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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소재 국산화 일군 공학도, 도전 멈추지 않아 [2021년] 
성보미 기자 sbomi@businesspost.co.kr 2021-03-02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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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허진규는 일진그룹 회장이다.

일진그룹 창업주로 반세기를 넘도록 전력 인프라, IT, 건축, 조명, 바이오 등 다양한 소재·부품 신사업을 개척해왔다.

2008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뒤 장남인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 차남인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이사와 함께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1940년 12월1일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부곡리에서 7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1963년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1968년 28살의 젊은 나이로 일진을 창업한 뒤 동복강선, 공업용 다이아몬드, 일렉포일 등 첨단 부품‧소재 개발에 주력해 왔다.

10년 넘는 연구기간과 수천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쏟아붓는 ‘뚝심경영’으로 동복강선과 공업용 다이아몬드, 일렉포일(동박) 등 소재 국산화를 이뤄냈다.

‘남들이 쉽게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과 ‘국내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 기술은 반드시 개발한다’는 것을 경영원칙으로 삼고 있다.

공학을 향한 애착이 깊어 공학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을 지냈다.

현장경영을 중시하고 직원들과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도전을 멈추지 않으며 시작한 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경영활동의 공과


△일진머티리얼즈, 일렉포일 국내 최초로 개발
일진머티리얼즈는 오랜 노력 끝에 전자 산업의 필수소재인 ‘일렉포일(동박)’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일진그룹의 핵심 계열사 가운데 하나이다.

앞서 허진규는 1978년 서울대 공대와 동박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계약을 체결해 동박 기술 국산화 연구에 들어갔다.

동박 기술 연구는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인 김윤근 박사를 주축으로 진행됐다.

동박은 구리를 고도의 공정 기술을 통해 얇게 편 구리막으로 2차전지 음극재에 들어가는 핵심소재다. 얇으면 얇을수록 더 많은 음극활물질을 담을 수 있어 배터리 용량은 늘리고 무게는 가볍게 할 수 있다.

허진규는 동박 기술 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지만 불량률이 높아 상용화하는 데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오랜 고생 끝에 드디어 1988년 불량률이 낮고 가격 경쟁력이 높은 인쇄회로기판(PCB)용 동박 생산에 성공했다. 2001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전기차배터리용 동박 상용화를 추진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국내 동박 제조분야 대표적 기업으로 글로벌 동박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르는 등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2019년 기준으로 전기차배터리용 동박시장 점유율은 집계가 어려운 중국 왓슨을 제외하면 대만 창춘(CCP)이 12.9%를 차지해 1위에 올라있다고 배터리업계는 바라봤다.

그 뒤를 일진머티리얼즈(9.7%), SK넥실리스(7.4%), 일본의 후라카와(2.8%)와 니폰덴카이(2.3%) 등이 따르고 있다. 솔루스첨단소재는 2020년 11월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일진머티리얼즈의 시가총액은 2021년 2월 기준 3조6889억 원으로 일진그룹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2014년 말까지 일진홀딩스, 일진전기, 일진다이아몬드 등 3곳의 시가총액 합은 7천억 원대 수준으로 일진머티리얼즈(당시 2798억 원)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전기차시장 성장과 함께 일진머티리얼즈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일진그룹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계열사로 도약했다.

일진머티리얼즈의 매출도 좋아지고 있다. 2013년 연결 매출 3499억 원에서 2019년 5502억 원으로 늘어났다.

수익성 역시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2012년 영업손실 68억 원을 낸 뒤 2013년 영업손실 148억 원, 2014년 영업손실 286억 원을 계속 냈다. 2015년 영업이익 144억 원을 올리면서 흑자전환에 성공한 뒤 2019년 영업이익 468억 원 규모로 늘어났다.

일진머티리얼즈는 국내 익산 공장에 1만5천톤 규모의 동박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공장은 생산능력이 2021년 2월 현재 연 2만톤에 이른다. 하지만 2021년 말에는 4만톤까지 늘릴 계획을 잡아놓고 있다. 모두 5만5천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헝가리에도 동박 후공정 신규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전기차시장 흐름에 발맞춰 생산능력을 늘리면서 실적도 가파르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업계에서는 일진머티리얼즈의 동박사업이 1988년 국산화에 성공한 뒤 20여년 만에 수확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일진머티리얼즈가 일진그룹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사업으로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Who Is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 일진그룹 지주회사 일진홀딩스 연결 실적.
△일진홀딩스를 통해 지주사체제로 전환
일진그룹이 지주회사 일진홀딩스를 중심으로 한 지주사제체로 전환했다.

일진그룹은 2008년 4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일진그룹은 작은 계열사들이 많은 중견그룹으로 계열사별로 사업을 전문화하고 일진그룹 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지주회사가 필요한 데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일진그룹은 이에 따라 주력 계열사인 일진전기와 일진다이아몬드의 투자사업부문을 분할한 뒤 합병해 순수 지주회사인 일진홀딩스를 설립했다.

일진홀딩스는 제조사업 등을 담당하지 않고 자회사들의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는 순수지주회사로서 신사업 발굴과 투자사업을 담당한다.

일진홀딩스는 상장사인 일진전기, 일진다이아몬드와 비상장사인 전주방송, 일진디앤코, 알피니언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일진전기를 인적불할해 전선 및 전력사업부문은 신설 일진전기로, 부동산사업부문은 일진디앤코로 쪼갰다.

허진규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승계작업을 위한 기반도 마련했다.

허진규는 그동안 핵심 계열사인 일진전기와 일진다이아몬드, 일진디스플레이의 지분을 보유해 그룹을 지배했다.

그런데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뒤 장남 허정석씨가 일진홀딩스 지분 29.1%를 보유하며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차남 허재명씨는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일진복합소재, 수소 연료탱크를 제조하는 국내 유일 기업
일진복합소재는 수소차에 들어가는 수소 연료탱크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조하고 있다. 한국복합재료연구소가 전신이다.

일진복합소재는 전북 완주에 생산공장을 운영하며 드론, 트럭, 버스 등에 들어가는 각종 수소 연료탱크를 제조한다. 매연 저감장치 개발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대주주는 지분 86.9%를 소유한 일진다이아몬드다.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사인 일진다이아몬드는 사업 다각화를 위해 2012년 11월 일진복합소재 경영권 지분을 인수했다. 그 뒤 10년 가까이 최대주주로 있으면서 일진복합소재를 자산총액 770억 원의 우량기업으로 키워냈다.

일진복합소재의 수소탱크는 기술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가장 진화한 수소탱크 모델인 '타입4'를 양산하는 곳은 세계에서 일진복합소재와 토요타밖에 없다.

타입4는 고강도 플라스틱 재질의 원통형 용기에 탄소섬유를 감아 만든다. 철재인 타입1보다 무게가 훨씬 가볍고 강도도 10배 이상 높아 수소 전기차의 핵심 부품으로 쓰인다.

주요 고객은 현대자동차다. 2014년 현대자동차의 1세대 수소차인 '투싼 FCEV'에 연료탱크를 공급하며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 뒤 현대자동차의 수소차 개발에 맞춰 연료탱크의 사양과 품질을 발전시켰다. 2018년부터는 차세대 수소전기차인 넥쏘(Nexo)에 들어가는 연료탱크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일진복합소재는 넥쏘 이외에 현대자동차가 생산하는 수소전기 경찰버스와 광역버스에 장착되는 연료탱크와 모듈도 공급한다.

현대자동차가 수소차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일진복합소재의 수소탱크 납품량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진복합소재는 늘어나는 현대자동차의 수요에 맞춰 생산 인프라 증설을 결정했다. 수소탱크 제조를 전담하는 제 2공장과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센터를 2021년 안에 완공할 계획을 세워뒀다.

일진복합소재는 생산시설 증설에 쓸 자금 조달을 위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의 거래를 본격 시작한 2018년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9년 역대 최대 규모의 실적을 거뒀다. 매출 885억 원, 영업이익 120억 원을 냈다.

외형 확장에 맞춰 중장기 매출액 목표도 2027년 1조 원으로 올려 잡았다.

일진복합소재는 현대자동차 이외에 북미, 유럽의 완성차 제조사와도 수소탱크 공급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ho Is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왼쪽)이 2017년 4월6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서울대 공대 ‘한 우물 파기로 홈런치기’ 프로젝트 기금으로 9억원을 쾌척하고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대 공과대학 공대뉴스>
△일진다이아몬드, 공업용 다이아몬드 국산화 성공해 세계 3대 기업으로 도약
일진다이아몬드가 공업용 다이아몬드 국산화에 성공하며 세계 3대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회사로 도약했다.

허진규는 1985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공업용 다이아몬드 공동연구개발을 시작했다.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광물로 구리나 은보다 전도율이 높다. 때문에 전기, 전자, 반도체 제조부터 의학, 우주 연구, 자동차산업까지 방대한 영역에서 널리 쓰인다.

1980년대 자동차산업이 활성화하면서 다이아몬드의 수요가 급증했다. 당시 공업용 다이아몬드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와 영국 드비어스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허진규는 1987년 6월 공업용 다이아몬드 생산에 성공하며 전 세계에 3번째로 공업용 다이아모드를 생산하는 회사로 부상했다.

이에 과점 통제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한 제너럴일렉트릭이 일진의 다이아몬드 기술을 두고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면서 소송을 걸었다.

소송은 4년 동안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7년 생산중단’ 판결을 받고 생산중단을 하지 않는다면 법정 모독에 따른 패널티로 하루에 30만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극한 상황까지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허진규는 포기하지 않았다.

허진규는 결국 4년 동안 진행된 소송전에서 거대한 미국 기업을 상대로 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이겼고 끝내 협상을 통해 다이아몬드 기술을 지켜낼 수 있었다.

△신소재공동연구소를 지어 서울대 공대에 기증
허진규가 1990년 신소재공동연구소를 설립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기증했다. 기업이 연구소를 설립해 대학에 기증하는 것은 국내 최초 사례다.

허진규는 당시 35억 원을 기부했는데 이는 1990년 일진 영업이익의 절반을 차지했다.

무리한 결정이 될 수도 있지만 국내 산업이 소재와 부품을 수입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해 결정을 밀어부친 것으로 전해졌다.

신소재공동연구소에는 금속재료부, 전자재료부, 요업재료부, 섬유 및 고분자재료부 등 4개 부서가 들어가 있다.

허진규는 1993년 덕명학술문화재단(현 일진과학기술문화재단)을 설립해 장학금 지원, 연구비 보조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또한 해마다 공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을 발굴해 한국공학한림원 ‘일진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동녕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연구원과 동복강선 공동 개발
허진규가 1976년 이동녕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연구원과 동복강선 공동 개발에 성공했다.

동복강선은 전기의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철선 표면을 구리로 코팅한 전선으로 쓰임새가 워낙 커서 농촌 근대화를 앞당긴 산물로도 꼽힌다.

일진전기가 개발한 동복강선 덕에 전국 구석구석에 호롱불 대신 전깃불이 들어갈 수 있었다는 말도 있다.

허진규는 1974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동복강선 공동연구를 위해 3천만 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했다. 3천만 원은 당시 일진의 자본금과 똑같은 금액으로 6년차 중소기업이 이 금액을 투입해 프로젝트에 투자했다는 것은 회사의 운명을 걸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허진규는 투자한 지 2년 만에 파일럿플랜트(시험용 공장)를 운영해 동복강선 개발에 성공했다.

허진규는 이에 동복강선을 실제로 시장에서 팔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500달러 규모의 중동 동복강선 입찰공고에 참여했는데 수주에 성공했다.

당시 파일럿플랜트만 보유하고 있어 대규모 생산이 어려워 정해진 납기일 안에 물량을 모두 생산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허진규는 생산지연으로 패널티(벌금)를 물어줘야 할 위기에 몰렸다. 하루에 계약금의 1천분의 3을 배상해야 해 1년이면 계약금 전체를 돌려줘야 했다.

하지만 때마침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면서 불가항력 조항을 이용해 납기일을 1년 연장하면서 연체료를 물지 않고 제때 납품한 일화가 전해진다.

△28살 나이로 창업, 일진그룹의 모태 일진금속공업 설립
허진규가 1968년 1월22일 서울 영등포구 노량진동 211의 53번지 집 앞마당에서 일진금속공업(현 일진전기)을 창립했다. 이 때 28살이었다.

창업자금은 30만 원으로 시작했다. 100kg 흑연 도가니를 비롯해 목형 같은 기본 주물설비를 사다가 앞마당에 설치한 것이 시작이었다.

종업원 2명을 뽑고 ‘일진’이라는 회사이름으로 시작했다. 일진은 날마다 앞을 향해 전진한다는 뜻이다.

김희수 전 일진전기 대표이사 사장은 “허 회장은 차고에서 창업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구글의 래리 페이지를 연상케 하는 한국의 1세대 벤처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일진금속이 먼저 생산한 제품은 선풍기에 쓰이는 알루미늄 부품이었다. 이는 삼양전기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전자제품 생산회사에 납품됐다.

허진규는 이어서 전력공급을 위한 전봇대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데 착안해 변전용 금구류를 국산화하는 데 매진했다.

변전용 금구류는 변전소 변전시설 연결부위에 사용되는 부품으로 전력 공급에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일본, 영국, 독일, 미국 등에서 전량 수입했기 때문에 허진규가 국산화에 공을 들이게 된 것이다.

허진규는 1969년 국내 최초로 변전용 금구류 기술을 완성시켰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일진금속의 기술력을 의심해 처음에는 허진규의 납품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허진규는 이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한국전력 관계자를 설득했고 결국 납품자격 인증시험을 통과해 1969년 한국전력 납품업체로 등록돼 납품계약을 따냈다.

1971년 변전용 금구류의 재료인 알루미늄 모합금 신기술을 개발했으며 1972년 배전용 금구류 알루미늄 제품인 파라렐 크램프를 비롯해 동제품인 터미널 러그 외 여러 제품을 만들어냈다.

△한국차량기계제작소에서 보낸 짧았던 첫 직장생활
허진규가 1965년 3월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단조 제조회사인 한국차량기계제작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차량기계제작소는 일본에 있는 주물공장을 매입해 해체한 뒤 그대로 한국으로 옮겨온 회사다.

허진규는 이곳에서 철근 운반과 절단 작업 등 각종 현장 일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허진규는 입사 1년8개월 만인 1966년 11월 회사 부도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때 ‘미야하라’라고 이름의 공장장이 허진규의 성실한 업무 태도를 눈여겨 봐온 터라 허진규에게 이직보다는 창업을 권유했다고 전해졌다.

이 공장장은 당시 한국에서는 비철금속을 비롯한 주물사업이 이제 막 시작 단계라 성장 전망이 밝다며 들고있던 주물 도면도 함께 건네주며 기술 개발에 참조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오른쪽 맨 앞)이 2020년 6월17일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정기총회 및 관악대상 시상식에서 제22회 관악대상을 받고 있다. <일진그룹>
허진규는 글로벌 시장에서 일진그룹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인수합병에 더욱 적극적 나서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에는 내수시장에 만족하고 모든 생산공정의 내재화를 통한 국산화 및 국내 일자리 창출이 기업의 중요한 가치였지만 앞으로는 글로벌 신성장동력을 찾아 나서야한다.

허진규는 미래사업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진그룹이 성장했던 역사를 되짚어 보면 허진규는 순간마다 남들이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신사업에 감각적으로 투자해왔다.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인 변전용 금구류로 당시로서는 혁신적 사업으로 꼽혔다.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미래 먹거리 창출 여부에 따라 일진그룹의 명운이 달려있다.

일진그룹의 성장을 이끈 신사업도 시간이 지나면 추진력이 떨어지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나가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

허진규는 K자형 전망(경제가 알파벳 K자 모양으로 양극화 돼 가는 상황)이 현실화 되면 일진그룹의 전기차, 수소차 등 관련 경쟁력을 갖춘 친환경사업 계열사는 살아남을 수 있겠으나 전통 제조업의 계열사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응할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허진규에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첨단기술과 혁신 제품을 가려내는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세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던 '일감 몰아주기' 관련 의혹은 일진그룹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일진그룹은 수년 째 오너일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진파트너스와 일진다이아, 일진디애코 등 계열사 사이에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벤처기업 역사의 산 증인과도 같은 50년 일진그룹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 내부거래와 차명계좌 논란 등 구설수에서 벗어나 투명경영에 한발 다가서야 한다.

◆ 평가
[Who Is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2018년 1월19일 서울시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일진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일진그룹>
허진규는 전재산 30만 원을 들고 일진을 창업한 뒤 44개 계열사를 거느린 매출 2조5천억 원의 국내 대표 소재·부품기업으로 키워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불모지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선구안을 지닌 공학계의 개척자로 불린다.

국내 최초의 벤처기업가이자 기술력에 관한 믿음 하나로 창업의 길로 홀로 들어선 공학도 출신의 창업주다.

1968년 창업한 뒤 50년 동안 많은 위기와 고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노력과 집념을 업계에선 높이 평가한다.

그는 2020년 2월24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공학도 출신 허진규라는 한 기업가가 공학기술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많이 한 좋은 엔지니어이자 기업가로 기억되는 게 작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허진규는 '초일류 기업일수록 초일류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직원 면접을 직접 챙길 정도로 인재 욕심이 많은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보다는 공학도이자 엔지니어로 기억되길 바란다. 이에 우수 기술인재 양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허진규는 언론 인터뷰에서 "옛날에는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는 게 애국이었다면 21세기에는 기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연구개발에 몰두하는 엔지니어들이 애국자"라며 "돈은 빌리면 되고 기계는 사면 되지만 인재는 정말 잘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평소 "악착같이 실패하라"고 조언할 정도로 실패를 통해 배우는 도전을 강조한다.

70세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함과 학구열을 보이고 있다. 언론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두문불출형 경영자로 알려졌다.

사건사고
△2019년 횡령 혐의로 고발당해
‘파비농 아울렛 복합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2019년 6월21일 서울서부지검에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과 최진용 전 부회장을 고발했다.

문제의 상가는 일진그룹이 투자했으며 '오쉘윈'이란 회사가 건축·시행을 맡았다.

고발인들은 최진용 부회장이 2009년 1월 일진그룹 계열사 다섯 곳으로부터 출처가 불분명한 수십억 원을 본인 명의 계좌로 받았으며 이후 이 자금을 허 회장의 아들과 딸들이 운영하던 일진캐피탈과 아트테크 등으로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2018년 이미 관련 사항이 증거불충분으로 각하 처분된 적 있으나 고발인들은 계좌 이체내역 등이 담긴 증거를 추가 확보해 조세포탈, 금융실명제법 위반 등 혐의로 허 회장을 추가 고발했다.

이를 놓고 일진그룹 관계자는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이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회사 내에 남아있지도 않은 상황이라 세부적인 내용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8년 조세포탈범 명단에 올라
국세청은 2018년 12월12일 조세포탈범과 불성실 기부금 수령단체,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 위반자의 명단을 확정해 공개했다.

허진규는 2013년 136억 원, 2014년 131억 원 등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별도로 허진규는 2017년 1월에도 홍콩 페이퍼컴퍼니 차명계좌에 묻어둔 1292만 달러(137억 여 원)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2017년 4월 1심에서 벌금 7억 원을 납부하라고 판결했고 허진규가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 동원 의혹
일진그룹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경영 승계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허진규의 장남 허정석 일진전기 대표가 100% 소유한 일진파트너스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매출의 100%를 전부 일진그룹 계열사인 일진전기와 내부거래를 통해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을 토대로 일진홀딩스 지분을 사들여 일진파트너스가 일진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오르게 됐다. 허정석 일진파트너스 사장이 세금 한 푼 들이지 않고 일진그룹 전체를 지배하게 된 셈이다.

일진파트너스뿐만 아니라 일진다이아몬드, 일진디앤코 등도 내부거래가 많아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2018년 2월9일 포항공대 2017학년도 학위수여식에서 명예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발언하고 있다. <일진그룹>
1965년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한국차량기계제작소에 처음 입사했다. 1966년 11월 회사 부도로 퇴사했다.

1968년 일진금속공업(현 일진전기)을 설립했다.

1982년 일진경금속(현 일진제강)을 설립했다.

1984년 일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1987년 일진소재산업(현 일진머티리얼즈)을 설립했다.

1988년 일진다이아몬드와 일진유니스코를 설립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신소재공동연구소를 준공한 뒤 기증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제4대와 제5대 대한민국 ROTC 중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대한민국 ROTC 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2003년 JTV전주방송을 인수했다.

2004년 일진디스플레이를 설립했다.

2005년 한국 코스타리카 친선협회 회장에 올랐다. 같은 해부터 2015년까지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총동창회장을 지냈다.

2008년 10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서울대학교 기술지주 사내이사를 맡았다. 2015년 5월부터 다시 맡고 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발명진흥회 회장을 지냈다.

2008년 바이메드(현 알피니언메디칼시스템)을 인수했다.

2010년부터 2018년 5월까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을 지냈다.

2015년부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육연구재단 이사에 올랐다.

◆ 학력

1959년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3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금속공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전북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박사, 2015년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명예공학박사, 2018년 포항공과대학교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 가족관계

아버지 허병묵씨와 어머니 황성녀씨는 7형제를 뒀다. 허진규는 이 가운데 막내아들이다.

부인 김향식씨는 제41대 국무총리를 지낸 김황식씨의 누나다.

허진규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과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이사 사장, 장녀 허세경 일진반도체 대표이사, 차녀 허승은 일진자동차 최대주주 등이다.

차남 허재명씨는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3녀 박은혜씨와 결혼했다.

◆ 상훈

1996년 10월11일 인촌기념회에서 산업기술부문 제10회 인촌상을 수상했다.

2002년 8월22일 한국무역학회에서 무역인 대상을 받았다.

2006년 12월5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과 한국공학한림원이 공동으로 발표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선정됐다.

2008년 12월22일 지식경제부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기술대상 시상식에서 산업기술진흥유공자 기술진흥부문 최고상인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13년 11월21일 EY한영에서 제7회 EY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을 수상했다.

◆ 기타

1961년 서울대학교 학군단 1기 출신이다. 1963년 소위로 임관해 서울 용산 육군본부 병기감실 조병위원회에서 근무했다. 이곳에서 병기류를 국산화하는 일을 담당했다.

1964년 4월30일 동갑내기 부인 김향식씨와 결혼했다.

201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우리가 닮고 싶은 공대인’에 선정됐다.

일진전기는 2019년 연간 사업보고서를 통해 허진규에게 2019년 한 해 동안 급여 5억 원과 상여 1억2700만 원을 더해 총 6억2700만 원의 보수를 지급했다고 2020년 3월30일 밝혔다.

일진디스플레이는 2019년 연간 사업보고서를 통해 허진규에게 2019년 한 해 동안 보수 총액 5억 원(급여로만 구성)을 지급했다고 2020년 3월30일 밝혔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019년 연간 사업보고서를 통해 허진규에게 2019년 한 해 동안 급여 5억 원과 상여 5억2천만 원을 더해 총 10억2천만 원의 보수를 지급했다고 2020년 3월30일 밝혔다.

어록
[Who Is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왼쪽)이 2015년 11월16일 광주시 북구 광주과학기술원(GIST) 오룡관에서 열린 광주과학기술원 설립 22주년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에서 문승현 광주과학기술연구원 총장으로부터 학위증을 받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
"각 계열사와 사업부가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첨단기술과 혁신 제품을 가려내는 혜안이 절실하다. 미래 사업을 발굴하고 강화하는 데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늘 명심해야 한다. 소의 해를 맞아 뚝심과 근면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우직하게 나아가자." (2021/01/04, 2021년 신년사에서)

"지난 51년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소재부품 분야에서 묵묵히 엔지니어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왔다. 실패를 두려워 않고 도전한다면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머지않아 나올 것으로 굳게 믿는다." (2020/05/07, 아시아엔 서면 인터뷰를 통해)

"실패를 해야 성공한다. 가장 좋은 건 성공하는 사람이다. 실패하는 사람이 그 다음이다. 제일 나쁜 사람은 도전조차 안 하는 사람이다." (2020/02/24, 조선비즈 인터뷰에서)

"남다른 실행력으로 성공적인 혁신의 길을 찾아간다면 과거 50년 동안 일궈낸 성과보다 미래 5년은 더 큰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다." (2019/01/02, 2019년 신년사에서)

"올해 그룹 목표 달성이 녹록지 않을 정도로 위기라고 생각한다. 우리 내부적으로 부족한 것은 없는지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피고 사장단은 유연한 사고로 경영에 임해야 한다." (2018/04/11, 일진그룹 사장단 특강에서)

"큰 회사보다 커가는 회사가 되고싶다." (2018/01/21, 일진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업활동은 100m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이다. 그것도 무거운 짐을 지고 땀을 흘리며 먼 길을 가는 마라톤으로 한 순간에 속도를 냈다 금새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같은 속도로 끝까지 달려야 한다." (2018/01/02, 2018년 신년사에서)

"악착같이 실패하는 것은 모순이지만 한 분야에 끈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진정한 성공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그래야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2017/01/16, 서울경제 인터뷰에서)

"요즘 벤처는 손쉽게 대박을 꿈꾸는 단거리 주자라면 나는 마라톤 경영을 하는 셈이다. 기술을 개발할 때 끈기있게 버티면서 직원들의 성과를 참아주는 편인데 직원들이 먼저 떠날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 (2006/07/24,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짧은 시간에 손쉽게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다. 한 번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기술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소신이다."

"일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06/07/23,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2003년을 일진그룹 전체 사업 매출 1조 원 돌파의 원년으로 삼겠다. 이제껏 그래왔듯 시장을 리드하는 신기술 개발에 더욱 주력할 계획이다." (2002/12/23, 디지털타임스 인터뷰에서)
korea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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