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재 기자 betterfree@businesspost.co.kr2014-11-04 09: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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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김영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김영한은 1957년 9월27일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났다. 대구 경북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4년 사법연수원을 14기로 수료했다. 해군 군법무관으로 군 생활을 보냈다.
검찰 재직시절 주로 공안담당 검사로 활동해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분류된다.
1988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로 임명된 이후 대구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 1과장과 3과장, 서울지검 형사 10부와 공안1부 부장검사를 거쳤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청주지검장과 대구지검장, 수원지검장을 역임했다.
2011년 8월 대검찰청 강력부 부장으로 임명된 뒤 1년간 직위에 있다가 2012년 7월 검찰을 나왔다. 이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2014년 6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개편 작업에 따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에 임명됐다.
2015년 1월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을 놓고 국회 출석을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2016년 8월 21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대구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1·3과장, 서울지검 공안1부장 등을 두루 거친 대표적 ‘공안통’이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강직한 성품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배 검사에게 시원시원하게 수사를 맡기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도 엄하게 물었다. 한 후배 검사는 “한 번 신뢰를 잃으면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며 “매우 어려운 선배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런 성격 탓에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대구지검장 시절 민원인 접견을 일절 거부해 대구경북(TK) 지역 유력인사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시절 검사장 승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2012년 고검장 승진에서도 탈락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전형적인 TK출신 인사로 분류된다. 윤두현 홍보수석(경북 경산), 안종범 경제수석(대구)과 함께 박근혜 정부 3기의 ‘TK 3인방’으로 불린다. 박 대통령이 관피아 척결과 국가개조를 적극 주도하기 위해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인사라고 알려져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김영한은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1984년 사업연수원을 14기로 수료했는데 김진태 검찰총장과 동기다.
1988년 광주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대구지방검찰청 및 대구고등검찰청을 거쳤다.
1998년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부장검사로 승진했다. 이듬해 대구지검 공안부장을 맡았는데 이때부터 주로 공안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0년과 2001년 각각 대검찰청에서 공안3과장과 1과장을 맡았다. 2002년 서울중앙지검 형사 10부장으로 재직했는데 이 때 최초의 환경 특별사업경찰관리 실무지침서인 ‘환경사범 수사실무’를 발간했다.
2003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을 맡았던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활동을 지원하던 배우 문성근씨를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2004년 부산지방검찰정 동부지청 차장검사로 승진했고 이후 대구지방검찰청 2차장과 서울고등검찰청 공판부 부장,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장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2008년 대구고등검찰청 차장으로 검사장 승진을 했다. 이후 청주지검장과 대구지검장, 수원지검장을 거쳤다. 수원지검장을 맡았던 2010년 김상곤 당시 경기교육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는데 무죄가 선고되는 바람에 경력에 큰 오점을 남겼다.
2011년 대검찰청 강력부 부장을 맡은 후 이듬해 7월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변신했다. 퇴임 후 2014년 6월까지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홍경식 전 민정수석이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 등의 인사검증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임명된 지 10개월 만인 2014년 6월 물러나자 후임으로 지명됐다.
◆ 학력
1976년 대구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부인 변지은씨와 사이에 2녀를 뒀다.
◆ 상훈
◆ 상훈
어록
“청주지역 기업이나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질적 민생침해사범은 물론 지역토착비리 등 부정부패 척결에도 만전을 기해 지역사회 안정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검찰권이 행사되도록 할 것이다.” (2009/1/19, 청주지검 소회의실에서 열린 신임 청주지검장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의 수사권독립 문제는 헌법개정 사항이며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 소견을 밝히자면 범죄수사, 특히 강제수사 작용은 본질적으로 인권침해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법률전문가이자 인권보장기관인 검사의 지휘와 감독 하에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9/8/13, 신임 대구지검장 취임 후 법조기자들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젊은 대학생들은 벤자민 프랭클린이 강조한 13가지 덕목과 지, 덕, 체를 갖추고 원대한 꿈을 지녀야 한다. 부단히 교양을 쌓고 사회 봉사활동 등 많은 경험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2009/10/6, ‘경북대-POSCO 새천년위원회’가 주최한 교양강좌에 1일 강사로 초빙돼 한 말)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너그러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해당기자가 사건 뒤 만나자고 했지만 내가 좀 쑥스러워서 자주 만나지 못했다. 23년 전 일인데 깊이 반성하고 있다” (2014/6/16, 검사시절 기자 맥주병 폭행사건과 관련해 미디어오늘과 한 인터뷰에서)
◆ 평가
대구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1·3과장, 서울지검 공안1부장 등을 두루 거친 대표적 ‘공안통’이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강직한 성품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배 검사에게 시원시원하게 수사를 맡기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도 엄하게 물었다. 한 후배 검사는 “한 번 신뢰를 잃으면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며 “매우 어려운 선배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런 성격 탓에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대구지검장 시절 민원인 접견을 일절 거부해 대구경북(TK) 지역 유력인사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시절 검사장 승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2012년 고검장 승진에서도 탈락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전형적인 TK출신 인사로 분류된다. 윤두현 홍보수석(경북 경산), 안종범 경제수석(대구)과 함께 박근혜 정부 3기의 ‘TK 3인방’으로 불린다. 박 대통령이 관피아 척결과 국가개조를 적극 주도하기 위해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인사라고 알려져 있다.
◆ 기타
2014년 9월12일 안정행정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관보를 통해 32억 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본인 명의 예금 19억 원과 도곡동 아파트 10억8800만 원, 가락1동 아파트 5억8800만원 등 부동산, 그리고 3500만 원 상당의 피트니스 클럽 회원권 등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