 단절됐던 남-북-러 철도연결을 위해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한국은 육로와 해양을 통해 유라시아로 진출해 동북아 물류거점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혈관인 대륙철도 연결을 통해 북방물류 육성의 토대를 마련해 일자리 창출과 혁신성장 성과들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8년 7월24일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서기 위해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사임했다.
△문재인 대통령후보 선대본부장
송영길은 2017년 2월8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의 선거캠프에 합류해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다.
그는 “지난 대선 실패 뒤로 국민과 함께 아픔을 같이 해온 문 후보는 더 성숙하고 준비된 의지와 책임감을 지니고 다시 국민 앞에 섰다”며 “문 후보를 도와 대한민국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이 기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인용 주장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는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바탕으로 한 탄핵소추 사유가 차고도 넘친다”며 “하루 빨리 탄핵이 인용돼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문재인 후보 선거운동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두 가지 막중한 현안에서 모두 성과를 내 중진급 의원들과 젊은 의원들 가운데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됐다.
△인천 계양구을에서 재기 성공
송영길은 제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3선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구을 출마를 결정했다.
그는 “계양은 저를 정치적으로 낳고 키워준 어머니 같은 존재”라며 “계양 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계양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말했다.
인천 계양구을에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한 최원식 의원이 있었다. 송영길은 최 의원 탈당 당시 “탈당하지 말라. 탈당하면 내가 출마할 수밖에 없다”며 만류했다. 그러나 최 의원이 탈당을 결심하자 인천 계양구을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송영길은 서운산업단지를 100만 평 규모의 계양테크노밸리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일자리 2만여 개 확충, 계양 자율형 사립고교 유치, 서울대학교와 경인교육대학교 통합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2016년 4월13일 치러진 제20대 총선에 인천 계양구을 지역구에서 43.3% 득표율을 올려 윤형선 새누리당 후보와 최원식 국민의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2010년 인천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려놓은 뒤 6년 만에 4선으로 국회로 복귀한 것이다.
△인천시장 재선 실패
송영길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인천시장 재선에 도전했으나 2014년 제 6회 인천광역시장 지방선거에서 48.2% 득표율을 내며 50.0%를 낸 유정복 한나라당 후보에 져 낙선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에 입문하고 1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뛰어 왔는데 좀 쉬면서 힘을 찾으라고 안식년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심신을 정비하고 저를 돌이켜 보는 시간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인천시장 퇴임 뒤 중국 칭화대학교로 1년 동안 유학을 떠났다.
송영길은 “퇴임하면 중국에서 중국과 대만 사이 양안관계와 관련한 공부를 하려고 한다”며 “남북관계 개선의 지혜를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2015년 10월 서울 여의도에 ‘먹고사는문제연구소’를 열어 중국 유학중 구상했던 민생정책을 구체화하고 정치현안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연구소를 열며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를 N포 세대, 흙수저라며 자조적 표현으로 부르고 있고 헬조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연구소를 통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주거·복지·일자리정책을 비롯해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인천시 부채와 벌인 전쟁
송영길은 인천시장을 지내며 취임 당시 11조7300억여 원에 이르고 계속 증가세를 보이던 인천시 부채를 감소세로 돌려놓았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인천시 부채는 7조5천억 원 규모로 알려졌으나 회계 방식이 영업부채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바뀌며 9조4550억 원으로 늘었다.
여기에 감사원이 전임 시정부가 숨겨놓은 빚, 분식결산, 부채 돌려막기, 편법 출자 등을 밝혀내 총부채가 11조7300억여 원에 이르렀다.
송영길은 2011년 5월4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대회 준비 주요 사항의 추진 계획 보고회에서 “이미 유치돼 수많은 예산이 투입된 상태에서 개최를 반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개최를 유지하되 규모를 줄일 것을 천명했다.
전체 사업비를 2조5805억 원에서 1조9447억 원으로 6358억 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송영길은 2011년 인천 송도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유치했다.
당시
김태한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은 송영길에게 “송도로 갈 가능성은 1% 정도니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으나 송영길은 준비한 청사진과 기반시설 등을 들고 삼성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송영길은 “송도에는 이미 CJ그룹 바이오연구소, 미국 유타대학교와 인하대학교의 바이오연구소, 가천의과학대학교의 뇌과학연구소가 들어와 있다”며 “존스홉킨스대학교와 서울대학교가 병원을 세울 계획도 있어 송도는 앞으로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메카가 된다”고 김 단장을 설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플랜트 건설에 1조 원, 바이오시밀러 개발사업에 1조 원 등 모두 2조 원을 송도에 투자하기로 했다.
송영길은 인천시에 외국인 투자유치(FDI)를 늘리며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2012년 인천시는 외국인 투자유치 실적에서 경기도를 앞지르고 전국 2위에 올랐다.
송영길은 “외국인 투자로 경제를 활성화해 재정을 건전하게 하는 것이 재정위기의 근본적 해결 방법”이라며 “기업이 많아지고 일자리가 늘고 세수가 커져야 안정적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1월에는 인천터미널 부지를 롯데쇼핑에 9천억 원에 매각했다.
그 밖에 인천도시공사가 시행하는 10조 원 규모의 16개 사업을 취소 또는 축소하고 송도파크호텔, 영종보금자리, 검단산업단지 등 시 소유의 부동산자산을 매각했다.
빚을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결과 전임 안상수 시장 때 이자만 매년 4천억 원 규모였던 인천시의 빚은 2013년 4328억 원 줄면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인천시장 당선
송영길은 2010년 4월25일 인천시장 출마 방침을 밝히며 인천 계양구을 지역구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반드시 지방선거에서 인천에서부터 승리해야 한다”며 “그 승리의 여세를 몰아 당 안에 깊게 드리운 패배주의를 걷어내고 서울 경기를 한나라당 독재로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인천경제자유구역 계획의 재검토, 구도심 재생기금 3조 원 마련, 중소기업 지원기금 1조 원 지원, 초중고 친환경 무상급식, 9세까지 시에서 보육 지원 등 공약을 내걸었다.
2010년 6월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52.7% 득표율을 올려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인천시장에 올랐다.
△정치활동의 시작
송영길은 1999년 6월2일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인천 강화-계양구갑에 출마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옷로비 의혹 등이 불거지며 선거 과정이 송영길에게 불리하게 전개됐다. 결국 송영길은 41.8% 득표율로 56.9% 득표율을 보인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에게 져 낙선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강화군이 서구에 흡수되면서 지역구가 나뉘었다. 송영길은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인천 계양구 지역구에 재도전했다.
재보궐선거에서 만났던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를 상대로 48.3% 득표율을 내며 설욕에 성공했다. 그 뒤로 17대와 18대 총선에서도 인천 계양구을에서 당선되며 3선의 중진급 의원 위치에 올랐다.
△정계 입문 전
송영길은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 1984년 12월 전두환 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민정당 당사에서 벌어진 ‘민정당사 점거 농성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돼 구속됐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제적당했다가 이후 복적됐다.
대학 졸업 뒤로는 노동운동을 했다. 1991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초대 사무국장에 올라 운수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1992년 현장 노동운동을 접고 서울 신림동으로 옮겨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는데 당시 송영길의 응시를 놓고 택시노련에서 찬반투표를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컸다. 그는 투표결과에 따라 시험에 응시해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나온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전국택시노조연맹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등 노동인권 변호사로서 노동자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