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모태펀드 추진
김영춘이 의지를 지니고 추진한 해양모태펀드가 국회 예산심사 문턱을 넘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조정소위원회는 2018년 11월30일 해양수산부의 신규사업인 해양모태펀드 예산을 200억 원 정부 원안대로 의결했다.
앞으로 예결위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를 거쳐 해양모태펀드 예산이 확정된다. 자유한국당은 이 사업을 2019년 예산안 100대 문제사업에 포함하면서 전액 삭감 의견을 냈는데 극적으로 회생했다.
김영춘은 해양모태펀드를 통해 조선기자재, 항만 자동화, 해양바이오, 해양환경산업 등 부산·경남·울산 지역의 중소기업들이 많은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했다.
김영춘은 2018년 6월 취임 1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모태펀드에 해양 분야를 추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존에 해양수산부는 농수산펀드를 통해 수산 분야 스타트업만을 지원했다. 여기에 해양바이오나 첨단 해양장비 등 해양 분야 스타트업까지 지원하려는 것이다.
해양모태펀드는 정부 200억 원, 민간 60억 원을 출자해 260억 원 규모로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춘은 2022년까지 성공하는 스타트업 200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 ▲ 왼쪽부터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이윤재 한국선주협회 회장이 2018년 2월1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상공-무역-해운 상생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상의> |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국내 해운업계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18년 7월5일 해양수산부 산하에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출범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의 법정 자본금은 5조 원으로 출범 초기 자본금은 3조1천억 원 규모다.
해양진흥공사는 2018년 4월5일 김영춘이 발표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바탕을 뒀다. 한국해양보증보험과 한국선박해양을 통합해 설립됐으며 선사의 선박 확충 지원을 우선적으로 실행한다.
2016년 한진해운이 최종 파산하고 전체 해운업 매출이 10조 원 이상 줄어드는 등 해운업의 위기가 심화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대선 후보 시절 해운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공사 설립 공약을 내놓았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 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해 공약을 이행했다.
김영춘은 해양진흥공사 설립을 위해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해양수산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를 통해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방안을 보고했다.
당시 김영춘은 “해양수산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이며 국민의 삶과 지역경제 발전을 책임지는 미래산업”이라며 “해양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꾼다는 재조해양의 자세로 세계 해양 강국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춘은 2017년 6월16일 문재인 정부 1기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주영, 유기준 전 장관에 이어 역대 3번째로 현직의원 출신 해양수산부 장관에 올랐다.
김영춘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할 당시 ‘거꾸로 세계지도’를 내걸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며 “해양수산 분야를 국가 전략사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거꾸로 세계지도는 북반구를 아래쪽에 위치한 지도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태평양이 지도 중심에 펼쳐져 있다.
김영춘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된 초기에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세월호 진상 규명과 후속대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2017년 세월호에서 발견된 유골을 해양수산부 조사원이 숨겨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영춘은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출범하고 ‘재조해양’이라는 명제 아래 해양강국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영춘은 2018년 4월 세계 5위 해운 경쟁력 회복을 위한 해운재건 5 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안정적 화물 확보 △저비용 고효율 선박 확충 △선사 경영 안정을 목표로 제시했다.
해양공간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해양공간 계획제도를 도입했고 연안 선박 안전관리 강화방안 등 해양 안전관리제도를 개편했다. 수산물 수출 확대와 고부가가치 양식산업 육성 등을 추진해 2017년에 고부가가치 수산가공 수출 9억 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두는 성과를 냈다.
△해양수산 관련 원내 활동과 장관 지명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30일 김영춘을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김영춘 후보자는 해운산업 부활과 수산업 보호, 세월호 진상 규명 등 주요 과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영춘은 “위기에 처한 해운, 항만 수산업을 재건하고 지속 가능한 해양자원의 이용과 보전, 그리고 해양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해양 강국을 실현해나가겠다”며 “세월호 수습의 마무리와 진상 규명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춘은 20대 국회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는데 이때 해양산업에 상당한 관심과 전문성을 보인 점이 장관 기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2017년 2월16일 상임위원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해운거래소 설립 등을 해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월호 인양과 바닷모래 논란 등 해수부와 관련된 논의에도 적극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농림해양정책위원장도 맡았다.
해양산업의 중심지인 부산 출신이고 19·20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지지기반을 튼튼하게 쌓은 점도 고려됐다.
해양수산부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거쳐갔던 자리다. 김영춘은 2006년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의 지방선거 출마설이 돌 때 후임 장관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실제로 지명되지 않았다.
△부산 지역구에서 도전
김영춘은 2007년 대선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패배한 뒤 칩거했다.
2010년 당시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표가 김영춘의 복귀를 설득하면서 민주통합당의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당시 김영춘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영남 지역에 출마하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김영춘은 2012년 19대 총선에 고향인 부산 진구갑에 출마했지만 접전 끝에 패했다. 김영춘은 부산으로 이사하고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을 맡아 광역단위 정당단체의 첫 싱크탱크인 ‘오륙도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재도전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통합당의 부산시장 후보가 됐지만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오거돈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김영춘은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부산 진구갑에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한때 보수정당의 텃밭이었던 부산에서 승리하면서 지역주의를 어느 정도 깬 것으로 평가받았다.
2017년 5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부산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유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를 통해 문 대통령이 2017년 5월 19대 대선에서 부산 지역 지지율 1위에 오르는 데도 기여했다.
김영춘은 2020년 21대 총선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
△‘독수리 5형제’에서 열린우리당 탈당까지
김영춘은 16대 의원이었던 2003년 1월 대선 패배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한나라당 안에서 개혁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가 노무현 당선자의 당선 무효 소송을 내자 즉각 취하를 요구하면서 ‘당이 수구반동화의 길을 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영춘은 보수화되던 한나라당 지도부와 계속 충돌한 끝에 2003년 7월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안영근 의원과 함께 탈당했다. 이때 탈당한 사람들은 ‘독수리 5형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3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친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노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치솟았다. 그 여세를 몰아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열린우리당 안에서 비노무현계 인사로 분류됐다. 2006년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참여정부와 관계 단절을 주장했다. 김영춘은 2007년 4월 들어 범여권 통합신당을 추진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4월에 당내 통합론자들을 직접 비판하는 등 서로 다른 의견을 자주 보였다.
김영춘은 그 뒤 열린우리당을 흡수통합한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2007년 10월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책임지기 위해 18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 후보에게 합류해 그를 도왔다. 그러나 문국현 후보가 대선 이후 창조한국당 대표로서 자유선진당과 연대를 모색하자 탈당하고 한동안 정치인 생활을 접었다.
△상도동계 막내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운동을 하다가 직선제 개헌운동에도 참여했다.
이때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의 소개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던 김영삼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을 찾아가 정계에 입문했다. 지금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계파인 ‘상도동계’의 막내로 불리고 있다.
1987년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밑에서 비서로 일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자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김영삼의 셋째 아들’로 불릴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다.
1996년 15대 총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 서울 광진구갑 지역구로 출마해 한나라당 의원으로 당선됐다. 한나라당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이었다.
김영춘이 2003년 한나라당 탈당을 결정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영춘을 불러 “한나라당에 가만히 있으면 대선 후보도 될 수 있는데 왜 하루살이가 되려고 하느냐”며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영춘은 “한나라당이 ‘도로 민정당’이 됐는데 어떻게 있겠느냐”고 대답한 뒤 탈당했다.
김영춘은 2017년 5월 19대 대선 투표를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의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대학생 시절 민주화운동
김영춘은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뒤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당시 여당인 민정당사 점거시위를 주도해 구속됐다. 1985년 2월12일 총선 이후 출소해 노동운동을 했다.
이때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이 훗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선으로 정계에 입문하는 토대가 됐다. 김영춘은 운동권 출신이 많은 더불어민주당 ‘86그룹’의 맏형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