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그룹은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지니고 있는데 ‘도전을 통한 성장’이라는 박현주의 성장철학이 큰 영향을 미쳤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민을 많이 하지만 일단 마음을 굳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속전속결하는 성격이다. 그만큼 올인한다. 결단력이 있고 승부사적 기질이 있다.
동원증권 중앙지점장으로 있을 때 점훈도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려면 앞으로 달려 나가는 길 뿐이다”라고 정했다.
미래에셋컨소시엄이 2015년 12월 KDB대우증권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국내 증권사에서 자기자본 8조 원의 초대형 증권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박현주는 베팅능력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경쟁사 가운데 2조4천억 원이라는 가장 높은 인수가격을 써냈다. 결국 박현주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대우증권 인수를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중반 인터넷은행을 추진하다가 그 해 8월 포기했다. 박현주는 “당초 인터넷은행을 하려고 했는데 하지 않은 이유는 미래에셋이 투자에서 대출로 간다는 게 걸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현주는 직관적으로 말을 구사한다. 박현주가 그룹 중역회의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그래서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알려졌다.
동물적 투자감각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1999년 12월 미래에셋캐피탈이 ‘다음’에 24억 원을 투자해 1천억 원에 이르는 매매차익을 얻었다. 박현주는 당시 미국의 인터넷 열풍이 한국에도 나타날 것으로 미리 예측했다.
미래가치를 내다보고 바이오, 헬스케어 등 신성장 동력 분야 벤처기업에 앞으로 10년 동안 1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래에셋캐피탈은 바이오분야 전문인력을 더 채용했고 혈액진단 벤처업체에 투자했다. 또 미래에셋대우의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 애널리스트들이 신성장사업 전담팀에 투입됐다.
부동산에도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2~3년 동안 미국, 중국, 호주 등 해외 부동산에 4조 원 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광화문 포시즌 호텔의 지분을 사들였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역이다. 박현주의 총자산은 1조2650억 원으로 2013년 ‘1조 클럽’ 자수성가형 6명 가운데 한 명이다. 2009년 그의 미래에셋 글로벌 성장 스토리가 하버드비즈니스스쿨 MBA의 ‘국제 기업가정신’ 강의교재로 채택됐다.
독서를 통해 증권시장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을 키웠다. 스스로 무질서한 상황에 노출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박현주는 평소에 “회사가 얻은 열매를 작은 부분이라도 전체직원들과 나누려고 한다”고 말해 왔다. 그는 주력회사 주식의 20% 이상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2011년과 2012년에 이어 2013년 6월 배당금 전액인 34억3천만 원을 기부했다.
‘투자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기업이 할 일은 투자라고 강조한다. 또 고객을 장기투자로 유도하며 한국의 증권투자 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
인재에 대한 욕심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변재상 미래에셋증권 사장을 직접 영입했다. 동원증권 지점장 시절 경쟁관계였던 김영일 한국투신운용 펀드매니저에게 ‘박현주 펀드’를 맡겼다.
박현주는 미래에셋대우를 인수할 당시 미래에셋대우 노조는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해왔기 때문에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그룹 통합 뒤 화학적 결합을 잘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시장에서는 통합이 이뤄진 뒤에도 내부적 불만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45일 만에 대리로, 1년 1개월 만에 과장으로 승진했다. 1991년 동원증권 중앙지점 지점장으로 배치됐고 1996년 동원증권 강남본부장 이사로 승진했다.
이런 금융계 경력을 바탕으로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창업했다.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세운 뒤 2001년부터 미래에셋그룹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10년 사이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금융 매니저가 됐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미래에셋의 펀드수익률은 700%를 넘었고 운용자산은 10년 사이 60조 원으로 불어났다.
2003년 국내 자산운용사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법인(홍콩)을 세우고 해외 대체투자에 나섰다.
미래에셋자산운용 PEF는 2013년 커피빈의 시장 노하우가 탄탄하다고 보고 미국 사모펀드 2곳과 함께 커피빈 경영권 지분 75%를 3천억 원에 인수했다.
해외부동산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03년 국내 최초로 해외운용법인인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을 설립했다. 그 뒤 전 세계 12개국으로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2008년 2월에는 미래에셋익재투자자문(상해)를 설립했고 이후 미래에셋자산운용(브라질)을 설립했다.
2011년 6월 미래에셋자산운용(대만)을 출범했다.
2011년 11월 캐나다의 선두 ETF 운용사인 호라이즌 ETFs를 인수했다.
2012년 3월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을 합병했다.
미래에셋증권은 2014년 3월 개인연금 자산 1조 원을 넘겼고 2015년 5월 연금자산 5조 원을 넘겼다.
미래에셋컨소시엄은 2015년 12월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2016년 5월 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대우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내다가 미래에셋대우 회장에 올랐다.
◆ 학력
1977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고위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AMP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박현주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농부였다. 고등학교 시절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이 그의 가치관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는 부지런하고 인정이 많았다고 한다.
부인 김미경씨와 사이에 박하민, 박은민, 박준범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그는 은퇴한 뒤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겠다고 강조해 왔다.
장녀 박하민씨는 미래에셋운용 홍콩법인 해외부동산투자본부에 입사했는데 박현주는 2세 경영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고 밝혔다.
박하민씨는 1989년생으로 미국 코넬대 인문학부에서 사학과를 졸업한 뒤 맥켄지코리아, 해외부동산 투자컨설팅회사인 CBRE 등에서 일했다.
박하민씨와 차녀 박은민 씨는 각각 비상장사인 미래에셋컨설팅 주식을 8.19%씩 보유하고 있다.
◆ 상훈
2008년 제40회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을 받았다.
2009년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을 수상했다.
2011년 한국금융투자협회 금융투자인상 대상을 받았다.
2013년 10월 제1회 매일경제 럭스맨 기업인상을 받았다.
◆ 상훈
2008년 제40회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을 받았다.
2009년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을 수상했다.
2011년 한국금융투자협회 금융투자인상 대상을 받았다.
2013년 10월 제1회 매일경제 럭스맨 기업인상을 받았다.
어록
“미래에셋이 대우를 만나 상품 영역이 큰 폭으로 넓어지게 됐다. 그동안 미래에셋증권은 프라이빗뱅킹(PB)업무와 자산관리 등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쳐온 것 뿐이다.” “미래에셋증권으로서는 PB사업만 운영해왔지만 이번 대우와의 합병을 계기로 브로커리지 영업에도 진출하고자 한다. 점포를 그대로 유지할 계획인만큼 점포장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2016/04/15, ‘미래에셋대우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해 강의하면서)
“홈트레이딩서비스(HTS)와 관련해서는 콘텐츠를 훨씬 많이 공급하는 방향으로 수정할 계획이 있다.” (2016/04/15, ‘미래에셋대우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해 강의하면서)
"어려운데서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일을 한 셀트리온과 서정진 회장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2016/04, 합병을 앞둔 미래에셋대우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KDB산은자산운용 인수를 통해 한국 대표 헤지펀드 회사를 육성하겠다. 산은자산운용이 채권에 강점을 갖고 있는데 이를 활용해 중위험 중수익의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회사로 만들겠다. 산은자산운용은 홍콩과 결합해 대표적 중위험 중수익 상품 공급 회사가 될 것. 한국 자본시장에 다른 회사가 탄생하는 셈이다." (2015/12/28, 서울 광화문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한국을 투자하는 나라가 되도록 만들겠다. 지금처럼 기업이 투자를 안 한다면 한국의 미래가 없다. 기업이 할 일은 첫째도 투자, 둘째도 투자다." (2015/12/24, 미래에셋컨소시엄이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새롭게 출범하는 회사는 대우증권의 브랜드 가치를 살려 미래에셋대우증권이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 미래에셋과 대우의 장점을 잘 결합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발전해 가겠다.” (2015/12/24, 미래에셋컨소시엄이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미래에셋은 지금까지 저축에서 투자로, 직접투자에서 간접투자로, 상품 중심에서 글로벌 자산배분으로 끊임없이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꿔왔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공격적으로 M&A하고 국내외 부동산 등 다양한 상품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다.” (2015/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투자는) 세상을 보는 것, 상식을 가지고 미래를 보는 것. 투자는 할 일과 하지 않아야 될 일을
냉철하게 구분하는 일.” “사람의 수명이 120~150살까지 늘어난다. 실리콘밸리는 이미 노화 방지에 돈을 들이고 있고 헬스케어 섹터는 미국 증시를 떠받치는 힘이 되고 있다.” (2015/08, 한국경영학회 강연에서)
“한국은 벤처창업이 천국인 나라가 돼야한다. 앞으로 미래에셋대우의 투자의 방향성은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씨앗을 뿌려주느냐는 것이다." “2013년 한국 가계의 자산 비중에서 보험과 연금이 처음으로 은행 정기예금을 추월했다. IT에서는 융합, 컨버전스가 모바일 디바이스였듯이 향후 금융의 컨버전스는 연금이 될 것이다.” (2014/01/02, 신년사에서 연금시장 경쟁우위 확보를 당부하며)
“특별히 음식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닌데 1인당 밥값이 10만 원을 훌쩍 넘는 호텔들은 우리 없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지금같이 어려운 때 서민들이 가는 대중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서로 상생하는 방법이다.” (2012/10/31, 그룹 임원들에게 대중음식점 이용을 독려하며)
“지난해 고객자산 보호에 무게를 둔 전략을 펼쳤지만 만족할 만한 수익을 못 드렸습니다.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자산 다각화 포트폴리오로 지혜롭게 투자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2012/01/02, 주요 일간지의 미래에셋그룹 광고에서)
"한국인만으로 세계시장으로 확대하기는 어렵다. 동맹군을 찾아야 한다. 인구 100만 명이 채 안 된 몽골족이 150년간 2억 명의 세계 인구를 지배한 '연합(동맹)전략'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2008/08/04,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래에셋그룹을 아시아 1위의 금융투자회사로 키워 모건스탠리·메릴린치·골드먼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 (2007년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 평가
미래에셋그룹은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지니고 있는데 ‘도전을 통한 성장’이라는 박현주의 성장철학이 큰 영향을 미쳤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민을 많이 하지만 일단 마음을 굳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속전속결하는 성격이다. 그만큼 올인한다. 결단력이 있고 승부사적 기질이 있다.
동원증권 중앙지점장으로 있을 때 점훈도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려면 앞으로 달려 나가는 길 뿐이다”라고 정했다.
미래에셋컨소시엄이 2015년 12월 KDB대우증권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국내 증권사에서 자기자본 8조 원의 초대형 증권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박현주는 베팅능력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경쟁사 가운데 2조4천억 원이라는 가장 높은 인수가격을 써냈다. 결국 박현주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대우증권 인수를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중반 인터넷은행을 추진하다가 그 해 8월 포기했다. 박현주는 “당초 인터넷은행을 하려고 했는데 하지 않은 이유는 미래에셋이 투자에서 대출로 간다는 게 걸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현주는 직관적으로 말을 구사한다. 박현주가 그룹 중역회의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그래서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알려졌다.
동물적 투자감각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1999년 12월 미래에셋캐피탈이 ‘다음’에 24억 원을 투자해 1천억 원에 이르는 매매차익을 얻었다. 박현주는 당시 미국의 인터넷 열풍이 한국에도 나타날 것으로 미리 예측했다.
미래가치를 내다보고 바이오, 헬스케어 등 신성장 동력 분야 벤처기업에 앞으로 10년 동안 1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래에셋캐피탈은 바이오분야 전문인력을 더 채용했고 혈액진단 벤처업체에 투자했다. 또 미래에셋대우의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 애널리스트들이 신성장사업 전담팀에 투입됐다.
부동산에도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2~3년 동안 미국, 중국, 호주 등 해외 부동산에 4조 원 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광화문 포시즌 호텔의 지분을 사들였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역이다. 박현주의 총자산은 1조2650억 원으로 2013년 ‘1조 클럽’ 자수성가형 6명 가운데 한 명이다. 2009년 그의 미래에셋 글로벌 성장 스토리가 하버드비즈니스스쿨 MBA의 ‘국제 기업가정신’ 강의교재로 채택됐다.
독서를 통해 증권시장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을 키웠다. 스스로 무질서한 상황에 노출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박현주는 평소에 “회사가 얻은 열매를 작은 부분이라도 전체직원들과 나누려고 한다”고 말해 왔다. 그는 주력회사 주식의 20% 이상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2011년과 2012년에 이어 2013년 6월 배당금 전액인 34억3천만 원을 기부했다.
‘투자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기업이 할 일은 투자라고 강조한다. 또 고객을 장기투자로 유도하며 한국의 증권투자 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
인재에 대한 욕심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변재상 미래에셋증권 사장을 직접 영입했다. 동원증권 지점장 시절 경쟁관계였던 김영일 한국투신운용 펀드매니저에게 ‘박현주 펀드’를 맡겼다.
박현주는 미래에셋대우를 인수할 당시 미래에셋대우 노조는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해왔기 때문에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그룹 통합 뒤 화학적 결합을 잘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시장에서는 통합이 이뤄진 뒤에도 내부적 불만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기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창업했을 때부터 합류한 최현만 미래에셋금융 부회장은 지금도 그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다.
박현주는 창업초기인 2000년 ‘배려가 있는 자본주의’라는 사회공헌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75억 원에 이르는 사재를 출연해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해외교환장학생을 선발해 등록금, 체재비, 항공료를 지원한다.
미래에셋이 2012년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한 금액은 약 85억6천만 원에 이르며 미래에셋의 모든 임원들은 매달 급여의 ‘1%’를 기부하는 ‘미래에셋 1% 희망나눔’에도 동참하고 있다.
박현주는 2015년 9월 청년 일자리 해결을 위한 ‘청년희망펀드’에도 기업인 가운데 가장 먼저 20억 원을 기부했다.
박현주는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라고 말한다.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라는 책을 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 대기업진단 지배구조 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박현주는 미래에셋그룹 계열사 어느 곳에도 이사로 등재되지 않았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셀트리온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은 평소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미래에셋대우는 2016년 9월 셀트리온의 관계사인 셀트리온지에스씨에 자기자본계정으로 200억 원을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