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미국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미국 자동차시장 점유율 상위에 속한 토요타, 혼다, 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츠-벤츠, 포드, GM 등과 같은 완성차기업들과 비교할 때 여전히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승부를 거는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6일 미국 자동차시장 전문 분석기관 ALG의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가 지난해 미국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차 출시효과도 있지만 ‘저렴한 가격’과 ‘높은 인센티브 비중’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된 ALG는 자동차 잔존가치(신차를 일정기간 사용한 뒤 예상되는 차량의 가치) 평가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다.
미국 자동차 딜러들과 연계해 해마다 2500대 이상의 차량을 분석하며 이를 통해 업계 관계자들에게 자동차산업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ALG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2019년 12월 자동차 평균 거래가격(ATP)은 각각 1대당 2만5380달러, 2만4584달러다.
2018년 12월과 비교해 평균 거래가격이 현대차는 10.7%, 기아차는 7.7% 오른 것으로 미국 상위 12개 완성차기업 가운데 나란히 상승폭 1, 2위를 차지했다.
BMW와 피아트크라이슬러(FCA)그룹, 토요타 등의 자동차 평균 거래가격은 같은 기간 각각 5.6%, 3.5%, 2.3% 오르는데 그쳤으며 닛산과 혼다는 각각 1.7%, 1.4% 빠졌다.
하지만 현대차와 기아차의 차량 가격은 여전히 경쟁기업들보다 낮다.
BMW와 다임러, 폴크스바겐그룹 자동차 평균거래가격은 최소 4만 달러에서 6만 달러로 파악된다.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완성차기업의 자동차 가격도 4만 달러 안팎이며 일본3사의 차량들도 평균 3만 달러 안팎에서 거래된다.
현대차 기아차와 비슷한 2만 달러대에서 거래되는 자동차 브랜드는 혼다와 닛산 정도에 불과한데 이들 마저도 현대기아차보다 1대당 3천 달러는 비싸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저렴한 가격의 브랜드’라는 위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차량을 판매할 때 많은 인센티브를 지출하고 있다는 점은 이런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2월을 기준으로 ALG가 추정한 브랜드별 인센티브 지출 금액은 현대차와 기아차 각각 차량 1대당 2796달러, 3425달러다.
독일과 미국 완성차기업들이 1대당 각각 6천 달러, 4500달러 안팎의 인센티브를 지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액 자체만 봤을 때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자동차 평균 거래가격 대비 인센티브 비중을 보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차량 가격의 11%, 13.9%를 인센티브로 쓰고 있다. BMW와 다임러의 평균거래가격 대비 인센티브 비중은 각각 10.6%, 10.3% 수준이다.
대중 브랜드로 분류되는 폴크스바겐그룹과 토요타의 차량 1대당 인센티브 비중도 각각 10.6%, 8.4%에 머문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브랜드 파워 강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대차는 지난해 7월에는 ‘미국 시장 턴어라운드 및 판매 전망’이라는 자료에서 플릿판매(관공서와 기업, 렌터카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차량을 대량 판매하는 것) 비중과 인센티브를 줄여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구체적 실천전략도 제시했다.
그러나 수치들만 봤을 때 아직 현대차와 기아차가 다른 완성차기업들과 동등하게 겨룰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2018년과 비교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평균 거래가격 대비 인센티브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2019년 12월 기준 현대차와 기아차의 인센티브 비중은 직전 년도 말과 비교해 각각 1.2%포인트, 0.9%포인트 감소했는데 이런 감소폭을 보인 기업은 현대기아차뿐이다.
미국 자동차시장 판매량 상위 12개 기업 가운데 인센티브 비중이 줄어든 기업은 현대기아차 외에 다임러와 GM 뿐인데 두 회사의 인센티브 비중은 각각 0.1%포인트, 0.7%포인트 감소하는데 그쳤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