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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기존 정치인과 다른 신선한 정치 스타
홍지용 기자 hjy1120@businesspost.co.kr 2014-05-15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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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안철수는 1962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 범천동에서 자랐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맡았으며, 1995년 2월엔 교수 생활을 접고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해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사업에 뛰어들었다.


2005년 미국 유학을 떠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거쳤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각각 박원순, 문재인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출마를 포기했다. 2013년 4월 서울 노원구 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해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2014년 7월 재보선 참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2012년 9월 19일 뉴욕 타임스는 대선출마를 선언한 안철수에 대하여 ‘한국의 정치 스타’로 표현했다. 프랑스 AFP 통신은 그를 “부패와 정치, 기업 권력으로부터 때묻지 않은 인물”로 평가했다. 일본의 극우 언론인 산케이 신문은 “지금까지 정치인과 다른 신선한 인물”로 평가했다.


국내 기성 정치권에서 대체로 이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회창 전 총재는 “안 원장 같은 분은 유능한 과학자로, 컴퓨터 백신 전문가로 유능한 사람이니 그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게 해줘야 한다. 정치권이 부추겨서 망가뜨리는 것은 안타깝지만, 본인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고 있다”라며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안철수에 대해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부족한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세균 의원은 "정치를 모르는 초짜는 (대통령 후보로) 곤란하다"며 안철수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김무성 의원은 안철수의 대선출마에 대해 "경험 없는 아마추어 정권이 나서면 대한민국은 더 큰 위기와 불안에 빠져 국민을 고생시킬 것"이라며 안철수의 출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호평도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겹치면서 안철수 교수의 태풍현상이 있지 않았느냐. 기존의 정치권에서 기득권, 그리고 어쩌면 달린 식솔이 없으니까 그렇게 흔쾌히 홀가분하게 던질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바이러스 백신 무료배포, 대기업 독식 비판과 분노 등 안철수 교수의 공적 헌신을 했던 모습의 연장선에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라는 원희룡의 호평이 대표적이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9년 8월부터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임강사로 근무했으며, 1990년 당시 최연소인 만 27세의 나이로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재학 시절부터 틈틈이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다. 1988년 6월 10일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인 V1을 개발했다. 그 뒤로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V2, V2 Plus등 업그레이드된 백신을 무료배포했다.


7년간 교수와 프로그래머의 이중생활을 했지만 매년 증가하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혼자 해결하기 어려워지자 교수직에서 물러나 1995년 3월 15일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다.

1997년 미국의 맥아피(Mcafee)로부터 ‘1천만 달러’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1999년 CIH(체르노빌)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백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안철수연구소는 흑자전환했다.


2005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서 EMBA 2년 과정을 밟았다. 2008년 4월30일 귀국해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부임했다. 2011년 6월부터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대학원장으로 부임했다.

2005년부터 포스코의 사외이사가 되었고, 2010년 포스코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었다. 2008년 9월부터 4년간 아름다운재단 이사를 맡았고, 2011년부터 포항공과대학교의 이사를 겸했다.


2011년 6월 29일부터 9월 9일까지 박경철 의사, 법륜 스님 등과 공동으로 ‘청춘콘서트’를 주최했다. 대학등록금과 KAIST 학생 자살을 계기로 청년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제공하는 강연회였다. 전국 25개 도시에서 열렸으며 출연진은 재능기부형식으로 참여했다. 강연은 청중의 자발적 기부로 이루어졌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즉답을 피했다. 9월 5일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었으나 6일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출마를 양보하고, 단일화를 발표했다.


2012년 9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대권주자였으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서 차질이 빚어졌고 2012년 11월 23일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후 문재인 후보를 도울 것이라고 선언한 뒤 독자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2013년 4월 서울 노원구 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60.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제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배정되었다. 2014년 3월 26일 제3지대 창당방식으로 민주당과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김한길 대표와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1기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 학력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다녔다.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며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199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학석사를, 200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EMBA(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조부 안호인은 일제강점기 부산상고를 나와 금융조합에서 근무했다. 부친 안응모는 부산 판자촌인 범천4동에서 범천의원을 개업한 의사로 안철수의 서울대 의대 선배다. 남동생과 안상욱, 여동생 안선영이 있다. 안상욱은 경희대 한의대를 나와 서울 송파에서 한의원을 운영한다.


1988년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인 김미경과 결혼했다. 슬하에 외동딸 안설희가 있다. 아내 김미경은 현재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딸 안설희는 수학과 화학을 전공했으며,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 상훈


1990년 한국컴퓨터기자클럽 올해의 인물상을 시작으로 1996년 청와대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1998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주관 제2회 벤처기업대상 국무총리 표창, 2002년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동탑산업훈장,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 수상 등 여러 공공기관 상훈을 수여받았다.


민간에서도 1998년 한국경제신문사 주관 제 7회 다산기술상 대상, 2000년 한겨레신문사 제1회 우수정보통신기업 디지털대상 최우수기업상 및 동아일보사 제14회 인촌상, 2002년 주간 이코노미스트 ‘한국 디지털 CEO 상’ 및 한겨레 제3회 정보통신기업 디지털 대상 SW 부문 정통부장관상, 2003년 신산업경영원 제1회 한국윤리경영대상 투명경영부문 대상, 한국SW산업협회 및 매일경제신문사 주관 제2회 대한민국SW사업자대상 경영부문 최우수상, 2009년 포브스 코리아 제1회 블루리더십 어워즈 등을 받았다.


◆ 상훈


1990년 한국컴퓨터기자클럽 올해의 인물상을 시작으로 1996년 청와대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1998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주관 제2회 벤처기업대상 국무총리 표창, 2002년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동탑산업훈장,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 수상 등 여러 공공기관 상훈을 수여받았다.


민간에서도 1998년 한국경제신문사 주관 제 7회 다산기술상 대상, 2000년 한겨레신문사 제1회 우수정보통신기업 디지털대상 최우수기업상 및 동아일보사 제14회 인촌상, 2002년 주간 이코노미스트 ‘한국 디지털 CEO 상’ 및 한겨레 제3회 정보통신기업 디지털 대상 SW 부문 정통부장관상, 2003년 신산업경영원 제1회 한국윤리경영대상 투명경영부문 대상, 한국SW산업협회 및 매일경제신문사 주관 제2회 대한민국SW사업자대상 경영부문 최우수상, 2009년 포브스 코리아 제1회 블루리더십 어워즈 등을 받았다.


어록


“V3를 외국에 넘겨버리면 (국내) 사용자들이 불편하잖아요, 세계 제일의 소프트웨어로 만들겠습니다.” (1998/6/22 동아일보에서 ‘맥아피’로부터 들어온 ‘안철수연구소 100만 달러 인수 제의’ 거절에 대해)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할 때 흔히 미국 실리콘 밸리를 예로 든다. 그런데 한국에서 실리콘 밸리의 성공사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이다. 이 점을 외면하면, 우리는 실리콘 밸리에서 배울 수 없다." (2009/3/20서울 수송동 희망제작소 세미나실 희망모울에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해 강연하며)


"책을 읽으라고 말만 하면서 부모님들이 한 번도 책을 읽는 모습을 안 보여주면 아이들 역시 책상에 앉아서 책 읽는 흉내만 낼 뿐 책 읽기를 따라서 하지 않는다." (2009/6/17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서)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 제의를 받았고,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 제안을 받았지만 (정치를) 잘 할 자신이 없고 힘(권력)을 즐기지 못하기에 거절했다", "실무적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다." (2009/12/18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대북문제에 대해서 보수적 입장을 갖고, 교육문제에 대해서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으면 진보인가 보수인가? 그것은 나눌 수가 없다. 그것을 나누고 분열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 (2011/9/4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한 MBC 시사매거진 2580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저는 그 분(윤여준)이 제 멘토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만약 그 분이 제 멘토라면 제 멘토 역할을 하시는 분은 한 300명 정도 되고, 또 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김제동씨나 김여진씨도 제게 멘토라 할 수 있다."
"사람들한테 대접받으면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자기 발전도 중요한 사람이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도와주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로 들어서면 자기 발전의 기회보다는 내가 가진 걸 소모하면서 도와줘야 한다. 지금껏 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 10년 간 그런 삶을 견딜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수평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정부 조직은 내가 아무리 수평적 리더십을 갖고 있어도 조직이 수평이 되면 곤란하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10년 이상 그게(유지하는게) 가능할까.”
(2011/9/4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저에게 보여주신 기대 역시 온전히 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2011/9/6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상식과 비상식의 기준으로 말하고 싶다. 굳이 말하자면 난 상식파다.” (2012/7/23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안철수는 보수인가 진보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며)


“정치경험 대신 국민들께 들은 이야기를 소중하게 가지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스승입니다." (2012/9/19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대표는 위임된 권한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국민과 당원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2014/4/10 기초선거 정당공천 여부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 평가


2012년 9월 19일 뉴욕 타임스는 대선출마를 선언한 안철수에 대하여 ‘한국의 정치 스타’로 표현했다. 프랑스 AFP 통신은 그를 “부패와 정치, 기업 권력으로부터 때묻지 않은 인물”로 평가했다. 일본의 극우 언론인 산케이 신문은 “지금까지 정치인과 다른 신선한 인물”로 평가했다.


국내 기성 정치권에서 대체로 이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회창 전 총재는 “안 원장 같은 분은 유능한 과학자로, 컴퓨터 백신 전문가로 유능한 사람이니 그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게 해줘야 한다. 정치권이 부추겨서 망가뜨리는 것은 안타깝지만, 본인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고 있다”라며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안철수에 대해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부족한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세균 의원은 "정치를 모르는 초짜는 (대통령 후보로) 곤란하다"며 안철수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김무성 의원은 안철수의 대선출마에 대해 "경험 없는 아마추어 정권이 나서면 대한민국은 더 큰 위기와 불안에 빠져 국민을 고생시킬 것"이라며 안철수의 출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호평도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겹치면서 안철수 교수의 태풍현상이 있지 않았느냐. 기존의 정치권에서 기득권, 그리고 어쩌면 달린 식솔이 없으니까 그렇게 흔쾌히 홀가분하게 던질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바이러스 백신 무료배포, 대기업 독식 비판과 분노 등 안철수 교수의 공적 헌신을 했던 모습의 연장선에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라는 원희룡의 호평이 대표적이다.

◆ 기타


1991년 2월 입대, 해군 군의관(대위)으로 복무했다. 입대일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최초의 V3를 배포했으며 실수로 가족들에게 군대 간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나왔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나이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댓말을 쓴다. 반말을 못한다. 심지어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에도 병사들에게 반말을 쓰지 못했고, 부부싸움도 존댓말로 했다. 유년기 훈계조차 늘 존댓말로 하시던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답변했다.


CEO는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게 그의 기본 철학이다. CEO와 직원 모두 수평적 관계에 있고 단지 하는 일이 다를 뿐이며,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다면 자신이 없거나 구성원이 바뀌어도 조직이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011년 9월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된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아무리 수평적 리더십을 갖고 있어도 정부조직이 수평이 되면 곤란하다고 말하며 경영철학과 정치 사이의 고민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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