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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때문에 제주항공뿐만 아니라 항공업계가 큰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이번 기회에 차별화된 서비스와 마케팅, 공격적 경영으로 국내 후발 LCC들과의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 "국내 항공업계 '빅3'로 도약하는 동시에 동북아시아 대표 LCC로 자리매김하도록 하자"(2015년 6월 제주항공 최규남 대표이사 및 고위 임원들과의 회의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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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입사해 처음으로 월례조회에서 무대 위에 섰다. 향후 10년 안에 자산규모 10조 원의 재계 20위 그룹사로 도약하겠다.”(2007년 12월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12월 월례조회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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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뛰어난 지력과 감성을 갖춰도 힘든 시간 없이 그냥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성공을 위해서 어둡고 긴 터널을 견딜 수 있는 지구력이 중요한 것 같다.”(2007년 11월 언론과 인터뷰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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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의 탄생은 경쟁을 심화시킨다기보다 오히려 가격 경쟁력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고 보는 게 맞다.”(2006년 5월 언론과 인터뷰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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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항공사들이 제주항공을 경쟁상대로 봐 초기부터 ‘죽어봐라’는 식으로 값내리기를 하면 서로 손해를 보게 된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쪽으로 봐야한다.”(2006년 5월 언론과 인터뷰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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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이 좋은 회사로 영속하길 바라지만, 언제까지 채씨 집안만의 회사로 이어질 수 있겠나. 본인이 원한다 해도 능력을 인정받는 경영인으로 성장한다면 모를까 이 자리를 그대로 물려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2006년 5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데 대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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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유럽과 미국 저가 항공사들의 성공 사례를 눈여겨 봐왔다. 나라가 비좁기는 해도 이런 항공사 하나쯤 생길 것으로 봤고 생긴다면 제주를 기반으로 할 것으로 생각했다.”(2006년 5월 언론과 인터뷰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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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으로부터 얼마나 사랑받는가가 지역항공사의 시발점이다. 가급적이면 허가를 빨리 받아내 최대한 빨리 취항하도록 노력하겠다. 제주지역항공사가 실패하면 민항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반드시 성공하도록 하겠다.”(2004년 11월 제주도가 추진하는 제주지역항공사 사업 파트너로 선정된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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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이 물건만 팔던 시대는 지났다. 쇼핑은 물론 생활서비스와 레저, 건강, 교육 등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합 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2001년 12월 언론과 인터뷰에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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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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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경영인답지 않게 겸손하고 소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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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큰 혜택을 받았는데 20평대 아파트에 사는 직원들이 30평대로 이사가려면 주식 상장으로 그 과실을 스톡옵션 등을 통해 나눠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며 “5년 안에 2~3개 기업을 거래소에 상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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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인 장영신 회장에 대한 효심이 깊고 형제 간 우애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형석은 신규사업만을 챙길 뿐 동생과 매제를 비롯해 전문경영인에게 계열사 경영을 맡기는 스타일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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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선수범을 최우선 덕목으로 꼽을 만큼 책임감이 강하면서도 조용하고 침착한 편으로 알려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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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도 매우 소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 사무실에는 돈 쓸 필요가 없다. 사무환경만 조성하면 된다”는 그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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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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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1녀 중 맏아들로 10살 때 아버지를 잃고 장남 역할을 맡아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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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장영신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사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장영신 회장을 꼽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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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일찍 들고 새벽 4~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밥을 꼭 챙겨먹고 업무를 처리한다고 한다. 모든 신문을 샅샅이 읽은 뒤 7시30분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직원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출근시간을 늦춘 것이라고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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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제주도와 제주항공을 만들었다. 당시 항공사업에 대해 관심이 있었으며 제주도가 지역항공사를 설립한다는 것을 알고 6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지역항공사 설립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고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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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에 걸쳐 이어진 제주와 인연도 항공사업 진출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관직에 있던 고조부가 제주도로 귀양살이오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증조부모 묘소도 제주에 있고, 조부는 제주현감까지 지냈다. 아버지 채몽인 애경그룹 창업주도 제주에서 태어났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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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석이 회장 자리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아직 부회장에 머물고 있다. 큰 욕심이 없다고 전해진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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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인 채동석 부회장과 한 집무실을 쓴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에 대해 “나는 새벽같이 사무실에 나와 있고 동생은 느릿느릿 나타나는데 동생이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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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식사 약속은 물론 술자리도 마련하지 않고 일찍 퇴근한다. 스스로 “8시 저녁뉴스를 미처 다 보지 못할 정도로 초저녁 잠이 많다. 저녁을 먹다가도 7시30분 정도가 되면 졸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상대방한테 실례가 될까봐 가급적 저녁식사 약속을 안 한다”고 털어놓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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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대표이사 시절, 주차장에서 직접 주차 안내에 나서기도 했고 직원들의 생일 때 손수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했다. 임직원들은 물론 외부 인사 누구를 만나든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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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ㆍ매부지간인 안용찬 제주항공 부회장과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지금도 단짝친구처럼 지낸다. 같은 연배인 두 사람은 신실한 경영 파트너이자 든든한 조언자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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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설립 당시 애경그룹이 항공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항공사업을 밀어붙였다. 그 뒤 제주항공이 2010년까지 5년 연속 적자를 내는 위기 속에서도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