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희상 국회의장(가운데)이 2019년 12월27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지나 의장석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
△사법개혁과 선거법 개정 관련 법안 처리에 기여
문희상은 극심한 여야 대립과 다수 야당 출현으로 쉽게 합의가 어려웠던 사법개혁과 선거법 개정 관련 법안을 처리하는 데 기여했다.
국회는 2019년 12월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켜 2020년 4월 총선 때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돼 군소정당의 비례대표 의석 확보 가능성을 높였다. 사흘 뒤인 12월30일에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을 처리했다.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은 2020년 1월13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사법개혁과 선거제 개편 관련 법안이 통과된 데는 문희상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된다.
문희상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 공수처설치 법안, 검경수사권조정 법안 등을 민주당이 강행처리할 때 국회의장으로서 권한을 활용해 법안을 직권상정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국회의장을 민주당에서 배출하지 못했다면 선거제도 개혁과 검찰제도 개혁의 대역사는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전에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때도 그에 반대하는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의 사보임하는 문제 등을 놓고 거세게 반발하는 한국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패스트트랙 지정이 되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탰다.
반면 이런 문희상의 태도를 놓고 한국당은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문희상은 여당과 야당 사이를 중재하는 노력도 진행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국회 내 교섭단체 원내대표를 소집하며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놓고 의견을 좁히기 위한 대화를 주재하기도 했다.
△일본과 관계 개선 노력
일본과 인연이 깊은 문희상은 일본과 외교관계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30일 일본기업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피해자들은 일본기업 재산을 두고 법원에 압류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자산압류 명령을 내리며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한국에 공급하는 핵심 소재, 부품, 장비 등의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며 경제보복에 나섰다.
문희상은 국내 정치인 가운데 일본과 친분이 두터운 인물로 꼽히는데 한일관계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의원 외교를 통한 관계 개선을 꾀했다. 문희상은 2004~2008년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냈고 일본 측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문희상은 일본 측에 특사를 보내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직접 강제징용 문제 해결책으로 한국과 일본의 기업과 국민들이 자발적 성금으로 기금을 만드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문희상은 2019년 12월 이 해결책을 담은 ‘기억‧화해‧미래재단법’ 제정안, 이른바 '문희상안'을 발의했다.
일본에서 문희상의 방안을 놓고 긍정적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비서관에게 "(일본 기업 압류재산) 강제집행 이전에 법정비가 된다면 좋겠다"며 한국주재 일본 대사관과 정보공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시민단체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문희상의 해결책을 두고 ‘이미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사안이고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채권인데 한국 기업과 국민의 기금을 통해 일본 기업의 책임을 줄여주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야 협치 노력
문희상은 국회 의정활동이 진전될 수 있도록 여야를 독려해 협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희상은 2019년 1월3일 기자간담회에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협치”라며 "협치는 국민의 명령이고 20대 국회의 숙명”이라며 협치를 재차 강조했다.
협치의 기본은 만남이라며 하루도 빠짐없이 여야 의원들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문희상은 국회의장에 오른 뒤 국회의장-원내대표, 국회의장-5당대표, 국회의장-5선이상 여야 중진의원 모임 등 정례회동 자리를 마련하며 협치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후반기 20대 국회는 좀처럼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정기국회 예산 심사부터 선거제도 개편 요구와 맞물리면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법정시한을 넘겼다. 그러자 문희상이 정부 예산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합의로 예산안이 통과됐으나 다른 정당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문희상은 문재인 대통령과 2018년 12월14일 전격 회동을 통해 선거제 개편 합의의 마중물이 됐다. 하지만 정치개혁특위의 선거제 개편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이뤄졌다.
이밖에 국정감사 때 논란이 된 유치원3법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결국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이 됐다. 음주운전자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김용균법 등의 입법 성과를 내긴 했지만 국민의 희생이 수반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문희상은 2019년 1월2일 시무식에서 “촛불혁명의 염원을 제도적으로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개혁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회를 성토했다. 그는 “국회는 국회다워야 하는데 쓸데없는 말싸움만 한다”며 “임기 중에 국회 신뢰도를 1%라도 올리겠다고 했는데 더 떨어져 허무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선거법과 사법개혁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각 당 원내대표를 소집해 협상을 중재하는 등 협치 노력을 보였다. 다만 각 당의 태도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협상이 결렬된 사례가 많아 문희상의 협치 중재 노력은 다소 빛을 바란 것으로 평가된다.
| ▲ 2019년 6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부터), 문희상 국회의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회의를 앞두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북한과 입법부 교류 증진 노력
문희상은 북한과 국회회담을 추진하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방문 때 국회 연설 등을 위해 노력한다.
문희상은 2019년 1월3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 국회회담을 위해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친서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3번이나 열렸는데 국회 회담을 잘못 열면 (남북관계를) 촉진하는게 아니라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희상은 2018년 12월12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평양에서 15만명 군중 앞에서 연설했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답방해 국회에서 연설한다고 하면 국회의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연설할 기회가 생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희상은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는 동행하지 않았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9월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인 특별수행단을 발표했는데 문희상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문희상은 기자회견 후 2시간도 되지 않아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를 놓고 청와대의 공개초청이 예의에 어긋났기에 문희상이 거절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문희장은 추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국회 대표에게 예우를 갖춰 요청을 했다”면서 삼권분립 원칙이 있는데 입법부 수장이 대통령을 수행하는 모양새가 돼 거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희상은 여당과 야당의 대표단의 북한 방문도 우선적으로 추진하며 북한 측에 방북 계획을 제안할 계획도 세웠다. 당초 남북국회회담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의제와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여야 대표단 방북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관측됐다.
다만 북한 측이 미온적 태도를 보여 2019년 말까지 여야 대표단의 방북은 성사되지 않았다.
△국회의장으로 선출
문희상은 2018년 7월13일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투표에서 총투표수 275표 가운데 259표를 얻어 당선됐다.
국회법에 따라 탈당해 무소속이 됐으며 20대 국회가 끝나는 2020년 5월까지 국회의장을 수행하게 된다.
원내 2당인 자유한국당의 이주영 부의장, 3당인 바른미래당의 주승용 부의장까지 선임되며 국회 의장단이 구성됐다.
이에 따라 5월29일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가 종료된 지 45일 만에 입법부 공백사태가 해소됐다.
문희상은 수락 연설에서 "국회는 민주주의의 꽃이며 최후의 보루"라며 "대결과 갈등에 빠져서 국회를 무력화하고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이 선거와 혁명을 통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문희상은 5월1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총투표 참석자 116표(무효 2표) 가운데 67표를 얻어 47표를 얻은 박병석 의원을 꺾고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통상 국회의장은 의석 수가 가장 많은 원내 제1당에서 선출된다.
문희상은 후보로 선출될 때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최고령인 73세였다.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정세균 전 의장에게 패했는데 재수 끝에 국회의장이 됐다.
△대통령 특사로 일본 방문
문희상은 2017년 5월18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문희상은 이 방문을 놓고 ‘똥 싸놓은 거 치우러 가는 심정’이었다고 표현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외교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정에 임했다고 한다.
문희상은 2017년 5월20일 김포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위안부 합의 문제를 놓고 “미래지향적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의견 합의를 봤다”며 “대한민국 국민이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고 일본도 이를 이해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문희상을 본 일본인들은 포털사이트 댓글을 통해 “협상을 한다더니 야쿠자 오야붕(두목)이 왔다” 등의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문희상은 2004~2008년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냈다. 일본어를 공부하며 적극적으로 의원 외교에 나섰고 일본 총리를 지낸 모시 요시로 일본측 회장 등 일본 정계 인물들과 인맥을 두텁게 쌓았다.
△‘개작두 리더십’ 보여주며 포청천으로 자리매김
문희상은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군기반장 역할을 하며 흔들리는 당을 다잡았다.
2014년 9월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에 이어 박영선 원내대표까지 물러난 상황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10%대로 창당 이후 최저였다.
문희상은 소통과 철저한 중립성 유지를 통해 당내 기강을 세웠다. 문희상이 위원장을 맡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을 놓고 당의 중심이 잡히고 질서가 생겼다는 말도 나왔다.
문희상은 위원장을 맡을 당시 ‘버릇없는 초재선 의원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개작두로 치겠다’는 등의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 발언 뒤 초재선 의원들이 중구난방식 주장을 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여당과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월호특별법 입법과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 등의 성과를 거뒀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가 당선되면서 문희상은 비대위원장을 내려놓았다. 비대위체제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20%대까지 회복됐다.
△6선 국회의원
문희상은 6선 의원으로 7선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여권 내 두 번째 다선 의원이다.
1988년 13대 총선 때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처음 출마했으나 김문원 신민주공화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38.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한 1996년 15대 총선에서 홍문종 신한국당 후보에게 밀려 한 번 더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부터 2004년 17대 총선, 2008년 18대 총선, 2012년 19대 총선, 2016년 20대 총선까지 내리 당선됐다.
탈당 전력이 없음에도 민주당계 정당의 개편이 잦았기에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 더불어민주당 등 매번 다른 정당 이름으로 출마했다.
득표율은 2004년 17대 총선 때 52.12%로 가장 높았다. 이후 계속 내림세로 20대 총선 때는 42.84%까지 떨어지며 2위인 새누리당 후보와 격차가 5%포인트도 나지 않았다.
다선의원인 만큼 다양한 상임위원회 활동을 했는데 특히 외교, 안보 관련 전문성을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외교통일위원회, 안전행정위원회, 정보위원회 등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