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2021년 4월7일 오후 부산 진구 선거사무소에서 승리 가능성을 점치는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의원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
△부산시장 활동
박형준은 2021년 4·7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다음날인 8일 당선증을 받고 바로 부산시장에 취임했다.
그는 당선증을 교부받으며 “당선증의 의미는 지역을 제대로 도약시키라는 것, 시민께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 대한민국을 위해 부산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은 "큰 역사의 무게를 느끼면서 명령서를 엄중히 여기겠다"며 "앞으로 부산이 혁신의 길을 가고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박형준은 부산시장 인수위원회 역할을 대신할 부산미래혁신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
부산미래혁신위는 △그린스마트 도시기반 조성 △기업과 구직자 사이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 △인공지능을 활용한 스마트안전도시 구축·실버산업 육성 △부산 경제규모 성장방안 △동북아 제2의 싱가포르 국제경제도시 건설 등의 의제를 논의하며 실천방안으로 구체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혁신위원장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맡았다.
혁신위원으로 박형준과 부산시장 당내 경선에서 겨뤘던 박성훈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도 참여한다. 이 밖에 최현우 마술사, 브라이언 마이어스 동서대학교 교수 등 학계, 경제계, 전현직 정치인과 공무원 등 36명이 선정됐다.
부산엑스포 유치와 가덕도신공항 건설 등 굵직한 부산시 현안도 챙기고 있다.
박형준은 2021년 5월10일 취임 한 달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경부선철도 지하화 정부계획 미반영, 해수부 북항 1단계 재개발 감사, 2030월드엑스포 유치 등 대형 현안 추진에 우려도 제기되지만 가덕도신공항 건설과 함께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특별자치연합을 만드는 등 경남, 울산과 동남권 메가시티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상태"라며 "그 이전에도 물문제 등 협력사업을 발굴해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4·7재보선에서 부산시장 당선
박형준은 2021년 4월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당선되며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20년 4월 제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참패한 뒤 박형준의 정계 복귀 전망도 어두워졌다.
다시 방송활동을 재기하는 등 정치권 밖에 머물러 있던 가운데 2020년 7월 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문으로 사임하며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열리게 됐다.
박형준은 오 시장의 사임 직후부터 부산시장 후보로 거명되기 시작했고 2020년 9월부터 보궐선거를 위한 조직을 꾸리는 등 준비도 본격화했다.
박형준은 비교적 초반부터 다른 후보들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우위를 지켰다.
박형준은 당내 경선에서도 무난하게 1위에 오르며 부산시장 후보로 선출됐다. 경선 과정에서 일찌감치 앞서며 당내 경선후보의 네거티브 공세도 받았지만 계속 당내 대세론을 이어갔다.
2021년 3월4일 국민의힘이 중앙당사에서 발표한 최종 경선결과를 살펴보면 박형준은 54.40%로 함께 경쟁했던 박성훈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28.63%), 이언주 전 의원(21.54%)를 큰 표 차이로 따돌렸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부산시장 후보로 선출돼 박형준과 본선에서 겨루게 됐다.
박형준은 김영춘 후보와 대결을 펼치면서도 줄곧 지지율 우위를 유지했다. 민주당이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기로 하는 등 김 후보를 측면 지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내 경선 때 불거졌던 박형준을 둘러싼 의혹들과 추가로 제기된 의혹들이 쏟아지며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박형준의 지지율은 꺾이지 않았다.
2021년 4월7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62.7%의 최종 득표율로 압승했다. 김영춘 후보는 34.42%에 그쳤다.
| ▲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2021년 3월23일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부산의 균형 발전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계복귀와 제 21대 총선 참패
박형준은 2020년 초 보수통합에 참여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당시는 제 21대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을 비롯한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던 상황이었다.
2020년 1월9일 보수통합을 위한 기구 ‘혁신통합추진위원회’ 구성이 합의됐고 박형준은 이 기구의 위원장을 맡게 됐다.
박형준은 혁신통합추진위원장 자격으로 2020년 1월21일 제주도청에서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나 당시 무소속이었던 원 지사에게 보수통합 신당 참여를 요청했다. 이 때 원 지사는 “숙고하겠다”고 대답했는데 이후 보수 신당에 참여했다.
2020년 2월 혁신통합추진위와 자유한국당, 미래를향한전진2.0, 국민의소리당 등이 함께 하는 통합신당준비위원회가 본격 출범했고 통합신당준비위에서 통합신당 이름을 미래통합당으로 결정했다.
박형준은 제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가 철회하는 해프닝도 빚었다. 박형준이 보수통합보다 국회의원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그 뒤 박형준은 미래통합당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돼 선거를 지휘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대패하며 선거를 지휘했던 박형준 책임론이 일부 나왔다. 더불어 박형준의 정치복귀 전망도 그만큼 흐려지게 됐다.
△야인생활과 국회 사무총장
박형준은 2020년 정계에 복귀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정치의 중심권에서 밀려나 있었다. 동아대 교수로 있으면서 방송 활동을 많이 했다.
2011년 대통령 사회특별보좌관에 발탁된 뒤 2012년 총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했고 그 뒤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약 1년8개월 동안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것을 제외하면 줄곧 정치권 밖에 머물렀다.
친이계 정의화 의원이 2014년 제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며 박형준을 국회 사무총장으로 발탁했다. 국회 사무총장이 장관급 고위직이긴 해도 주목을 받는 자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지 못한 전직 의원이 쉬어가는 자리란 인식도 있다.
다만 정치권 밖에서 방송활동을 하며 얼굴과 이름을 많이 알렸다.
2013년에는 SBS ‘최후의 권력’이란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정봉주 전 의원, 차명진 전 의원,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 손수조 전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장, 정은혜 전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이 때 함께 출연했다.
박형준이 진가를 발휘한 분야는 시사와 토론이었다.
MBC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 JTBC ‘썰전’, KBS ‘정치합시다’ 등에서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자기 의견을 전달하며 ‘합리적 보수’란 이미지를 키웠다.
토론능력이 뛰어나고 방송 흥행성도 있어서 시사예능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방송을 통해 인지도를 키운 점은 이후 박형준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당내 경선 때부터 선두를 유지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정치 입문 뒤 친이명박계 활동
박형준은 진보정당인 민중당에서 처음 정치활동을 시작했지만 보수진영에 가담한 뒤 친이명박계로 활동하며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4년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1991년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된 뒤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2021년까지 교수직을 유지했다.
교직과 별도로 정치활동과 시민단체 활동도 이어갔다.
19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했고 창당 강령의 기초 작업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1년에는 부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행위원을 맡아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민중당에 있으며 나중에 정치적 뜻을 같이 하는 이재오, 김문수 등의 인물과 교분을 쌓았다. 민중당 인물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개혁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할 때 박형준도 이들을 따라 나섰고 이후 줄곧 보수진영에 머물게 됐다.
박형준은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정책자문기획위원을 맡았다.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부산 수영구에 출마해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4년 뒤인 2008년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친박계의 유재중 무소속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당시 유 후보는 친이계가 장악한 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한 뒤 출마했다.
4년 뒤인 2012년에 새누리당(한나라당 후신)의 주도권은 친박계에 넘어갔고 이번에는 처지가 뒤바뀌어 유재중 의원이 공천을 받고 박형준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형준은 이 때도 유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두 총선 사이에 박형준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일했다. 홍보기획관, 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 사회특별보좌관을 거치며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권 실세로 떠올랐다.
하지만 연거푸 총선에서 떨어지고 친이계가 주도권을 상실한 뒤 입지가 급격히 축소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친이계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고 박형준도 약 10년 동안 야인생활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