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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1512/20304_30500_267.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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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
이병철은 1910년 2월12일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호는 호암(湖巖)이다. 부유한 지주 이찬우의 둘째로 태어났다.
지수보통학교 3학년으로 입학했고 같은 해 9월 서울 수송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학했다.
중동중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 뒤 중퇴했다.
1926년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인 박기동의 사녀 박두을과 고향에서 결혼했다.
일본의 와세다대학교 전문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가 건강악화와 유학생활에 대한 회의가 겹쳐 대학을 자퇴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진주의 지수보통학교, 서울의 수송보통학교, 중동중학교, 와세다대학까지 연속 네 번이나 중퇴했다.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는데, 토지사업으로 200만 평의 대지주가 됐다.
자본금 3만 원으로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세웠다. 삼성상회는 만주와 북경에 국내산 과일과 건어물을 수출하는 회사였다. 삼성의 삼(三)자는 "크고 강하다"는 뜻으로 사용했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여서 택했다고 알려졌다.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는데, 창립 2년 만에 삼성물산의 수입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삼성물산은 설립 1년 만에 수입업자 가운데 7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세워 다시 무역업을 하게 됐다. 단순히 삼성물산에서 그치지 않고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해 제조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제일제당은 삼성그룹 최초의 제조업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 생산 공장을 지니게 됐다.
그 뒤 동방생명, 신세계백화점, 안국화재보험, 전주제지, 성균관대학교 등을 인수해 경영했다.
중앙개발, 고려병원, 한국비료, 삼성전자, 제일합섬, 삼성중공업을 세웠다. 동양방송, 중앙일보 등을 세워 TV, 라디오 방송업계까지 진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를 창설하여 1961년부터 1987년까지 오랫 동안 초대 회장을 맡았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를 설립해 삼성그룹 육성의 기반을 만들었다. 삼성석유화학, 삼성중공업을 세워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했고 그 뒤로 용인자연농원, 삼성 정밀 등을 세웠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를 합병해 삼성전자로 단일화하고 상호를 삼성전자로 바꿨다. 그 뒤 삼성반도체 통신을 세웠다.
이 외에도 삼성문화재단, 삼성사회복지재단 등도 설립하여 이사장에 취임했다. 또 백화점과 호텔경영에도 참가하는 등 많은 회사를 설립해 인수하거나 합병하여 재벌기업을 형성했다.
금탑산업 훈장을 비롯해 세계 최고경영인 상들까지 모두 받아 한국경제계를 대표하는 기업가로 자리잡았다.
고미술품에도 관심이 있어 수많은 미술품을 소장해 오다가 호암미술관을 건립했다. 국악과 서예에도 관심을 가졌다. 보스턴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11월 77세에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병철의 묘소는 현재 용인에버랜드에 위치하고 있다.
장남인 이맹희에게 그룹의 경영을 맡겼다가 의견충돌을 겪었다. 결국 삼남인 이건희에게 그룹을 넘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