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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초이노믹스 이끄는 실세
김디모데 기자 Timothy@businesspost.co.kr 2014-12-02 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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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경환은 대한민국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1955년 2월27일 경북 경산시에서 농사를 짓는 부친에게서 3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1978년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20년간 공직생활을 하다가 1999년 한국경제신문사 부국장 겸 논설위원으로 언론사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해 19대 국회까지 3선을 지내고 2013년 5월부터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2014년 7월부터 2016년 1월까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경제기획원 관료 출신으로 언론에 몸담은 경험이 있는 3선 의원으로 관계, 정계, 언론계, 재계 등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2007년 박근혜 후보캠프 종합상황실장, 2012년 박근혜 후보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은 친박 실세다.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력과 전문성을 갖춘 힘있는 경제부총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큰 방향만 제시하고 세부사항은 자발적으로 하도록 맡기는 선굵은 리더십의 소유자다. 장관이 손을 대면 밑에서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지경부 시절 보고서를 직접 고친 일이 없다고 알려졌다. 반면 크고 중요한 일은 직접 나서서 돌파하는 스타일이다.

정치인 같지 않고, 관료 같지 않다는 평가도 많다. 지경부 시절 “옆집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최경환 본인도 옆집아저씨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

원내대표 시절 정권 초기 당정청이 민감한 사안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동안 비교적 적극적으로 자기 견해를 드러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최경환 원내대표가 정무수석이 해야 하는 대야 협상창구 역할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0년 청도군청 행정사무관 시보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곧 경제기획원으로 옮겨 1994년까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대외경제조정실에서 근무했다.

경제기획원에서 제5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 SOC분야를 담당했고 공기업 평가와 민영화 등을 맡았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경제분야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또 아파트 투기자금 회수를 위해 아파트 채권입찰제를 만들었다.

1994년 경제기획원이 재무부를 흡수해 이름을 바꾼 재정경재원 국고국 서기원으로 일했고 1995년 런던으로 가 유럽부흥개발은행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귀국 뒤 1997년 청와대 경제수석실 보좌관과 1998년 기획예산처 법무담당관을 역임했다. 기획예산처 근무 시절 500억 원 이상 예산이 필요한 사업에 반드시 예비타당성조사를 받도록 제도를 마련해 지금까지 정부 예산수립에 적용되고 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경제신문에서 논설위원을 지냈고 2002년 한국경제신문 편집부 부국장을 역임했다. 그후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상근경제특보를 맡으며 정치와 처음 연을 맺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경북 경산시 청도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2008년 제18대와 2012년 제19대에서 같은 지역에서 연달아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 됐다.

18대 총선 때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했다. 17대 국회에서 재정경제위원회 간사를 지냈고 18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2013년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2007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종합상황실장을 맡았으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경제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를 맡았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2011년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지경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R&D전략기획단을 만들고 R&D사업을 확대했다.

2013년 5월부터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내다 2014년 7월부터 2016년 1월까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 학력

1969년 경산의 남성국민학교를 20회로 졸업하고 1972년 경산중학교 21회로 졸업했다.

1975년 대구고등학교 15회로 졸업했다. 1979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를 나왔다.

경제기획원 재직중 유학을 떠나 1987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대구한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장인숙씨와 사이에 장남 최규형 외 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199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12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상훈

199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12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어록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심각하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정규직은 과보호하고 비정규직은 덜 보호하다 보니 기업이 겁나서 정규직을 못 뽑고 비정규직이 양산된다.” (2014/11/26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단 정책세미나)


“제가 취임하자마자 41조 원 규모의 재정정책을 과감히 내놨다. 솔직히 말해 보궐선거 때 재미 좀 봤다.” (2014/11/20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전체 연수)


“기업인 사면 긍정적 여론 있다.” (2014/09/30 기업인 간담회에서)


“금리의 '금'자 얘기도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다.” (2014/09/21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대화를 언급하며)


“시급한 민생경제 법안들은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입장에서 분리·우선해 조속히 처리해 주길 바란다. 8월 임시국회에서에서 민생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우리경제는 길을 잃고 회복하게 힘들게 된다.” (2014/08/26 민생안정과 경제활성화 입법촉구 호소문)


“민생경제가 어려운 엄중한 상황에서 부총리라는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풀고, 국민행복 시대를 열기 위하여 우리 경제의 좌표를 재점검하고 전열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야 한다.” (2014/07/16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사)

“지금은 부동산이 한겨울이다.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고 있으니 감기에 걸려서 안 죽겠나.” (2014/06/13 기자들에게 부동산 규제 완화 가능성을 내비치며)


◆ 평가

경제기획원 관료 출신으로 언론에 몸담은 경험이 있는 3선 의원으로 관계, 정계, 언론계, 재계 등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2007년 박근혜 후보캠프 종합상황실장, 2012년 박근혜 후보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은 친박 실세다.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력과 전문성을 갖춘 힘있는 경제부총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큰 방향만 제시하고 세부사항은 자발적으로 하도록 맡기는 선굵은 리더십의 소유자다. 장관이 손을 대면 밑에서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지경부 시절 보고서를 직접 고친 일이 없다고 알려졌다. 반면 크고 중요한 일은 직접 나서서 돌파하는 스타일이다.

정치인 같지 않고, 관료 같지 않다는 평가도 많다. 지경부 시절 “옆집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최경환 본인도 옆집아저씨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

원내대표 시절 정권 초기 당정청이 민감한 사안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동안 비교적 적극적으로 자기 견해를 드러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최경환 원내대표가 정무수석이 해야 하는 대야 협상창구 역할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 기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제6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총재를 맡았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하며 임기를 1년 남겨두고 사의를 표명해 현재는 명예총재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같은 기간 동안 동문수학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연세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그러나 통화정책을 두고 시각차를 드러내며 한은의 독립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경부 장관 시절인 2010년 정부 정책 종합평가에서 일 잘하는 장관 1위로 뽑혔다.

2004년 17대 총선으로 처음 정치에 뛰어들 때 내세운 구호는 “경제를 바꾸러 정치에 나선다”였다.

저서로 <산업정책콘서트>(기파랑,2011) <NATO정권 내버려진 경제>(대경,200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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