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검토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따라 오너 리스크가 불거진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주주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19년 1월23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스튜어드십코드 적용 여부를 놓고 논의를 했으나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논의 결과를 토대로 2월 초에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여부가 결정된다.
국민연금이 2018년 7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이후 대한항공과 한진칼이 첫 주주권 행사 사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을 12.45% 보유한 2대주주이고 한진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 지분을 7.34% 보유한 3대주주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다른 기업으로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김성주는 2019년 1월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태를 놓고 “행정소송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필요하면 주주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대응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정상화
김성주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인력공백을 해소하고 정상화를 이끌었다.
국민연금공단은 2018년 12월8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운용전략실장에 박성태 리스크 관리센터장을 임용했고 26일에는 주식운용실장에 이석원 전 하이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을 임명했다.
이와 더불어 채권운용실장에는 김한국 크레딧투자팀장을, 리스크관리센터장에 김종희 채권운용실장을 각각 임명했다.
김성주는 기금운용본부의 조직개편도 단행해 기존 7실 1센터에서 10실 1센터 1단 체제로 변경했다.
조직개편에 따라 수탁자책임실, 기금정보실이 추가되고 대체투자실과 해외대체실 두 곳은 사모투자실, 부동산투자실, 인프라투자실 등 3개의 실로 재편됐다. 대외협력단도 신설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1년 넘게 본부장이 공석으로 있으면서 인력 이탈이 심각했다. 2018년 6월 정원의 3분의 1이 공석일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김성주는 2018년 10월8일 안효준 전 BNK금융지주 사장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CIO)에 임명하면서 기금운용본부 정상화 수순을 밟았다. 공석인 실장도 채우고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기금운용본부의 인력충원은 2019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8년 기금운용역의 목표정원은 278명이었지만 2018년 12월 인원은 그에 미치지 못한 240여 명이다.
| ▲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오른쪽)과 쑤라뎃 와리잇티꾼 태국 사회보장청장이 2018년 9월27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국제협력센터에서 상호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해소
김성주는 두루누리 연금보험료 지원사업의 소득기준을 올리고 건설일용근로자의 가입기준을 개선하는 등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2018년 11월19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열린 워크숍에서 국민연금은 건설 일용근로자의 사업장 가입기준 개선과 영세사업장 보험료지원 확대 등 사각지도 해소 노력을 자평했다.
김성주는 2017년 취임사에서 “국민이 주인인 연금으로 국민연금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신뢰회복”이라며 “두루누리 등 저소득층 가입지원과 출산, 실업크레딧 확대를 통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줄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국민연금은 2018년 1월부터 두루누리 연금보험료 지원사업의 소득기준을 기존 월 140만 원 미만에서 월 190만 원 미만으로 인상했다.
두루누리 연금보험료 지원사업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1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종사하는 저소득 근로자의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료의 일부를 국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김성주는 또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특성을 반영해 신규 가입자의 요건을 완화하고 건설 일용근로자의 가입기준도 개선하는 등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에 나섰다.
김성주는 2019년 신년사에서도 사각지대 해소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공매도를 위한 국내 주식 대여 중단
김성주는 2018년 10월23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이 공매도 세력의 종잣돈 창구 역할을 한다고 비판받고 있는 것을 안다며 22일부터 국내에서 주식 신규 대여를 중지했다고 밝혔다.
김성주는 “기존에 대여된 주식과 관련해서는 차입기관과 계약관계를 고려해 연말까지 해소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앞으로는 대여거래가 공매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재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한 해 4조5천억 원 정도의 주식 대여를 하고 있으며 2017년 국내에서는 138억 원의 수익을 냈다.
주식 대여는 현행법과 관련한 규정상 정당한 거래기법이지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국민연금의 주식 대여가 공매도를 부르고 이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국민연금도 손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대여 중단을 결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공매도란 차입 공매도를 말하는 것으로 현재 보유하고 있지 않은 주식을 미리 판 후 결제일 이전에 제3자로부터 주식을 빌려 매도한 후 되갚는 방법을 말한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국민연금은 2018년 7월에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김성주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따른 책임경영과 독립성 등을 확보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관투자자가 운용하는 자산을 잘 관리하도록 주주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위한 의결권 행사지침을 말한다.
기관투자자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고 자금을 위탁한 투자자에게 주주권 행사 과정을 투명하게 보고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김성주도 2017년 11월7일 취임식에서 “선량한 기금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고 사회적 책임투자 원칙에 입각해 주주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겠다”며 “이를 통해 기금운용의 독립성, 투명성, 전문성을 강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성주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앞두고 2018년 6월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을 방문해 해외의 제도도입 사례를 파악했다.
스튜어드십코드가 연금 사회주의라는 비판을 두고 그는 2018년 7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연금 사회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연금 자본주의"라며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을 관리·운용하는 기관으로서 수익을 최대로 올리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해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의 경영에 앞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공단, KB금융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 안건 찬성
국민연금은 2017년 11월20일 KB금융지주 임시 주주총회에서 KB금융 노동조합협의회가 주주제안으로 상정한 사외이사 추천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은 KB금융지주를 비롯한 여러 금융회사의 대주주다. 이 때문에 김성주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노동이사제 또는 노동자 추천 이사제와 ‘코드 맞추기’를 했다는 말도 나왔다.
김성주는 2017년 11월22일 기자간담회에서 “KB금융에 관련해 사전보고를 받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물어보니 주주인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해 의결권지침에 따라 결정했다고 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노동이사제는 개별기업이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노동이사제에 비교적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
김성주는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 미만이고 노동관계법도 정비가 제대로 안 됐다”며 “기업은 노동자를 항상 식구라고 말하지만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결정을 할 때는 왜 식구로 바라보지 않느냐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임명
김성주는 2017년 9월 국민연금공단 임원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이사장 후보 4명 안에 들어갔다. 그 뒤 11월1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11월6일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을 받았다.
김성주가 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국민연금 관련 경험을 많이 쌓았던 점이 반영된 결과로 꼽혔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자문단장으로 일하면서 복지정책 개발에 참여했던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국민연금의 공적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박근혜 게이트로 크게 흔들린 국민연금공단의 독립성 확보도 과제로 제시됐다.
김성주는 19대 국회의원들 가운데 대표적 복지정책 전문가로 꼽혔다. 하지만 정치인 출신 첫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인 것 때문에 야당 등에서 낙하산인사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반면 국민연금공단 노조는 김성주의 임명에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성주가 임명되면서 국민연금공단은 1년 가까이 공석이었던 이사장을 새로 맞이하게 됐다. 문형표 전 이사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을 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2016년 12월31일 구속기소됐다. 그 뒤 이원희 국민연금 기획이사가 이사장 직무를 대행해 왔다.
△대선캠프 활동
2012년 7월 민주통합당 전북도당의 대선공약기획단장을 맡았을 때 정세균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문재인 후보가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복지국가위원회에 참여해 보건의료와 복지분야 공약을 만드는 데 힘썼다. 이때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 기금운용본부의 전라북도 이전을 포함하는 데도 관여했다.
2015년 들어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신당 창당이나 탈당 주장이 불거지자 ‘분열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야권통합을 지지했다. 2015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을 맡기도 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더불어민주당 호남특보를 맡았다. 그해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자 문재인 후보의 대선캠프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참여해 전문위원단장으로서 복지 관련 공약과 정책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19대 국회의원
김성주는 19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20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문재인 대선후보의 대선캠프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복지공약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 전라북도 전주 덕진구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다. 이때 득표율 63%를 얻어 다른 후보들을 크게 따돌리고 국회에 들어갔다.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를 지망했고 2012년 7월2일 국회가 열린 뒤 원하던 곳에 배치됐다. 201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소득상위 30% 계층의 무상보육을 철회한 것을 ‘무상보육 후퇴’로 규정하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2012년 11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연금의 국가지급 책임을 명문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정부위원 비중을 줄이고 기금운용본부 설치를 명시하는 내용도 담았다.
2013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전라북도로 이전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관련 전문가와 여러 차례 만나 대응논리를 만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점도 부각해 여야 협력을 이끌어냈다.
2014년 6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야당 간사를 맡았다. 그해 12월에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5%로 고정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건강보험법을 개정하는 데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2014년 12월 인터뷰에서 남은 임기 동안 해결하고 싶은 보건의료분야 과제로 민간보험 문제를 들기도 했다.
2015년 5월2일 타결된 공무원연금 개편안에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고정하는 방안을 부칙 별첨자료로 함께 넣는 데 앞장섰지만 결국 법안에 관련 문구를 넣지는 못했다.
2015년 6월 새정치민주연합 메르스(증동호흡기증후군)대책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아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대책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 당시 전라북도 전주 병(옛 덕진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해 국민의당 후보인 정동영 전 의원과 맞붙었다가 패배했다.
△전라북도 도의원 시절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전라북도 도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복지와 IT, 인권 등에 관련해 목소리를 주로 높였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별세한 뒤 전북 전주시 오거리 문화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상주로서 분향소를 지켰다.
2010년에도 재선하면서 전라북도 도의원으로 5년6개월 동안 일했다. 당시 도의회에서 환경복지위원회 소속이었고 나중에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12년 1월 전라북도 도의원에서 사퇴하면서 2012년 4월 19대 총선에 전라북도 전주 덕진구에서 출마할 뜻을 밝혔다.
△학생운동과 노무현 대선캠프 등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다니던 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다.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1986년 인천의 한 공장에서 금속연마공으로 일하면서 일당 4천 원을 받았다. 그때 약자를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복지를 해답으로 생각해 정치에 뛰어들게 됐다고 훗날 회고했다.
1985년 구로노동자연대 파업사건, 1987년 반제동맹사건 등에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을 지내는 등 전라북도 지역의 시민사회에서 주로 활동했다. 1990년 한누리컴퓨터를 창립하면서 정보기술(IT)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1998년 전주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서 정치활동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만드는 국민참여운동 전라북도본부’ 사무처장을 지냈다. 그해 민주당 광역의원 경선에도 도전했지만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