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임명
최재성은 2020년 8월10일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지낼 때 당내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친문 핵심’ 정치인으로 자리잡았는데 이런 이력이 정무수석 발탁의 배경으로 꼽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친노세력과 비노세력의 갈등이 격화했던 시기에 문 대표의 방패를 자처하기도 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최재성의 정무수석 임명 배경을 놓고 “시민운동을 하다 정계에 입문해 여당 대변인, 사무총장 등 당내 요직을 두루 거친 4선 의원 출신”이라며 “정무적 역량 뿐만 아니라 추진력과 기획력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데 야당과 활발한 소통을 바탕으로 국정과제의 원활한 추진, 여야 협치, 국민통합 진전에 기여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부동산정책 실패와 청와대 참모진의 다주택자 보유 논란에 강기정 정무수석이 물러난 데 따른 인사다.
최재성은 2020년 8월13일 취임인사에서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성공하면 국민도 좋다. 대통령이 실패하면 국민이 어렵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충심으로 보필하겠다. 충언을 아끼거나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을 하늘같이 생각하고 국민께 믿음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며 “야당은 진심으로 대하고 소통 아닌 대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 ▲ 최재성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이 2020년 8월17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정당 대표 대화 등 국회와의 소통 방안에 대해 브리핑하기 위해 춘추관 브링핑룸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최재성은 2020년 4월15일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송파구을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배현진 미래통합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출구조사부터 큰 차이로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결과를 뒤집지 못했다. 최재성이 출마한 선거에서 낙선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4선 중진 의원으로서 당내 입지뿐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입지도 단단했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신인인 배 후보에게 밀린 것을 놓고 치명상을 입은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최재성이 더불어민주당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압승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내 입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당내 안팎의 평가도 동시에 나왔다.
최재성은 낙선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강남3구와 영남은 다시 민주당의 동토가 됐다”며 패배 인정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 경제보복 대응 특별위원회 위원장 활동
최재성은 2019년 7월 본격화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최재성은 2019년 7월11일 일본경제보복대책특별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명백한 경제도발이자 침략”이라며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성뿐만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일본 내 보수 결집· 동북아 안보문제·정보사업에서 주도권 확보 등 복합적이고 전략적 보복행위”라며 일본의 경제보복조치를 규정했다.
경제보복이라는 단어를 경제침략으로 규정하며 이것이 상황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라며 강하게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최재성은 일본의 경제침략 지속으로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 보호협정인 ‘지소미아(GSOMIA)’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도 보였다.
최재성은 2019년 7월30일 “지소미아의 전제는 두 나라 사이 신뢰인데 신뢰가 깨지면 어떻게 안보와 관련한 협정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며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상황에서 지소미아 연장에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헌법 개정 시도를 놓고 “일본이 전범국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라며 “우리뿐 아니라 국제사회마저 기만하는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일본에 경제적 타격을 가해야 한다며 방사능 위험에 따른 여행 금지구역 확대 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 ▲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위원장이 2019년 8월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특위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8년 국회의원 재선거 당선으로 4선 의원, 당대표 도전에는 실패
최재성은 2018년 3월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송파구을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해 야인으로 돌아간지 약 1년 반 만이다.
최재성은 “정치혁신의 길을 가기 위해 출마를 선언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열고 있는 새로운 대한민국에 헌신하겠다”며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렸던 제가 국민의 손발이 되고 당원들의 심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2018년 6월13일 치러진 선거에서 54.4%의 득표율을 얻어 배현진 자유한국당 후보를 넉넉하게 제치고 4선 고지에 올랐다. 20대 국회에서 숫자는 많지만 초재선 의원이 많아 구심점을 해줄 중진 의원이 필요한 더불어민주당 입장으로서는 최재성의 당선을 반가워 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재성은 이후 당권을 잡기 위한 행보를 가속화했다.
최재성은 2018년 7월11일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이번은 총선 당권이다. 시스템정당으로 가는 자기 비전이 있고 실행력 있는 혁신이 필요하다”며 “관리형 리더십은 실체가 없다. 혁신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통령과 관계에서 당의 현안을 잘 설명하고 이해를 같이하는 동반자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문 핵심으로 꼽히는 그가 당대표의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읽혔다.
그는 “당청관계에서는 여당은 사실 안보일수록 좋은 것이다. 그래야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여당이 많이 보이고 존재감이 뚜렷하고 큰 뉴스가 있다면 그건 정국운영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흔히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겠다’는 ‘쓴소리 리더십’에 부정적 견해를 보인 것이다. 최재성은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며 당청관계는 이해를 잘 구하고 나눌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재성은 2018년 7월26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 예비경선에서 최종 3인에 들지 못해 탈락했다.
△정당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당 혁신안 마련
최재성은 더불어민주당의 당 혁신을 위해 만들어진 ‘정당발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당의 시스템 개혁을 추진했다.
최재성이 바라는 당의 시스템 개혁은 당이 몇몇 사람들의 결정에 따라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당 자체에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심어 어떤 결정이든 시스템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8월7일 당의 혁신위원회 이름을 정당발전위원회로 정하고 위원장에 최재성을 임명했다. 당 체질 변환을 위한 제안과 100만 당원 확보를 위한 제안, 지방선거를 치르기 위한 당헌당규 보완 등과 관련한 내용을 제안하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고 박완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밝혔다.
최재성은 2017년 8월9일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당 혁신은 룰의 문제가 아니다”며 “정당이 문명과 문화의 문제에서까지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공천의 룰을 바꿀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런 우려를 보면서 진짜 혁신을 해야겠다고 느꼈다”며 “문화와 생각이 뒤처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원의 권한과 국민의 역량을 함께 키우는 묘수를 고민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이자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재성은 2017년 8월16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진화하고 있는 국민과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에 대해 몇 사람의 선의에 의존하지 않고 정당적 시스템과 구조로 뒷받침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겠다”며 당 운영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을 제1목표로 삼겠다는 점을 다시 강조했다.
최재성은 박광온 한정애 박경미 이재정 의원과 장경태 당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여선웅 서울 강남구의원, 배현미 권리당원, 심재명 명필름 대표이사, 이재명 성남시장, 이후삼 충북 제천·단양 지역위원장, 천준호 서울 강북갑 지역위원장, 한민수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홍정화 인천시의원 등으로 정당발전위원회를 꾸렸다.
활동기간 100일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혁신안을 내놨다. 현역 의원 경선 의무화, 경선 불복시 제재 강화, 비례대표 국민공천심사제 도입 등이 있었다.
최재성은 혁신안 가운데서 대의민주주의체계를 선출하는 당권으로 만드는 방안과 중요한 사안에 대해 특별히 정해 전 당원과 전 대의원이 결정하게 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당 체계로 파격적으로 도입하는 방안 두 가지를 의미 있는 혁신안으로 꼽았다.
| ▲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정당발전위원회 위원장이 2017년 9월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당발전위원회 주최 `왜 직접 민주주의인가?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하지만 최재성이 주도해 만든 당 혁신안이 수용되는데 우여곡절도 겪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12월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당발전위원회의 혁신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일부 의원들이 혁신안에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의원총회에 참석한 인원이 적다는 것도 문제였다. 당 혁신안에 의원들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자칫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12월29일 최고위원회를 통해 정당발전위원회가 제안한 혁신안을 일부 수정해 의결하면서 당 혁신의 초석이 마련됐다.
최고위원회를 통과한 혁신안은 당원주권을 확대하는 방향을 줄기로 한다. 당에 ‘당원자치회’를 두고 당원들이 갖는 권한을 늘리기로 한 것이 큰 변화로 꼽힌다. 권리당원 10명당 1명씩 중앙대의원을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최재성은 “한국정당사에서 처음 시도되는 당원자치회로 당원주권시대를 열기 위한 기본 방향에 동의했고 의결한 것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당원 권한을 충분하고 분명하게 제한 없이 특정하지 못한 것은 몹시 아쉬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말했다.
그는 “당을 강하고 안정되게 하는 시도들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혁신의 큰 물줄기는 이번에 잡았고 그 물줄기가 도도하게 흘러가기 위한 안착의 과정이 남았다”며 “당원 주권시대, 국민이 참여하고 당원이 결정하는 시대에 분명한 당원의 권한들을 정리해주는 것이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과 총무본부장 거치며 문재인의 새로운 복심으로 부상
최재성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사무총장과 총무본부장을 역임하면서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초석을 놓았다.
당시는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계파갈등 등이 불거지며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이 격화했던 시기다. 최재성은 이 시기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문재인의 새 복심’으로 떠올랐다.
최재성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사무총장에 임명된 것은 2015년 6월23일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최재성의 사무총장 임명을 놓고 당내 반발이 컸다. 무엇보다도 이종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2주 동안 문 대표에게 반대했던 것을 문 대표가 그대로 강행했던 것이라 후폭풍이 상당했다.
친노 계열의 정치인들이 당을 장악하는 것에 대한 비주류 내지 비노 의원들이 최재성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당시 대표가 당을 이끌고 있었는데 공천 실무를 책임지는 사무총장은 친노가 아닌 사람에게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냐는 의견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당시 이런 당내 반말을 수렴하며 “전략홍보본부장이라든지 수석부총장이나 이런 분들은 대부분 비노로 구성됐는데 사무총장 하나 정도 당 인사권을 지닌 대표가 임명하는 것을 이렇게 못해 주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당 내분은 10일 만에 이종걸 원내대표가 당무에 복귀하면서 가까스로 봉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후 김상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당권재민 혁신위원장이 계파 문제를 거론하며 사무총장제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최재성은 약 한 달 만에 사무총장에서 물러나고 총무본부장에 임명됐다.
최재성은 총무본부장을 지내면서 2016년 치러질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해 당의 공천시스템을 개선하고 전략을 구성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이종걸 박지원 안철수 등 비노 내지는 비주류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이 문재인 대표를 향해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잦았다. 최재성은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 대표를 적극적으로 방어했으며 당내 갈등을 일으키는 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서도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하자는 등 물러서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일부 비주류 의원들의 주장이 새정치민주연합에 해악만 끼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계파갈등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도부를 흔드는 행위에 지나지 않다며 대안 없는 비판을 중단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최재성은 2015년 10월7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대표 흔들기를 하는 것은 약속위반으로 국민과 지지자들이 매우 피곤해 하고 있다”며 조기 전당대회 개최와 조기 선거대책위원회체제 구성을 한 마디로 ‘반칙’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비주류 측 주장은) 결국은 문 대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이 뭐고 재신임 철회를 왜 요청했느냐에 대한 응답을 분명히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며 “(비주류 측이) 다시 조기 전당대회나 조기 선대위 같은 당권 싸움으로 비춰지는 일만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며 그들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 ▲ 최재성 새정치민주연합 총무본부 본부장이 2015년 9월6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현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항상 비판만 했던 것은 아니다. 최재성은 문재인-안철수-박지원 세 의원이 연대해 당내 갈등을 해결하자는 전향적 의견을 내기도 했다.
최재성은 다만 ‘봉합’은 불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2015년 12월1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처음 일어난 갈등이 아니고 되풀이돼왔던 갈등, 이것이 다시 봉합으로 마무리 된다면 혁신을 통해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애초의 의지는 또 무색해질 가능성 크다”며 “봉합의 길을 선택한다면 문 대표와 단호하게 길을 달리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후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비주류진영에서 문 대표의 책임론을 거론하자 최재성은 트위터에 “참 후졌다”고 평가했다
최재성은 총무본부장 임기 막바지인 2015년 12월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돌아갈 배를 불태우고 밥할 솥을 제 손으로 깨뜨린다”면서 “분주파부(焚舟破釜)의 정신으로 총선 승리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재성은 “우리의 구성을 바꾸고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는 혁신의 과정은 글자 그대로 살가죽을 벗기고 새살이 돋아나도록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면서 “헌신 없는 혁신은 퇴행으로 변질되고 파괴로 귀결되기도 한다”며 총선 불출마 선언의 배경을 밝혔다.
최재성이 선거에 나가지 않기로 한 것은 본인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총선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됐다. 안철수 의원 쪽으로 합류하려는 당내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노력으로 읽혔다.
최재성은 이후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중진 의원 십수명이 당을 탈당하자 ‘인재영입’을 통해 승부수를 띄웠다.
최재성의 인재영입은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시작으로 김병관 웹젠 의장,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 김선현 차병원 교수, 오기형 변호사, 김빈 빈컴퍼니 대표, 양향자 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무, 김정우 세종대 교수, 유영민 전 포스코 경영연구소 사장 등으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라는 특징을 보였다.
치안과 외교·안보, 재정, 법률, 디자인, 전문경영, 국제통상, 벤처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로 포진했으며 기존 ‘운동권 정당’이라는 인식을 지워내고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정당이라는 이미지로 전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입 인사들의 다양하면서도 비교적 젊은 연령대도 주목받았다. 초기 영입된 10명의 인사들을 보면 10명 가운데 40대가 4명이었으며 50대 2명, 60대 3명, 30대 1명 등이었다.
최재성은 이런 기조를 놓고 “향후 10년, 15년을 관통할 수 있는 야당의 주된 인적 흐름을 어떻게 형성하느냐의 문제다”라며 “10년은 더 젊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성은 이후 문재인 대표가 사임하고 더불어민주당이 김종인 비대위원장체제의 선거대책위원회체제로 꾸려지자 이를 고사했지만 결국 선대위에 포함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티끌만큼도 부담되지 않겠다. 백의종군하겠다”며 스스로 선대위원직을 반납했다.
최재성은 당 사무총장과 총무본부장을 역임하면서 문재인 대표를 향한 공격들을에 방패수를 자처하면서 상대방을 때로는 강하게 질타하고 비판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내부에 혁신의 동력을 마련해 문 대표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정치인으로 자리잡게 됐다. 문재인의 호위무사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최재성은 사무총장 및 총무본부장으로 일한 시기를 “12년 국회의원 하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토대가 만들어진 것으로 혁신에 대한 저항이 거셌다”며 “파고가 높았고 격랑 속의 9개월이었다”고 회고했다.
| ▲ 최재성 새정치민주연합 총무본부 본부장이 2015년 11월9일 문재인 대표와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 노력
최재성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19대 국회에서 노력했다.
전 전 대통령은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1997년 추징금 2205억 원이 확정됐지만 2013년까지 16년 동안 낸 추징금은 533억 원에 불과했다.
최재성은 2013년 4월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업무보고 질의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촉구했다.
최재성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녀들은 2천억 원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재산을 쌓아두고 있으며 이 재산의 상당수가 전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이 변칙증여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재산은닉, 변칙증여, 해외 재산도피 의혹 등 전 전 대통령은 탈세혐의에 대한 국세청의 제대로 된 세무조사를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성이 2013년 5월26일 ‘공무원 범죄 몰수 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노력이 본격화했다.
개정안에서는 전·현직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추징 시효 연장을 위해 소액의 추징금을 납부하는 편법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추징이 확정된 뒤 3년이 지나면 검사의 청구에 따라 강제 징수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추징 대상자가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인 줄 알고도 넘겨받았다면 제3자의 재산도 추징할 수 있도록 했다. 추징금을 미납하면 강제 노역을 시키는 규정도 포함됐다.
소급입법 논란 등 법리상 이견이 적지 않아 국회 심의과정에서 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전 전 대통령에게 추징할 금액이 거액이며 전 전 대통령에게 추징을 한다는 상징성이 지니는 의미가 크다는 데 여야가 공감해 2013년 6월 국회 본회의에서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됐다.
최재성은 이에 앞서 민주당 전 전 대통령 등 불법재산 환수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전두환 불법자금 환수를 위한 연희동 항의방문 및 기자회견을 하며 법 통과에 앞장섰다.
전 전 대통령측은 이후에도 추징금 납부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다가 검찰수사로 가족과 친인척들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자 결국 백기를 들고 2013년 9월10일 장남 전재국씨가 미납 추징금에 대한 자진납부 계획을 발표하며 총 1672억 원의 납부계획과 대국민 사과문을 공개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측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2020년 9월 현재까지도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은 약 1천억 원 남았다.
| ▲ 최재성 민주당 전두환불법자금환수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민주당 의원들과 2013년 6월20일 오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불법재산 즉각 환수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변인 활동
최재성은 2007년부터 2년가량 제17대, 제18대 국회를 거치며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대변인을 역임했다.
최재성을 열린우리당 대변인에 발탁한 사람이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다는 점에서 ‘정세균계’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최재성은 대변인 활동을 하면서 이명박 정부에 강하게 날을 세워 여당 지지자들에게는 ‘강성’이라는 이미지를, 야당 지지자들에게는 ‘속 시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내각을 놓고 ‘강부자(강남 부동산 부자) 내각’이나 ‘고소영(고려대학교-소망교회-영남) 내각’이라고 비판한 사례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다양한 정책과 입법 시도를 놓고 ‘MB악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했다.
순발력과 판단력을 높게 평가 받아 당이 여러 차례 변화하는 시기에도 대변인을 계속 역임할 수 있었다.
최재성은 대변인을 했던 시기에 논평을 묶은 ‘최재성 브리핑’이라는 저서를 2010년에 발간하기도 했다.
△정계 입문 이전
최재성은 학생운동으로 대학교를 10년 만에 졸업한 뒤 포장마차 운영에서부터 농산물 유통, 신발 노점상, 요식업은 물론 미장데모도(보조인력), 곰빵(질통지기)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20여 가지의 직업을 경험한 것을 놓고 세상의 여러 ‘밑바닥 삶’을 몸소 체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장정치를 강조하는 이유도 정계에 입문하기 이전의 삶에서 배운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벌인 배경도 이런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구리남양주TG, 토평IC 통행료 징수 폐지 운동을 주도했다.
△동국대학교 재학 시절
최재성은 동국대학교 84학번으로 1988년에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2기 학원자주화투재위원장과 서총련(서울지역 총학생회연합) 중앙상임위원 및 남부지구 대표 등을 역임하는 등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출가를 결심해 결북 점촌에 있는 사찰 ‘김용사’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학생운동으로 세 차례 긴 수배를 받았으며 두 차례 투옥됐고 이에 따라 대학에서 세 차례 제적됐다.
총학생회장 시절 136일 동안 학원 자주화를 위한 농성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최재성은 당시를 회고하며 “교수와 학생, 교직원 모두가 대학의 주인이 되는 ‘학원 자주’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987년 11월13일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등으로 1990년 1월18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