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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오세훈 서울시장
류근영 기자  rky@businesspost.co.kr  |  2021-04-23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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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서울시장.

◆ 생애

오세훈은 서울시장이다.

전임 박원순 시장이 부동산 불로소득을 강하게 비판하며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 시행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부동산 재개발‧재건축과 도시계획 규제 완화 등 개발에 초점을 둔 부동산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1961년 1월4일 서울 성동구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정학부에 입학한 뒤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으로 편입했다.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일조권 침해에 관한 피해보상 소송에서 승소하며 유명세를 탔다. 환경 변호사로 명성을 얻으며 환경단체 활동도 했다.

MBC ‘오변호사 배변호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다수 TV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 제안을 받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1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서울 강남구을 선거구에 공천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정치개혁과 한나라당 공천혁명에 밑거름이 되기 위한다는 취지로 17대 총선에 불출마하고 정계에서도 은퇴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서울시장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서울시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가 주민투표가 무산되는 바람에 1년 만에 중도에 사퇴했다.

서울시장 사퇴 이후 10년 동안 야인생활을 하다. 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19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당내경선에서 나경원, 오신환, 조은희 후보 등을 꺾고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 경선에서도 승리해 야권 최종 후보가 됐고 본선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마저 꺾으며 10년 만에 서울시장에 복귀했다.

정치 여정마다 승부사 기질을 보이며 남들보다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성공하며 큰 박수를 받은 적도 있지만 실패해 당이나 진영에 피해를 입힌 적도 있어 경솔하다는 말도 듣는다.

◆ 활동의 공과
▲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4월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 부동산정책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표 서울시정 가동
오세훈은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곧바로 구상했던 시정을 펼치기 시작했다. 

먼저 꺼내든 카드는 ‘상생방역’이다.

오세훈은 2021년 4월13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코로나19 간이진단키트를 도입해 야간 이용자가 많은 노래연습장 등에 시범도입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영업을 보장하자"고 건의했다.

앞서 오세훈은 정부의 방역과 차별화된 서울형 거리두기 매뉴얼을 독자적으로 내놓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하지만 간이진단키트의 검사 정확도가 50% 미만이라는 점과 유흥주점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오세훈표 방역은 벽에 부닥쳤다. 

재건축, 재개벌규제를 완화하는 부동산정책도 준비하고 있다.

오세훈은 선거운동 당시 "취임 뒤 1주일 안에 규제 완화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나 서울 압구정동과 목동을 중심으로 아파트 호가가 수억 원씩 한꺼번에 오르면서 부동산시장 불안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전부터 주장했던 안심소득정책도 구체화하고 있다. 안심소득은 선별적 복지정책으로 중위소득 100%(4인 기준 연소득 5850만 원, 월소득 487만 원)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기준선 이하 소득분의 50%를 차등 지원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연소득 4000만원인 4인 가구에는 925만 원(기준 소득 부족분 1850만 원의 절반)을 지원해준다.

△4‧7재보선에서 서울시장 당선
오세훈은 2021년 4월7일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뒤 당선돼 10년 만에 서울시장에 복귀했다.

사실 2020년 말까지 오세훈의 서울시장 도전이 성공할 가능성이 많지는 않았다.

여야 대결구도에서 민주당 후보의 지지도가 만만치 않았던 데다 야권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가장 높은 지지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의힘 안에서도 오세훈은 나경원 예비후보에게 뒤처지는 분위기였다.

오세훈은 서울시장에 출마하기로 하면서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국민의힘 입당을 전제로 불출마하겠다는 다소 이상한 제안을 하면서 당 안팎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조선족 비하’ 등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후보를 꺾은 뒤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안철수 후보마저 이기며 연거푸 이변을 연출했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 최종 본선에서는 거센 정권 심판론에 힘입어 큰 표 차이로 승리했다.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2021년 4월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개표상황실에서 방송3사(KBS,MBC,SBS) 공동출구조사 결과 발표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앞서는 걸로 예측되자 김종인 비대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등과 손을 맞잡고 함께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10년의 정치 공백
오세훈은 2011년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로 돌아갔다. 국내외 대학을 오가며 공부와 연구활동도 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을 통해 페루 리마와 르완다 키갈리에 파견돼 봉사활동도 했고 이 때 경험을 책으로 써 내기도 했다.

정계 복귀도 꾸준히 시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는데 성사되지는 않았다.

2016년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 서울 종로구 후보로 출마했다. 이 때 당내 경선과 본선에서 전현직 종로구 국회의원들과 겨루게 됐다.

새누리당 경선에서는 18대 총선 때 종로에서 당선된 박진 의원과 겨뤄 이겼지만 결국 현직 의원이었던 정세균 국무총리에게는 패배해 정계 복귀에 실패했다. 애초 오세훈은 정 총리보다 훨씬 앞서는 지지율을 보였으나 선거 결과 39.72%로 저조한 득표율로 정 총리(52.60%)에게 적지 않은 표 차이이로 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입당하기도 했지만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통합을 앞두고 바른정당을 탈당했다.

한동안 당적을 지니지 않고 정치권과 거리를 두다가 2018년 11월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출마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던 황교안 대표에게 밀려 2위에 머물렀다.

2020년 4월 치러진 제 21대 총선에서는 험지로 꼽히는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했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정치신인 고민정 의원에게 패배하는 수모를 겪었다.

번번이 정치 도전에 실패했지만 보수야권 내 인물난이 해소되지 않은 까닭에 줄곧 대선주자로 꼽혔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서울시장 사퇴
오세훈은 무상급식 전면 추진에 반대해 이를 주민투표에 부치고 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었다가 결국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오세훈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 때 야당인 민주당이 시의회 다수를 차지했다.

지방선거 때도 쟁점이 됐던 무상급식정책을 두고 민주당 다수의 서울시의회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등은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했다.

반면 오세훈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혜택을 보는 게 오히려 비합리적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무상급식 전면 추진에 반대했다. 점진적으로 무상급식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민주당 단독으로 무상급식조례안을 처리했고 오세훈은 조례안 공포를 거부했다. 결국 시의회 의장 직권으로 무상급식조례안이 공포됐는데 이에 따라 오세훈은 법원에 무효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오세훈은 무상급식과 관련한 서울 시민들의 의사를 묻겠다면서 주민투표를 시의회에 제안했고 우여곡절 끝에 주민투표가 이뤄졌다.

오세훈은 2011년 8월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무리 험난해도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복지 방향을 정립하지 않으면 우리 서울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며 주민투표에 실패하면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투표율이 25.7%로 저조해 개표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무상급식 투표안은 부결됐다.

오세훈은 자기가 한 말대로 시장직에서 물러났고 그 이후 10년 동안 서울시장은 진보진영이 차지했다.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가 2021년 3월16일 서울 영등포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TV토론회를 시작하기 전에 함께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06~2011년 서울시장 활동
오세훈은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서울시장에 당선돼 서울시정을 이끌었다.

다만 두 번째 시장에 당선된 뒤 1년 만에 중도사퇴한 탓에 두 차례 당선에도 불구하고 임기가 5년에 그쳤다.

오세훈은 국회의원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로 돌아가 법무법인 지성에서 대표변호사를 맡았다.

그러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로 거명됐지만 출마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열린우리당에서 노무현 정부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후보가 출마하기로 하자 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도를 보이게 됐고 이에 한나라당에서는 대중적 인기가 있었던 오세훈의 영입에 나섰다. 

오세훈은 서울시장에 도전하기로 한 뒤 당내 경선을 통과해 강금실 후보도 꺾으며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오세훈의 첫 서울시장 임기의 열쇠말은 ‘창의 시정’과 ‘디자인 서울’이었다.

공무원 조직에 만연한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주의, 보신주의 등을 혁파하고 시정에 창의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세계적 도시인 서울에 디자인적 요소를 더하고자 했다.

창의시정 차원에서 공무원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상상뱅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상상뱅크를 통해 아이디어가 실제 시정에 반영되는 결과들도 나왔다.

공무원뿐 아니라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도입해 시민 제안도 받았다. 서울시는 천만상상 오아시스로 유엔 공공행정상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공무원들의 업무능력 제고를 위해 ‘현장시정추진단’을 만들어 근무태도가 불량하거나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을 단순 현장업무에 투입하기도 했다. 이는 공무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디자인 서울은 창의적 디자인을 통해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세빛섬 등이 그 일환으로 건설됐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시작해 한강공원 주변을 꾸미는 작업도 시행했다.

이는 서울시가 2010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디자인 창의도시’에 지정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오세훈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참여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사상 처음으로 재선 서울시장이 되며 대선주자 반열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두 번째 임기는 순탄치 않았다.

2011년 7월 서울에 폭우가 내려 큰 피해를 입었는데 오세훈이 시장이 된 뒤 추진했던 디자인 서울 사업이 수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디자인에 공을 들이느라 배수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세훈 취임 뒤 수해방지 예산도 줄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선주자로까지 꼽혔던 오세훈이 10년의 야인생활을 해야 했던 원인을 제공한 ‘무상급식 논란’도 이 때 불거졌다.
▲ 오세훈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가 2016년 3월9일 주민과 악수하고 있다. <오세훈 페이스북>
△국회의원 활동
오세훈은 2000년 16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을 받았다. 서울 강남구을 선거구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4년 동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자금법을 발의했고 이 법이 통과되며 정치자금 후원 상한액이 500만 원으로 정해졌다.

오세훈은 초선 의원으로서 소장개혁파 의원들과 함께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는 남경필, 정병국, 원희룡 의원 등 젊은 의원들도 함께 했는데 오세훈은 2001년에 이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오세훈은 제왕적 총재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개혁적 목소리를 냈다.

2004년 제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과 한나라당 공천혁명의 밑거름이 되려 한다며 불출마하겠다고 했고 말한대로 출마하지 않았다.

△변호사와 방송 진행자
오세훈은 변호사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게 됐고 방송 활동을 하며 인지도를 더 높였다.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8년 육군에 입대해 보안사령부 공보정훈장교로 복무해 중위 제대했다.

1991년에 변호사 개업을 한 뒤 일조권과 관련해 인천의 한 아파트 주민집단소송 사건을 맡게 됐다.

건설사가 아파트 간격을 지나치게 가깝게 하여 햇볕이 들지 않아 고통 받던 주민들이 공동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던 사건이다.

이전까지 일조권과 관련한 법적 논의가 활발하지 않았을 뿐더러 당시 헌법에 명시된 환경권에 관한 판례도 없었다.

오세훈은 2년6개월에 걸친 법정 다툼을 이어간 끝에 대형건설사를 상대로 13억 원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환경운동 쪽에 가담하기도 했고 1992년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장을 맡아 무료상담을 하기도 했다.

유명세도 탔다.

방송 출연 기회도 얻게 돼 MBC ‘오변호사 배변호사’에서 배금자 변호사와 함께 방송 진행을 맡았다. 이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는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름과 얼굴을 알리게 됐다.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경원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했고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를 맡았다.

◆ 비전과 과제
▲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이 2004년 1월6일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세훈 블로그>
2021년 4월 보궐선거로 서울시장에 당선됐기 때문에 임기가 1년 정도로 짧다.

정권 심판론 분위기 덕분에 보궐선거에서 비교적 큰 표 차이로 승리하긴 했다. 하지만 2022년 서울시장 선거까지 1년 사이 민심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최대한 빠르게 시정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2022년 서울시장 선거는 그보다 앞서 열리는 대통령선거의 결과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오세훈은 전임 박원순 시장과는 전혀 다른 부동산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박원순 전 시장이 부동산 불로소득에 강하게 반대하며 규제 위주의 정책을 추진한 데 반해 오세훈은 재개발‧재건축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코로나19 방역에서는 일정 부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희생이 불가피한 ‘규제방역’이 아닌 ‘상생방역’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런 오세훈표 서울시정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도 있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많이 나온다.

여론 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오세훈의 서울형 상생방역을 두고 코로나19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51.4%로 나타났다. ‘도움 될 것’이라는 응답은 41.8%,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6.9%로 집계됐다.

이번 여론조사는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2021년 4월13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에게 응답을 받아 이뤄졌다. 신뢰 수준 95%에 표본 오차는 ±4.4%포인트다.

오세훈은 선별적 복지제도인 ‘안심소득’의 성공적 정착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안심소득은 보편적 소득지급 정책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과 구별되는 것으로 앞으로 오세훈의 대표적 정책 브랜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장으로 10년 만에 공직에 복귀하면서 다음 대선주자로서 기대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승리한다면 대선주자로서 더 큰 입지를 마련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2022년 대선에 바로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보궐선거기간 대선 불출마를 거듭 약속했기 때문에 쉽사리 약속을 깨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평가

승부사 기질이 있어 정치 여정 내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초선 의원 시절 재선이 거의 확실한 서울 강남구을을 지역구로 뒀으면서도 당의 개혁을 부르짖으며 스스로 출마를 접었다.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 덕분에 오세훈에게 소장개혁파로서 이미지가 더 공고해졌고 이후 정치경력이 화려한 당 안팎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서울시장에 오르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성격 탓에 경솔하다는 말도 듣는다.

서울시장 재직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가 중도사퇴하며 10년 동안 서울시장을 상대 진영에 넘겨줘야 했기에 당에도 피해를 끼친 셈이 됐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으로 나온다면 스스로 도전을 접겠다는 ‘조건부 출마’를 내걸며 당에서 경솔하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대일고, 고려대 동문인 박형준 부산시장과 나란히 202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둘 다 오랜 공백 기간을 끝내고 정치권에 복귀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큰 키에 얼굴도 잘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변호사로서 유명세를 떨친 데다 외모도 준수해서인지 연예인이 아니지만 아파트, 양복, 정수기 CF를 찍기도 했다.

키 181cm에 몸무게 76kg이다.

원래 허약체질이어서 큰 키에도 불구하고 대학교 때까지 53kg이었다고 한다. 마른 몸 때문에 별명이 와리바시(젓가락의 일본말), 해골박쥐, 잠새우였다고 스스로 말한 적도 있다.

법대생 시절 고시공부를 해야 하는데 체력이 약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 체력이 붙어 마라톤이나 철인삼종 경기 등에 출전할 정도가 됐다.

취미는 독서이며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존경하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다.

기억에 남는 책으로 ‘채근담’과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저서)를 꼽았다.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다.

좋아하는 노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다.

◆ 사건사고
▲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왼쪽)이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함께 기자회견 하는 모습. <오세훈 블로그>
△내곡동 처가 땅 의혹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오세훈이 과거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처가가 소유한 땅이 있는 내곡동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해달라고 국토해양부에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오세훈은 선거 과정 내내 자신은 내곡동 처가 땅이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하는 데 관여한 바가 없으며 해당 땅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쪽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오세훈을 궁지에 몰아 넣으려 했지만 결정적 한방이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정권 심판론 분위기에 오세훈의 의혹도 덮여져 관련 의혹이 승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오세훈은 내곡동 땅 의혹을 해명하면서 자주 말을 바꾸며 거짓말 논란을 빚었다.

오세훈은 처음에는 땅의 존재와 위치를 모른다고 했지만 공직자 신고 때 이 땅을 신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자 처가에 땅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며 약간 다른 해명을 다시 내놓았다.

내곡동 땅 측량현장에 간 적이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오세훈을 봤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자 “기억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의혹이 완전히 풀린 것이 아니고 이와 관련해 민주당이 법적 조치를 진행하고 있어서 나중에도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질 여지는 남아 있다.

△재보선 때 설화, 조선족 비하와 VIP 해프닝 등
오세훈은 2021년 4월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말 실수를 연발하며 비판을 받았다.

오세훈은 2021년 1월28일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고성국TV’에 출연해 지난 총선 때 서울 광진구갑 선거구에서 고민정 의원에게 패배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양꼬치 거리에 조선족에서 귀화한 사람 몇 만 명이 산다”며 “이 사람들 90%가 친민주당 성향”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을 두고 귀화주민과 특정민족을 비하하고 혐오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2021년 2월2일에는 북한 원자력발전소 지원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파일 이름에 ‘v’자가 들어가는 산업통상자원부 문건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됐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자 자신의 말을 거둬들이며 유감을 표명했다.

‘v’자가 대통령을 언급할 때 쓰는 ‘VIP’의 약자로 볼 수 있다며 의혹을 제기한 것인데 일반적 상황에서 ‘v’가 버전(version)을 뜻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사정을 몰랐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놓고 ‘중증 치매 환자’라고 표현한 과거 발언 등도 선거 과정에서 도마에 올랐다.

△21대 총선 때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 빚어
오세훈은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사는 아파트의 경비‧청소 노동자들에게 명절에 현금으로 5만~10만 원씩 120만 원을 줬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오세훈은 “선거 때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는데 경솔한 처신을 크게 반성한다”며 “더욱 준법선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성명을 냈다.

오세훈에 따르면 매년 설과 추석 명절마다 아파트 노동자들에게 격려금을 줬다고 한다.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일로 판단했다고도 했다.

또 치매를 겪는 어머니가 귀가할 때마다 경비노동자들이 집까지 동행해 줘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2020년 10월7일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2011년 서울 수해로 책임론
2011년 여름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큰 폭우가 쏟아지며 서울 곳곳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강남권 등에 교통이 마비되고 우면산에 산사태로 인명피해까지 나왔다.

이 때문에 시장으로 있던 오세훈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컸다. 서울시가 수해 방지 예산을 줄인 탓에 폭우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 경력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7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시보로 일했다.

1988년 국군 보안사령부 공보정훈장교로 임관해 복무했다.

1991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1996~2000년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 시민법률상담실장을 맡았다.

1997~2000년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에 올랐다.

1997~2004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위원을 맡았다.

1998년 미국 예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객원교수를 지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3년 한나라당 원내부총무를 맡았다.

2004년 법무법인 지성 대표변호사에 올랐다.

2006년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11년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2011년 영국 킹스칼리지 공공정책대학원 연구원을 맡았다.

2013년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에 올랐다.

2016년 새누리당 서울종로구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2017년 바른정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2018~2109년 자유한국당 국가미래비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9년 자유한국당 서울광진구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당선됐다.

◆ 학력

1979년 서울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배우자 송현옥씨와 슬하에 두 딸을 뒀다.

여동생은 오세현씨는 SK텔레콤 블록체인‧인증사업본부장이다.

◆ 상훈 

2009년 유엔(UN) 공공행정상(UNPSA)을 받았다.

2019년 대한민국공공정책대상 지방자치부문대상을 수상했다.

◆ 기타

오세훈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59억3086억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2021년 3월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공개된 오세훈의 재산내역을 보면 본인과 배우자 공동명의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연립주택 22억1600만 원, 본인 명의 광진구 전세보증금 11억5천만 원, 배우자 명의의 경기도 고양시 땅 1억7844만 원 등이 신고됐다.

본인과 배우자 예금 23억9492만 원, 증권 11억9950만 원, 배우자가 지닌 조각품 5500만 원 등도 있다.

1991년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

‘미래’(2019), ‘왜 지금 공존과 상생인가?’(2016),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가?’(2016),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페루 리마 일기)’(2015)‘,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르완다 키갈리 일기)‘(2015), '오후의 서울 산책’(2011), ‘서울은 불가능이 없는 도시다’(2010),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1995)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 어록
▲ 30대 초반의 오세훈 변호사. <오세훈 블로그>
"주택공급 속도가 중요하고 앞으로 그 방향으로 가겠지만 가격 안정화를 위한 예방책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주요 재건축단지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즉시 검토해야 한다." (2021/04/16, 서울시 주택건축본부 업무보고에서)

"신중하지만 신속하게, 신속하지만 신중하게 업무를 추진하도록 하겠다." (2021/04/11,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부동산정책협의회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안 갔다. 그러나 기억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1/03/29, MBC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토론회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로부터 내곡동 측량 현장에 갔냐고 추궁받자)

“서울시민 여러분에게 진 마음의 빚을 일로서 갚을 수 있는 날을 고대해 왔다.” (2021/03/23,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승리한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꼬치 거리에 조선족에서 귀화한 사람 몇 만 명이 산다. 이 사람들 90%가 친민주당 성향이다.” (2021/1/28, 유튜브 채널 ‘고성국TV’에서)

“가급적 나 외에 다른 좋은 서울시장 대안이 당에서 나서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0/11/15,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

“선거 때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는데 경솔한 처신을 크게 반성한다.” (2020/03/04,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이 나오자 입장문을 내고 해명하며)

“특정 지역, 특정 이념만 추종하는 정당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2019/02/12,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저의 입당이 한국 야당의 새로운 미래를 열고 국민들의 삶을 낫게 하는 정치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길 소망한다.” (2018/11/28, 페이스북에서)

“아무리 험난해도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복지 방향을 정립하지 않으면 우리 서울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 (2011/08/21, 무상급식 전면 확대에 반대하면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투표로 끝날 것이다. 주민투표 안 하면 4년 내내 가기 때문에 주민투표로 간다.” (2011/01/17,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필요성을 설명하며)

"창의적 디자인으로 도시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이를 성장동력으로 삼아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 (2007/04/23, 서울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치개혁과 한나라당의 공천혁명에 밑거름이 되기 위해 17대 총선에 나가지 않는 것은 물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2004/01/06, 동아일보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17대 총선 불출마 결심을 전하며)

◆ 활동의 공과
▲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4월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 부동산정책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표 서울시정 가동
오세훈은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곧바로 구상했던 시정을 펼치기 시작했다. 

먼저 꺼내든 카드는 ‘상생방역’이다.

오세훈은 2021년 4월13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코로나19 간이진단키트를 도입해 야간 이용자가 많은 노래연습장 등에 시범도입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영업을 보장하자"고 건의했다.

앞서 오세훈은 정부의 방역과 차별화된 서울형 거리두기 매뉴얼을 독자적으로 내놓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하지만 간이진단키트의 검사 정확도가 50% 미만이라는 점과 유흥주점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오세훈표 방역은 벽에 부닥쳤다. 

재건축, 재개벌규제를 완화하는 부동산정책도 준비하고 있다.

오세훈은 선거운동 당시 "취임 뒤 1주일 안에 규제 완화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나 서울 압구정동과 목동을 중심으로 아파트 호가가 수억 원씩 한꺼번에 오르면서 부동산시장 불안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전부터 주장했던 안심소득정책도 구체화하고 있다. 안심소득은 선별적 복지정책으로 중위소득 100%(4인 기준 연소득 5850만 원, 월소득 487만 원)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기준선 이하 소득분의 50%를 차등 지원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연소득 4000만원인 4인 가구에는 925만 원(기준 소득 부족분 1850만 원의 절반)을 지원해준다.

△4‧7재보선에서 서울시장 당선
오세훈은 2021년 4월7일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뒤 당선돼 10년 만에 서울시장에 복귀했다.

사실 2020년 말까지 오세훈의 서울시장 도전이 성공할 가능성이 많지는 않았다.

여야 대결구도에서 민주당 후보의 지지도가 만만치 않았던 데다 야권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가장 높은 지지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의힘 안에서도 오세훈은 나경원 예비후보에게 뒤처지는 분위기였다.

오세훈은 서울시장에 출마하기로 하면서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국민의힘 입당을 전제로 불출마하겠다는 다소 이상한 제안을 하면서 당 안팎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조선족 비하’ 등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후보를 꺾은 뒤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안철수 후보마저 이기며 연거푸 이변을 연출했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 최종 본선에서는 거센 정권 심판론에 힘입어 큰 표 차이로 승리했다.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2021년 4월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개표상황실에서 방송3사(KBS,MBC,SBS) 공동출구조사 결과 발표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앞서는 걸로 예측되자 김종인 비대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등과 손을 맞잡고 함께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10년의 정치 공백
오세훈은 2011년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로 돌아갔다. 국내외 대학을 오가며 공부와 연구활동도 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을 통해 페루 리마와 르완다 키갈리에 파견돼 봉사활동도 했고 이 때 경험을 책으로 써 내기도 했다.

정계 복귀도 꾸준히 시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는데 성사되지는 않았다.

2016년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 서울 종로구 후보로 출마했다. 이 때 당내 경선과 본선에서 전현직 종로구 국회의원들과 겨루게 됐다.

새누리당 경선에서는 18대 총선 때 종로에서 당선된 박진 의원과 겨뤄 이겼지만 결국 현직 의원이었던 정세균 국무총리에게는 패배해 정계 복귀에 실패했다. 애초 오세훈은 정 총리보다 훨씬 앞서는 지지율을 보였으나 선거 결과 39.72%로 저조한 득표율로 정 총리(52.60%)에게 적지 않은 표 차이이로 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입당하기도 했지만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통합을 앞두고 바른정당을 탈당했다.

한동안 당적을 지니지 않고 정치권과 거리를 두다가 2018년 11월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출마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던 황교안 대표에게 밀려 2위에 머물렀다.

2020년 4월 치러진 제 21대 총선에서는 험지로 꼽히는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했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정치신인 고민정 의원에게 패배하는 수모를 겪었다.

번번이 정치 도전에 실패했지만 보수야권 내 인물난이 해소되지 않은 까닭에 줄곧 대선주자로 꼽혔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서울시장 사퇴
오세훈은 무상급식 전면 추진에 반대해 이를 주민투표에 부치고 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었다가 결국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오세훈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 때 야당인 민주당이 시의회 다수를 차지했다.

지방선거 때도 쟁점이 됐던 무상급식정책을 두고 민주당 다수의 서울시의회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등은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했다.

반면 오세훈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혜택을 보는 게 오히려 비합리적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무상급식 전면 추진에 반대했다. 점진적으로 무상급식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민주당 단독으로 무상급식조례안을 처리했고 오세훈은 조례안 공포를 거부했다. 결국 시의회 의장 직권으로 무상급식조례안이 공포됐는데 이에 따라 오세훈은 법원에 무효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오세훈은 무상급식과 관련한 서울 시민들의 의사를 묻겠다면서 주민투표를 시의회에 제안했고 우여곡절 끝에 주민투표가 이뤄졌다.

오세훈은 2011년 8월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무리 험난해도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복지 방향을 정립하지 않으면 우리 서울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며 주민투표에 실패하면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투표율이 25.7%로 저조해 개표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무상급식 투표안은 부결됐다.

오세훈은 자기가 한 말대로 시장직에서 물러났고 그 이후 10년 동안 서울시장은 진보진영이 차지했다.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가 2021년 3월16일 서울 영등포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TV토론회를 시작하기 전에 함께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06~2011년 서울시장 활동
오세훈은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서울시장에 당선돼 서울시정을 이끌었다.

다만 두 번째 시장에 당선된 뒤 1년 만에 중도사퇴한 탓에 두 차례 당선에도 불구하고 임기가 5년에 그쳤다.

오세훈은 국회의원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로 돌아가 법무법인 지성에서 대표변호사를 맡았다.

그러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로 거명됐지만 출마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열린우리당에서 노무현 정부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후보가 출마하기로 하자 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도를 보이게 됐고 이에 한나라당에서는 대중적 인기가 있었던 오세훈의 영입에 나섰다. 

오세훈은 서울시장에 도전하기로 한 뒤 당내 경선을 통과해 강금실 후보도 꺾으며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오세훈의 첫 서울시장 임기의 열쇠말은 ‘창의 시정’과 ‘디자인 서울’이었다.

공무원 조직에 만연한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주의, 보신주의 등을 혁파하고 시정에 창의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세계적 도시인 서울에 디자인적 요소를 더하고자 했다.

창의시정 차원에서 공무원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상상뱅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상상뱅크를 통해 아이디어가 실제 시정에 반영되는 결과들도 나왔다.

공무원뿐 아니라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도입해 시민 제안도 받았다. 서울시는 천만상상 오아시스로 유엔 공공행정상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공무원들의 업무능력 제고를 위해 ‘현장시정추진단’을 만들어 근무태도가 불량하거나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을 단순 현장업무에 투입하기도 했다. 이는 공무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디자인 서울은 창의적 디자인을 통해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세빛섬 등이 그 일환으로 건설됐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시작해 한강공원 주변을 꾸미는 작업도 시행했다.

이는 서울시가 2010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디자인 창의도시’에 지정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오세훈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참여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사상 처음으로 재선 서울시장이 되며 대선주자 반열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두 번째 임기는 순탄치 않았다.

2011년 7월 서울에 폭우가 내려 큰 피해를 입었는데 오세훈이 시장이 된 뒤 추진했던 디자인 서울 사업이 수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디자인에 공을 들이느라 배수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세훈 취임 뒤 수해방지 예산도 줄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선주자로까지 꼽혔던 오세훈이 10년의 야인생활을 해야 했던 원인을 제공한 ‘무상급식 논란’도 이 때 불거졌다.
▲ 오세훈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가 2016년 3월9일 주민과 악수하고 있다. <오세훈 페이스북>
△국회의원 활동
오세훈은 2000년 16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을 받았다. 서울 강남구을 선거구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4년 동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자금법을 발의했고 이 법이 통과되며 정치자금 후원 상한액이 500만 원으로 정해졌다.

오세훈은 초선 의원으로서 소장개혁파 의원들과 함께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는 남경필, 정병국, 원희룡 의원 등 젊은 의원들도 함께 했는데 오세훈은 2001년에 이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오세훈은 제왕적 총재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개혁적 목소리를 냈다.

2004년 제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과 한나라당 공천혁명의 밑거름이 되려 한다며 불출마하겠다고 했고 말한대로 출마하지 않았다.

△변호사와 방송 진행자
오세훈은 변호사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게 됐고 방송 활동을 하며 인지도를 더 높였다.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8년 육군에 입대해 보안사령부 공보정훈장교로 복무해 중위 제대했다.

1991년에 변호사 개업을 한 뒤 일조권과 관련해 인천의 한 아파트 주민집단소송 사건을 맡게 됐다.

건설사가 아파트 간격을 지나치게 가깝게 하여 햇볕이 들지 않아 고통 받던 주민들이 공동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던 사건이다.

이전까지 일조권과 관련한 법적 논의가 활발하지 않았을 뿐더러 당시 헌법에 명시된 환경권에 관한 판례도 없었다.

오세훈은 2년6개월에 걸친 법정 다툼을 이어간 끝에 대형건설사를 상대로 13억 원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환경운동 쪽에 가담하기도 했고 1992년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장을 맡아 무료상담을 하기도 했다.

유명세도 탔다.

방송 출연 기회도 얻게 돼 MBC ‘오변호사 배변호사’에서 배금자 변호사와 함께 방송 진행을 맡았다. 이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는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름과 얼굴을 알리게 됐다.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경원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했고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를 맡았다.


◆ 비전과 과제
▲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이 2004년 1월6일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세훈 블로그>
2021년 4월 보궐선거로 서울시장에 당선됐기 때문에 임기가 1년 정도로 짧다.

정권 심판론 분위기 덕분에 보궐선거에서 비교적 큰 표 차이로 승리하긴 했다. 하지만 2022년 서울시장 선거까지 1년 사이 민심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최대한 빠르게 시정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2022년 서울시장 선거는 그보다 앞서 열리는 대통령선거의 결과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오세훈은 전임 박원순 시장과는 전혀 다른 부동산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박원순 전 시장이 부동산 불로소득에 강하게 반대하며 규제 위주의 정책을 추진한 데 반해 오세훈은 재개발‧재건축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코로나19 방역에서는 일정 부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희생이 불가피한 ‘규제방역’이 아닌 ‘상생방역’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런 오세훈표 서울시정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도 있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많이 나온다.

여론 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오세훈의 서울형 상생방역을 두고 코로나19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51.4%로 나타났다. ‘도움 될 것’이라는 응답은 41.8%,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6.9%로 집계됐다.

이번 여론조사는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2021년 4월13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에게 응답을 받아 이뤄졌다. 신뢰 수준 95%에 표본 오차는 ±4.4%포인트다.

오세훈은 선별적 복지제도인 ‘안심소득’의 성공적 정착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안심소득은 보편적 소득지급 정책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과 구별되는 것으로 앞으로 오세훈의 대표적 정책 브랜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장으로 10년 만에 공직에 복귀하면서 다음 대선주자로서 기대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승리한다면 대선주자로서 더 큰 입지를 마련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2022년 대선에 바로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보궐선거기간 대선 불출마를 거듭 약속했기 때문에 쉽사리 약속을 깨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평가


승부사 기질이 있어 정치 여정 내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초선 의원 시절 재선이 거의 확실한 서울 강남구을을 지역구로 뒀으면서도 당의 개혁을 부르짖으며 스스로 출마를 접었다.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 덕분에 오세훈에게 소장개혁파로서 이미지가 더 공고해졌고 이후 정치경력이 화려한 당 안팎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서울시장에 오르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성격 탓에 경솔하다는 말도 듣는다.

서울시장 재직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가 중도사퇴하며 10년 동안 서울시장을 상대 진영에 넘겨줘야 했기에 당에도 피해를 끼친 셈이 됐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으로 나온다면 스스로 도전을 접겠다는 ‘조건부 출마’를 내걸며 당에서 경솔하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대일고, 고려대 동문인 박형준 부산시장과 나란히 202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둘 다 오랜 공백 기간을 끝내고 정치권에 복귀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큰 키에 얼굴도 잘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변호사로서 유명세를 떨친 데다 외모도 준수해서인지 연예인이 아니지만 아파트, 양복, 정수기 CF를 찍기도 했다.

키 181cm에 몸무게 76kg이다.

원래 허약체질이어서 큰 키에도 불구하고 대학교 때까지 53kg이었다고 한다. 마른 몸 때문에 별명이 와리바시(젓가락의 일본말), 해골박쥐, 잠새우였다고 스스로 말한 적도 있다.

법대생 시절 고시공부를 해야 하는데 체력이 약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 체력이 붙어 마라톤이나 철인삼종 경기 등에 출전할 정도가 됐다.

취미는 독서이며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존경하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다.

기억에 남는 책으로 ‘채근담’과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저서)를 꼽았다.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다.

좋아하는 노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다.

◆ 사건사고
▲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왼쪽)이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함께 기자회견 하는 모습. <오세훈 블로그>
△내곡동 처가 땅 의혹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오세훈이 과거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처가가 소유한 땅이 있는 내곡동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해달라고 국토해양부에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오세훈은 선거 과정 내내 자신은 내곡동 처가 땅이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하는 데 관여한 바가 없으며 해당 땅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쪽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오세훈을 궁지에 몰아 넣으려 했지만 결정적 한방이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정권 심판론 분위기에 오세훈의 의혹도 덮여져 관련 의혹이 승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오세훈은 내곡동 땅 의혹을 해명하면서 자주 말을 바꾸며 거짓말 논란을 빚었다.

오세훈은 처음에는 땅의 존재와 위치를 모른다고 했지만 공직자 신고 때 이 땅을 신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자 처가에 땅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며 약간 다른 해명을 다시 내놓았다.

내곡동 땅 측량현장에 간 적이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오세훈을 봤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자 “기억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의혹이 완전히 풀린 것이 아니고 이와 관련해 민주당이 법적 조치를 진행하고 있어서 나중에도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질 여지는 남아 있다.

△재보선 때 설화, 조선족 비하와 VIP 해프닝 등
오세훈은 2021년 4월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말 실수를 연발하며 비판을 받았다.

오세훈은 2021년 1월28일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고성국TV’에 출연해 지난 총선 때 서울 광진구갑 선거구에서 고민정 의원에게 패배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양꼬치 거리에 조선족에서 귀화한 사람 몇 만 명이 산다”며 “이 사람들 90%가 친민주당 성향”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을 두고 귀화주민과 특정민족을 비하하고 혐오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2021년 2월2일에는 북한 원자력발전소 지원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파일 이름에 ‘v’자가 들어가는 산업통상자원부 문건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됐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자 자신의 말을 거둬들이며 유감을 표명했다.

‘v’자가 대통령을 언급할 때 쓰는 ‘VIP’의 약자로 볼 수 있다며 의혹을 제기한 것인데 일반적 상황에서 ‘v’가 버전(version)을 뜻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사정을 몰랐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놓고 ‘중증 치매 환자’라고 표현한 과거 발언 등도 선거 과정에서 도마에 올랐다.

△21대 총선 때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 빚어
오세훈은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사는 아파트의 경비‧청소 노동자들에게 명절에 현금으로 5만~10만 원씩 120만 원을 줬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오세훈은 “선거 때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는데 경솔한 처신을 크게 반성한다”며 “더욱 준법선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성명을 냈다.

오세훈에 따르면 매년 설과 추석 명절마다 아파트 노동자들에게 격려금을 줬다고 한다.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일로 판단했다고도 했다.

또 치매를 겪는 어머니가 귀가할 때마다 경비노동자들이 집까지 동행해 줘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2020년 10월7일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2011년 서울 수해로 책임론
2011년 여름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큰 폭우가 쏟아지며 서울 곳곳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강남권 등에 교통이 마비되고 우면산에 산사태로 인명피해까지 나왔다.

이 때문에 시장으로 있던 오세훈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컸다. 서울시가 수해 방지 예산을 줄인 탓에 폭우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 경력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7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시보로 일했다.

1988년 국군 보안사령부 공보정훈장교로 임관해 복무했다.

1991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1996~2000년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 시민법률상담실장을 맡았다.

1997~2000년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겸임교수에 올랐다.

1997~2004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위원을 맡았다.

1998년 미국 예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객원교수를 지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3년 한나라당 원내부총무를 맡았다.

2004년 법무법인 지성 대표변호사에 올랐다.

2006년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11년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2011년 영국 킹스칼리지 공공정책대학원 연구원을 맡았다.

2013년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에 올랐다.

2016년 새누리당 서울종로구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2017년 바른정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2018~2109년 자유한국당 국가미래비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9년 자유한국당 서울광진구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당선됐다.

◆ 학력

1979년 서울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배우자 송현옥씨와 슬하에 두 딸을 뒀다.

여동생은 오세현씨는 SK텔레콤 블록체인‧인증사업본부장이다.

◆ 상훈 

2009년 유엔(UN) 공공행정상(UNPSA)을 받았다.

2019년 대한민국공공정책대상 지방자치부문대상을 수상했다.

◆ 기타

오세훈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59억3086억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2021년 3월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공개된 오세훈의 재산내역을 보면 본인과 배우자 공동명의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연립주택 22억1600만 원, 본인 명의 광진구 전세보증금 11억5천만 원, 배우자 명의의 경기도 고양시 땅 1억7844만 원 등이 신고됐다.

본인과 배우자 예금 23억9492만 원, 증권 11억9950만 원, 배우자가 지닌 조각품 5500만 원 등도 있다.

1991년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

‘미래’(2019), ‘왜 지금 공존과 상생인가?’(2016),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가?’(2016),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페루 리마 일기)’(2015)‘,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르완다 키갈리 일기)‘(2015), '오후의 서울 산책’(2011), ‘서울은 불가능이 없는 도시다’(2010),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1995)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 어록
▲ 30대 초반의 오세훈 변호사. <오세훈 블로그>
"주택공급 속도가 중요하고 앞으로 그 방향으로 가겠지만 가격 안정화를 위한 예방책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주요 재건축단지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즉시 검토해야 한다." (2021/04/16, 서울시 주택건축본부 업무보고에서)

"신중하지만 신속하게, 신속하지만 신중하게 업무를 추진하도록 하겠다." (2021/04/11,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부동산정책협의회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안 갔다. 그러나 기억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1/03/29, MBC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토론회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로부터 내곡동 측량 현장에 갔냐고 추궁받자)

“서울시민 여러분에게 진 마음의 빚을 일로서 갚을 수 있는 날을 고대해 왔다.” (2021/03/23,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승리한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꼬치 거리에 조선족에서 귀화한 사람 몇 만 명이 산다. 이 사람들 90%가 친민주당 성향이다.” (2021/1/28, 유튜브 채널 ‘고성국TV’에서)

“가급적 나 외에 다른 좋은 서울시장 대안이 당에서 나서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0/11/15,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

“선거 때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는데 경솔한 처신을 크게 반성한다.” (2020/03/04,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이 나오자 입장문을 내고 해명하며)

“특정 지역, 특정 이념만 추종하는 정당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2019/02/12,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저의 입당이 한국 야당의 새로운 미래를 열고 국민들의 삶을 낫게 하는 정치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길 소망한다.” (2018/11/28, 페이스북에서)

“아무리 험난해도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복지 방향을 정립하지 않으면 우리 서울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 (2011/08/21, 무상급식 전면 확대에 반대하면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투표로 끝날 것이다. 주민투표 안 하면 4년 내내 가기 때문에 주민투표로 간다.” (2011/01/17,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필요성을 설명하며)

"창의적 디자인으로 도시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이를 성장동력으로 삼아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 (2007/04/23, 서울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치개혁과 한나라당의 공천혁명에 밑거름이 되기 위해 17대 총선에 나가지 않는 것은 물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2004/01/06, 동아일보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17대 총선 불출마 결심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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