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력
1985년 미국 P&G에 입사해 1994년 필리핀P&G 이사가 됐다. 1996년 P&G 아시아본부 종이제품 수석재무담당에 올랐고 이듬해 아시아본부 템폰사업본부 사장에 임명됐다. 1997년 한국P&G가 쌍용제지를 인수하며 차석용 부회장은 1998년 쌍용제지 사장을 맡았다.
이어 1999년 1월1일자로 P&G 한국총괄사장으로 임명되면서 쌍용제지와 한국P&G 대표이사 사장을 겸직했다. 한국P&G 대표로서 유아용품 여성위생용품 식음료품 등 6개 사업분야를 총괄했다.
2001년 10월 해태제과 사장에 스카우트 됐다. 해태제과는 1997년 부도가 난 후 외국의 투자 컨소시엄에 인수된 상태였는데 차 부회장은 사장이 된지 1년만에 “회사를 기대 이상으로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해태제과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실적을 기반으로 하는 완전연봉제를 실시하고 과장 차장 등의 호칭을 없애는 등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호두마루’ 등 신제품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해태제과의 3년 연속 고성장을 이끌었다.
2004년 12월 LG생활건강 사장으로 스카우트 됐다. LG그룹에서 외부인사를 사장으로 영입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 이례적인 인사였다. 그만큼 LG생활건강은 실적개선이 절실했고 차 부회장의 능력을 높이 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7년 10월 한국코카콜라를 인수해 코카콜라음료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차 부회장은 한국코카콜라를 인수하고 2분기도 채 안 돼 흑자로 전환시켰다.
2009년 더페이스샵 지분 90%를 인수해 브랜드숍이 없던 LG생활건강의 화장품사업을 확대했다.
2011년 12월 그간의 실적을 인정받아 LG그룹 사상 처음으로 외부영입 인사(퇴직관료 제외)가 부회장에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LG그룹은 당시 “차 부회장은 사장 취임 후 27분기 연속 두 자릿수의 매출 및 영업이익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LG생활건강 주가를 15배 이상 높이는 등 남들이 따라 올 수 없는 놀라운 경영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 학력
1974년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군에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이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해외로 보낼 수 없다”는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하고 미국으로 떠나 뉴욕주립대학교에 입학했다. 어머니가 패물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주립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도 땄다.
졸업 후 곧바로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1983년 MBA 과정을 마쳤고 법조인에 대한 미련으로 인디애나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결혼까지 한 상태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하느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1985년 미국 생활용품 회사 P&G에 입사했다.
◆ 가족관계
부인 신정희씨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2012년 제 11회 한국SCM대상 개인부문 수상(지식경제부 장관표창)
-2010년 제44회 납세자의 날 모범 납세자 대통령 표창
-2009~2011년 홍콩 ‘아시아머니(Asiamoney)’지가 뽑은 ‘한국 최고경영자’ (3년 연속 선정)
-2008년 전문직여성한국연맹이 주최하는 제15회 BPW 골드 어워드
-2002년 외자유치 유공 국무총리 표창
◆ 기타
원래 꿈은 법조인이었다. 자신이 법조인이 못 된 게 아쉬워 아내와 딸에게 로스쿨을 다니게 했다.
취미는 클래식음악 감상과 애완견 돌보기다. 클래식음악을 좋아해 아시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사외이사를 맡기도 했다.
출근시간이 매일 아침 6시로 고정돼 있다.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할 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던 생활이 몸에 뱄기 때문이다.
2013년 기업 오너 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인중 최고의 주식부자로 조사됐다. 2013년 3월 기준 차 부회장의 주식평가액은 251억9659만원이었다. 최근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장학사업 등에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기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면서 1년간 재수했다.
군 제대 후 미국으로 유학가서 일주일만에 "말이 안통하고 도저히 적응이 안돼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부모님께 떼를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