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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

이공계 관료 출신, 소탈하고 친화력 강해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6-07-25 00: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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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
▲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


권용원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광성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공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대학원(MIT)에서 기술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1회 기술고시에 합격해 통상산업부와 산업자원부에서 일하다가 다우기술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인큐브테크 사장과 다우엑실리콘 사장 등을 거쳐 키움인베스트먼트 사장으로 선임됐다.

현재 키움증권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7년 연말 금융투자협회장 후보에 공식출마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8년 1월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됐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이공계 전문가이자 관료 출신으로 증권업계 CEO들 가운데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관료 시절 이공계 출신이라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경영서적과 경제신문을 챙겨보며 경영지식을 쌓았다고 한다.

기술고시를 합격해 상공부(현 산업자원부)에 들어간 후 20여년간 IT정책, 산업기술, 벤처정책 등 산업 전반에 걸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다우기술, 인큐브테크, 다우엑실리콘 등을 거쳐 40대 중반이 넘어서야 금융업계에 발을 들였다.

해박한 IT 지식을 무기로 키움증권을 온라인 브로커리지의 강자로 키워냈다. 특히 키움증권의 온라인과 모바일 부문 강점을 경영의 차별화 요소로 들고 있다.

관료 시절인 1986년 7월 통상산업부에서 반도체 업무를 맡았을 때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반도체 초기 투자지원 실무를 담당하면서 ‘반도체 신화’에 일조했다고 평가됐다. 1998년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익래 다우기술 회장에게 입사를 권유받았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권용원은 2011년 한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기업애로를 처리하면서 기업에 조언하는 역할뿐 아니라 직접 경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다우그룹에 합류한 뒤 유망벤처기업 투자와 인수합병 쪽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 때문에 키움증권 사장으로 취임됐을 때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됐지만 키움증권의 실적 호조를 이끌어내 논란을 잠재웠다.

세계미래포럼의 ‘금주의 미래회원’ 소개글에서 ‘IT전문가다운 발상과 창의적인 마인드로 디지털융합 시대를 맞아 금융이 나갈 길을 제시하는 CEO’라고 평가됐다.

키움증권 직원들과 번개 형식의 술자리를 종종 여는 등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움증권에서 기업공개(IPO)를 주관하는 회사를 일일이 방문해 전반적인 경영상황을 살펴보는 등 투자금융사업 확대에 온힘을 쏟고 있다.

경영철학으로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많이 봐야 한다’를 제시한다. 외부 인력을 뽑는 것보다 내부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2012년 7월 한 매체에서 주최한 증권사 사장들의 대담에서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으로부터 “키움증권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고객 변화에 발맞추는 능력이 탁월해 많은 증권사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인수합병을 기업경영의 중요한 전략으로 꼽고 있다.

키움증권 사장이 된 뒤 키움자산운용을 창립했고 삼신저축은행을 인수해 키움저축은행으로 만들었다. 2014년에 우리자산운용을 인수해 키움투자운용과 합친 키움투자자산운용으로 출범시켰다. 2016년 7월에도티에스저축은행 인수에 성공했다. 향후 보험사를 인수할 계획도 보유하고 있다.

임원들에게 밝은 표정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기준으로 보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6년 제21회 기술고시에 합격해 통상산업부 기술품질국 산업기술기획과 서기관을 맡았다.

1987년 통상산업부 정보진흥과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산업기술정책과 과장으로도 일했다.

1998년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 산업기술정책과 서기관으로 임명됐다. 1999년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 산업기술개발과 과장이 됐다.

2000년 다우기술 부사장으로 영입됐으며 다우그룹 전략경영실장도 함께 맡았다.

2004년부터 2007년 2월까지 다우그룹 계열사인 인큐브테크와 다우엑실리콘 대표이사 사장으로 일했다.

2007년 7월부터 2009년 4월까지 키움인베스트먼트 사장과 한국아이티벤처투자 CEO를 역임했다.

2009년 4월부터 키움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2014년 9월 금융투자협회 회원이사로 선임됐다.

2018년 1월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됐다.

◆ 학력

1980년 광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으며 198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대학원(MIT)을 기술경영학 석사로 졸업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는 종합병원 전문의 출신으로 의과대학 교수로 일했다.

부인 이용신씨는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의 직계 후손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함께 다녔다. 이용신씨는 IBM에서 근무했으며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실리콘밸리 IBM연구소에서 일하기도 했다.

부인과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 상훈

2010년 3월 키움증권이 모범납세자로 선정되면서 ‘제44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회사 차원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2013년 1월 한국거래소에서 선정한 ‘2012년도 컴플라이언스 대상’을 수상했다.

◆ 상훈

2010년 3월 키움증권이 모범납세자로 선정되면서 ‘제44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회사 차원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2013년 1월 한국거래소에서 선정한 ‘2012년도 컴플라이언스 대상’을 수상했다.

어록


“전문성·직업윤리·장대한 비전·소명의식·도전정신은 금융인이 갖춰야 하는 다섯 가지 덕목이다. 세계 역사는 금융위기가 반복돼 왔고 탐욕을 통제하기 위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실패한 게 금융의 역사다. 하루에 3조 달러 가량의 돈이 움직이는 금융업에서 장대한 비전을 가진 인재가 직업윤리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2016/05/23, 한국항공대학교에서 진행된 ‘대학생을 위한 CEO 초청특강’에서)

“올해는 최근 몇 년 동안 추진했던 ‘온라인 금융상품거래 종합플랫폼’이라는 목표의 결실을 맺는 원년이 될 것이다. 녹록치 않은 대내외 환경에도 기존 금융 산업의 질서를 뒤흔드는 파괴력 있는 개혁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과 밀접하게 연관된 개혁과제라면 온라인에 특화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키움증권에는 오히려 좋은 기회다.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키움증권을 입증하는 한 해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2016/01/04, 키움증권 신년사에서)

“우리는 현재 실체가 없어 보이는 핀테크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거부감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진정성 있는 변화를 추구한다면 결국 금융시장에서 고객에게 편익을 주는 금융서비스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대다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듯이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2015/08/25,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증권업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앞으로 핀테크에 성장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키움은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IT 베이스’라는 차별화된 모델을 바탕으로 기존의 대형 증권사를 뛰어넘는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핀테크 열풍의 중심에서 키움증권의 강점이 더욱 힘을 발휘하는 한 해가 될 것” (2015/01/09,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핀테크사업에 진출할 의사를 밝히며)

“영국·미국 등을 보면 금융사의 인터넷뱅킹 진출이 활발하다. IT회사에는 금융 진출을 허용하려고 하면서 금융사의 IT진출을 막는 것은 아쉬움이 있다. 결국 금산분리나 금융실명제가 종합적으로 검토되면 좋은 방안이 있을 것으로 본다.” (2015/02/03,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2015 범금융 대토론회에서)

“최근 몇 년간 금융사고가 되풀이되고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목소리도 나오면서 증권업계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가 매우 저하된 상태다.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업계 종사자 모두가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2015/01/0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승거단목(繩鋸斷木), 노끈 줄톱이 나무를 자른다는 말이다. 국내외 경제환경은 어렵고 정부 정책과 규제 환경은 계속 변화할 것이다. 난제가 산적한 어려운 시기이지만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우직하게 돌파해야 한다.” (2015/01/02, 키움증권 신년사에서)

“국내 10대 자산운용사들의 운용 규모를 모두 합쳐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한국의 금융이 뒤처졌다는 건 그만큼 발전 가능성도 크다는 말이다.” (2014/11/06,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 주최로 서울 숭실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금융은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는 산업이다. 애플이나 삼성보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 등 글로벌 은행이 지점을 두고 미세한 경제정보를 수집하고 제조기업 산업을 중재하며 국가 경제정책에 도움을 준다. 금융위기의 상흔이 아물고 글로벌 금융사가 고부가가치를 올리며 높은 연봉의 일자리를 창출하면 그때 또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금융투자업을 키워야 한다.” (2014/07/1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키움증권의 신사업 측면에서 보험사 인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급하게 인수를 추진할 생각은 없다. 자산운용사를 인수할 때처럼 업종 공부를 하고 매물로 나온 보험사 중에서 조건이나 기업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적합한 회사가 나오면 인수를 추진하겠다.” (2014/03/2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성공은 중간에 그만두지 않는 것에 달려있다. 우리가 지금 어려운 파고의 한가운데 있지만 키움이 처음 출발했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을 수 있는 것은 그 힘이 아니라 꾸준함 때문이다. 지금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먼 훗날 우리를 돌아볼 때, 지금이 바로 기회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014/01/02, 키움증권 신년사에서)

“최고경영자가 부하 직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경영진과 실무진을 자주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내부가 소통이 안 되면 문제가 터져도 대응할 수 없다. 구성원이 수직 혹은 수평으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정확한 정보로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조직이 된다. 중요한 사업을 추진할 때도 부하직원의 아이디어가 성과를 이뤄내면 이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반드시 인정한다.” (2013/12/05, 한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내 경제가 일본과 같이 ‘저성장 저금리’ 기조로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데, 이러다가 ‘저성장 고금리’로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증권사들은 기업공개(IPO) 주관, 전환사채(CB) 발행 주관 등의 투자금융(IB) 업무를 통해 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하면서 경제 활력 제고에 힘을 쏟아야 한다.” (2013/08/2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키움증권을 덩치는 작지만 아무도 깔보지 못하는 증권사로 만들려 한다. 키움증권이 골드만삭스보다 작지만, 회사가 작은 것이지 회사를 구성하는 사람이 작은 것은 아니다.” (2013/06/1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바다가 잔잔하면 배는 평안하다. 그러나 평안한 배에 승선한 선원들은 운이 좋은지는 몰라도 아무것도 배우는 것이 없다. 거센 파도나 강한 바람과 맞서 본 적이 없기에 되풀이 되는 고난에 맞설 수 있는 근력, 맷집, 실력, 관록을 키울 기회도 없는 것이다. 새로운 항해를 되풀이하면서 우리 키움은 그때마다 더욱 강하게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이를 통해 야무지고 강한 회사, 차별화된 확실한 경쟁력이 있는 회사, 화학적으로 결합된 금융계열사를 만들어야 한다.” (2013/01/02, 키움증권 신년사에서)

“키움증권은 선택과 집중을 한다. 온라인 주식위탁매매 분야에서 1위를 이어오다 보니 부러움을 받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폄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허울좋은 ‘고급스러움’이 무슨 실속이 있나. ‘대중성’을 의식한 것이 주효했다. 앞으로도 잘하는 것에 더욱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온라인 브로커리지 중심으로 사업구도를 다각화해 나갈 것이다. 2년전 론칭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해외선물, FX마진 트레이딩 등 주식 트레이딩의 모든 것을 제공해 고객들의 로열티가 유지되게끔 할 작정이다.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며 IT와 온라인 기반의 강자가 될 것이다.” (2012/07/10, 한 매체에서 주최한 증권사 사장들의 대담에서)

“저축은행 인수는 인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수 후에 저축은행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저축은행 인수이며 키움증권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우량한 저축은행을 선택했다.” (2012/03/28, 삼신저축은행(현 키움저축은행) 인수를 결정하면서)

“투자금융(IB)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신뢰다. 이 신뢰를 쌓기 위해 내가 직접 뛴다. 주관사 계약을 체결하는 회사를 일일이 전부 방문한다.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을 비롯해 공장, 연구소 등 다 돌아보고 판단한다. 기업공개(IPO)는 실물을 자본시장으로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인 만큼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한데 키움증권이 이것을 지향한다.” (2012/02/10,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키움증권의 지점 영업을 할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다. 개척해야 할 온라인 비즈니스들도 많다. 향후 온라인 자산관리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본다. 일각에서는 컨설턴트와 투자자 간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뤄져야 하는 자산관리가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데, 시간은 좀 걸려도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맞이하면서 점차 보편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1/11/1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키움증권 직원 수는 440여 명으로 다른 증권사보다 비교적 적은 편이라 가족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증권사는 업무의 특성상 바쁘고 일찍 출근해야 해서 ‘번개 술자리’를 이전에 근무했던 회사보다 자주 가질 수 없어 안타깝다.” (2011/06/24,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할 당시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갑자기 자금 사정이 꼬여 직원들에게 월급을 못 주는 경우도 있었고, 신문지상에 '부도설'이 떠서 곤란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중소기업에서는 크고 작은 인수합병을 할 때 협상테이블에 직접 나가는 등 실전을 통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의 가치는 역경을 버틸 만큼 달다.” (2011/05, 한 언론사 주최로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대학생 특강에서)

“스포츠와 기업 경영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규칙과 변칙의 절묘한 조화 싸움이란 측면이 있다. 정공법은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이 방법만 갖고 항상 이길 수는 없다. 가끔은 허를 찌르는 절묘한 묘책이 나와 주어야 한다. 또한 승리를 위해서는 효과적인 리더십, 선수들의 개인기와 팀워크, 그리고 때마침 우호적인 주변 여건의 3박자가 필요하다.” (2011/03/30,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키움증권의 온라인 주식위탁매매 부문은 물론 홀세일(기업금융), 투자금융(IB), 자기자본투자(PI), 장외파생, 자산운용 등 각 사업부문이 균형적으로 발전한 강한 포트폴리오를 완성해야 한다. 올해는 단단한 개인주식위탁매매 시장의 위치를 토대 삼아 온라인 자산관리 사업의 기반을 완성하고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2011/01/03, 키움증권 신년사에서)

“인도네시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고 있다. 한국에서 성공한 온라인 트레이딩 모델을 중심으로 또 다른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0/06/09, 인도네시아 현지 증권사인 동서증권 인수계약을 체결한 뒤)

“국내외에서 신사업을 창출하려면 오프라인 시장영역을 반드시 확대해야 한다. 자산운용업과 저축은행업 진출 등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하거나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이 분야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키움증권의 핵심 성장엔진인 온라인 주식위탁매매 서비스가 반드시 기반이 돼야 한다. 그래야 급변하는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할 때 뒤따를 수 있는 위험을 회피하는 기능도 할 수 있다.” (2010/01/26,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온라인증권사로서 고객들의 쉽고 편리한 매매를 완벽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전산장애가 발생해 고객들에게 불편과 실망을 준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 오늘의 문제를 거울삼아 시스템 안정화에 더욱 노력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 (2009/09/23, 키움증권의 홈트레이딩시스템 전산장애가 일어나자 사과문에서)

“향후 온라인 종합증권사로서 키움증권의 사업확장에 주력하겠다. 3~5년 뒤에는 소매금융(리테일)에만 치중하는 경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2009/06/03, 키움증권 사장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 평가

이공계 전문가이자 관료 출신으로 증권업계 CEO들 가운데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관료 시절 이공계 출신이라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경영서적과 경제신문을 챙겨보며 경영지식을 쌓았다고 한다.

기술고시를 합격해 상공부(현 산업자원부)에 들어간 후 20여년간 IT정책, 산업기술, 벤처정책 등 산업 전반에 걸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다우기술, 인큐브테크, 다우엑실리콘 등을 거쳐 40대 중반이 넘어서야 금융업계에 발을 들였다.

해박한 IT 지식을 무기로 키움증권을 온라인 브로커리지의 강자로 키워냈다. 특히 키움증권의 온라인과 모바일 부문 강점을 경영의 차별화 요소로 들고 있다.

관료 시절인 1986년 7월 통상산업부에서 반도체 업무를 맡았을 때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반도체 초기 투자지원 실무를 담당하면서 ‘반도체 신화’에 일조했다고 평가됐다. 1998년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익래 다우기술 회장에게 입사를 권유받았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권용원은 2011년 한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기업애로를 처리하면서 기업에 조언하는 역할뿐 아니라 직접 경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다우그룹에 합류한 뒤 유망벤처기업 투자와 인수합병 쪽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 때문에 키움증권 사장으로 취임됐을 때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됐지만 키움증권의 실적 호조를 이끌어내 논란을 잠재웠다.

세계미래포럼의 ‘금주의 미래회원’ 소개글에서 ‘IT전문가다운 발상과 창의적인 마인드로 디지털융합 시대를 맞아 금융이 나갈 길을 제시하는 CEO’라고 평가됐다.

키움증권 직원들과 번개 형식의 술자리를 종종 여는 등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움증권에서 기업공개(IPO)를 주관하는 회사를 일일이 방문해 전반적인 경영상황을 살펴보는 등 투자금융사업 확대에 온힘을 쏟고 있다.

경영철학으로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많이 봐야 한다’를 제시한다. 외부 인력을 뽑는 것보다 내부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2012년 7월 한 매체에서 주최한 증권사 사장들의 대담에서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으로부터 “키움증권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고객 변화에 발맞추는 능력이 탁월해 많은 증권사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인수합병을 기업경영의 중요한 전략으로 꼽고 있다.

키움증권 사장이 된 뒤 키움자산운용을 창립했고 삼신저축은행을 인수해 키움저축은행으로 만들었다. 2014년에 우리자산운용을 인수해 키움투자운용과 합친 키움투자자산운용으로 출범시켰다. 2016년 7월에도티에스저축은행 인수에 성공했다. 향후 보험사를 인수할 계획도 보유하고 있다.

임원들에게 밝은 표정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기준으로 보고 있다.

◆ 기타

초등학교 5학년 때 테니스를, 고등학생 때 골프를 배웠다. 관료 시절 야구동호회에서 투수로 뛰었으며 축구와 농구에도 능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고시에 합격했을 때 합격자 5명 가운데 가장 낮은 성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료 시절 이희범 전 산업통상부 장관, 한덕수 전 총리, 오영교 전 산업통상부 장관 등을 상사로 모셨다.

사장으로 취임한 뒤 매일 오전 8시마다 본부장들과 만나 회사 상황을 공유하는 ‘티타임’을 했다.

사석에서 “인생의 비극은 실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 직전에 스스로 포기하는 데 있다”는 말을 종종 언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미는 등산으로 주말에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산에 간다. 2000년대 초반 IT업계에 거품이 꺼지면서 다우기술의 경영상황이 악화됐을 때 김익래 회장과 함께 산에 다니면서 재미를 붙였다.

2010년 4월 증권거래소에서 주최한 ‘불스레이스 마라톤대회’에 가족들과 함께 참여했다.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로 삼국지에 나오는 조운을 꼽았다. 그는 “조운은 무예가 출중하고 규율을 지키면서 충성심도 끝까지 잃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1개월에 1번씩 ‘고객의 소리’라는 투자자 모임을 직접 주관해 홈트레이딩시스템에서 고쳐야 할 부분 등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청취하고 있다. 증권사 사장들은 명함에 휴대전화 전화번호를 잘 넣지 않는 편인데 권용원은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등과 더불어 명함에 휴대전화 전화번호를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시 김석 삼성증권 사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과 함께 증권사 CEO로서 참석했다.

기업 인수작업을 진행할 때 서울에 있는 한 한식집을 종종 찾는다고 밝혔다. 처음 인수합병을 진행했을 때 그곳에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그 뒤 인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표끼리 담판할 때 그 한식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에 연봉 5억8270만 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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