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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용표 통일부 장관. | ||
1964년 4월1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1989년 석사장교로 입대해 1990년 6개월 복무 뒤 소위로 제대했다.
그후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오리건대 교환교수, 한양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를 지냈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외교통일추진단 위원으로 참여하며 정치와 연을 맺었다.
2013년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하고 박근혜정부 출범 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으로 발탁됐다. 2015년 3월 통일부 장관에 취임했다.
“독일통일 25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인문심리학적 접근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밝혔다. 아직 분단국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런 고민이 그저 행복한 고민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의 고민을 남북통일 준비과정에서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10/13 2015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환영사에서)
“정부가 민간교류를 지원하고 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북한의 호응 여부가 중요하다. 5.24제재 하에서도 할 수 있는 민간교류가 많다.” (2015/09/11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24조치의 해제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책임있는 자세가 있어야 가능하다. (2015/08/27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는 대북성향에 있어 비둘기도 매도 아닌 올빼미다. 균형감각을 갖고 어떻게 만들어가는지가 중요하다” (2015/03/16 취임식 이후 기자들에게)
“통일부 장관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과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 (2015/02/17 통일부 장관 내정 소감)
◆ 평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서 유일한 통일분야 전문가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구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출신이지만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남북대화 남측 대표로 나서는 등 실무경험을 쌓았다. 현 정부에서 통일분야의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8월 북한의 지뢰도발이 있었다. 홍용표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나흘간에 걸친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했다. 홍 장관은 노련한 협상가인 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 등에 맞서 논리정연하게 북한의 DMZ 지뢰도발과 서부전선 포격도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 기타
현직 청와대비서관(1급)에서 차관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장관으로 지명돼 파격인사라는 말을 들었다.
개각 발표 당일 아침까지 통일부 장관에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청와대는 홍용표를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해 혼선을 빚는 일이 있었다.
부친 홍순일 전 한국일보 특파원은 1974년 응우옌반티에우 베트남 대통령을 인터뷰하고 장기집권하는 베트남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 박정희 유신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이 사건은 10.24자유언론 실천운동을 촉발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전략>(1999, 통일연구원)과 <김정일 정권의 안보딜레마와 대미·대남정책>(1998, 민족통일연구원) 두 편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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