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디모데 기자 Timothy@businesspost.co.kr2017-04-19 08:58:19
확대축소
공유하기
전체
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총괄사장.
손석희는 JTBC 보도부문 사장이다. JTBC 뉴스룸 앵커를 맡고 있다.
JTBC는 박근혜 게이트 수사에 결정적 도화선이 된 최순실 태블릿을 보도했다.
1956년 6월2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국민대학교 국문학과와 미네소타대학교 언론대학원을 졸업했다. 휘문고등학교 시절부터 방송반 활동을 했다.
MBC에 근무하면서 방송진행의 탁월한 감각을 인정받았다. 오랫동안 MBC 뉴스프로그램과 시사프로그램의 간판앵커로 활약했다.
MBC를 퇴사한 뒤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퇴사 이후에도 MBC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계속 진행했다.
성신여대 교수를 그만두고 JTBC 보도담당 사장으로 취임했다. 입사한지 6개월 만에 JTBC 메인뉴스인 JTBC 뉴스9에 앵커로 복귀했다.
JTBC 뉴스9가 JTBC 뉴스룸으로 개편되면서 JTBC 뉴스룸 메인앵커로 활동하고 있다.
가장 신뢰감 주는 언론인,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경영활동의 공과
△JTBC 보도 총괄사장 겸 뉴스룸 메인앵커
2013년 5월 JTBC에서 보도담당 사장에 올랐고 이후 메인뉴스 앵커도 맡았다. 보도 부문의 전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JTBC 메인뉴스는 1% 안팎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손석희가 직접 앵커로 나선 뒤 시청률이 2%대로 상승했다. 공영방송들이 제대로 못 다룬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세월호 참사 보도 등을 지속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 사고는 JTBC의 변곡점이 됐는데 기자들이 팽목항에 상주하면서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주류 언론보다 더 많은 신뢰를 받았다.
세월호 사건 당일 JTBC 기자가 세월호에서 구조된 여학생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던져 논란이 되자 손석희는 당일 진행한 뉴스에서 바로 사과했다. 손석희는 “어떤 해명이나 변명도 필요없다. 배운 것을 선임이자 책임자로서 후배에게 충분히 알려주지 못한 저의 탓”이라고 말했다.
손석희는 세월호 사고를 보도하던 중 인터뷰 대상 가족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눈물을 참느라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한 적도 있다. 직접 팽목항에 가서 뉴스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며칠째 같은 옷차림으로 방송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JTBC 뉴스룸은 월평균 시청률이 4%에 근접했다.
손석희가 합류한 지 1년여 만에 JTBC의 신뢰도는 각종 조사에서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2014년 9월 시사주간지 시사인의 언론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방송프로그램 항목에 KBS 뉴스9와 함께 뉴스룸이 공동 1등을 기록했다. 2015년 조사에서 단독 1위에 올랐고 2016년까지 3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면서 뉴스룸은 지상파 뉴스를 제치고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보도 프로그램이 됐다. 2016년 10월24일 최순실의 태블릿PC를 입수해 청와대 자료를 받아본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24일 시청률은 4.3%, 후속보도가 이어진 25일은 8.1%로 수직 상승했다.
이후 탄핵 정국까지 시청률이 꾸준히 상승했다. 12월6일 두자리수 시청률을 최초 경신했고 12월26일 10.96%의 시청률로 역대 종편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2017년 1월2일 유시민, 전원책, 유승민, 이재명 등이 출연한 신년토론은 11.894%의 시청률로 정점을 찍었다. 4월 현재 평일 시청률은 5~6%, 주말 시청률은 3~4%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정치인, 운동선수, 연예인, 예술가 등 유명인사들과 단독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7년에는 조기 대선 정국에 들어서면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홍준표 경남도지사,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인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성신여대 교수 시절
2006년 오랫동안 몸담았던 MBC를 나와서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MBC 간판앵커로 유명세를 누린 만큼 교수 시절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의는 수강신청 시작과 함께 마감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고 강의 때 교탁 위에 학생들이 놓은 음료수로 가득했다고 한다.
현직 기자나 PD 등 언론 관계자들을 초빙해 수업을 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토론에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등 수업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었다.
손석희 교수의 말하기와 토론과목 수업계획서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손석희는 수업계획서에서 “이 수업은 토론 중심”이라고 밝히며 “전반은 이론, 후반은 실습”이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까 수강신청할 맛이 안나지요?”, “이 수업은 말하기와 토하기로 소문이 났다고 들었다”고 적는 등 특유의 유머감감도 발휘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신여대 전임교수로 재직하기 전에는 2000년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2004년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를 맡은 적이 있다.
△MBC 시절
대학을 마치고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잠시 일하다가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해 1984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1987년 보도국 사회부 기자로 자리를 옮겨 일하기도 했다. 기자시절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과 지강헌 탈주사건 진압 뉴스 등을 보도했다. 1989년 다시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했다.
1986~1987년 MBC라디오 젊음의 음악캠프를 진행하기도 했다. 1989년 뉴스센터 앵커, 장학퀴즈 MC를 맡았고 1990년 저녁뉴스 앵커를 맡았다.
1993년 생방송 아침만들기, 선택 토요일이 좋다, 새벽을 연다 MC를 맡았다. 1994년 뉴스와이드 앵커, 한여름 밤의 재즈콘서트, 강변가요제 MC, 손석희가 여는 아침 DJ를 거쳤다.
1995년 MBC뉴스투데이 앵커, 1996년 경찰청 사람들 MC로 활동했다. 1997년 굿모닝코리아 앵커를 하다가 미국유학을 떠났다.
1999년 아침뉴스 2000 앵커로 복귀했고 2000년부터 MBC라디오 아침 시사방송인 손석희의 시선집중 진행을 맡았다. 이 프로그램은 손석희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MBC에서 물러난 뒤에도 계속 맡아 2013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2002년 100분토론의 3대 진행자를 맡아 2009년 하차할 때까지 최장수 진행자를 역임했다. 대표 프로그램인 시선집중과 100분토론을 통해 현재 손석희의 이미지를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손석희는 당시 목요일밤에 100분 토론을 진행하고 새벽에 일어나 시선집중 생방송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 JTBC 뉴스룸 주간시청률.<2016년 9월12일 ~ 2017년 3월26일>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JTBC의 편향성 지적에 대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손석희와 JTBC 뉴스룸은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과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JTBC의 편향성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는 존재한다. 이는 공정하고 올바른 방송인인 손석희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평가를 미치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대선 여론조사와 관련해 지지율 그래프의 상대적 크기가 일관성이 없는 등 수차례 같은 오류가 반복됐음에도 이와 관련한 공식적인 사과가 없었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와 관련해 뉴스룸을 겨냥해 ‘재인TBC’, ‘안TV’라는 비꼬는 표현도 많이 나온다. 2017년 4월10일 뉴스룸 방송 이후 진행된 뉴스룸 소셜라이브에서 정치부 기자들이 손석희에게 이를 질문하자 “이런 단어를 들어봤다”면서 “양쪽에서 욕먹는 건 팔자”라고 대답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인터뷰 이후 각 진영에서 공정성을 잃었다는 불만이 잇따르자 4월12일 앵커브리핑에서 이를 직접 해명했는데 이 과정에서 오히려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손석희는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한 쪽에서 저희를 향해 쏟아져 나온 말들은 그보다 험해서 거의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들이 더 많았다”고 언급하며 배경으로 문재인 지지 카페의 댓글들을 모자이크 처리해 노출했다.
그러나 이 댓글들은 욕이 아니었는데도 마치 욕처럼 보이게 했다며 해당 카페 운영자가 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문재인은 점잖은데 극성스런 지지자들의 표본을 만들고 싶었다면 공정성을 잃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JTBC 사주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 관련된 공정성 논란도 있다.
3월18일 홍석현 전 회장이 회장에서 물러나고 정치행보를 시작하면서 손석희와 뉴스룸이 공정성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다. 홍 전 회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손석희가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홍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회장 사퇴를 손석희와 미리 의논했다고 밝혔다.
손석희는 3월20일 앵커브리핑에서 “저희는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며 “나는 그런 실천의 최종 책임자이며 책임을 질 수 없게된다면 책임자로 존재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도 과제다.
홍 전 회장은 4월16일 유튜브에 게시한 영상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손석희를 교체하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밝혔다. 홍 전 회장은 구체적인 외압이 5~6차례 있었으며 그 중 두 번은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은 태블릿PC 보도가 나간 이후 외압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독대한 자리에서도 손석희를 교체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18일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소속 관계자는 “독대 대화의 절반은 손석희를 갈아치우라는 압력”이었다며 “이 부회장이 홍 회장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난색을 표하자 박 대통령이 광고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 평가
시사주간지 시사인의 신뢰도 조사에서 2007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줄곧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1위를 지키고 있다. 시사저널이 실시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2005년 이후 12년 연속 1위에 올라있다.
손석희의 부인 신현숙씨는 손석희가 가정적인 남편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고 챙긴다”며 “식구들과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따뜻한 품성을 가진 남편”이라고 말했다.
장광효 디자이너는 2013년 방송된 한 케이블채널 프로그램에서 “손석희는 대학시절 4년 동안 머리부터 발끝까지 항상 똑같은 패션을 유지할 만큼 검소함이 몸에 밴 친구였다”고 말했다. 장 디자이너는 손석희와 국민대학교 동기다.
JTBC 사장으로 있지만 기자들에게 사장 대신 손 선배라는 호칭으로 부르도록 하고 있다.
장성규 아나운서는 손석희를 “탈권위의 상징으로 내가 얼어있으면 먼저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풀어주는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배들 사이에서 무서운 선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생방송 도중이라도 취재가 미흡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면 제대로 확인할 것을 따끔하게 당부한다.
김주하 전 MBC 아나운서는 자서전에서 손석희에게 혼나 생방송 내내 펑펑 우는 방송사고를 낸 적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중적인 이미지가 좋고 잘 알려진 인사로 정계 진출 가능성도 끊임없이 회자된다. 1990년대부터 국회의원 출마설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2000년대 들어 서울시장 후보로 여론조사 대상에 오른 적도 있다.
손석희는 과거 진행하는 라디오 생방송 중 정계 진출 생각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손석희가 정계에 진출할 경우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종교는 천주교로 세례명은 마르첼리노다. 군대에서 천주교를 접하고 세례명을 받았다고 한다.
손석희는 2015년 서강대 개강 미사에 강사로 참석한 자리에서 천주교가 가장 지루해 보여서 가서 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결정했는데 무릎을 꿇었다 일어났다 하는 등 오산이었다고 말했다. 군대 동기들은 세례명이 흔치 않은데다 다섯 글자를 다 부르기 귀찮다며 리노라고 불렀다고 회고했다.
1997년 미국 유학중 손석희의 미국탐험이라는 탐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오전 9시30분 MBC에서 15분간 10회 분량으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제도나 풍습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손석희는 이 프로그램을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그램”이라 언급하며 애착을 보였다.
손석희는 60대인 나이에 비해 동안에 준수한 외모로 호감을 사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뉴스룸’에 배우 한석규, 가수 서태지 등 동안 외모 출연자가 출연할 때마다 그의 외모도 덩달아 뉴스거리가 된다.
JTBC 사주인 홍석현 전 회장이 직접 손석희를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전 회장은 저서에서 손 사장 영입을 삼고초려에 비유했다.
손석희는 두 차례나 제의를 거절했지만 홍 전 회장과 직접 만난 자리에서 홍 전 회장이 재차 간청했고 손석희가 마침내 수락했다고 한다. 손석희는 모든 걸 믿고 맡겨달라고 요청했고 홍 전 회장은 보도에 관한 권한 일체를 맡기고 참견하지 않을 작정으로 손석희를 영입했다.
▲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총괄사장.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4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1987년 보도국 사회부 기자로 서울시청 등에 출입했다.
1989년 아나운서국에 복귀했고 1997년 아나운서국 차장대우에 오른다. 1999년 차장으로 승진했다.
2002년 아나운서국 아나운서2부 부장, 2003년 아나운서1부 부장대우를 거쳐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아나운서국 국장을 지냈다.
2006년 2월 MBC를 그만두고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로 옮겼다.
2011년 1월 대검찰청 검찰정책자문단 자문위원을 맡았다.
2013년 5월 시선집중과 성신여대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JTBC 보도부문 총괄사장에 올랐다.
2013년 9월 JTBC 뉴스9 단독 앵커를 맡았다.
◆ 학력
1970년 서울용강초등학교, 1973년 서라벌중학교, 1975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국민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1999년 저널리즘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 가족관계
손석희의 아내 신현숙은 1962년생으로 손석희보다 6살 연하다. 1984년 12월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1985년 MBC ‘뽀뽀뽀’를 맡아 진행했다.
두 사람은 약 1년 7개월 사내 연애를 하다가 1987년에 결혼했다. 슬하에 손구용, 손구민 2명의 아들이 있다.
손영민 강릉원주대학교 교수는 손석희의 누나다. 손석희는 MBC 선배인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누나에게 소개해줬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결혼했다.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JTBC 콘텐츠 본부장 겸 PD로 재직했다가 아주대학교 교수로 옮겼다. 손석희가 JTBC행을 결심하는데 주 대표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2015년 국민대 총동문회에서 자랑스런 국민인상을 수상했다.
2014년 제13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다.
2012년 제39회 한국방송대상 라디오진행자상을 받았다.
2009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08년 MBC 브론즈 마우스상을 받았다.
2007년 제3회 한국참언론인대상 시사토론부문을 수상했다.
2006년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라디오진행자상을 수상했다.
2003년 한국아나운서대상을 받았다.
1995년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을 받았다.
손석희는 15일 국민대 총동문회로부터 ‘2015 자랑스런 국민인상’을 수상했다.
◆ 기타
1979년 입대해 부산에 있던 육군군수사령부 본부근무대 행정병으로 복무했다.
저서로 자전적 수필집인 '풀종다리의 노래'(1993)가 있다.
▲ 손석희는 MBC 직장동료인 신현숙 아나운서와 1987년 결혼했다.
어록
“지난 주말부터 여러 사람의 입길에 오르내렸는데, 무엇보다 우리가 그동안 견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진심이 오해되거나 폄훼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우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명확하다. ‘우리는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생겨난 지 얼마 안된 언론사로서, 그동안 특정 기업의 문제를 보도하거나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낼 때 고민이 없지 않았다. 예외없이 반작용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모두가 동의하는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은 옳은 것이며,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하거나 복무하지 않는다.” (2017/03/20,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홍석현 전 회장 사임과 관련해)
“온갖 의혹을 부정해온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냈고, 결국 탄핵안 가결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이 작은 태블릿 PC는 엄청난 태풍을 몰고 온 나비효과의 시작은 아니었다.
2014년 4월 16일. 시민들의 마음이 그 배와 함께 가라앉았던 날.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부모들의 절규를 뒤로한 채 의전을 이야기하고. 라면을 챙겨먹고.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기에만 급급했던 그 야만의 시간… 시작은 거기서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길고 긴 겨울은 이제 시작됐고, 또 다시 봄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은 남아있다. 진실을 인양하고 모든 비정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2016/12/09,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후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어제 이후 JTBC는 또다시 가장 주목받는 방송사가 돼있다. 채널에 대한 관심은 곧바로 구성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겸손하고 자중하고 또 겸손하고 자중하자.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취재현장은 물론이고, 길가다 스쳐지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사실 이건 가장 신뢰받는 뉴스로 꼽힐 때부터 하고 싶은 말이었다. 제 자신이 잘 실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JTBC맨이라면 이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금주들어 내놓고 있는 단독보도들은 사람들을 속시원하게 하는 면도 있지만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지게도 하는 내용들이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던져주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태도는 너무나 중요하다. 겸손하고 자중해도 우리는 이미 JTBC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므로 손해볼 것이 없다.” (2016/10/25,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후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한국 제일의 대기업 회장의 성매매 의혹. 세간의 관심은 JTBC가 보도하느냐였다. 그동안 '뉴스룸'은 비록 완벽하진 못했어도 해당 기업에 대한 문제제기성 보도를 힘닿는 한 게을리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저희들이 이번 사건을 두고 고민한 것은 단지 뉴스의 가치였다.
힘있는 대기업이 그 힘을 가지고 언론사들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면 그것은 정당하지 않다. 사실 삼성이 받고 있는 의심은 바로 그런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서 단지 그것이 힘 있는 대기업 회장의 문제냐, 아니냐를 떠나 무엇이 저널리즘의 본령에 맞느냐를 놓고 고민할 수 있는 자유도 있어야 한다.” (2016/07/25,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이건희 회장 성매수 동영상 보도와 관련해)
“사회의 맨 얼굴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 그 사회가 처한 위기 상황은 약자에게 더욱 냉정하게 작용한다. 바이러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않는데 사회적 차별로 틈새가 벌어졌고 그 사이로 신종 질병이 가차없이 파고든 셈이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질병과 싸우겠다는 모순에 빠진 걸지도 모른다. 메르스는 이렇게 우리 사회의 감춰진 민낯까지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2015/06/15,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메르스 관리대상에서 파견직 근무자가 제외된 점을 지적하며)
“세월호 관련 보도로 강하게 인식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분도 있는 것 같고, 무슨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보는 시선도 일부 있는 걸로 안다. 그러나 세월호는 아직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 사고원인도 모르고 많은 어린 친구들이 왜 죽어갔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또 ‘보혁’으로 나뉘었다. 욕설과 비방, 유언비어, 마타도어(흑색선전)가 난무한다. 이런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꾸준히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은 자랑스럽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피하지 않기 위해서다.” (2014/09/05, 시사인과 인터뷰에서 세월호 보도가 JTBC 뉴스9의 인지도를 올렸냐고 생각하는가 질문을 받고)
“신부가 가난한 이에게 빵을 주면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지만, 그가 왜 가난한 것인지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 하면 빨갱이라는 비난을 듣게 된다.” (2013/11/27, JTBC 뉴스9 클로징 멘트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선언을 염두에 두고)
“한국의 정치는 국정원을 둘러싼 스캔들로 인해 마비돼 있습니다. 어제자 뉴욕타임스가 본 우리 정치의 현주소입니다. 굳이 뉴욕타임스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2013/10/23, JTBC 뉴스9 오프닝 멘트에서)
“어깨가 무겁지만 제작진 모두가 한마음으로 오늘을 준비했다. 70년 전 르몽드지의 창간자 위베르 뵈브메리는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다루겠다고 말했다. 노력하겠다.” (2013/09/17, JTBC 뉴스9 클로징 멘트에서 앵커로 복귀한 소감을 말하며)
“나는 MBC에서 30년을 일했다. 떠나왔어도 거긴 내 고향이다. 고향에 대해선 누구나 좋은 기억을 남겨두고 싶어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2013/08/30,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MBC를 그만둔 이유를 질문받자)
“13년 동안 쉼없이 새벽을 달려왔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었다. 정론의 저널리즘을 제 의지로 한번 실천해보기 위해 떠난다. 훗날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겠다. 오랜 고민 끝에 문화방송에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2013/05/10, ‘손석희의 시선집중’ 클로징 멘트에서 ‘시선집중’을 하차하는 소감을 말하며)
“오랫동안 MBC 사람이었고, 나를 보면 사람들이 MBC를 떠올리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난다는 게 힘들었다. 다른 방송사에서 한다는 게 내 몸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내가 늘 접하는 선거전략과 미디어를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가 굉장히 컸다.” (2012/10/15, MBC 이외 방송사 첫 출연인 EBS 다큐멘터리 킹메이커 기자간담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